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에서 나보다 격상인 검사와 몇번이고 치고 받았다. 아프다, 아파. 숨이 막힌다. 힘들어. 너무나도, 힘들어. 그래도 방패는 놓치 않는다. 포기는 하지 않겠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혈액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터질것만 같아도. 나는 영웅을 꿈꾸고 있으니까.
모두 힘내주었다. 영원처럼 보이도록 긴 시간 끝에, 그는 무릎을 꿇었다. 나도 방패를 내렸다. 입에서 가득 느껴지는 피맛에, 머리는 어질어질하다. 그는 아까부터, 그 '사내' 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선 어쩐지 원망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검귀는, 친구를 위해서 검을 든 그 사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모든 공격이 막혀 상황이 거의 종료된 지금, 그는 어쩐지 분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초탈해진 것 처럼 보였다. 내 말이 애송이의 궁여지책스러운 도발이란건 뻔히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응해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대답하는 것이다. 격상의 강함을 갖고 있음에도, 최후에는 긍지를 갖고 임해준 그에게.
"불합리한 불행에 휩쓸리는 누군가의, 소중한 삶을 지키고 싶어. 내가 그리 도움 받았던 것처럼."
그래. 비록 너덜너덜한 꼴이라서, 이런 말이 그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진 모르지만. 멋있게 이기지 못하더라도 좋다. 나는 그래도. 내가 싸우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꺼풀 밑으로 피가 흘러내려 검귀의 움직임은 잘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의지와 긍지를 지니고 무자비한 검격을 날려 대던 자였으니, 쉽게 꿰뚫어볼 수도 없었고요. 릴리가 들여다본 것은, 희미한 기억.
의념을 통해 끌어다 쓰는 것이 자유로운, 진리의 설계도. 그것으로 물을 약으로 바꾸는 기적을 행사하고, 수천 번의 참격을 견뎠습니다. 릴리는 그럼에도 죽지 않고 견뎌냈습니다. 물론, 동료들과 함께요. 다리 쪽부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릴리는 느낍니다.
“C’est…… C'était dur…….”
피에 덮인 동공 너머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희미한 신기루의 형상으로 만물의 섭리가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 섭리는 연기처럼 흩어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 싸울 뿐. 그리고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 명예……. 한가득 나를 우러러보는 눈빛…….
“콜록, 콜록!”
목에 엉킨 피를 조금 뱉어냈습니다. 생각보다 내출혈은 심각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릴리는 검귀의 질문에 속으로만 대답하고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언제 그가 다시 움직이고, 방심한 틈을 타 칼날을 내밀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릴리는 피가 묻지 않은 반대쪽 눈으로 검귀를 뚜렷이 응시했습니다. 머리를 써서 생각한다면, 어떤 궤도로 공격해 오는 지는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 아니야. 뭐니뭐니해도 오로지 진리를 찾고 싶을 뿐이야…….’
# 눈으로 검귀를 관찰함으로써 스스로를 공격으로부터 방비. .dice 30 40. = 31
정훈은 무릎을 꿇는 검귀를 보면서, 순간 긴장이 풀리는걸 느낍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네요. 큰일날 뻔 했어요
다시 터져버린 팔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전투를 시작하고나서 처음으로 둘러본 주위에 있는 동료들의 모습에 비하자면.. 그나마 멀쩡한 것 같습니다. 이런꼴이 멀쩡한 편이라니 정말 처절한 전투였네요.
" 무엇을 위해 싸우기는요. 싸울 수 있으니까 싸우는 거죠 "
인류를 지키는 방패! 같은 거창한 사명감같은건 정훈에게 없습니다.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한다. 해야하는 일이니까 한다. 그런 감각이죠. 세상에는 이렇게 싸울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정훈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니까요. 정훈이 누리고 있는 문명이란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함으로서 유지되고 있는 거잖아요?
혼자 살아남는다고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래저래 신경쓸 일이 많은 농사같은건 잘할 자신이 없거든요. 밥도 못먹고 얼마못가 굶어죽겠죠!
" 여기 함께하는 분들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요 "
여러모로 부족한 제 결점을 채워주시는 고마우신 분들이에요. 받은만큼 갚아주려면 저도 제 할 몫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