나는 별로 그를 비난할 마음이 없었다. 사실 오히려 조금 찔리는 마음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루를 돕겠다고 했으나, 거기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를 완벽하게 맹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상을 알기 위해 이것저것 참견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 실망할까? 배신감을 느낄까? 슬퍼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조금은 가슴이 아프고, 확고하게 에릭을 믿는 그의 의리가 멋있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그를 최근에 만났다며, 후배에 대해서 말해줬다는 모습을 보고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에릭 점장, 당신은 이제와서 악당 연기를 하기엔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네. 내가 모를 뿐이지, 당신이 상냥한 성격이라면 분명 좋아해주는 사람은 더욱 많을거야. 그러니까 그러면 안되지. 영웅을 만들기 위한 발판 악역으로 소모되어 버리면, 주변 사람들은 무슨 기분이겠어.
"아하하. 확실히, 고집이 세보이더라구요."
말로 설득하면 분명 최선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으면, 제일 좋다. 그러나 나는 직전에 그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고집부리다가 서로 의념기를 부딫히는 사태까지 갔다. 요컨데 그도 어지간한 고집쟁이란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주변에서 말렸을 때 설득 되었겠지.
그러니까.
"거기에 동감해요. 자기가 악당이 될 수 있을 줄 아나본데, 그건 악당을 너무 얕보고 있는거죠. 최선을 다해서 박살을 내줄겁니다. 너는 악당 같은거 되지 못해. 그렇게 말해줄거에요.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고."
유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지만, 이래보여도 고집 부릴 땐 포기 안한다. 나는 철저한 열등생이다. 청월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나와, 가디언이 어울리는지 의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겁쟁이. 그런 나라도 어설픈 악당 놀이를 깨부술 수 있단걸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