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물게도 기분이 좋았다! 요즘 어쩐지 일이 잘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도 생겼고, 새로운 스킬도 익혔고, 방패술도 어렵지 않게 C 에 도달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감이 조금 되돌아오고 있다고 할까? 조금만 더 기반을 닦으면, 의뢰에 나가서 실전 경험을 더더욱 늘려보고 싶네. 그 땐 청천이를 부르도록 하자.
"엇."
그러던 중 어쩐지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에, 나도 가볍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로 있었다. 단정하고 아름답던 모습은 흐트러져있고, 옷에는 피가 얼룩져 엉망진창. 왼팔에는 부상을 입었는지 붕대를 돌돌 메어, 반대쪽으로 짚은체 천천히 걷고 있다. 상냥하던 눈빛은 어딘가 어두컴컴하게 가라앉아있는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아는 그 인물이 정말 맞을까, 스스로 한번 의심했을 정도다. 따라서 나는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려다가, 역으로 눈을 크게 뜨곤 놀라고 마는 것이다.
"하루야!"
나는 누가 뭐라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에게 뛰쳐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허둥거리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지금은 진지한 상황이다. 침착해지자. 나는 의식을 마치 의뢰에 나갔을 때 처럼 냉정히 다듬으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는다. 나를 알아본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걸 보며, 나는 속으로 이를 갈곤 무겁게 물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속으로 다시금 경악했다. 남을 배려하길 좋아하고, 걱정 끼치기는 싫어하는 하루가 이렇게 힘든 소리를 하는건 처음 본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건 카사에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사이 좋은 커플이 심하게 다퉜다는건 상상조차 안간다.
"젠장.....아니 일단. 무슨일이 있어도 난 널 도와줄테니. 진정해."
완전히 패닉에 빠진듯한 그녀를 보며 나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곤,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내가 보증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곤경에 처해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것은 정말 간절한 것이겠지. 나는 도울 것이다. 상냥한 사람에게 닥친 불행을 막기 위해, 나는 가디언이 되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평소보다 훨씬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상태가 안좋아보이니 쉴 필요성이 있어."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그녀에게 여러 시선이 꽂히고 있다. 그도 그렇겠지. 나는 등을 돌린 뒤,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췄다.
이 착한 여자애는 이런 상황에서도 미안해 하는건가. 어쩐지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단호하게 얘기한다. 피해자가 미안하다고 사과 해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과연. 그 때 화현은 이런 기분이었나.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 질지도 모르는 최대한 다독이듯 정돈하려 애쓰며, 나는 말을 이었다."
"너는 상냥한 사람이야. 짧게 어울렸지만, 나라도 그 정돈 알아. 그런 사람이 울음을 터트리는건 사양이다."
홀로 어두운 방 구석에서 얼마나 울었던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현실에 나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러니까, 나는 상냥한 사람의 눈물을 용납할 수 없다. 그 뿐이다.
"......"
청월이란 말에 잠깐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이었을 뿐. 나는 개의치 않다는듯 다시 걸었다. 거기에서 겪은 수 많은 아픈 기억이 뇌리를 자연스럽게 스치고 지나가지만, 티내지 않는다. 아무리 꼴사나운 나라도 때와 장소는 구분한다. 상처입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하는 사람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진 않아.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탄식을 흘렸다. 누가 저런 막말을 했지? 사실 전학이 그저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나도 그리 좋은 이유로 전학하진 않았지만, 새 환경에서 잘하고 있기도 하고. 더군다나 카사는 워리어치곤 상당히....독특하지 않은가. 청월에서 지원받았을 때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건,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영웅이 탄생할 곳은 청월 뿐이라던가, 의사 확인도 없이 전학 추진이라니....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혀를 쯧 찼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정말 더럽게 오만한 자식이네."
저 이야기가 전부라면,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솔직히 너무 오만해서 오히려 한바퀴 돌아 이상할 지경이다. 아무리 청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녀석이라도, 보통 저런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가? 성 아프란시아를 졸업한 선배들과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교사들을 전부 깔보는 발언 아닌가. 그 정도 실력을 갖췄다고? 청월은 '완벽한 가디언' 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거기엔 물론 가디언으로써 갖춰야할 인격적인 교육도 포함된다. 너무 냉철하거나 깐깐하거나 고지식한 사람이 되는 경향이 많은 그 곳에서, 저렇게 오만한 발언을 하는 놈이 있다니. 머리가 맛이 갔거나, 무슨 수상한 꿍꿍이가 있거나.....어느쪽인진 잘 모르겠다.
"......하아."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나지만, 등 뒤에서 그녀가 훌쩍이기 시작했을 때엔 일단 한숨에 흘려보냈다. 그래, 그 자식이 뭐하는 녀석인지, 무슨 의도인진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로썬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이미 없는 셈이다.
"울지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잖아."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루를 달랬다. 카사가 전학...간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다. 그리고 경험자로써 말하자면, 가디언의 전학은 반 바꾸기 같은 간단한 주제도 아니다. 실제로 진행한다쳐도, 시간이 걸리겠지.
"도와줄게. 그 재수 없는 녀석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인다면, 하루는 하루의 생각대로 움직이면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