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기긱!! 방패에 어마무시한 충격이 가해지고 있다. 공략의 핵심인 랜서는 중상. 회복으로 돌리고 있지만, 한대라도 일격을 얻어맞으면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도박은 일단, 통했다. 검귀는 내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는 무인이다. 말하는걸 보면 어디선가, 누군가를 떠올린걸까.
"나에게 보조 안해도 돼!! 다들, 할 일을 해!! 안심하고 공격해!!"
주변에서 쉴 새 없는 원호가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적인 치유는 하지 말라고 전했다. 왜냐면 지금 이 대립이 성립하는건, 내가 그와 '승부' 하자고 했기 때문이니까. 내가 치유를 받기 시작하면 균형을 무너트릴지도 모른다. 그게 최악이다. 그러니까 이를 악 문다. 웃어라. 지금은, 웃을 장면이야. 그에게 말을 맞춰라!
"그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아주 마음에 들어. 나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방패를 들었어!!"
【그래도 영웅을 꿈꾼다】는 그리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대치한지 5분이 지났을까, 날 지켜주던 갑주는 사라지고 너덜너덜하고 피투성이에, 찡그린체 억지로 웃는 내 민낯이 드러나버리고 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자세는 풀지 않겠다. 해보자고. 결투. 이에 악받친 목소리로 나는 소리친다.
"당신이 왜 검을 휘두르는진 모르겠지만!!! 그게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것이라면, 나는 절대로 안 져!!!"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에게 져서는 안 돼. 나에게도 고집이 있다. 자. 쓰러트릴 수 있다면. 해봐. 절대로 안당해줄거야.
"어디 베어낼 수 있다면 베어봐라!!! 그 매서운 검이라도, 고집으로 받아내 보이겠어!!"
금방이라도 떨리려는 팔을 집중력으로 어떻게든 유지하며, 검귀를 향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정훈은 갑자기 뒤통수에 무언가 충격이 전해지자 마음속으로 굉장히 당황합니다.
적이 하나 더 있던건가? 하필 이런 상황에서 암습을 하다니..
하지만 곧 그것이 자신의 오해라는걸 깨닫습니다. 어떤 액체가 몸을 타고 흐르며 지나가는 곳에서 느껴지는 통증들을 줄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놀랍게도, 회복이었네요. 검귀에게 집중하느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아깐 분명 마셨던 것 같은데 이런식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었나 보네요
" 계속 공격할게요! "
미처 치료되지 못한 내상에서 나온 피가 한모금 목소리와 함께 한모금 튀어나왔지만, 사소합니다.
서포터이고, 칼이나 총같은 장비가 없다고 해서, 공격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은후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흡족해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아직 자신은 두 번 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파티원의 보조는 아까부터 열심히 물약같은걸 만들어내고 있는 서포터 동료에게 맡기자.
처음, 그 다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보스, 검귀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지금이라면, 다시 한 번 약점을 간파하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박은 하고싶지 않단 말이지.
ㅇ<-<(같이 누움) 지금처럼 이렇게 의념속성만을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더 나아가려면 <의념 기술>을 만드는 게 좋을 거에요. 지금 설명하긴 좀 까다로운데 위키의 <아카데미 정리> 문서 중 3교 공동 수업에 있는 <의념 기술의 작성법>을 보면 대강 뭔지 알 수 있을 거에요! 지금은 레이드라 다들 정신없어 못 보시겠지만요.
망념은 빠르게 차올라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진화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망념이 차오르고, 이런 둔재주제에 제법 노력했지만 슬슬 한계임에도. 그럼에도 진화는 영웅을 꿈꾸니까요.
진화의 눈에 검귀의 행동패턴이 서서히 익혀집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은..
쿵 소리와 함께 은후의 호신술이 또 다시 검귀를 방해합니다. 은후의 의념기가 발동되자, 그의 눈동자에 보기 싫어도 억지로 정보가 주입됩니다. 검귀의 약점은 ㅡ 검귀의 무기는 ㅡ 그의 일생은 ㅡ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 놓치지 않도록 훑어보던 은후의 머릿속에는 그저 단 하나의 말이 떠오를 뿐입니다
극의일도極意一道
은후의 의념이 증폭되어 그의 뇌리에 파고든 정보에 따라, 검귀의 행동패턴을 분석한 은후가 팔꿈치를 올려칩니다. 그 순간 검귀의 검이 올려쳐짐과 동시에 은후와 진화가 만들어낸 그 빈틈을 나비를 바라보다가 교통사고나 당하던 소년은 놓치지 않습니다.
아버지 보고 계시나요? 아버지의 아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자꾸 분홍색 머리 프랑스인이 머리를 노리고 약병을 던저 깨버리긴 하지만,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증명해볼게요
숨을 고르고, 릴리의 도핑을 최대한 받아들인 정훈이는 활시위를 한계까지 당깁니다. 참격에 베인 상처를 겨우 지혈했더니, 그가 힘을 주자 또 다시 상처가 터져나가면서 그의 옷을 붉은색으로 적셔갑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저기에 자신이 집중해야할 대상이 있는데, 상처 따위가 무슨 대수입니까.
정훈의 화살이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그리고, 검귀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화살은..목 옆에 박혀들어가 검귀의 행동을 완전히 억제합니다.
풀썩
그리고 지긋지긋한 그 검귀가. 마침내 무릎을 꿇습니다.
- 과거, 한 사내가 동료와 함께 여기 찾아왔었지
흐려진 기억이지만, 그것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그를 이기진 못했지만, 굉장히..후련했다는 것 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검귀, 아니 복수를 위해 검을 들어올린 가석주는 그들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