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으래-? 이렇게 귀여운데, 귀엽단 소리를 아무도 안 해 주다니. 다들 너무하네, 아니면 네 귀여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어서 그런걸까?"
처음 듣는단 말에 일부러 귀엽다는 말을 연달아 하는건.. 잴 것도 없이 놀리는 거였지. 그러곤 완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는걸 보며 '고양이가 그루밍하는거같네. 귀여워라' 하고, 부러 생각을 소리내 말하며 짓궂게 웃는다. 이쯤 되면 즐기는게 분명하다.. 아니, 훨씬 전부터 즐기고 있었나?
"혹시 모르지?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이길 날이 올지도?"
그 언젠간이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덧붙이며 빙긋 웃다가 입가가 가볍게 찔리자 작게 '음-' 하고 내뱉으며 고개를 뒤로 뺐지. 조금 싫은 듯한 표정이 짧게 스쳤을지도 모르겠다.
"힘조절은 잘 하니까- 걱정 마시길.?"
언제 싫은 표정을 지었냐는 듯 금세 방긋 웃은 시현은 다시 후드를 쓰더니 바닥에 드러누워 하품한다. 이 아가씨, 또 잘 생각인가 보다.
지금 말하긴 너무 늦었지만, 카사주 지훈주 일상 돌리던 중이었는데 그대로 시트를 내려버려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 플러팅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뭔가... 스레에 플러팅 공기가 가득 차는 건 쑥맥인 저로선 버티기 힘들 뿐인 거에요...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걸까요...?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거에요... 아까전에 귀화니 뭐니 했던건... 제가 오늘 좀 유난히 예민해서 그렇게 됐던것... 그리고 하루카사 플러팅엔 적극 찬성하며 결혼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 신부 입장~!!
뒤를 돌아본 청천은 진화가 뒤쳐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잠깐 멈춰섭니다. 이런, 조금 신나서 속도를 내버렸네요. 진화의 감탄한 표정을 보고 그는 또 다시, 후후, 웃습니다. 그러면서도, 멀쩡한 것을 보면 건강 능력치는 과련 그런대로 있는 걸까요, 라고 그는 조용히 추론해봅니다.
"은신 특화라,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의념기도 그 쪽이고요."
진화가 그를 어느정도 따라잡자, 그는 진화를 마주보며 슬슬 뒷걸음을 치다가. 조금 속도를 늦춘 채로, 다시 앞을 보며 걷습니다. 조금 멀리, 건물들 사이에 보랏빛에 둘러싸인 큰 나무가 보입니다.
"다만 은신 자체는 전투에 활용할 곳이 많지 않으니...다양한 상황에 써먹기 좋은 기술들이나, 디버프를 수련해볼까 합니다."
일류무사 마양을 상대할 때는...하필 그녀가 사용하는 식신들이 식신들이라(*) 의념이 의도와는 다르게 반응했었지요. 하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것저것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기는 본래 케인 소드를 썼는데...아쉽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아이템화되지 않은 것이라서, 아직까지는 학교에서 지급받은 검을 쓰고 있습니다."
청천은 걸으면서 계속 말합니다. 큰 라일락 나무가 점점 가까워져 옵니다.
//15번째. * 청천이 참가한 파워에이드 파티가 상대한 일류무사 마양은 식신들을 소환해 다루는 주술사였습니다. 청천은 디버프를 걸 목적으로 검에 의념 속성을 싣어 마양의 식신들 중 하나인 마탕귀에게 휘둘렀습니다만, 디버프가 걸리지 않고 대신 마탕귀의 살덩어리 하나가 딸려나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여러 묘사로 비추어볼 때 마양이 부리는 식신들은 인간의 육체 또는 혼이 변질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마탕귀는 죄인들을 희생시켜서 그들을 합쳐 만들어진 군집체형 몹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청천의 의념은 자유를 잃은 채 마양의 계약에, 그리고 마탕귀에 매여있던 인간의 혼에 반응했던 것입니다.
워리어도 나름대로 종류가 있다고 들었다. 결국 전선에서 나가 싸우는 이상, 나름대로의 전투력이나 공격력을 갖추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막아내는 가디언'. 오로지 적의 공격에서부터 아군을 지켜내는 방패. 내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몸이 튼튼한 점은 다행으로 생각한다.
"헤에, 장소에 도착하면 서로 보여줄까? 추측해보자면....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다거나?"
여유로우면서도 장난스러운 태도로 말하는 청천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야에서 보랏빛 나무가 비췄다. 응. 저 정도 거리라면 전력질주의 페이스로 끝까지 갈 수 있겠다. 지구력 훈련을 하는셈 치고 계속 달려보자.
"그건 그럴지도. 기습을 시작하거나 전투를 피하는덴 유용하지만, 싸우는 도중엔 모습을 감추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네. 청천이가 랜서 지망이라 기척을 감춘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다면 조금 다르겠지만, 그건 괴도라기 보단 암살자고."
과연. 어쨌거나 자신의 의념을 살리면서도 이래저래 보충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구나.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나는 내심 스스로에 대해 고민했다. 나의 경우엔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나 자신도 솔직히 명확하지 않은데. 그나저나 청천이에게도 설명하겠지만, 오로지 방어만을 목표로 하는 워리어에 은신특화 서포터인가....벌써부터 잘 알지 못하는 랜서 친구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