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고아원에서부터 평범하게 입어오던거라 이쪽이 조금 더 편하거든요, 하루는 친절하고 조곤조곤 설명을 덧붙입니다. 애초에 각자 자기 끌리는대로 입고 다니는 자유분방한 성학교인 만큼, 다림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 아무래도... 처음 겪은 경험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긴장하지는 말아요. 그냥 다림이 평상시에 해온대로 차분하게 풀어나가면 될테니까요. 다림이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거에요. "
하루는 다림에게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자그마한 두손을 꼭 쥐어보이며 화이팅 하자는 듯 웃어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시험에서 필요한 것은 학생이 시험 직전까지 차분하게 쌓아온 것들이니까요. 화이팅, 화이팅 다림! 하고 장난스럽게 소리죽여 말하는 것이 왠지 치어리더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 공부라는건 흐름이니까요. 저희 둘 다 흐름을 타서 자연스럽게 공부한거죠. "
하루는 기지개를 피곤 몸을 일으킵니다. 그러다 음료를 물어보는 질문을 던지다, 어렴풋이 들려온 다림의 중얼거림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 하하, 오렌지주스 나쁘지 않아요. 방금 저도 마셔봤는데 괜찮더라구요. 저도 한잔 더 마실래요. 다림이랑 같은 오렌지주스로 말이죠? "
눈을 살짝 피하는 다림에게 들으라는 듯 말한 하루는 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냉장고로 두사람의 잔을 들고 다가갑니다. 그리곤 잔에 적당한 양을 채운 다음 콧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며 다가와 다림의 앞에 잔을 놓아두며 앉습니다.
" 맞다, 다림양, 잠은 잘 자고 있죠?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시험을 대비하는데 중요하답니다? "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군요. 사람들은 게이트를 클로징 하기 전에 자본주의부터 클로징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망치피자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밑으로 한 사람만 넣어주세요."
망고참치피자. 그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다. 반드시... 반드시... 모든 인류에게 망고참치피자를 먹이겠다..
"양심과 질서는 건국 시절 죽었더라도, 그것들은 언제든 다시 부활하여 인간 사회에 스며듭니다. 아시겠습니까, 자낳괴? 그리고 제가 양심과 질서를 꺼낸게 뭐 어때서요. 기업은 양심과 질서, 그리고 법이 있어야 그런 것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사람들의 등골을 빨아먹을 수 있는 거라고요. 합법적으로!"
갑자기 왜 너구리의 발톱을? 어디보자...
"토종 너구리는... 한 발이 4개. 라쿤은 5개로 알고 있어요."
아, 양갱이다. 자연스럽게 약간의 쓴맛이 있는 향이 좋은 찻잎을 골라 따뜻한 물에 우려내 컵에 따라 마시며 양갱을 먹는다. 우물우물..
"걔, 낚시 좋아하던데요. 어떤 요리가 전문인진... 저도 잘 모르지만, 오늘이야말로 바다의 수호신을 낚겠다구리! 하면서 바다에 갔다가 해산물만 잔뜩 캐오던데..."
" 자낳괴라니, 인간이 자신의 안배를 위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왜 나빠! 아무리 치졸하다곤 하지만 이 정도는 전혀 문제 없어! "
자본주의는 문제 없다. 나쁜건 인간이다. 아 생각해보니 화현이는 대한제국 출신이구나, 거기 황제폐하가 공산주의나라 출신이니 공감 못할 수 있어 암 그렇고 말고. 머릿속에 망고치즈인지 치킨인지 이상한 피자가 가득찬 화현이를 내가 치료해줘야한다. 고 강도의 열정과 노동으로 말이지
" 아무튼, 그럼..한 명 적당히 낚아 볼까...지훈이는 어떠려나. "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뭐가 제일 맛있어요?' '콜라요' 할 것 같아서 좀...
" ....? 너구리 이름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거야? 내가 그냥 모른다고 막 부르는거지? 이 녀석 이름 뭐야...... 춘ㅂ..맞췄네. "
아무튼 우리의 희생양 춘덕이를 찾을려면, 낚시쪽을 봐야하는 것 같다. 물론 대화중에 라쿤과 토종 너구리의 발톱 차이를 왜 아냐고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하면 너무 길어지니 생략 생략
그냥 최대한 릴렉스 하려고 노력해보자는거에요. 다림도, 저도. 하루는 그렇게 덧붙이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입니다. 모쪼록 두사람 모두 시험을 잘 보고, 보충수업을 피할 수 있길 바란다는 듯.
" 공부를 안 되는 날에는 한장을 넘기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다림이 생각, 다른 친구 생각, 이런 저런 생각... 하면서 말이에요? "
하루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쿡쿡 웃음을 흘립니다. 그래도 둘 다 공부할 의욕이 있었기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되새기면서 말이죠. 그렇게 가볍게 오렌지쥬스를 말한 다림의 의견을 따라 쥬스를 가져온 하루는 이어진 대답에 힘껏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 그럼요, 너무 잘 자고 꿈도 안 꿔서 요즘은 컨디션이 좋아요. 이대로만 시험때까지 몸상태가 이어지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아요. "
그때까지 유지하는 것도 실력이라곤 하던데 말이에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오렌지쥬스를 홀짝입니다.
" 맞다, 요즘엔 별다른 일은 없어요? 고민이라던가? 있으면 편하게 말해주세요. 그런 것도 어느정도 비워둬야 공부하기 좋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