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손을 모으고, 눈을 감습니다. 하루는 누구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요? 단 한 번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의념이 단순히 빛이기에 가장 연관이 있는 신성한 무언가를 찾아 기도를 올릴 뿐일까요? 신성한 성녀?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다면.. 아쉽게도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하루의 삶을 요약해보자면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쥔 것은 가득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을 바랐고, 더 부유해지길 바랐습니다.
당장 성격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성격이란 것. 언제나 솔직하지만은 않다는 것. 결국 필요에 따라 이득을 저울질하기 좋다는 것.
고아원에서, 성당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기에 그저 '신의 은혜'란 것에 보답하기 위해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언가에 욕심을 부리더라도 " 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야. "라고 했을겁니다. 의념을 각성했을 때에도 그게 신의 은혜라서가 아니라 그저 " 더 많은 것을 취할 명분이 생겼으니까. " 라고.
자기 자신만이 신앙심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아니라고요?
맞습니다.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지금 이 생각조차도 아마도 공포에 질려 가졌던 생각일지도 모르죠. 그러니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부터 당신이 볼 풍경은, 당신을 흔들테니까요.
바티칸. 기적과도 같은 신의 빛이 내리는 곳. 그 곳에서 하루는 검은 빛의 사제복을 입고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정해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걸음을 걸으며 긴 시간을 죽이고 싶었을 뿐입니다. 손에는 위스키 한 잔을 쥐고 홀짝이면서요. 누군가가 본다면 신의 증명이라는 사제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을 본다면 누구나 그런 말은 잊을 것이 분명합니다.
" 세인트 하루. "
누군가가 당신을 부릅니다. 하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봅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
이 시대의 교황. 성 비오 13세는 하루를 바라보며 묻고 있습니다.
" 아.. 교황님이시네. "
하루는 술잔을 쥐고 흔들거리며 웃습니다. 지금의 하루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헤이하고도, 악한 모습입니다.
" 지루해서요. "
그 말에 교황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쉽니다.
" 그냥 이단자들 머리나 깨고 싶네요. "
말 그대로 하루의 삶은 지루해졌습니다. 신의 은혜를 믿고 성스러운 삶을 살아온 과거에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의 삶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러나 자신이 구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범인을 설득하여 자수하게 했다는 것 만으로 피해자들이 울분을 토하며 그를 돌을 던져 죽였을 때. 점점 하루는 망가져갔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이 가치가 없다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행한 일로 이루어진 결과는, 결국 자신이 치료했기에, 설득했기에, 살렸기에, 죽였기에 이루어졌을 뿐이니까요. 하루는 점점 마모되어 갔습니다.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기적을 상징하는 백색의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였던 것도 그때였습니다. 사람에게 질려갔던 하루는 바티칸에서 자신을 찾는다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티칸으로 향했습니다. 666 죄악심의회에 들어 거짓으로 신의 이름을 퍼트리고, 그들을 이용하던 자들을 처벌하였습니다. 그저 심판과 단죄만을 행했습니다. 그 뒤에 이루어질 것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바티칸의 책임이었으니까요.
이단자를 죽인다. 이단이 아니라 죄를 가진 자라면 벌을 내린다. 그도 아니라면 살린다.
그 세 가지 판단만 가지면 되었으니까요.
그렇기에 하루의 삶은 단촐해졌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심판에, 정작 자신의 뜻이 들어가기 시작했단 것을 알게 된 순간. 이미 하루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는 신의 이름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 자신이 이룬 것들, 자신이 해낸 결과들 모두 신의 이름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거기서 신이라는 이름이 빠지고 나면 모두 개인의 욕심과, 개인의 잘못과, 개인의 문제로 남기 때문입니다. 가디언 칩이 붉게 물들고 곧 푸른 십자가가 하루의 손목에 떠오릅니다. 교황은 웃는 얼굴로 하루를 배웅합니다. 하루는 긴 저격총을 쥐고 있습니다. 총에는 세 쌍의 날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하루의 등에는 검은 색의 날개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한 사람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붉은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저 자는, 신은 이제 곧 돌아올 것이며 그 가치로 의념 각성자라는 자신의 파편을 내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게이트에서 가져온 레드 코스트를 신이 자신에게 준 약속이라 말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휘말리고, 믿으며, 열광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리고, 자신의 오른쪽 눈에 손을 가져갑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눈에 스며들고 하루의 안구에 푸른 십자가가 떠오릅니다. 바티칸의 기적. 성 베드로의 파편을 통해 눈으로 죄악을 보는 것입니다. 죄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 선명히 피어오르고 있지만 포교자의 색은 피로 얼룩진 수많은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였고, 어린 꽃을 꺾었고, 재물을 탐했고,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이들의 수많은 운명이 피를 흘려, 한 사람의 운명을 피투성이로 만든 것입니다.
총구를 겨눕니다. 하루는 입술을 열고, 천천히 말을 뱉어냅니다.
" 주여. "
신을 찾으며,
" 죄인을 심판할 힘을 주소서. "
심판의 권한을 받고,
" 내 탄환으로 하여금 주의 말씀이 이어지게 하옵시고. "
바람을 말하며,
" 악은 처벌하고 선을 수호케 하소서. "
기도를 완성합니다. 붉게 타오른 총구는 빛을 뿜어냈고, 곧 불길이 지상을 휩쓸었을 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 모두가 죄인이었으니까요.
수백의 사람이 죽었지만 하루의 표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거칠어진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을 뿐입니다.
차선우는 안경을 고쳐썼다. 진열장 안에 보이는 몇 자루의 화려한 도검들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개를 돌렸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중세 기사들의 갑옷이 보인다. 켈트식 물푸레나무 문양에 화려한 색감을 더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옆에 써져있는, 가디언 전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저렴한 가격.
으음... 근데 고백할 게 한 가지 있어요. 사실 저는 처음 비아 시트 초안을 생각했을 때부터... 기동형 얘기 듣기까지... 비아 방패 이미지를 완전 큰 방패로 생각하고 있던 거였어요... 전에 얘기한 것중에 방패를 세워놓고 기대서 목걸이 십자가를 잡고 기도하는 것-같은 이미지는 큰 방패가 아니면 힘들기도 하고요. 애초에 방패에 대해서 뭔가 지식이 없고 그냥 성기사 깐-지로 고른 것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의념각성자라 힘도 세니 큰 방패도 휙휙 흔들면서 깨고 다닐 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
상점가를 거닐던 춘심이는, 어느 무구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매장에 진열된, 멋드러진 중세풍 갑주들은 그 투박한 본판에 현대의 기술이 접목되어 보다 실용적이게 만들어졌으며 벽에 걸린 화려한 도검들 또한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음이다.
"... 우와."
누가 그랬었지, 아이쇼핑은 무료라고. 당장 필요한 무구 따위는 없었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춘심이었다.
딸랑. 가게의 분위기 탓일까, 묵은 물건인 걸까 맑은 종소리가 퍽 옛스럽다. 가게에는 춘심이 말고도 먼저 온 손님이 하나 더 있더랬다. 이미 구매를 결정한 듯 지갑을 들고 섰는 그 앞에는 어느 무구가 놓여있었고, 춘심이의 관심도 자연히 그가 구매하려는 무구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이거 사시려고요?"
춘심이는 부러 발소리를 죽이지 않고 곁에 다가가서, 안경을 쓴 소년을 비스듬히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방패인 이상 크기야 크지. 근데 내 말은 이런거야. 타워실드처럼 제자리에 꼼짝 안하고 박혀있어야 기능하거나, 혹은 겁나 무거워서 방어력은 좋은데 신속이 많이 느려지는 방패를 선호할까? 라는거임. 단단해지면 느릿느릿 거북이가 되는 것을 다른 방향의 선택지가 있다는 가정하에 굳이 고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