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평상시의 수녀복이 아닌 꽤나 노출이 도드라지는 짧은 옷과,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선 화려한 화장을 마무리 한 그녀는 누가 보아도 한눈에 시선이 쏠릴만한 모습임은 틀림없었다. 사실 그녀가 이런 모습으로 밖에 나가는 일은 좀처럼 없겠지만, 오늘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은 한사람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 서로 골라준 옷을 입고 한껏 꾸민 체로 또 만나기로 해요. '
그 약속을 나눈 뒤, 태양왕 사건이 벌어져 정신이 없엇기에 이뤄지지 못 했지만, 얼추 수습된 지금 하루는 다림과의 약속을 위해 익숙치 않지만, 확실하게 자신을 꾸미곤 약속장소를 향해 나아간다. 또각또각, 굽이 높은 검정색 구두를 신은 그녀의 걸음걸이는 언젠가의 게이트에서처럼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옷은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부각시켰고, 깔끔하게 당고머리로 묶은 새하얀 머리카락은 티 하나 없이 아름다웠다.
약속장소는 지난번 두사람이 우연찮게 만났던 거리의 한 구석이었고, 하루는 다림보다도 먼저 그 자리에 도착해선 자연스럽게 두손을 모은 체로 서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혹여 다림이 오고 있지 않을까 살피는 듯 ,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하루는 아직 다림이 보이지 않자, 연한 붉은색을 띄는 립스틱을 발느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숙여 신고 온 구두의 끝을 보인다.
다림은 정말 입어야 하는가를 고민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근데 사실 따지고보면 노출도 자체는 오프숄더나 저번의 딱 붙는 원피스가 더 높지 않았나...
"약속을 어기면 안되니까요" 오픈 체스트 터틀넥을 입었습니다. 다행히도 목 쪽의 붕대는 터틀넥인 만큼 잘 가려졌을 겁니다. 그것에 조금 안도하면서, 하의를 무엇을 입지 하고 고민했지만. 위쪽이 강조되는 만큼 하의는 조금 얌전한 편에 속하는 플리츠 스커트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모습으로 바로 나오는 건 부끄러워서.(사실 조금 추웠던 것도 이유다) 교복 가장 겉옷을 둘러입고는 약속 장소로 나오려 합니다.
다림도 적절한 화장을 하고 나왔네요. 머리카락도 고데기로 약한 컬을 넣었고, 옅은 분홍빛의 입술 틴트를 발랐죠. 하루를 발견하고는 메리제인 스타일의 구두를 신은 다림은 탁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에게 인사하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하루 양. 제가 늦지는 않았지요?" 코트 때문인지. 하의가 보이지 않네요. 하의실종 스타일로 꾸밀 의도는 아니었지만.. 하루를 보고는 주위에서 힐끔거리는 나아쁜 것들을 흘겨보며 시선을 떼려 한 다음. 예쁜 것은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예쁘게 꾸며진 걸 보면 제 눈이 맞았다니까요. 잘 어울려요. 라는 생각이 말로 나오진 않았지만. 표정을 보면 기쁨을 머금고 있었겠지요?
하루는 고개를 숙인 체, 구두 끝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옮긴다. 자신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 그곳을 향해 고개를 들자 예쁘게 하의실종(?) 코트 차림의 다림이 서있었다. 그날, 상상하던대로 꾸미고 나온 다림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 그나저나 오늘은 꽤나 대담하네요, 다림. 예뻐요. "
하루는 아래에서 위로 다림을 확인하고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걸음 더 다림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곤 지난번 만남의 연장선처럼 자연스럽게 슬그머니 다림의 옆으로 간 하루가 다림의 팔을 끌어안는다. 지난번보다 옷이 더 얇은 탓인지, 다림의 팔에는 온전히 하루의 몸매가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일단 어디로 갈까요? 제대로 제가 골라드린 옷을 입고 왔는지 보고 싶은데.. "
하루는 자연스레 팔을 끌어안은 체로, 다림에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속삭인다. 속삭인 후에는 입술을 혀 끝으로 살며시 훑어 반짝이게 만든 하루가 입꼬리를 우아하게 올려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가 아무리 대담해도 하루 양만큼 대담할까요?" 원래 대담하지 않아보이는 사람이 대담해지면 갭이 큰걸요. 하루 양의 갭이 대단해요. 지금만 해도 몇 명이 하루 양에게 다가오려 했는지 아세요? 라고 약한 투정을 부리듯 속삭입니다.
"제대로 골라주신 옷은 입었는걸요.." 하지만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져서 코트를 걸쳐입었다는 말을 하는 다림의 얼굴이 희미하게 붉어집니다. 코트의 여밈이 살짝 헐거워서 슬쩍 훔쳐보면 확실히 입고 왔다는 게 보이려나. 물론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루 같은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잘 아는 목에 붕대겠지만.
"하루 양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부끄러울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매혹적인 미소에 조금 멍해진 표정으로 말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물론 하루는 감자포대*를 입어도 예쁘겠지만요. 라고 덧붙입니다. *마릴린 먼로가 감자포대를 잘라 만든 원피스를 입었던 적 있다. 어디로 가죠. 라는 물음에는 머리카락을 빙글 돌린 뒤
"어디로 갈까요.." 보드게임 카페나 룸카페 같은 곳도 있고.. 클럽 쪽도 있을 것 같고.. 라는 고민을 중얼거리려 합니다. 하루 양은 어디 가고 싶은 데가 있나요? 라고 물어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