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보려고 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라며 일부러 입꼬리를 손으로 올리며 인위적인 미소를 보여주었을까. 갑자기 눈빛이 더 초롱초롱해진 듯한 하프물범 베개를 바라보았다. 이녀석 사실 살아있는거 아냐? 싶어 베개를 꾹꾹 찔러보기도 하고.
" 누가 옆에 있어주는 것 같아서 기분 좋잖아. "
잘 때 누군가 옆에 있는 것 만큼 안심되는 것이 없다. 잠에 들며 안 좋은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날 때 가장 힘든 것은, 꿈 그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위로조차 받지 못 하고 혼자서 감정을 삭혀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지금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는 힘들다. 그러니 적어도 그런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던가.
...너무 생각만 했네. 눈을 감으며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잠깐 보인 환각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 하지만 너무... 잠이 올만한 환경이지 않아? "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며, 느릿한 노래... 은은한 조명... 잠이 오기 최적의 환경인데. 자지 말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른하게 하품했다. 수면부족인가...
히에엑- ... 주변인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너무 놀라서, 여기서 뭐 하냐는 말도 못 들었나? 진화에게 날개가 있었다면 분명히 깃털이 다 빠졌을 거야.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춘심이는, 그가 호들갑을 멈출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내 진정한 진화는 무슨 일이냐며 인사를 해온다. 춘심이는 제 이름을 서희라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퍽 만족스럽다.
"누가 밥 사준대서."
앞뒤가 전부 생략됐다. 춘심이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주섬주섬 가디언넷 채팅창 화면을 띄워 진화가 잘 볼 수 있도록 팔을 내밀어 보인다.
"이름 웃기지. 닉네임에 진화가 두 번이나 들어가." "근데, 왜 그렇게 놀라? 뭐 잘못한 거 있어?"
약속은 이미 뒷전이고, 어깨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한참 동안이나 기겁을 하던 진화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안색을 살피는 춘심이었다.
"세상에..." 그나마 다림은 싫다고 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편이죠? 거절을 안한걸까요? 못한걸지도? "바다 양에게 그러다니 너무하세요.." "입술을 깨물고 허리와 허벅지.." 저한테도 입술 깨무시고 그럴 거에요? 목도 깨물고 입술도 깨물고 나중에는 품에 파묻히거나 무릎베개로 숙면을 취하실 거에요...? 라고 말하고는 볼이 붉어져서는 빤히 바라보려 합니다. 아직 선도부가 확정된 건 아니지만. 만일 선도부에 간다면 허리를 껴안고 허벅지에 그것도 맨살에 무릎베개로 누웠다고 하고.. 깨물었다고 진술할지도 몰라요? 라고 말하려 합니다.
"...솔직히 친구 사이에 일반적이진 않..죠..?" "저는 바다 양에게도 저렇게 할 줄은 몰랐어요." "혼자만 당하는 것이었다면...저는 사실 상관없긴 했지만요..." 다림은 바다에게 속삭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라는 그런 게 있습니다. 지훈 군이랑 선을 지킨다면 좋지 않을까? 같은 낙천적임의 흔적인가요?
"...껴안는 건 싫지 않아요." 슬쩍 말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일단 데이트..를 하는데 껴안거나 손깍지 정도는.. 아니 다림아. 다림주는 널 그렇게 키운 적.... 있구나. 미안하다.
Q. 가디언넷에서 온갖 궁상 끝에 밥사준다고 얘기한 사람이, 이미 안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A. 부끄러움에 죽어보시는건 어떨까요.
"............."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다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다. 닉네임에 진화가 두번 들어간다니. 디지몬초진화! 니까 한번일텐데. 같은 의미 없는 딴죽을 마음속에서 슬쩍 걸었다. 서희는 도대체 왜 Spring 이라고 닉네임을 지은거야. 도대체 무슨 연관이야! 봄이랑 관련 없잖아! 라고 호기롭게 말하는 외침도,오므린 입술에 막혀 밖에 나올리가 없어, 결국엔 마음속에서만 빙빙 남았다.
이거 들킨거지?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신종 몰래카메라 같은걸까. 달아오른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침묵하던 나는, 솔직하게 사실을 인정할지, 아니면 꿋꿋하게 정체를 감출지 고민해야만 했다.
"아, 하하, 그, 그래? 난 잘 모르겠네~...."
마주치지 못하는 눈동자, 떨리는 목소리, 새빨개진 얼굴, 옆머리를 베베 꼬는 손가락. .....그야말로 완벽한 평정 상태다. 들킬리가 없다.
그보다, 얼굴 가까워! 가깝다고! 가까워! 가깝다구! 내가 나이도 많고 학년도 위인데, 어째서 포식자 앞에 선 병아리가 된 기분이 되어야만 하는거야!!?
일부로 입꼬리를 올리며 짓는 지훈의 억지미소에 무심코 푸흣, 얕게 숨을 내뱉었다. 뭐야, 그거. 따라한 거? 나 그렇게 이상하게 웃으려고 했던 거야?
" 잘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이니까. "
잠들기 전에 자신이 곁에 데려다놓은 사람, 밤을 지켜주려는 사람. 어렸을 땐 그 역할을 부모가 맡고, 조금 지나선 인형이나 애완동물이 맡기도 하고, 결혼하고 나면 동반자가 맡는다. 나는 그만큼의 사람은 못 되지만, 낮이라면 얼마든지 옆에 있을 수 있어. 눈을 감는 지훈의 어깨를 격려하며 톡톡 치려고 한다.
"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잘 때 같은 기분으로 정확히 필요한 물건을 고르란 거지 잠들란 뜻은 아니지 않았을까. "
나른하게 하품하는 지훈을 보며 좀 난처해지다가, 그래도 길 한복판에서 푹 잠들진 않겠지란 생각에 멈췄다. 그래도 어디 벤치에라도 자게 하는 게 좋을까. 여기 아무리 졸리게 생긴 곳이라고 수면실 같은 건 없겠지? 침대 체험이라던가. ...은근히 있을지도 모르는게 무섭다.
"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건 너잖아. " " 네 야. "
하얀 리본으로 목 부분이 앙증맞게 묶였을 뿐인, 포장했다고도 보기 힘든 뗑컨을 지훈에게 내미려고 했다. 답례라는 거다. 하프물범의 답례치곤 싸긴 하지만.
얕게 숨을 내뱉은 비아를 진지한 표정으로 -그저 무표정이었을 뿐이긴 하지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전에 봤던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던 까닭일까. "정말로 표정이 잘 드러나네.. 라며 그녀를 빤히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 ...혹시, 잠시만 기대도- "
"아냐. 신경쓰지 마." 라며, 자신의 어깨를 톡톡 쳐준 비아를 보며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다급하게 말을 집어넣었다. 비아가 접촉같은 것을 싫어했기 때문도 있겠지. 다만 그는 평소대로의 '장난'이 아닌, 자신의 진짜로 나약한 모습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항상 가면 속에서 살았기에 가면을 벗는 것에는 신중하게 되었던가. ...애당초 자신의 짐을 받아줄 거란 확신도, 그럴 의무도 없었기에, 그는 목이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말을 억눌렀다.
" 애초에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게 나쁘다고 생각해... "
느릿하게 숨을 뱉어내며 살짝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잘 때 기분으로 사라니 그럼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잖아..."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잘 것 같은 기색을 내비쳤을까.
" 아, 내 거인가... 고마워. 귀엽네. "
앙증맞은 크기와 모양의 펭귄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펭귄을 콕콕 건드리다가, 자신의 후드 속에 펭귄을 잘 앉혀놓았다. 귀여우니 이대로 들고가야지. 라는 생각이었으려나,
지훈은 바다의 말에 살짝 시선을 돌리고는 별 말은 안 했으려나. 틀린 말은 아니니까... 뜨거운 시선에 데일 것 같은 건 그렇다 치고 말이다. 다림이가 목도 입술도... 라고 하는 말에 볼이 붉어진채로 빤히 바라보자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할 건데..." 라고 살짝 중얼거렸으려나?
" ...하아아... 어차피 내가 변명해도 안 들어줄 것 같으니, 알겠어. " " 뭘 하면 사과를 받아줄래...? "
다림이도 바다도 자신을 선도부에 진술하겠다고 하자, 지훈은 어느정도 편향적인 면이 있는 진술임에도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편향적이다 뿐이지 대체로 진실이었고... 그리고 저쪽은 두명이니까, 선도부에 진술하면 저쪽 말을 들어주겠지...
" 아무거나 시켜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사과도 할 테니까. 받아주면 좋겠는데... "
일단 지금만 넘기면... 일상에서 혼내줄 수 있어..! 같은 뒷사람의 속삭임은 넘어가도록 하자. 사실 그런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도 하지만, 일단은 뭐가 됐든 선도부 고발보단 낫다고 생각했으려나...
그와는 별개로 껴안는 건 싫지 않다는 말에 "그럼 앞으로도 해도 되는 거야, 그건?" 하고 다림이를 빤히 바라보며 묻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