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응. 나는 잘 지냈지." "요즘 다들 시험기간이니까,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쪼그린 자세, 낮은 자세로 이쪽을 돌아보는 진화는 엄청 놀란 것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당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던 옛 친구. 안 좋은 일로, 멀어져야 했던 옛 친구. 하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대하려 한다. 성학교도 청월도 제노시아도 시험기간이니까 굳이 청월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됐다.
나는 유리파편이 팔을 뻗으면 닿을 곳까지 가서 같이 쪼그려앉았다. 의념으로 손을 강화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맨손으로 잡진 않았지만. 대신 주변에 굴러다니던 돌을 주워서 작은 유리파편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건 보석의 힘을 빌려서 더 반짝이게 하면 확실히 발견할 수 있을텐데, 어려운걸. 이라고 생각하며.
"너는 잘 지내고 있었어?"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면서 평범하게 말을 건네고 있으려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렇진... 않았겠지. 손바닥을 찌르는 유리조각들을 쥐고 있는 걸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다.
"아니다. 이런 거 줍고 있는 거 보면, 뭔가 선도부에 걸릴 만한 짓이라도 한 거야?" "흔히 그러잖아. 일탈행위 처벌을 위한 사회봉사... 그런 거."
당연히 너라면 잘못된 일은 안 했을 거야. 라고 믿고 싶지만, 진화라면 자기가 한 일이 아니더라도 쉽게 덮어쓰고 대신 해주거나 하겠지. 직접 남한테 해를 끼치라면 못 하겠지만, 자신만 피해 보는 일이라면 가볍게 받아들이곤 하니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뜯어서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지 모르는 일이에요."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진한 자국이 남은 것을 자신은 흘깃 보는 것으로 아는 건지. 시간 지나면 옅어지겠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은 스카프를 매고 다니거나 목티를 입어야겠네요. 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뭘 모르는구나. 뜯어버리면.. 번지는 것들인데. "코코아탄산단물..?" "특이하네요..."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는 지훈이 진짜 시키자 그걸로 되나요? 라고 고개를 기울입니다. 그리고는 옆에 등을 기대고 앉자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래서요. 제 목덜미는 맛있었나요?" 물어보는 말이 참 위험하구나.. 그런 말을 하고는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딴청을 피웁니다. 그리고 나온 것은 정말로 코코아탄산단물이었고... 맛은... 솔직히 좋은 게 이상하지 않을까요? 블루 스무디는 먹을 만하겠지만(의외로 오렌지과육같은 것도 들어가서 씹는 맛도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한다. 그러고 보면 그랬지. 교무실에 찾아갔을 때 시험기간이라고 막혔던 기억을 떠올린다. 진정하고 기색을 보니 비아는 좀 피로해보이는걸 봐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걸까? 나는 돌이켜보면 하나도 안하고 있구나. 그럴 겨를도 아니었지만.
"......"
옆에 쪼그려 앉아서 조각을 보던 비아는 돌로 같이 모아주기 시작했다. 도와주려는걸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괜찮아. 내가 괜히 하는거야.' 라고 말렸을텐데, 그녀에게 그런 얘길 했다간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가끔은 배려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배려일 수도 있다.
"응. 담임선생님께서 참 친절히 대해주셔서. 동아리도 들어가볼까 생각중이야."
나는 최대한 평범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너무 평범하게 대답하려다보니 오히려 한바퀴 돌아서 무엇이 평범한지도 잘 모를 정도로. 이러고 있으면 마치 변함없는 사이인 것만 같다. 그러나 실제론 굉장히 어색하다. 비아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라는 느낌의 기색을 띄고 있다.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다. 아마 거울을 보면 비슷한 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될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어색함을 덜기 위해 조금 정도는 진솔히 덧붙이자.
"널 자주 만나지 못하는게 조금 아쉽긴 해."
청월에서 지낸 시간과 경험들이 기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때는 분명 내게 있어서 즐거운 기억이었으니까. 그 부분에서만큼은 오해가 없길 바랬다. 그러니 내 딴에서는 나름 노력해서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멀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아하하, 그런 화려한 전학생 데뷔는 하지 않았어. 그냥...술먹고 취한 아저씨가 유리창을 깨부쉈길래. 누가 밟으면 다칠까 싶어서."
이어지는 질문엔 볼을 긁적이면서도 비교적 시원스럽게 답할 수 있었다. 스스로 자조했을 정도로 미련할지도 모르는 짓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다지 눈치가 보이지 않는건 내 안에선 역시 그녀를 변함없이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