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음, 눈이 싫은건 아닌데 출근할 때 미끄러워서 조금 힘들어서 말이야. 응응, 조심할게. 그래도 나름 신경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말구. 그러게나 말이야. 에바주 본지도 되게 오래 된 것 같은데 지금도 보고 있어서 참 기뻐. 정말로. 에바주랑 올해도 함께라 행복해.
그러게. 신기할 정도로 오래 되기는 했어. 그래서 좋아. 더 고맙기도 하고. 응. 신년에 다시 하게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답레는 더 늦지 않게 줄 수 있도록 할게. 너무 빤히 보이는 말인가? 아무튼 말야. 요새 겉도는 대화밖에 못 하는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좀 서럽기는 해. 흑흑.
그런 건 아니고 뭔가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 실속있는 대화를 못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레아주랑 대화할 때 그렇다는 뜻은 아니야. 응, 그런 건 아니구. 요새 뭔가 얘기하는 게 어렵게 느껴져서 그런가봐. 외전? 즐거워. 너무 내 맘대로 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 될 정도야. 에반젤린의 원래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져서 레아주가 오히려 어색할까봐 걱정이지. 레아주는 어때?
음음,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매번 실혹있늠 말만 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그냥 편하게 생각하는게 좋을 것 같아. 이런건 심각하게 생각하려고 하면 끝이 없더라. 즐겁다니.다행이야. 나도 즐거워. 레아가 말과는 반대로 너무 들이대서 별로인건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지만.
물론 나는 실없는 대화도 좋아하지만 나랑 얘기 나누는 사람들도 그래야 할 텐데 하는 걱정에 가깝지. 레아주도 좋다니 다행이야. 그냥 가볍게, 산뜻하게 라는 느낌으로 즐기려고 하고 있어. 그러니까 들이대는 것도 레아랑 에바가 밀당하는 것도 마음 가는대로 적으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좋아하거든. 나중에는 에반젤린이 치대고 레아가 놀리고 있는 거 아냐? 그것대로 좋을지도. 레아주, 이번 주는 잘 보내고 있을까. 슬슬 몸이 적응하고 있나봐. 추위가 조금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물론 밖에 나가면 바로 헛소리 하지 마 인마 하는 날씨지만...
응응, 나도 그렇게 즐기려구 하고 있어. 다행이다. 에바주가 좋아한다니 다행이야. 에바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고 말이지. 그것도 좋겠다. 여러가지 모습이 보고 싶기는 해. 나는 잘 보내고 닜어. 날씨.. 너무 변덕스러워서 고생이라니까. 이럴 때 감기 조심해야해. 알았지?
뭐가 다행이야.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디폴트에 가까운걸. 레아주가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내 마음이 다 놓일 정도야. 응. 감기 조심해야지. 오늘 안 그래도 좀 위험할 뻔 했어. 요새 코로나도 아직 난리더라. 한 번 걸렸으니 안전하겠지 하기에는 이래저래 많이들 걸리더라구.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 답레 줄 수 있도록 할게. 얼른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해. 오늘도 좋은 밤 되길 바라.
뭐가 다행이야.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디폴트에 가까운걸. 레아주가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내 마음이 다 놓일 정도야. 응. 감기 조심해야지. 오늘 안 그래도 좀 위험할 뻔 했어. 요새 코로나도 아직 난리더라. 한 번 걸렸으니 안전하겠지 하기에는 이래저래 많이들 걸리더라구. 내일이나 모레 안으로 답레 줄 수 있도록 할게. 얼른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해. 오늘도 좋은 밤 되길 바라.
아, 레아주한테 답장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이름을 레아주로 적을 뻔 했어. 이래저래 바빴어. 바쁘다긴 뭐 하고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그럭저럭 시간 보냈지. 신년 맞이 잘 했어? 나는 올해는 작년과 또 다른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레아주도 더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랄게.
맞아. 무엇보다도 건강이지. 건강한 삶, 건강한 일상이 되기를 바라. 시간 쭉쭉 간다. 역시 새해맞이는 한순간이지. 1월 1일 지나가면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니까. 레아주는 어때? 오늘 내일만 있으면 또 주말이야. 얼른 푹 쉬었으면 좋겠다. 항상 펑펑 놀고 있는 내 얘기는 아니구.
사실 영화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아서 오히려 더 놀란 거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같이 나란히 앉아 있는데도 어쩐지 레아가 자꾸만 더 가까이 붙는 것 같아서 당황한 거라고도. 어깨에 얹힌 손이 몸을 잡아당겨 자연스럽게 레아에게 머리를 기댄 채로 영화를 이어 보면서도 자꾸만 그쪽을 힐끔거리게 된다는 것도 그랬다. 한 번 더 옆을 돌아보았을 때 마주친 눈에 흠칫 놀란 에반젤린은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뭔가, 평소랑은 조금 다른데. 근데 뭐가 다른 건지를 모르겠어. 숨을 들이켤 때 스며드는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편안한 공기에 에반젤린은 천천히 몸의 긴장을 풀어냈다.
영화는 제법 반전이 있는 결말로 끝났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쳐다보던 에반젤린은 어깨를 슥슥 매만지는 손길에 고개를 푹 숙이며 숨을 내쉬었다. 영화가 재밌었는지 어쨌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연애 연습이 대체 뭘까. 평소에 함께 시간을 보내던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인데도 자꾸만 긴장하게 되었다. 아마도, 레아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재밌었어?
여전히 레아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로 에반젤린은 물었다. 편안한데, 눈을 뜨면 다시 마주치게 될 레아의 시선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레아는 별 생각 없는데 괜히 혼자 어색해 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을 때, 계속 그런 자세로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맞춰오는 시선이.
레아?
역시 다르다.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그런데도.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레아의 얼굴에 에반젤린의 심장이 옅게 뛰었다. 현실은 역시 소설과는 다르다. 연애 소설 속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들을 대입시켜 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 설레는 걸까? 태연해 보이는 레아의 표정에 에반젤린이 입술을 삐죽이며 옆으로 물러나 앉았다.
연애도 뭐, 별 거 아니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표정도 레아처럼 태연해 보이길 바라며, 에반젤린은 그렇게 물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해야할지. 취업하고 자리를 찾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어. 아직까지는 크게 잔소리 하거나 압박 주거나 하는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 너무 늦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답답하기는 해. 새해 복 많이 받아, 레아주. 연휴는 잘 보내고 있어?
연초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물론 가장 큰 건 내 마음 문제지만 말야. 덜컥 겁이 날 때가 있어. 나도 잘 쉬고 있지.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고 먹고 인사하고 또 먹고 그랬더니 속이 안 좋더라, 눈물. 그래도 연휴라 그런가. 길거리도 훨씬 한산한 느낌이야. 명절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멀리 안 가는 건 진짜 복이라고 생각해. 왔다갔다 하려면 엄청 고생일텐데. 레아주도 떡국 잘 챙겨 먹었나 몰라.
잘 쉬었지. 나만 노는 게 아니라 모두가 노는 분위기니까 어쩐지 마음이 더 편하더라. 웃기지? 연휴 내내 수도 때문에 난리였어. 날씨가 엄청 춥긴 추운가봐. 자꾸 배관이 얼어 터져서... 으으. 이보다도 추운 날씨일 때도 잘 살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몰라. 레아주도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해. 진짜 답도 없더라, 날이. 요새 집에서 자꾸 물 끓여 마시는 습관이 들었는데 뭔가 나이 든 기분이 들지 뭐야.
물은 거의 사다 먹어서 끓여 먹을 필요는 없긴 한데, 매번 차 타서 마시거나 커피 마시거나 하기는 좀 그렇고 따뜻한 물은 먹고 싶고. 그래서 끓여서 마셔. 엄청 금방 식더라. 난방비도 그렇고 여러모로 번거로운 겨울이다 싶어. 곧 지나가려나? 이 기세면 한 3월까지 계속 추울 것 같던데. 나는 다시 어디 안 나가고 집에 꼭꼭 숨어있어. 이번 주까지는 그러지 않을까 싶어. 레아주도 나가려면 장갑 끼고 핫팩이라도 하나 챙겨서 다녀. 밖에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걱정될 정도야...
태연함을 뽐내려는 듯 물어오는 너의 말에, 왠지 발끈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이 흘러나온다. 아아, 진정해야지. 귀엽잖아, 저런 모습도. 분명히 의식하고 있으면서 아닌 것처럼 구는 저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너는 알까. 나는 그래서 방긋 미소를 지으며 네가 벌린 거리를 따라잡듯 움직여 네게로 붙는다.
아직 다 안 해봤는데? 영화에서도 나온 것들도.
그러니까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어떻게 했더라.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남여 커플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쇼파 위에 올려진 네 한손 위에 내 손을 얹으며 서서히 거리를 좁힌다. 아! 이제 기억났다. 그러니까 그 커플도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지. 영화를 보곤 덤덤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이 맞고. 나는 천천히 네게 다가가 몸을 밀착시킨다. 그리곤 이마를 마주 대곤 살며시 부비며 서로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속삭인다.
여기서 입을 맞추던데. 그것도 안 해봤어.
어떻게 생각해? 그리 말하는 것처럼 속삭이곤 네게 눈웃음을 지어보여. 이대로 입을 맞추고 싶은 내 마음을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내 안의 충동과 맹렬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겉으론 태연하게 웃어보이고 있지만 말야.
큰일이 있었네. 하던 일은 잘 마무리 됐어? 이직... 이직 그거 너무 어렵더라. 알바라도 많이 뛰어봤으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을까. 뭔가 이전에 하던 일도 잘 마무리 하고 다음 직장에도 좀 더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고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 모쪼록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잘 지내고 있었어. 요새 미세먼지 엄청나던데 마스크 꼭꼭 끼고 다녀. 감기 걸릴라. 답레도 잘 읽을게.
뭐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지... 나도 요새 시간 녹이는 대신 일거리 하나 만들어서 하고 있더니 하루하루가 참 빠르게 흐른다. 그래도 뭔가 유의미하게 시간 쓰는 기분을 되게 오랜만에 느끼고 있어. 이직한 직장 분위기는 어때? 잘 지내고 있으려나. 슬슬 날이 좀 풀리는 것 같아. 바깥이 그렇게 춥지 않더라. 잘 지냈어?
자꾸 이런 식으로 휘둘리면 곤란하다. 에반젤린, 정신 차리자. 애초에 멀쩡한 남자친구 한 번 사귀어 본 적 없는 주제에 다른 사람을 능숙하게 리드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라는 걸 에반젤린도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이렇게 상대의 행동 하나에 과할 정도로 놀라고 반응하는 건 싫었다. 연애 안 해본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너무 애같잖아.
뭘, 뭘 해봐?
아니. 연애 안 해본 걸 어쩌라고! 슬그머니 손을 겹쳐잡는 것도 은근히 엉덩이를 끌어 붙이며 나에게 몸을 밀어오는 것도 지나치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건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과 연달아 다른 작품의 주인공이 상대방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다. 아니. 내가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그, 너무 가깝지 않아?
속으로 얘기한다는 게 입으로 내뱉어 버렸다. 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왜인지 얼굴에 닿는 숨이 엄청 뜨겁게 느껴지는데.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는 레아는 역시 예쁘고, 눈이 반짝반짝 해서. 차마 손으로 밀어낼 수는 없어서 한 얘기였는데도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물러서지 않는 레아의 모습에 에반젤린은 숨을 삼켰다.
흣.
오히려 묘한 소리를 내버린 탓에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뭘 이렇게 부끄러워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닿을락 말락 맞대고 있은지 고작 이십 초쯤 지난 것 같은데 두 시간은 지나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끝끝내 떠올리지 못한 에반젤린은 서로의 이마를 맞대어 붙인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유명한 가수더라. 노래 대체로 다 마음에 들어. 심심할 때 해석하고 같이 한 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 답레 조금 지지부진한 게 아닌가, 너무 튕기는 건 아닌가 싶어서 신경 쓰이는데 그렇다고 확 저질러버리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걱정되고 반복이야. 눈물. 무난한 게 오히려 좋더라. 레아주에게 소소하면서 즐거운 일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
잘 지내고 있었으면 됐어. 나도 잘 지내고 있었어. 미적미적 뭔가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근면성실은 진짜 어디다 버리고 왔나봐. 정신개조가 시급하다는 생각 하면서 지내고 있어. 눈물... 그래도 근황 주고 받을 수 있으니 기쁘다. 뭔가 즐거운 일은 있었어? 바쁘고 정신 없으면 정신적으로도 엄청 지치게 되니까 일하는 중간에도 소소하게 좋은 일 생겼으면 좋겠다. 응원할게. 나는 요새 커피가 많이 늘었어. 근데 묘하게 이전보다 잠이 잘 오는 것 같아서 이상하더라. 대화가 영 두서가 없었는데 답레도 금방 써서 줄게!
답레를 준다고 하고서 시간이 훌쩍 지났네. 뭔가 자꾸 간단한 인사만 주고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쉽게 적지를 못했어. 나름 오래 이어진 연이라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 요 며칠 꽃이 엄청 피었더라. 곧 다 져버린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질만큼. 날씨도 슬슬 따뜻해지고 있어. 레아주도 평범하지만 따뜻한 일상 보내고 있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