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울었고, 또한 웃었다. 자신이 이제는 인간으로 남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듯 싶었다. 또다시 동료가 죽었다. 이젠 게이트 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적이라는 걸까.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마치 망집에 집어삼켜진 것 같았다. 망념妄念 그 말이 어울리겠다.
카사 진압법은 왜 만들어졌는가. 신속 S, 맹수의 감, 황금의 권속. 그 카사가 반찬에 고기가 없다고 날뛰는데 제압할 아브엘라가 부재중인 경우. 에릭 혼자 카사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 카사용 완전 공략집 같은 것 이다. 화약 연기가 나오는 힐건의 총구를 후. 하고 불어버린 뒤, 가슴에 있는 하네스의 건홀더에 힐건을 집어넣은 에릭은 쿵 하고 엎어진 카사에게로 다가갔다.
" 그래봤자 꼬맹이지. 애석하게 되었구나 Haus "
내가 먹은 아브엘라씨의 스튜가 너보다 몇그릇이나 앞서고 있는 이상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하드보일드하게 입꼬리를 올린 에릭은 이윽고 뽁 하고 바늘을 뽑아준 다음, 마치 짐덩이..혹은 쌀가마..혹은 사냥감 마냥 어깨에 짊어지고 카메라를 대여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가족사진을 찍는데 조금 깔끔하게 나와야..음..뭐 자기가 알아서 그루밍 하겠지. "
"이상한 사람..." 글쎄요.. 어쩐지 저랑 같이 지내다가 이상해진 분들도 있는 편이려나요.라고 생각하면서 잘 찾아야죠.라고 웅얼거리듯 말합니다.
정말 닿아버리면 그건 사고이긴 합니다. 그러다가 눈을 감자. 조금 짖궂은 생각이 들었는지. 손가락으로 두꺼운 목의 근육을 부드럽게 쭉 훑어내리려 시도합니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촉각이나 청각 같은 걸로 알아차려야 하잖아요? 아까 깨물린 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으로. 마치 깃털로 건드리려고 하는 것 마냥.. 조심스럽게? 만일 눈을 뜬다면 다림이 눈을 빤히. 그것도 매우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을지도?
"그렇게 강하다곤 생각하지 않지만요?" 강했으면 특성이 달랐겠지. 하는 뒷사람의 말은 들리지 않았겠지만. 어쨌던. 그런 걸 모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사실 모른다고 보기엔 D모드는 파멸을 주러 온 것 같은 느낌이고...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같이 볼래. 라는 말을 하며 머리 위에 턱을 올려놓으려는 지훈을 잠깐 보고는 힘을 빼고 뒤로 슬쩍 기대려 시도합니다. 뭔가 기대는..? 품에 안기는 듯한? 그런 자세를 시도한 걸지도...?
"그쵸... 저도 입시 준비를 한 적 있지만... 그것도 이 정도로 치열하지 않았는데... 디스 이즈 K..."
오들오들.. 라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문제를 본다. [다음은 마스터 오브 핸드에 대한 설명이다. 설명에서 올바르지 않는 것을 고르고 올바른 설명이 되도록 고쳐 서술하시오.] 음, 이건... 들어봤는데.. 마스터 오브 핸드... 독일의 클랜이었지? 마스터의 자격을 얻은 장인들만이 소속될 수 있는 클랜으로 어쩌구저쩌구... 코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는 어쩌구 저쩌구... 이건 쉽다. ...???? 잠깐, 이게 아니라고? 진짜? 왜? 이게 답이 아니야? 쉣... 머리를 팍팍팍... 진짜 공부좀 제대로 해야겠어 난 왜 천재가 아니지? 천재특성이 아니지? 젠장~!~!
"아, 저는 괜찮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 주변에 그... 목숨에 지장이 있으신 분은 없으셔서... 청천씨는 괜찮아요?"
...찬후 선배를 아직까지 못 뵙지만... 연락처라도 교환해둘걸... 머리를 짚는다. 한숨..
어릴적 에릭 만난 것도 기억 못하는 안면장애 비스무리한 카사. 가디언 칩에 욕만 했지만 결국 그런 안일한 마음. 그것이 카사의 패였다. 결국 아득바득 준비를 하고 공략법을 만들어낸 에릭을 과소평가 했으니. 후회는 늦었다. 아니, 후회 할 겨를도 없었다. 카사의 의식은 현대의학의 힘으로 저 멀리 안드로메다 관광하려 가버렸다.
뾱. 데구르르르.... 바늘이 힘없이 카사의 손가락에서 허무하게 굴러나온다.
싸늘한 시체(아님)에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 카사가 조금이라도 깨어 있다면 깨달았을 것이다.
하드보일드 카사-킬러 에릭의 발소리라고.
하드보일드 에릭의 웃음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코끼리도 잠재울 마취약. 카사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살보단 근육으로 가득차서 그런지, 보기보다 조금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작긴 작아 가벼운 카사-시체. 힘없이 쌀가마가 되어버린다. 사냥하는 자, 사냥감이 되어버렸으니. 궁딩이를 위로하고 에릭의 등에 침을 좌르르르르르ㅡ르 흘려 아예 흠뻑 젖게 만드는 카사. 일생 가장 얌전한 상태로 실려간다. 진짜다. 잘때로 이렇게 얌전하지 않다. 기절의 힘 - 아니, 현대의학의 힘은 대단하다.
그것이 지훈 자신을 의미하는 것을 다림이가 느끼지 못 했을리는 없겠지만... 하여튼 웅얼거리는 것에 잘 찾아야지.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의 근육이 부드럽게 훑어지자 지훈은 살짝 몸을 떨었다. 부드러운 손가락 끝의 감촉이 목선을 따라 훑어지듯 느껴지자, 지훈은 반사적으로 눈을 떠버렸지. 간지러운 까닭도 있지만, 그 섬세하게 건드리려는 느낌이... 응. 그랬으니 매우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는 다림의 모습에 지훈은 무의식적이지만 몸을 뒤로 뺐을지도 모르겠다. 표정을 보면 꽤나 놀란 표정인 듯 했지?
" 강하지는 않아도 그 끼는... 위협적이야. "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요망한 제노시안... 다림이 어느정도는 파악하고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저걸 이용하려고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게 더 위험한게 아닌가...? 싶기도 했을지도?
" 혹시 검은머리에 섬뜩한 붉은 눈? "
자신이 아는 사람의 특징을 말하다가, 기대려는 다림의 모습에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지. 품에 쏙 안긴 다림을 보다가 팔을 앞으로 보내 다림의 목을 가볍게 감아서 교차시킨- 마치 다림을 안고 있으면서, 자신은 턱을 머리 위에 올려둔 자세를 취하며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또 묘한 기분일지도." 라며 들릴락 말락하게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 것이었을까.
청천은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잠자코 화현의 말을 듣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라는 말이 붙은 걸 보면, 살아남았지만 뭔가를 잃은 분들이 주변에 있는 걸까요. 이 부분은 더 이상 캐묻지 말아야겠네요.
"다행이네요...음, 일단 저도, 네. 저희 가족들은 무사하다고 알고 있어요."
되묻는 말에 담담히 대답합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 생사는...어땠던가요? 잘 모르겠으니 차차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혹은...어쩌면 봤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요. 그 아저씨...아니, 스승님도 현직 가디언인 만큼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조만간 겸사겸사 연락해 봐야겠다고 청천은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터졌는데도 시험공부는 해야 한다니...디스 이즈 K...아니 이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니려나요."
어쩌면 다른 가디언 아카데미도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생각을 하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쉽니다.
"저도 뭔가 여기서 공부하는 내용은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지만...제노시아는 더 어렵겠지요? 아는 사람 중에 저보다 1년 먼저 스카웃되어서 제노시아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요...전에 걔가 보여준 문제 보니까...장난 아니더라고요..."
예전에 설경과 연락하다가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지요. 그녀가 "ㅋ"라는 한 마디와 함꼐 보내줬던 문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의념충격상은 뭐고 정제 의념은 또 뭔가요, 세상에! 당시의 청천은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고, 지금의 그에게도 아직 낯선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