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사랑이기에, 상대방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존중이 필요해요. 더군다나.. 언제 하루 아침에 사랑을 잃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너무나 먼 미래는 상상하지 마세요. 하루 하루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즐기며 나누세요. 고통은 인내해봐야 병만 얻지, 나아지지도 않고, 더 심해질 뿐이니까요."
옳은 사랑이란 뭘까? 일단, 난 모른다. 틀린 사랑은? 난 모른다. 사랑은 저마다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색과 모양과 크기. 그것들을 한데 아우러서 사랑이라 부른다. 우리들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의 크기와 맞는 사랑을 만난다면, 행복해지겠지만... 아니라면? 그러니까, 나는... 서로가 가진 사랑의 크기를 대화를 통해 알아가며, 각자 다르더라도 천천히 맞춰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흠... 좋아요. 그 정도는 그려줄 수 있어요. 어디보자... 더 좋은 디테일을 위해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은 어떤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또, 어떤 추억을 담고 싶은지. 만약, 그림에 감정을 담는다면...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림엔 어떤 감정이 담겨져 있을지 같은 것도요."
" 좋은 말씀이네요... 화현군의 조언, 충분히 담아두고 고민해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
하루는 화현의 말에 공손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자신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의 말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하나하나 귀담아 들어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게 노력할 생각이었다. 조금은 또렷해진 눈으로 화현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그 의지의 발현일지도 몰랐다. 그녀 역시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한명의 가디언 후보생이었으니까.
" 저는 카사를...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요. 원래 저는 그저 신을 모시면서 살아갈 생각이었어요. 고아인 제게 삶을 살아갈 기회를 준 건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 그런데 어느날 그 아이가 제 앞에 나타났고, 그 아이를 돌보면서 제가 그 아이에게 품고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 나는 이 아이 곁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는 깨달음 말이에요. " " 그래서 그냥 곁에 머무는 걸로 만족하려 했어요, 그거면 족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게 아니더라구요. 어느샌가 저는 좀 더, 좀 더 많이 그아이를 원하게 되었고, 결국 제 마음을 그 아이에게 전했어요. 기특하게도 그 아이, 자기가 좀 더 강해진다면 그때는 제게 청혼을 한다고 해주더라구요. 가슴이 벅찼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구나 하고... "
하루는 잠시 숨을 고르듯 입을 다물곤 먼곳을 바라본다. 분명 카사를 생각하는 것이겠지.
" 제 비루한 삶에서 처음으로 제게 손을 내밀어준 아이에요. 그 아이를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그걸 위해서라면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마음.. 제가 그 아이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요. 분명 들판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그 아이가 충분히 잘 수 있게 다리를 내어줘야 한다면, 저는 그아이를 보듬어주기 위해 얼마든지 제 다리를 내어줄거에요. 얼마든지.. "
하루는 눈을 감고 들판에서 무릎베개를 해주는 자신을 상상하듯 천천히 말을 꺼내놓습니다.
"... 맨 처음 그아이를 만났을 때도 무릎베개를 해줬었거든요.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가. "
가만 이야기를 들었다. 신을 모시며 살아갈 생각이라는 것에 과연 성학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광신적인 면모가 없잖아 있는 것 같았지만... 신경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면서... 서... 뭔가 찝찝함이 느껴졌다. 이건... 그러니까... 아. 대상이.. 바뀌었구나. 같은 그런 느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신이라는 존재에게 헌신하며 살겠다. 모시며 살겠다. 라는 생각으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집착했다. 좋게 말하면, 그 존재에게 헌신했다. 그게 삶의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다른 이유가 생겼다. 카사 씨가 생겼다.. 그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줬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그 사람에게... 헌신하기로 했구나. 끄응!!! 머리가 조금 아파졌다. 이런 감정은 또 처음이란 말이지... 이걸 그림으로 표현해? 그리고 당사자의 리퀘스트가 있어? 으음...
"그렇군요... 알겠어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그려서.. 드릴게요."
사랑, 헌신, 믿음, 광신... 이 모든 것들이... 꽤나 얇은 종이 한 장의 경계를 오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