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선 모자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주인도 (당연히) 모자를 줍기 위해서 달려온 주인을 향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은후는 다림을 향해 모자를 건네었다.
"이런 거로 뭘요. 그냥 지나쳤다면, 나중에 시험보다 더 신경이 쓰일 거에요."
물이라도 따로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같은 혼잣말을 하며, 청년은 소녀의 흐트러진, 독특한 빛의 파란 머리카락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다시 이 모자가, 이전보다 더 단단히 주인의 머리에 얹어지기 전에, 어째서 자신이 저도 모르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는지 생각해 볼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적어도 오늘은.
"들어보니 보기보다 무거워서 깜짝 놀랐지만 말이죠! 이런 게 휙, 하고 날아오다니. 놀라서 저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지 뭐에요. 아, 이런 걸 날린 바람에 더 놀라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만, 저 밑으로 가라앉은 기억은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금세 푸른색을 떠나, 갈 곳 잃은 시선이 다림의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로 옮겨갔다가, 다시금 불어오는, 이전보다는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망토로 옮겨졌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바람이라고, 옷을 더 챙겨입고 나올걸. 하는 후회를 안고서.
"시험보다 신경이 쓰이실 건가요?" 그 정도는 아닐텐데.. 라고 생각했다는 양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은후의 발치를 쳐다보던 고개를 들고는, 천천히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깁니다.
"그래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부드럽게 웃으며 묻었을지도 모르는 먼지를 툭툭 털어내려 합니다. 머리카락도 손으로 살짝 정리하려 하네요.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쓸리며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마치 낮의 바다의 수면이 흔들리는 것 같은 빛이 흩어질까요.
"그러게요. 누가 일부러 만든 바람처럼 세게 와서 놀랐어요." 날아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요. 라고 말하는 다림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익숙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소개받지도 않았으면서 만난 적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실례지요. 다림은 은후를 올려다보면서 어딘가에서 만나본 적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끼워맞춰 보다가. 너무 정보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훑어보듯 보진 않아서 다행일 거야.
솔직히, 뭐라 말하곤 싶었지만 오라버니 얘기를 꺼내시는 것에는 “그러게 말이어요…..다른 집도 다 이런 건 역시 아니겠지요~? ” 라고 끝을 흐리며 답해보일 뿐 특별한 대답은 없었답니다. 사실 우리들이 거의 다 성년에 가깝거나 이미 성년은 한참 된 나이인지라 그정도 나이쯤 되었으면 맞춰입는 건 진작에 졸업할 법 하니까요. 본인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입는 걸 싫어하는 게 당연한 것이랍니다. 남매끼리 옷 맞춰 입는건 어린애일 때나 하는 것이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글쎄요~? 지금은 없사와요? “
에미리는 연애는 당분간 조금 쉬고 싶으니까요~ 라고 애써 부드러이 덧붙였습니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없는 거랍니다. 아무튼 없사와요. 정말로! 신경쓰인다거나 그런 사람이라던가 절대로 없으니까요?? 정말이니까요????? 거짓말 아니니까요????? 하늘에 맹세코 정말이랍니다????
“어라🎵 깔끔한 게 괜찮아 보인답니다! 가격이 어느 정도 되련지요? “
뭐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요. 세트가 아닌 걸 권해주시는 걸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답니다. 적당히 수련실에 갈 때 입기 좋아보였습니다.
두 손가락을 맞대어 꼼지락 거리면서 작게 얘기한다. 귀엽다 귀엽다 연호 받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엉망진창 부끄럽다. 그런건 주변에 있는 수 많은 귀여운 여자아이들에게 하면 좋지 않을까. 아, 이미 하고 있나...?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 다만 우호적인 표현을 강하게 내치기도 어쩐지 미안해서, '칭찬이면 뭐.....괜찮지만....'하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덧붙이는 것이다.
"그, 그래."
직설적인 화법에 당황하면서도 조금 고개를 끄덕인다. 속으로 내심 이 애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겠네~ 라는, 친구가 많지 않은 사람 특유의 미묘한 질투나 부러움이 피어온다. 저렇게 스트레이트하게 호감이나 의견을 전달하는건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 만큼 진심으로 솔직하거나, 혹은 그 만큼 전부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야 말이야.
"그런.....가? 외출은 자주 하는 것 같길래."
생각해보면 지나가다가 언뜻언뜻 그를 봤던 적이 있던 것 같다. 여자아이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어서 그다지 인사를 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꽤 친화적인 성격이고, 친화적인 성격은 옷을 잘 입는다(편견).
"응!"
정장부터 보자는 말에는 긴장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한테 어울릴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입어볼 수 밖에 없다. 만약 여기서 예상 외의 반전 매력이라도 나온다면, 감정 표현이 조금은 서투른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결의를 가지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1등 할 자신은 전-혀! 없지만, 낙제하지 않을 자신은 있어서 말이에요."
물론, 학생 평가도 시험 성적과 같이 떨어지겠지만…. 그 청월에서 낙제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 그렇기에 은후는 다시 표정을 관리하며 어느 때나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언제나 성적이 좋을 순 없는 거니까요. 때론 떨어지고, 때론 예전보다 오르고…. 이번에는 그냥, 떨어질 차례인 거로 생각해요."
이런 세상의 흐름을 굳이 꼬아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기에, 청년은 성적표보다는 눈앞의 흔들리는 푸른빛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치, 여주대교에서 내려다보던 낮의 남한강 표면처럼 일렁이는 그것은- 단순히 내려다보던 수면과는 무언가 달라, 신비로우면서도 낯설음 속의 낯익음을 선보였기에.
그렇기에 그의 집중력은 처참하게 거푸거푸 흩어졌다. 평소라면, 호기심이 동해 정말로 이 바람이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 찾아볼 생각도 해 볼 그가, 누가 일부러 만든 바람처럼 세게 왔다는 다림의 말에, 자신은 잘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내리고 멍청한 얼굴로 웃을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저는 신 은후에요. 그런데 아버지는 문 씨."
사실 통성명에 시현의 성은 필요 없지만, 은후는 굳이 장난스러운 투로 아버지의 성을 덧붙였다. 하지만 웃기지 않으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성이 다, 고 이름이 림은 아닐 거 아니에요?"
요컨대- 성씨까지 알려달라는, 일종의 항의였다. 기다림이란 세 글자는 결코 사람의 이름으로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다림이라는 두 글자는 평범하여서.
"1등 할 자신은... 없네요.." 하긴. 본인이 공부한 부분만 나온다고 하여도 그건 힘든 일이지. 정확하게는 다림은 수재적인 건 얼추 가능해도 천재적인 건 아니고, 가장 큰 원인은... 다림주가 영성 -라서...
"그렇지만 1학년 첫 시험부터 떨어지다니. 저는 조금 슬퍼질 거에요." 이 말에서 다림이 1학년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을 올리려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은 다림에게는 약간의... 변명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열심이니... 같은? 그러다가도 눈썹을 내리고 잘 모르겠다는 듯한 웃음을 짓는 걸 바라봅니다. 저런 표정을 어디서 또 본 적 있었을까?
희미하고 가물거리는 기억 저 너머에서 동명을 찾아내면 흑발이었지 않나..? 싶은 은후 입장에서는 미묘한 눈빛의 갸우뚱거림이 있을 겁니다. 도망치듯 떠나가면 보통은 좀 친한 편에 속하는 이들만을 묻어두는 편이라서. 다림은 스스로가 파헤쳐낸 것을 직시하지 않다가. 성이 다 고 이름이 림이 아닐거라는 말에 까르르 웃었습니다. 차가운 표정에서 피어나는 웃음이 부드럽고 가볍다니.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겠지요.
"다가 성씨로 없을 거라고 단정하시는 거에요?" 다림주의 참고로.. 2015년에 다 씨가 7명 등장했다고 한다.(아마도 귀화인으로 추정한다고) 그렇지만 진짜 뾰로통하거나 감정이 상한 게 아닌. 그저 농담식의 말에 가까웠을 것이다. 목소리도 상쾌한 편이겠고.
"기...라고 등록은 되어 있어요." 라고 눈을 살짝 피하며 고개를 조금 숙이듯 기울인 뒤 말하는 다림은 모자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 티셔츠를 보는 순간, 저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하길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답니다.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새로운 종류의 티셔츠인 걸까요?? 캐릭터가 그려진 걸로 보아 마도일본의 티셔츠인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신한국에서 유행하는 종류의 커플티인게 아닐까요??? 뭐가 됐던 간에 아아, 저건 절대 제가 부끄러워서 입지 못한답니다. 절대로 입지 못할거랍니다!!!!
후후 입을 가리고 웃으며 애써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답니다. 물론 마음만을 받겠다는 것으로, 굳이 선물로 주실 거 까지야 없다는 말을 완곡히 돌려 말한 것이었지요. 뭔가 말이어요, 직접 입는다기보단 소장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티셔츠였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격과 양말을 번갈아 확인한 뒤, 조용히 “계산은 이걸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 라 말하며, SAOTOME 이름이 각인된 검은 카드를 건네보이며 덧붙였습니다.
“으음~🎵 역시 수면 양말로 부탁드리와요~! 무늬 없는 하얀색으로 혹시 괜찮으련지요~? “
"1학년부터 성적이 떨어진다는 건 확실히 슬픈 일이라는 것엔 동감할 수 있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필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올라간다면, 선생님으로서는 꾸준히 발전하는 학생이란 인상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졸업 때 좋은 평가를 받은 학생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라고 말을 이어나가던 은후는 다림의 갸우뚱거림에 맞추어 문득 학교를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천을 넉넉하게 쓴 망토 자락에 걸치고 있는 옷의 색이 어떤지, 애초에 걸치고 있는 것이 세 학교의 교복이 맞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 안 풀리는 걸지도. 따위의 생각은 뒤이어진 웃음에 금세 날아가 버렸지만.
"신 한국 출신이지만- 사실 단정은 못 해요."
오히려 상쾌한 목소리였기에 자신도 단정은 못 한다고, 전혀 자신은 없었지만 묘한 예감이 있었다고, 겨우 입을 열어 답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마워. 오랜만이야."
돌려 말하는 것인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청년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10년 만의 재회로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라고 누군가는 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더 이상의 긴말은 꺼낼 수 없었다. 그저, 스쳐 지나간 것에 가까웠던, 두 사람의 재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