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나긋한 말을 던져오는 지훈을 하루는 의심스러운 듯 바라봅니다. 지훈이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하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의심하고, 주변을 경계하고, 두려워했을까요. 지훈의 말에도 좀처럼 믿어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 듯 금빛 눈동자로 응시하는 하루였습니다.
" 에릭은 제멋대로 영웅을 만든답시고 카사를 데려간다고 했어요. 왜 하필 카사인지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해요. 분명 그에겐 그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거겠죠. 하지만 전 .. 전 납득할 수 없어요. 왜 카사 본인은 상상도 하지 않은 것을 자기 잣대에 맞춰서 그런 일을 벌이려는건지, 그런걸 저 보고 이해라고 들이대는 것도 전 이해 못해요..! "
진정하라는 그의 말에도 차마 진정할 수 없는 듯, 점점 더 악을 쓰듯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충혈된 눈으로 지훈을 바라봅니다.
" 왜 그런 짓을 하는거죠...? 왜... 꼭 그래야 하는건데요...? 카사가 재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도 자기 앞길은 자기가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있는거잖아요..? 왜... 대체.. 지금도 그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을거에요.. 그러니까 제가 막아야 하는데.. 저는 .. 저는.. "
한순간 입을 다문 하루는 숨을 거칠게 몰아쉽니다.
" ....저는 에릭을 막아야 해요... 어떻게 해서든... 카사는 자기가 결정한 미래를 걸어갈 자유가 있는 아이니까요... 영웅이니 뭐니 남에게만 허울 좋은 이야기 따윈 필요없어요. 저도 알아요, 저희 세상엔 영웅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만들어진 무대위에서, 타의에 의해 영웅이 된 사람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저는 그걸 바라지 않아요.. 그 아이가 영웅이 될 재능이 있는거라면... 자기가 정할 길을 따라가서 영웅이 되는게 맞잖아요. " 안그래요? 하루는 거칠게 말을 내뱉곤 지훈을 응시합니다.
이런 집에? 왜.. 보내지? 보석을 강탈하라! 하는 거라면 또 몰라.. 하지만, 난 그렇게 물욕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수중에 GP가 있다면 우하하하!! 나는 무적이다! 하는 사람이지만, 굳이 타인의 GP까지 탐내는 이는 아니니까... 그림을 그리는 거라면 상관없다는 말에 짧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에릭 이라는 이름이 튀어 나오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기억.. 아, 이 사람이.. 그 가디언넷의...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는 척 하는 게 좋겠지...
"그 에릭이란 사람이 뭘 했길래 그러세요?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제 동아리 선배에게 이 집의 외관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에 온 거예요. 그리고... 산보중이기도 했고..."
으음.. 슬슬 양심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런 건 못 들었는데... 대충 머리를 굴려보면 답은 나온다. 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에릭 선배와는 무슨 관계인가? 같은 것을... 이걸 삼각형으로 이해하면.. 참 쉽죠. 인 격. 흐음.. 소중한 사람은 카사 씨구나.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답례.. 라고 하긴 뭐하지만, 제가 그림을 그려드려도 괜찮을까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어본다. 내 양심도 참... 이기주의자! 라고 선언한 사람 주제에 참 이상하다. ...사실,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에 집중하는 사람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적이 아니지만. 난 어디까지나 관객이지만...
청천은 릴리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약간 의아해하지만 흥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제노시아라면 이것저것 상상이 가능하겠는데, 청월고교생이라서 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다니 안심이네요. 그러면 저야 좋지요."
청천 또한, 우아한 케이프와 세미정장 차림으로 고개를 숙이더니...촐랑촐랑 앞서나가는 모습이, 마찬가지로 그다지 위엄이 없네요. 안 신난 척 하려고 해도 약간 신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청천은 떡볶이를 좋아하니까요. 자신도 모르게 신속 스탯이 드러날 뻔 했지만...다행히 릴리와 동행 중이라는 사실을 잊진 않았기에, 다시 릴리가 따라오기에 무리가 없는 속도로 돌아옵니다.
"여기에요."
다림이와 갔었던 즉석 떡볶이집으로 릴리를 안내한 청천은... 점원에게 말해서 2인 입장금액을 선결제하고(릴리에게는 "나중에 송금 부탁드려요."라고 눈을 찡긋해보입니다.), 점원의 안내를 따라 냄비에 떡볶이 재료를 담는 코너로 이동하겠지요.
"자, 골라보시죠."
여러 종류의 떡이며, 채소, 부재료, 해물 등등의 다양한 재료들이 통에 담겨서 쭉 늘어져 있습니다.
"양배추...조금 많이 넣어도 되죠? 다 먹을 수 있으니까요."
청천은 헤실헤실 웃으며 조각난 양배추를 냄비 바닥에 깔려고 합니다. 헤헤 양배추다. 릴리가 원하는 재료를 말해준다면...그것도 담아주겠지요. 손에 들고 있는 건 또 다시 3~4인분용 냄비입니다. 혹자가 말하길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어떻게든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