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올라온 지훈의 손을 잡아서 내리면서 그렇게 쑥스러운 사과를 했다. 그리고 빤히 쳐다보는 것에 "왜 그래?"라고 말하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뭐 묻었나? 괜히 뺨을 손으로 문질러본다.
"...처음부터 버텨볼 생각이었거든."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온 사람 탓이라고 몰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는 사람이 아니지. 고집부리다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며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미안했어."라고 중얼거렸다. 영화 때문에 나 자신에게 후유증이 남았는가 하면, 그렇게 심하진 않다. 그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찝찝함과 무서움과 긴장이 심화되다가 빵 터져버렸을 뿐, 지금은 밝은 밖이니까.
"영화 보면서 팝콘을 남겨본 건 처음인 것 같은데."
하고 살짝 주변을 둘러보지만, 네가 공주님 안기로 들고 나올 때 팝콘봉지까지 챙겨나왔을 리는 없으니 보일 리가 없겠지. 약간 아쉽긴 하지만 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거 가지러 다시 들어갈수도 없고.
"이제... 어떡할까?"
영화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긴 봤으니 이걸로 잘 놀았다 치고 해산? 아니면 조금 더 다니다가? 갑작스런 변수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돌아가는 사고회로에 오류가 생긴 것처럼 잘 생각이 안 난다.
>>906 자기의 소중한 사람을 건드려서! 같은 이유라기보단 그냥 음.. 어... 그냥 스태프에다가 얼음 굳혀서 날카롭게 만든다음 뒤에서 푹 찌르고 피 튄 얼굴로 웃으면서 전부터 거슬렸거든- 라고 할 것 같네용 살린다면 음.. 아군 아니면 안살릴거같은데.. 아군 살리는건 당연한거라 굳이 이유가 필요할것같진않구.. 암튼 그럿슴다
목이 멕힌다. 창문에서 떨어진 그 와중에도, 이렇게 곧게 얘기하는 하루는, 너무나 반짝여서. 그녀를 잡은 손이 떨린다.
"너는 사랑을 얘기해. 나는 그 의미를 몰라."
괴물이니까, 는 손쉬운 변명거리가 되기도 했다. 고독감과 울분을 외면하기 위한꽤나 편리한 생각이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 괜찮아, 괴물이니까. 나는 이해받지 못해. 괜찮아, 괴물이니까. 나는 혼자야. 괜찮아, 괴물이니까. 나는 짐승도, 인간도 되지 못한 무언가야. 괜찮아, 괴물이니까.
짐승. 인간. 괴물. 그 차이는 신체적인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정신적인 것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사이의 공허함은 한 사람이 메꾸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소녀는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가 자연스레 접해야 하는 것이 없었다. 아이가 장난감 블럭을 들을 시기에 소녀는 이름없이 삶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래도 그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틈과 위화감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잠시 외면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주봐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Q. 그러니까, 이번에는 진심만을 얘기하는 거야.] [Q. 할수있지?]
카사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고개를 여전히 땅을 향해 푹, 숙여진 상태였다. 스르르, 주먹이 하루의 멱살을 놓았다.
"하루가 좋아."
손이 땅을 짚는다. 힘이 들어간, 흙투성이 주먹을 쥐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가 미워."
알수 없는 말을 힘겹게 내뱉고선, 침묵으로 떨어진다. 하루가 가까워져 이마를 맞닿아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카사의 입술은 이제, 짭짤한 맛이 강했다. 그 맞다문 입술이 이내 벌어진다.
"나는. 네가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몰라. 나는 좋아랑 싫어밖에 몰라."
눈을 감고서, 안면을 땅을 향해 푹 숙이고서.
"난 아직도 사족보행이 편해. 날고기가 익숙해.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읽는 것이 힘들어.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조금이라도 어려운 옷은 못 입어. 전자기기는 어떻게 쓰는 지 전혀 모르겠어. 말재주도, 인내심도 없어. 별로 강하지도, 튼튼하지도, 멋지게 생겼지도 않아. 맵고 쓴 것은 안 먹어."
자기소개아닌 자기소개. 그 어투는 죄를 고백하듯 힘겨웠다. 말이 빨라지면서 점점 더 어두워진다.
"인간의 고민에 공감하기 어려워. 키스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말 하면 되고 안되는 것을 구분 못해. 죽은 사람은 별로 안타깝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큰일 나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멍청한데다가 고집은 쎄고, 문제가 있으면 일단 폭력으로 해결하고 싶어져. 내가 죽인 생명은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아. 정말로 많아."
슬며시, 눈을 뜨는 카사. 그 수를 세듯이, 땅에서 손을 들어 그 두손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입.
"내 동생들은 굶어 죽었어. 그리고 시체를 내가 먹었어. 나는 아직도 왜 그러면 안되는 지 이해하지 못해. 그저 하면 안된다는 거라고 하니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
살기 위해서는 그 어느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야생의 단 한 가지의 법칙. 카사는 드디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위협의 의미로 씨익, 길게 입을 찢듯이 웃어보인다. 이를 보이는 행동은 모든 생물 불변하고 위협의 의미다. 인간만이 이를 보여 기쁨을 표한다.
그 웃음에는 기쁨의 감정이 없었다. 카사는 짐승의 법칙을 따라, 하루를 향해 이를 내보였다. 피칠갑된 얼굴과 서늘하게 빛나는 눈, 그리고 비인간적인 날카로운 송곳니.
"도망가려면. 아마 지금이야, 하루."
그리고 카사는 기다린다. 독버섯이 그 화려함을 강조하듯이, 자신의 존재를 내걸고 멋대로 정한 결말을 기다린다. 서서히, 그 숨이 느껴지게, 가까이 다가서는 카사의 이. 목소리는 속삭이듯, 위협하듯이 내리깔아 스산함을 강조한다.
"난. 나는. 가디언으로서, 워리어로 살기로, 그리고 워리어로서 죽기로 결정했어. 그러니까... 난 언제 죽을 지 몰라. 태어날때부터, 나는 뭐든 것을 죽을 각오로 해왔어."
오히려, 동원령이 내려질때,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태도를 보고선 놀랐다. 여기서는 다들 평소에 죽음과 거리가 먼 듯 살고 있었다. 원래 인간들은 이런 생각으로 안 산다길래, 하나씩 설명해주는 거야, 하고 말을 덧붙이고선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야. 난 아직 너를 믿지 못하겠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을 믿지 못하겠어. 이건 신체나 건강의 강함을 얘기하는 게 아니야."
무조건 공격력이 강하다해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재빠른 토끼, 꿋꿋한 풀, 헤엄을 치는 물고기. 강한 이와 날카로운 발톱은 그저 카사의 가족이 얻은 수많은 방식중 하나일 뿐이다. 순식간에, 그 수법 중 하나 였던 위협하는 얼굴이 사라진다.
"내 반려는 평생가야 만해. 우리 중 누가 먼저 죽을지도 몰라. 남겨지는 것은 더 이상 싫어. 그러니까 - 그러니까 안돼."
온 몸이 떨린다. 용맹한 포식자고 뭐고 여기에는 없었다. 그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직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겁쟁이 소녀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괜찮다면."
그 겁쟁이는, 욕심많은 짐승이기도 했기에. 달콤함을 입에 담으면 조금 더, 조금 더 원하기에.
"기다려 줘."
이기적인 인간은, 선택지를 준다. 욕심많은 짐승은, 지금 당장 선택을 요구한다.
"나는 강해질꺼야. 먹이사슬 최상위가 될꺼야. 그리고선, 뭐든 지킬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면. 내가 살수 있고 너도 계속 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청혼할께."
큰 일을 다짐하는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는 담담하다. 그저 다음날 아침을 정하듯이, 혹은 아침에 태양이 뜬다는, 당연한 사실을 고하듯이. 청혼치고는 무슨 무드도 비장함도 큰 감동도 없는, 약속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말.
어느새 카사의 얼굴은 제대로 하루의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내로 어떠한 결론에 다다른 것일까? 언제 울었냐는 듯 표정은 담담하다. 뺨위의 눈물자국이 반짝인다. 눈허나 그와 달리, 주홍빛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러니까. 괴물이 되지 말아줘. 두명의 괴물은 두명의 외톨이일 뿐이야. 그런게 괴물인거야. 나는 그저... 그. 할수만 있다면, 그..."
그러다 찬찬히. 태풍이 바다를 조용히 떠나 서서히 잔잔해지듯이.
맹수의 눈이 고요하게, 슬프게, 애절하게, 작은 불씨를 담고 있다.
[Q. 그리고 세번째.] [Q. 카사 본인의 감정은?]
싫다면. 당장 도망쳐줘.
숨을 내쉬듯이. 작디 작은 속삭임. 가까이, 얼굴을 맞대는 이 거리만에서만 들릴테인. 작은 욕망.
>>931 와 노래 엄청 좋아요...! 게다가 가사에 그린다는 내용이 있는 거랑 나밖에 할 수 없는 일... 자신밖에 낼 수 없는 색... 대체할 수 없는 나... 코러스 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멋지고 뭐라해야할지 모르겠고 제가 주접떨고싶은데 감동이 다 글로 표현이 안되는걸ㅁㄴㄹㅎㅇ
"나도 꽤 다양한 표정을 짓는 편이니까. 이런 표정을 보일 일은 좀처럼 없으면 좋겠지만..."
물론 내가 내 표정을 제 3자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이었을지는 감이 오는 것 같아서.
"나라고 해도 무조건 한계까지 참고 보는 성격은 아니야."
그건 걱정해 주는 사람들한테도 실례니까. 싸울 때 엉망진창으로 다쳤는데 서포터 기운을 빼고 싶지 않다고 치료를 안 받고 버티거나-이건 극단적인 예시지만, 그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걱정해주는 걸 알기에 묵묵히 그런 말들을 받아들인다. 팝콘 얘기에는 "괜찮아. 그런 걸로 아깝진 않으니까."이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피곤하니까 슬슬 돌아가봐도 괜찮을까?"
선택을 맡았기에 돌아가본다는 선택을 한다.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기숙사로 바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지칠 때까지 가볍게 운동 한 번 하면 잠도 잘 오고 푹 잘 수 있으니까. 마음정리를 할 겸 수련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하루는 묵묵히 카사의 고백을 듣는다. 어쩌면 처음으로 카사의 속내를 듣는 것일지도 모를 이 순간, 그저 천천히 숨을 뱉어내며 처음부터 끝까지 카사의 고백에 자신을 묻히지 않고 기다릴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그 수많은 말들을 묵묵히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듣고 있던 하루가 입을 연 것은, 두사람이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속삭인, 카사의 작은 욕망이 흘러나온 후 였다.
" 카사가 아직 온전하게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 "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하루가 나직히 이야기를 꺼낸다. 하루의 손은 메스를 카사가 다치지 않게 역으로 쥐느라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가느다란 손끝으로 카사의 뺨을 부드럽게 간지럽힌다. 그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온기에 미소를 조금 더 짙게 만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 사족보행이 편하다는 것도 이해해. 카사는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날고기가 익숙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더 맛있는 것을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거야. 표정이 읽기 힘든 것은 그저 카사가 자라온 환경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야. 그래서 카사가 내 얼굴을 보고 좀 더 익숙해질 수 있게 노력할거야. 얼굴을 구분하는 건, 생각보다 다들 어려워 하는 부분이라 괜찮아. 하지만, 카사가 적어도 내 얼굴 만큼은 확실하게 기어갛게 해줄거야. 어려운 옷을 못 입어도 상관없어. 내가 입혀줘도 되고, 가르쳐주면 되는 일이니까. 전자기기는 나도 어려운 걸? 카사만 그런 것이 아니야. 말재주도, 인내심도 부족할 수 있어. 그건 이상한게 아니야. 카사는 강해, 튼튼해. 지금도 내가 다치지 않게 감싸주고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잖아. 그리고 카사는 멋지고, 예뻐. 이건 널 사랑하는 내가 보증할게. 맵고 쓴 것은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그것도 전혀 이상한게 아닌걸? "
하루는 카사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것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대답을 돌려준다. 하고 싶은 말은 한가지였다. 고작 그런 것들이 카사를 괴물로 만들지 않는다고. 그저 카사의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서 시작이 되었을 뿐이라고. 하루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 했다.
" 원래 남의 고민을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해진 사람이라면 언제든 노력하는 것 뿐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카사도 노력하고 있잖아. 키스가 무슨 의미인지는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거야. 내가 좀 더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게 노력할게. 하면 되는 말과 안되는 말은 원래 다른 사람들도 어려워 해. 하지만 무수한 시행착오를 반복한 후에 완성되는 법이야. 그러니까 그것도 이상한게 아니야. 폭력으로 해결하는 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카사도 참을 수 있게, 내가 옆에서 잡아주고 도와줄거야. 카사가 죽인 생명은 많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즐기기 위해 죽인게 아니잖아? 카사가 살아남기 위해 해온 일인 만큼 이세상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널 탓하지 않아. 그리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 부분도, 내가 알려줄게. 왜 그런 것인지, 어째서 하지 말아야 하는지 며칠, 몇년, 몇십년이 걸리더라도 네 곁에서 알려줄게. "
상냥하기 그지 없는 말이 카사의 품에서 이어진다. 카사의 말을 부정하고 고쳐주려는 것처럼 하나하나 제대로 짚어가며 이어지는 하루의 말은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지고, 하루는 잠시 눈을 감는다.
" 그러니까, 네 옆에서 기다릴게. 네가 만족할 때까지 강해지는 것을, 그래서 날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청혼을 해올 때까지 옆에서 바라보고, 밀어주고, 받쳐주고 널 믿어줄게. "
아, 하루의 입에서 무언가를 깜빡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카사의 옷을 두손으로 강하게 움켜잡곤 자신에게로 당긴다. 강하게 잡아당긴 그 감각은 어째서인지 목줄이라도 채워진 것 같은 감각을 카사에게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 내가 널 길들이게, 카사. 너를 길들여서, 나만 바라보게 할거야. 나만 사랑하게 할거야. 너라는 짐승을 길들일게. 그러면 되는거지? "
하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미 카사는 자신에게 목줄이 채워진 것이라는 듯, 카사가 멀리 떨어지지 못하게 그녀의 옷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체 눈을 맞춘다.
" 너는 나의 늑대야, 카사.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
하루는 그렇게 속삭이곤 다시금 천천히 카사를 끌어당겨 부드럽게 목을 감싸안는다. 지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라는 듯, 따스하고 강한 포옹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존재가 카사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하려는 것처럼, 강하고 깊은 포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