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그렇게 뜯어서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지 모르는 일이에요."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진한 자국이 남은 것을 자신은 흘깃 보는 것으로 아는 건지. 시간 지나면 옅어지겠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은 스카프를 매고 다니거나 목티를 입어야겠네요. 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뭘 모르는구나. 뜯어버리면.. 번지는 것들인데. "코코아탄산단물..?" "특이하네요..."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는 지훈이 진짜 시키자 그걸로 되나요? 라고 고개를 기울입니다. 그리고는 옆에 등을 기대고 앉자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래서요. 제 목덜미는 맛있었나요?" 물어보는 말이 참 위험하구나.. 그런 말을 하고는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딴청을 피웁니다. 그리고 나온 것은 정말로 코코아탄산단물이었고... 맛은... 솔직히 좋은 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블루 스무디는 먹을 만하겠지만(의외로 오렌지과육같은 것도 들어가서 씹는 맛도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한다. 그러고 보면 그랬지. 교무실에 찾아갔을 때 시험기간이라고 막혔던 기억을 떠올린다. 진정하고 기색을 보니 비아는 좀 피로해보이는걸 봐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걸까? 나는 돌이켜보면 하나도 안하고 있구나. 그럴 겨를도 아니었지만.
"......"
옆에 쪼그려 앉아서 조각을 보던 비아는 돌로 같이 모아주기 시작했다. 도와주려는걸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괜찮아. 내가 괜히 하는거야.' 라고 말렸을텐데, 그녀에게 그런 얘길 했다간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가끔은 배려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배려일 수도 있다.
"응. 담임선생님께서 참 친절히 대해주셔서. 동아리도 들어가볼까 생각중이야."
나는 최대한 평범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너무 평범하게 대답하려다보니 오히려 한바퀴 돌아서 무엇이 평범한지도 잘 모를 정도로. 이러고 있으면 마치 변함없는 사이인 것만 같다. 그러나 실제론 굉장히 어색하다. 비아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라는 느낌의 기색을 띄고 있다.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다. 아마 거울을 보면 비슷한 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될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어색함을 덜기 위해 조금 정도는 진솔히 덧붙이자.
"널 자주 만나지 못하는게 조금 아쉽긴 해."
청월에서 지낸 시간과 경험들이 기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때는 분명 내게 있어서 즐거운 기억이었으니까. 그 부분에서만큼은 오해가 없길 바랬다. 그러니 내 딴에서는 나름 노력해서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멀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아하하, 그런 화려한 전학생 데뷔는 하지 않았어. 그냥...술먹고 취한 아저씨가 유리창을 깨부쉈길래. 누가 밟으면 다칠까 싶어서."
이어지는 질문엔 볼을 긁적이면서도 비교적 시원스럽게 답할 수 있었다. 스스로 자조했을 정도로 미련할지도 모르는 짓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다지 눈치가 보이지 않는건 내 안에선 역시 그녀를 변함없이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럼요. 곤란해져요?" 곤란해요. 라고 말하다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말에 어쩔 수 없죠. 라고 말하네요. 피가 철철 나는 것보다 이런 게 더 곤란한 이유는 의외로 이런 게 자연치유에 기대야 하기 때문이겠죠.
"엑. 진짜 마실 줄이야." 그걸 마시고는 입맛이 떨어졌다는 듯한 지훈을 보면서 이거라도 좀 마시실래요? 라고 본인이 먹던 블루 스무디를 내미는데. 야 그거 빨대 하나뿐이잖아. 옅은 립 자국이 있는 빨대를 들이미냐. 야.야..
"지금 물면 맛 섞이지 않나요?" "아닌가.." 물 마시고 물래요? 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고는 아니면.. 이번에는 내가 물어버린다거나. 라는 말을 하고는 다림은 손으로 아직 물리지 않은 지훈의 목덜미를 쓸어내리려 시도합니다. 만일 닿는다면 스무디의 차가움이 전달된 손은 차가웠을까요?
"네? 드라마나 영화 보다가 눈치도 못 챘을 때에." 물리면 스카프를 매지 않곤 외출도 못하겠네요. 라고 웃습니다.
룰루랄라~ 오랜만의 주말! 주말! 주말!!!! 하염없이 보내는 주말이란.. 쿠히히히히히!! 너무 좋다... 공원을 여유롭게 산책하며 참새를 그리거나 수풀을 그리거나, 혹은 지나가는 사람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다 저 멀리 노랫소리가 들려오기에 호기심으로 다가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지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열정 넘치게 부르고, 자신감 없이 부르고, 때로는 모두가 함께 불러 합창하기도. 음~ 좋다좋다~ 점점 가까워지는 근원지. 저 멀리서 흐릿하게 어느 덩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노래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 맞지 않는 음정! 어긋나는 박자! 대지를 울리는 울림은 지진을 일으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귀를 막고 도망가기 위해 뒤로 돌자... 툭... 하늘에서... 새가... 새가!!! 떨어졌어!!!!
대, 대체 누구냐!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다, 당신은!!!"
후다다닥 뛰어가서 본 모습은... '성현!' 이럴수가... 노래 부르기 F 정돈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마이크를 종이에 그린다. 그 옆에 낡은 마이크를 그린다. 사물을 관찰하고 특성을 이해한다. 그리고 해석하여 특성을 부여하는... 형상 부여!! 마이크에 낡음 이라는 특징을 부여해 고장낸다!!!! 더 이상의 청각 테러는 멈춰!! 그리고 아무리 싫어도 사람들에게 맞아죽게 할 수는 없으니 그에게 다가가 있는 힘껏 밀면서 사람들에게서 도망간다.
"노래가 의념이면 가수하고 계셨지... 왜 가디언 후보생을 해요. 퓨어퓨어보이스도 아니고."
어쨌건 작은 조각도 모아놓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할까. 진화의 손에 올려주기엔 못할 짓이고, 나는 절대 맨손으로 유리조각을 쥐고 싶지 않다. 지금이라면 손에 상처가 날지도 몰라. 진화는 멀쩡하게 손에 쥐고 있지만... 튼튼한 건 전과 다를 게 없구나.
"...그랬구나. 나, 이제 3학년이니까, 2년 있으면 가는걸. 지금 많이 안 만나두면 만나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말에 조금 기뻐서, 혼란스러운 마음이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서 조금 말을 고른 다음 내놓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듯, 나는... 네가 내 옆에 없어도 쭉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날 만나는 게 좋다면 조금은 자주 만나자... 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맨손으로 치우려 하는 건 위험하잖아. 빗자루까진 아니어도 티슈 정돈 가져와야지."
아저씨... 학원섬에 온 민간인이라고 해도 학원섬에서 술 취해서 유리창을 부술 사람이 있나? 아마 엄청 노안인 술취한 성학교생이었을지도. 아무튼 남의 강요는 없는 자발적이란 일에 안심하고, 굳이 그걸 맨손으로 주우려 했다는 것에 답답해졌다. 다들 신발 정도는 신고 다니니까 잠깐은 놔둬도 괜찮을 텐데.
"정말...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손에 바닥 먼지를 묻혀가며 하는 미련한 선행. 이해할 순 없지만 나쁜 뜻으론 행동하지 않는다. 그 점이 참 애매하다...
유리조각들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다가, 저지 소매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고 쥐었다. 이렇게 하면 옷에 박히거나 했을 땐 문제지만 당장 손은 안 다친다. 저지를 뚫을 만큼 큰 조각은 진화가 모두 들고 있으니 괜찮아. 그리고 쓰레기통이 있는 쪽으로 앞장서면서 유리조각을 쥐지 않은 손을 진화에게 흔들었다.
"빨리 버리고 오자. 손도 씻고."
(따라와줬으면 가까운 쓰레기통으로 이끌어 유리조각을 탈탈 털어 버리고 공공화장실 쪽까지 데리고 갔을 것이다. 이쪽은 유리를 손에 잡진 않았으니 손 씻을 필요는 없지만 넌 이것저것 묻었으니까... 하고 화장실 입구에서 나오길 기다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