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인가요? 떨어진 것을 주워주려고 허리를 숙입니다. 숙인 채로 수첩을 진화에게 내밀며 다시 머리를 드니...
"....?!"
청천은 지폐를 보자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손사래를 치기 시작합니다.
"그...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무슨 오해를 산 건진 모르겠지만, 청천의 영성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이 오해를 빨리 푸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전 그냥, 반가워서 말 걸어본 거에요. 잘 지내셨나 궁금하기도 해서..."
그러고보니 청천은, 학원도에 오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남에게 관심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하지만 이미 인사한 뒤네요. 역시 학원섬에서 처음으로 초대형 게이트의 침공**을 겪고,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을 겪어본 것이, 알게 모르게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GP=가디언 포인트, 즉 돈. **현재 스레 내 시점은 3월. 2월에 초대형 게이트인 '태양 왕국의 서사'의 침공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실제로 몇몇 npc들이 실종되거나 사망하였다.
며칠 전이 공휴일이었고 금요일에 병가도 내서 많이 쉰 것 같은데 그만큼 일이 생겨버려서 별로 못 쉰 것 같기도 하고...(먼산 그으렇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손목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던 것인지, 아니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딱 그렇게 때가 들어맞은건지 모르겠네요.
살짝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을까. 대부분 곤란하다는 대답으로 돌아왔으니 그럴만도 했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다림의 이마를 톡 건드리려고 하며 "답이라도 알려주면 안 돼?" 라고 빤히 바라보려고 했으려나.
죄책감을 덜어도 된다는 말에, "그럼 짓궂게 대하고선 죄책감을 더는 걸 반복하는 못된 짓을 해버려도 괜찮은 거려나." 라며 장난스레 답했을까? 사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긴 했지만.
" ...이러는 건 나 뿐인 건가... "
고개를 기울이는 것에 묘한 확신이 느껴져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지. 확실히 나만 이런 장난을 치는 거라면 다른 사람이라 오해받을 일은 없겠지만... 고양이마냥 품에 폭 안기면 갑자기 장난기가 들었는지, 살짝 답답할 정도로 꽈악 안아 품에 파묻어볼려고 시도했으려나?
" 잡혀가게 만들려고 했으면서 신고는 안 하다니. "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어..." 라고 살짝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으려나? 조금 움찔하지만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고는 시선을 맞춰 빤히 눈을 들여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라고 독백하듯 말하고는 허리를 좀 더 끌어안으려고 했지.
"네에.. 곤란한건 곤란한 거니까요.." 답이라도 알려주면 안되냐는 말을 듣자.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회피하는 것에서 뒤집힌 것마냥 굴면 지훈 씨에게도 그렇고 저도 난처해지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뒤집힌 것 마냥 굴고.. 진짜로 뒤집혔다가 돌아왔다가 하면 조절 같은 것도 못할 것 같으니까.. 와전 파국일 걸요? 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럼요.. 이러는 건 지훈 씨 뿐일 걸요..?" 다른 분들을 생각해 봤지만 신체상해는 지훈 씨가 너무 압도적이었습니다. 하루랑은 접촉이나 그런 건 있었어도 상해는 없었잖아요... 다른 쪽은 다림이가 접촉하는 그런 류에 가까웠지... 장난기가 들어서 품에 꽉 안아 파묻히는 것을 느끼자. 약간 굳기는 하지만 금방 풀리고는 자연스럽게 끌어안기려 하나요? 다만 완전 밀착은 힘들겠죠.
"너무.. 밀착하면 숨 막힐지도 몰라요..?" 음. 그리고 어깨끈이 흘러내릴지도 모른다는 건 넘어갑시다. 이건 현실성을 생각하던 다림주가 급작스럽게 생각해버린 거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자
"그러게요..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느릿느릿하게 말하고는 허리를 끌어안으려 하면 다림은 약간 목에 매달리듯 안기려 합니까?
"나랑 같이 공부하면 서로 제대로 공부하는지 감시하는 것처럼 될텐데 괜찮아? 괜찮으면... 다음에 네 새 방으로 놀러갈게. 아프란시아 기숙사로 옮겼을 텐데 집들이도 못 했잖아."
쫓기듯 떠난 게 아니라 이사한 것처럼, 그저 새 집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처럼. 웃으며 그렇게 가볍게 말했다.
"방패를 활용하는 건,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쳐내는 것과 같단 걸까. 임시변통일 뿐 결국 칼은 '베는 것'이니까. 그런 게 봉쇄되었을 상황이라면, 아군이 적한테 잡혀 있다거나 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네. 방패는 기본적으로 크기만큼 상대의 공격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내는 게 목적인 무기니까, 그렇게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하면서도 한정적인 영역을 노려야 하는 때-방패의 이점을 무효화할 수 있도록 상대가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는 활용하기 힘들 거야..."
방패 대 방패의 대련이 어색한 이유도 그런 것이다. 방패는 보통 상대가 먼저 공격하려 할 때 그걸 막거나 받아넘기기 위한 도구지, 먼저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보통 방패 그 자체를 무기로 쓰기보단 방패로 몸을 보호하면서 검을 썼던 것도 방패만 쓸 때의 부족한 공격력을 보충해주기 위함이겠지...
"나도 격투술을 배우는 걸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야."
어떤 무기를 쓰던 간에, 결국 쥐어서 쓰는 무기는 '손'의 확장이다. 팔을 뻗고, 손이 나가고, 그 손에 있는 무기가 움직인다. 능동적으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고 회피하는 움직임에 방패의 영역을 섞어넣는 게 방패의 전투다. 그러니 체술을 익혀둘 필요는 분명히 있다. ...라곤 해도 뜬구름 잡는 소리다. 당장 방패도 잘 못 다루는데 그쪽으로 나가봤자 이도 저도 못 잡는걸.
"너무 급하게 먹으면 체하잖아. 천천히 먹어도 되는걸."
방패 얘기를 생각하다가... 굉장히 허겁지겁 먹고 있는 진화를 보고 저러다 꼭 흘릴 것 같다, 란 생각을 하면서 면박을 줬다. 더 줘야 할것같은데. 까르보나라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한입 씹으면서 냅킨으로 숟가락을 닦은 다음 리조또를 절반보다 조금 작을 만큼 나눴다. 진화가 먼저 다 먹으면 줘야겠다. 이쪽은... 내가 먹고. 우물우물.
잠깐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가시방석(진짜)에 앉아 문제지를 풀고 있는 나. 다 풀고 나서 내리는 비에 비아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이내 회초리로 때리며 호통치는 광경. '게이트 너머의 슬라임이 너보단 공부를 잘할거야!' '히에에에엑!' ..... 설마. 엄한 부분이 있는 비아지만, 그렇게 혼나기야 하겠어. 조금 무서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초대하고 싶었다.
"응. 내가 이해하기론 그랬어. 물론 방패로 휘두르기도, 밀치는 것도, 분명 기술의 일환으로써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목적은 '막는 것' 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네. 방패가 봉쇄되는 환경이란건 어떤 것일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방패를 떨어트렸다던가. 혹은 강력한 공격에 의해 큰 파손이 생겼다던가. 아니면....그렇네. 벽을 지나칠 수 있는 게이트 같은 상황도 있을 수 있겠다. 방패는 비아 말대로 일종의 벽이니까. 안개형이라던가, 액체형이라던가, 혹은 여러가지 얇은 다발이라 방패와 팔 사이를 둘러 파고들 수 있다면 돌파할 수 있지."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드물다. 나는 오랫만에 진지한 기색으로 여러가지 의견을 교환했다. 비아가 말한대로 방패는 기본적으로 해당 크기만큼의 '벽' 을 만들어내는 도구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벽과 정면으로 부딫히는 힘에 관해선 뛰어난 내구를 보여주지만,반대로 그걸 통과하거나 돌아오는 형태의 공격엔 취약하다.
"그래서 손을 이용한 격투인가. 확실히 한 팔로 방패를 앞에 내세우면, 다른 한 손은 비게 되지. 선생님은 어느쪽을 메인으로 세울지에 따라 또 다르다고 하셨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격투를 보조로 쓴다면, 뭐라고 할까, 그렇네. 손을 단봉처럼 방패를 쥐고 있는 손 뒤에 대기시켜, 파고드는 공격을 쳐내는 또다른 방어기제처럼 쓰는걸지도 몰라. 손의 움직임은 유연하니까, 여러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고."
거기까지 말하곤나는 흠. 하고 생각에 잠겼다. 당시의 나는 단순히 공격용으로만 이해했는데, 깊게 고찰해보면 결국 그런 기술 동안 방어력에 연결될 수도 있는걸까. 그러나 서로의 의견이 결론에 도달했을 땐, 결국 매나 비슷했다.
"그렇네. 적어도 나는 한참동안은 배울 예정이 없다고 생각해. 나는 역시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거니까. 그 기반을 다지기전에 격투술은 오히려 방향이 헷갈려. 무엇보다, 의념기와의 상성이...."
내가 화려하게 격투술을 펼치는 것도 솔직히 잘 상상이 안간다. 거기에 정작 의념기를 발동한 나는 움직임이 느릿해지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어설프게 배운 손격투술을 써봤자 허우적 허우적 거릴 뿐일 것이다. 육중한 백색 갑옷을 걸친체 허공에 손을 휘적 휘적 거리는 모습이라니. 코미디엔 괜찮을지 몰라도 진지한 사태에선 자중해야겠지.
"아. 미, 미안. 오랫만에 이런 얘길 하다보니 기뻐서."
비아가 면박을 주고서야 나는 머쓱한 얼굴로 숟가락을 잠시 멈췄다. 맛있다, 라고 만 느낄 뿐 솔직히 무슨 맛인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러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구나. 여유로워 보이는 상대에 비해 뭔가 부끄러운 꼴만 연속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이후엔 조금 천천히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