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복 날아가는 스택 +1. 즉, 한숨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들을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의 만족. 대의를 위해 영웅을 만들어낸다고? ...뭐야, 자기가 히어로 메이커 같은 거란 말이야? 어째 생각하니까 어이가 없어져 웃음이 나왔다.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
"맞아요... 저랑은 다르죠... 저는 어디까지나 영웅이 반짝 빛났다 저무는 그걸 보고 싶은 거니까요... 영웅을 만드는 거랑은 다르죠. 대의를 위해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음.. 얼레? 이거 어디서 봤지 않았나? 붉은 곰을 기리며 어느 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생각나는데 말이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영웅이 아니라, 새로이 떠오르는 영웅을 원한다. 였던가.. 결론이.. 후우...
"맞는 말이에요. 13영웅과 수 많은 준영웅이 있다고 한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건 아니며, 지금도 누군가는 고통받고, 누군가는 나름대로 안락한 삶을 사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난 게이트에 의해 한 순간에 파괴되는 일상... 새로운 영웅의 출현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너무 미래를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예요? 그걸? 굳이? 지금? 당신이?"
"분명 이걸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신 한국의 백작이자, 3명의 건 마스터 중 한 명인 문 시현의 아들이라고. 그런 제가 치즈 케이크랑 딸기 스무디값이 아까워서 그런 일을 할까요?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면 그것이 좋은 제안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당신의 제안은 저에게 이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념념…. 그렇게 딱 잘라 말하고선, 그는 마치 상대보고 약오르라는 듯 느긋하게 딸기 케이크를 먹었다. 잠시의 침묵.
"당신의 계획이 싫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단지 그걸 제가 하기엔 몇 개의 문제가 있다는 거죠. 하나, 저와 당신의 사상은 큰 줄기가 일치하지만, 단순히 사상의 일치로 그런 일을 맡기엔 보수가 너무 적다. 둘, 저는 스파이같은 일은 전문이 아니에요. 기획안을 짜는 게 전문인 사람에게 메이크업 스텝을 맡길 수는 없지 않나요? 셋, 큰 대의를 가지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란 무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좋으나,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어설퍼."
"이런 무대를 계획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영웅의 삶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수집한 적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적어도 10명의 영웅이, 각자 어떤 시기에 어떤 고난을 겪었고, 그 고난을 동료와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리고 반대로 10명의 쓰러져간 영웅이 어떻게 고난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상세하게 말할 수 있나요?
자료 조사와 인풋은 창작의 첫 시작이죠. 잔인하게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지금의 소비자에게, 그 안에 담긴 신념과 대의를 전하기도 전에 작품은 외면당하고 버려지고 말아요…. 13영웅을 뛰어넘을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다루는 무대가, 그래서는 안 되는 법이잖아요?"
"…아무튼, 이쪽에서 제안을 다시 하죠. 신 은후는 에릭 하르트만의 동업자로서,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당신의 무대를 도운다. 제 방식대로 하는 거이기에 보수는 필요 없어요."
딱히 프랑스어로 말하려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뭔가 사진이 본래 알던 뷔페의 느낌하고는 많이 다르다. 뷔페라고 하면 적당한 저품질의 식재료로 대량생산한 음식들이 반쯤 식은 채로 한가득 쌓여 있는 일종의 요리 공동주택이다.
“저기, 클로디. 저거 분식, 뷔페라고 쓰여 있는 거 맞아……?”
분식과 뷔페라니. 신 한국에서 제법 오래 산 릴리니까 당연히 분식점이 무엇인지는 안다. 그리고 먼 옛날, 신 한국이 두 개의 나라로 나뉘었을 때, 남쪽 한국의 어느 지도자가 경제 발전을 위해 분식을 장려했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분식 뷔페라는 건 처음 듣는 말이거늘…….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생뚱맞은 조합도 아닌가? 고기 뷔페, 해물 뷔페, 바베큐 뷔페…… 분식이라고 없으라는 법도 없으니.’
릴리는 어감이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그 말을 외쳐 본다.
“분식뷔페! 분식뷔페!”
으으음. 뭔가 『바다사자』나 『산갈치』 같은 단어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정도의 단어 조합인가.
“분식뷔페, 가 보자! 요리가 그 정도로 많으면 그 중 하나는 마음에 들겠지. 게다가 원래 분식은 재료의 질 따위 신경도 안 쓰니까. 좋은 생각 같지 않아?”
너무 먼 미래를 보고 있지 않느냐는 화현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 발을 너무 오래 맞춘건가? 너는 내가 이 일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건가. 괜히 캔커피를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 다들 태연한척 하지만, 몇 주 전만 해도, 우린 전쟁터를 돌아다녔어, 태양왕 게이트에 수 많은 학생들이 죽었지. 그게 너와 내 친구들일지도 모르는 애들이었고, 정말 터무니 없이 많이 죽었어, 현실을 자각하기도 충분한 시간이었지. 사실 일전부터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저 막연하게 하고 있었지, 그리고 태양왕이 트리거가 되어서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한거고. "
" 이전의 나는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어, 정말로 내가 이런걸 해도 되나? 싶은 그런 생각만 해왔지. 하지만 화현아..지금의 나는 해도 될 것 같아. "
" 내가 카사를 대상으로 삼은건 간단해, 그 아이가 1학년 중에선 재능으로 압도적이니까야. 조금만 가다듬으면 윤곽이 뚜렷하게 잡힐 것 같지 않아? 너도 봤잖아..그 의뢰에서. "
함께 프랑켄 슈타인에 갔을 때, 너도 분명 확인했다. 카사의 재능을...우리가 그저 멍하니 함정을 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직접 함정을 돌파하는 맹수의 모습을..
" 너무 먼 미래가 아니야, 오히려 늦은거야.. 붉은곰이 실종되고 러시아의 꼴을 봐. 아버지가 죽어버린 자식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
고개를 끄덕인 나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확실히 심플한 느낌. 그래서 그런가 거울로 돌아보면, 어쩐지 얼마전 정장 입었을 때가 떠오르네. 춘심이에게도 보여주면 좋아하려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도 한번 더 정돈하고 나왔다.
"이 정도면 될까요?"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가, 조심스럽게 나오면서 묻는다. 내가 보기엔 어색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점장 입장에서 '안어울려!' 하고 탈락시키면 얘기도 뭣도 없다.... 그런 흐름으로 이어지기전에 빠르게 대화를 이어가자. 질문해도 된다고 했었지.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은 조심스럽게 언급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가디언넷에 올라온 사진이랑 점장님....닮으신 것 같은데. 혹시 동일 인물 맞으신가요?"
아이러니 하게도, 별로 의심하고 있진 않다. 왜냐면 맞다는걸 반대로 알고 있으니까. 다만 눈 앞의 이 사람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르는 인물일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걸 알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온 것이다.
의외로 시원스럽게 인정하네. 놀라는 한편,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별로 본인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없는 태도. 그러나 그게 단순히 뻔뻔해서 그런걸까? 나는 여기까지 와서도 그에게선 무언가...악의를 느끼지 못했다.
"가게가 더러워질만한 일을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나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면서 근처에 있던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의 맞은 편에 앉곤 조신하게 앉았다. 다림씨에게도 말했지만 난 '너 왜그랬어!! 이 나쁜 녀석!! 당장 취소해!!!'라고 드잡이질을 하러 온게 아니다. 내가 느끼고 있던 위화감은,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눌 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나는 내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침묵. 그저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 해가 저무는 소리. 새가 울고, 날아오르고, 벌레가 울 뿐인 소리. 그런 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해가 저무는 소리가 멈추고, 새의 날갯짓이, 그 다음은 벌레 우는 소리가 침묵했다. 쏟아지는 소리에 다른 것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와 나는 참으로 이상한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젠 있었던 사실만 남아버렸다. 이전부터 고민해오던 것이 있었으며, 그 고민이 해결된 것도 큰 사건을 겪은 뒤였다는 것.
카사 씨를 대상으로 삼아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 속셈인가. 그녀의 의견은 들어봤을까? ... 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듣지 않고 멋대로 의념기의 대상으로 삼아 영웅으로 표현하던 내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 가다듬기만 하면 윤곽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이미 세상에 우리보다 재능이 뛰어난, 씨앗부터가 다른 자들이 즐비해있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올라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날 때 즈음... 입을 열었다.
"동의해요."
먼저 동의. 너무 먼 미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다. 당장 러시아로 고개를 돌려봐라. 러시아는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수복이라는 것이 먼 꿈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 뒤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이다. 학생이 다른 한 명을 지목하여 누군가를 위한 무대를 만들 정도로 여유있는 존재인가? 학업에 열중하며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서? 심지어 우리에게 영웅을 만들만한 재능이 있는가? 지금의 우리는 예전보다 강해졌다고 한들, 그저 학생에 불과하다. 누군가 보면 소꿉장난에 불과할 이 모습이... 참...
"잠깐,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여러 고민을 했었어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간다.
"저는 말이죠... 제가 영웅을 보고자 하는 것은 말이죠... 떠오르는 태양에 지지 않을 정도로 빛을 발한 뒤, 태양빛에 가려져 존재하지 않게 된 그 별을 영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존 본능.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도 좋아. 생존 본능을 거슬러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여 살고 싶다는 욕망마저도 꾸욱 집어 삼킨 채 눈물을 흘리며 최후를 맞이하는 그런... '영웅'이 저는 보고 싶었어요. 의미 없는 희생을 한 자가 아니라... 의미 있는 희생을 선택한 자를."
"그런 영웅을 저는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볼 수 없었죠. 저 같은 소시민이 그런 영웅을 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아마, 초대형 게이트에 휘말려서 부상하나 안 입고 살아남는 정도의 확률이겠죠. 그래서, 저는... 영웅을 그리기로 결심했어요. 의념도 거기에 반응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본 그 영웅 덕분에 의념이 각성하게 된 걸지도 몰라요. 볼 수 없다면, 그려서라도 봐라. 같은 심정으로... 그래서 제 의념기도 영웅을 그리는 게 됐죠."
"하지만, 영웅을 그린다. 만든다. 라는 것은 꽤 잔인한 일이에요. 제가 보고 싶어하는 영웅은 결국 희생이 필요하니까. 누군가에게 영웅이라는 형상을 덧씌워 그를 절벽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가? 라는 것으로 저는 엄청 고민했어요. 그 사람이 과연 이런 영웅을 바랐을까? 내가 생각하는 영웅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잘한 것인가? 난 내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주의자가 아닌가? 하면서... ...그런데, 그런 고민도 해결이 되더라구요. 저 자신은 이기주의자가 맞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니까요. 인정하고 나니까.. 속 편하더라구요. 내 행동에 브레이크가 없어진 기분이었어요."
자기가 말해놓고 어이가 없는지 살짝 웃었다.
"걸림돌이 사라졌으니, 행동은 좀 거 거침없이 변했고.. 약간의 후회가 있을 지언정 즐거웠어요.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드디어 나의 색을 찾았다. 같은 느낌이라...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구요. ...그거 아세요? 그 그림에 그런 감정을 담는 것은, 제가 당신의 추억을 만들어 언제든 회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신은 어때요? 그런 행동이 즐겁나요?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후회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없다. 카사 씨께서 영웅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걸로 기쁘다. 라고 한다면! ...뭐, 제가 도와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