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울었고, 또한 웃었다. 자신이 이제는 인간으로 남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듯 싶었다. 또다시 동료가 죽었다. 이젠 게이트 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적이라는 걸까.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마치 망집에 집어삼켜진 것 같았다. 망념妄念 그 말이 어울리겠다.
곧 시험이 다가오니 시험 공부는 해야겠고, 기숙사 방에서 하는 건 답답하고, 도서실은 만석이고, 당은 땡기고. 그래서 청천은 오늘 카페에서 공부하기로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만...여기도 사람이 많네요.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을 든 청천의 표정이 난감함에 기묘해집니다. 아무래도 합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앉는 건 어색한데... 아, 저기 마침 그나마 아는 사람이 있네요. 청천은 반색하며 다가갑니다.
"저기...안녕하세요?"
오늘은 미니햇이 없습니다. 즉, 평상 모드네요. 앗. 말을 붙이려고 보니 상황이 안 좋아 보여서 조금 망설여지지만...그래도 말을 걸다가 마는 것이 서로 더 뻘줌할 것 같아서, 청천은 용건을 계속,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
호로록... 음~ 맛있다. 아직 GP에 여유 있으니까... 이참에 샌드위치도 먹을까 헤실헤실... 이미 시험문제는 포기해버리고 눈으로만 대충 본문을 읽어 머리에 각인시키려는 듯 영혼없이 웃으며 교과서를 보고 있었다... 노트를 보더라도 노트엔 퓨어퓨어보이스 팬픽만화만 가득했고, 의미 있는 내용이라곤 젠젠 이나이. 음~~ 망했군. 빨리 망념 해치운 다음에 망념을 쏟아서 공부나 해야겠어... 깔끔하게 포기하네 오히려 한결 가벼워진 기분.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아, 그... 아! 그그그그그그 괴도 클라우디! 라고 하려고 했으나 모자가 없네..
"안녕하세요~ 아, 물론이죠. 다들 공부 한다고 한 자리에 앉아서 기본 3시간을 있다보니까 회전율이 장난 아니네요. 진짜 음료 마시려고 오는 손님도 테이크아웃 하는 분위기고. 하하."
왜 도서실을 냅두고 카페에서 공부를 할까? 그건 도서실에선 음료는 마실 수 없지만, 여긴 음료를 마실 수 있어서... 그보다 이 문제는 흠, 포기포기~~ 히히 퓨어보이스 보고 싶다...
할멈은 늑대에게 말했지.... 빨간 망토 에릭을 조심하라고......... 어릴적 빨간 망토 책을 읽고 한달간 악몽까지 꿔버린 카사였지만, 충고는 열심히 흘러듣는 댕청 늑대. 그 죄는 지금 후회로 갚으리라.
고기를 꿀떡꿀떡 삼키듯이 먹는 카사의 얼굴이 스코프 정중앙에 쏙 들어간다. 그리고선 힘이 들어가는 에릭의 손가락.
쇄액 - 무지의 이브에게 뱀이 선악과로 뒤통수를 치기 전 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카사를 향해 바늘이 은밀히,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다가온다.
Requiescat in pace
허나.
고기를 아암- 무는 도중, 스산하게 빛나는 카사의 눈동자.
신속 S! 맹수의 감! 황금의 권속! 그 반전.
"흐랴얍!!!!"
휘잉 - 있던 자리에 바람이 분다! 몸을 날리는 카사! 유연하고도 아름다운 몸짓, 그리고 살벌한 움직임으로 바늘을 허공에서 낚아채버리는 손! 그야 말로 맹수의 정점, 포식자의 대표! 탁,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하는 카사. 그늘이 진 얼굴에 서늘한 호박빛 맹수의 눈. 느리고 고개를 올린다.
"누구냐!!! 이것은 대체 — !!!"
그러나 또 반전.
이것이 괜히 아브엘라 패밀리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서깊은 「카사 진압법 제 3장이 아니다.」
스스로의 손을 모으고, 눈을 감습니다. 하루는 누구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요? 단 한 번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의념이 단순히 빛이기에 가장 연관이 있는 신성한 무언가를 찾아 기도를 올릴 뿐일까요? 신성한 성녀?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다면.. 아쉽게도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하루의 삶을 요약해보자면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쥔 것은 가득 있었지만 더 많은 것을 바랐고, 더 부유해지길 바랐습니다.
당장 성격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성격이란 것. 언제나 솔직하지만은 않다는 것. 결국 필요에 따라 이득을 저울질하기 좋다는 것.
고아원에서, 성당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기에 그저 '신의 은혜'란 것에 보답하기 위해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겁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언가에 욕심을 부리더라도 " 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야. "라고 했을겁니다. 의념을 각성했을 때에도 그게 신의 은혜라서가 아니라 그저 " 더 많은 것을 취할 명분이 생겼으니까. " 라고.
자기 자신만이 신앙심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까?
아니라고요?
맞습니다.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지금 이 생각조차도 아마도 공포에 질려 가졌던 생각일지도 모르죠. 그러니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부터 당신이 볼 풍경은, 당신을 흔들테니까요.
바티칸. 기적과도 같은 신의 빛이 내리는 곳. 그 곳에서 하루는 검은 빛의 사제복을 입고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정해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걸음을 걸으며 긴 시간을 죽이고 싶었을 뿐입니다. 손에는 위스키 한 잔을 쥐고 홀짝이면서요. 누군가가 본다면 신의 증명이라는 사제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을 본다면 누구나 그런 말은 잊을 것이 분명합니다.
" 세인트 하루. "
누군가가 당신을 부릅니다. 하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봅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
이 시대의 교황. 성 비오 13세는 하루를 바라보며 묻고 있습니다.
" 아.. 교황님이시네. "
하루는 술잔을 쥐고 흔들거리며 웃습니다. 지금의 하루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헤이하고도, 악한 모습입니다.
" 지루해서요. "
그 말에 교황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내쉽니다.
" 그냥 이단자들 머리나 깨고 싶네요. "
말 그대로 하루의 삶은 지루해졌습니다. 신의 은혜를 믿고 성스러운 삶을 살아온 과거에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자신의 삶이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러나 자신이 구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범인을 설득하여 자수하게 했다는 것 만으로 피해자들이 울분을 토하며 그를 돌을 던져 죽였을 때. 점점 하루는 망가져갔습니다.
자신이 행한 일이 가치가 없다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행한 일로 이루어진 결과는, 결국 자신이 치료했기에, 설득했기에, 살렸기에, 죽였기에 이루어졌을 뿐이니까요. 하루는 점점 마모되어 갔습니다.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기적을 상징하는 백색의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였던 것도 그때였습니다. 사람에게 질려갔던 하루는 바티칸에서 자신을 찾는다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티칸으로 향했습니다. 666 죄악심의회에 들어 거짓으로 신의 이름을 퍼트리고, 그들을 이용하던 자들을 처벌하였습니다. 그저 심판과 단죄만을 행했습니다. 그 뒤에 이루어질 것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바티칸의 책임이었으니까요.
이단자를 죽인다. 이단이 아니라 죄를 가진 자라면 벌을 내린다. 그도 아니라면 살린다.
그 세 가지 판단만 가지면 되었으니까요.
그렇기에 하루의 삶은 단촐해졌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심판에, 정작 자신의 뜻이 들어가기 시작했단 것을 알게 된 순간. 이미 하루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는 신의 이름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 자신이 이룬 것들, 자신이 해낸 결과들 모두 신의 이름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거기서 신이라는 이름이 빠지고 나면 모두 개인의 욕심과, 개인의 잘못과, 개인의 문제로 남기 때문입니다. 가디언 칩이 붉게 물들고 곧 푸른 십자가가 하루의 손목에 떠오릅니다. 교황은 웃는 얼굴로 하루를 배웅합니다. 하루는 긴 저격총을 쥐고 있습니다. 총에는 세 쌍의 날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하루의 등에는 검은 색의 날개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한 사람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붉은 옷을 입고 열정적으로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저 자는, 신은 이제 곧 돌아올 것이며 그 가치로 의념 각성자라는 자신의 파편을 내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게이트에서 가져온 레드 코스트를 신이 자신에게 준 약속이라 말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휘말리고, 믿으며, 열광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리고, 자신의 오른쪽 눈에 손을 가져갑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눈에 스며들고 하루의 안구에 푸른 십자가가 떠오릅니다. 바티칸의 기적. 성 베드로의 파편을 통해 눈으로 죄악을 보는 것입니다. 죄를 상징하는 붉은 색이 선명히 피어오르고 있지만 포교자의 색은 피로 얼룩진 수많은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였고, 어린 꽃을 꺾었고, 재물을 탐했고,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이들의 수많은 운명이 피를 흘려, 한 사람의 운명을 피투성이로 만든 것입니다.
총구를 겨눕니다. 하루는 입술을 열고, 천천히 말을 뱉어냅니다.
" 주여. "
신을 찾으며,
" 죄인을 심판할 힘을 주소서. "
심판의 권한을 받고,
" 내 탄환으로 하여금 주의 말씀이 이어지게 하옵시고. "
바람을 말하며,
" 악은 처벌하고 선을 수호케 하소서. "
기도를 완성합니다. 붉게 타오른 총구는 빛을 뿜어냈고, 곧 불길이 지상을 휩쓸었을 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도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 모두가 죄인이었으니까요.
수백의 사람이 죽었지만 하루의 표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거칠어진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을 뿐입니다.
카사 진압법은 왜 만들어졌는가. 신속 S, 맹수의 감, 황금의 권속. 그 카사가 반찬에 고기가 없다고 날뛰는데 제압할 아브엘라가 부재중인 경우. 에릭 혼자 카사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 카사용 완전 공략집 같은 것 이다. 화약 연기가 나오는 힐건의 총구를 후. 하고 불어버린 뒤, 가슴에 있는 하네스의 건홀더에 힐건을 집어넣은 에릭은 쿵 하고 엎어진 카사에게로 다가갔다.
" 그래봤자 꼬맹이지. 애석하게 되었구나 Haus "
내가 먹은 아브엘라씨의 스튜가 너보다 몇그릇이나 앞서고 있는 이상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하드보일드하게 입꼬리를 올린 에릭은 이윽고 뽁 하고 바늘을 뽑아준 다음, 마치 짐덩이..혹은 쌀가마..혹은 사냥감 마냥 어깨에 짊어지고 카메라를 대여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가족사진을 찍는데 조금 깔끔하게 나와야..음..뭐 자기가 알아서 그루밍 하겠지. "
"이상한 사람..." 글쎄요.. 어쩐지 저랑 같이 지내다가 이상해진 분들도 있는 편이려나요.라고 생각하면서 잘 찾아야죠.라고 웅얼거리듯 말합니다.
정말 닿아버리면 그건 사고이긴 합니다. 그러다가 눈을 감자. 조금 짖궂은 생각이 들었는지. 손가락으로 두꺼운 목의 근육을 부드럽게 쭉 훑어내리려 시도합니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촉각이나 청각 같은 걸로 알아차려야 하잖아요? 아까 깨물린 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으로. 마치 깃털로 건드리려고 하는 것 마냥.. 조심스럽게? 만일 눈을 뜬다면 다림이 눈을 빤히. 그것도 매우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을지도?
"그렇게 강하다곤 생각하지 않지만요?" 강했으면 특성이 달랐겠지. 하는 뒷사람의 말은 들리지 않았겠지만. 어쨌던. 그런 걸 모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사실 모른다고 보기엔 D모드는 파멸을 주러 온 것 같은 느낌이고...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같이 볼래. 라는 말을 하며 머리 위에 턱을 올려놓으려는 지훈을 잠깐 보고는 힘을 빼고 뒤로 슬쩍 기대려 시도합니다. 뭔가 기대는..? 품에 안기는 듯한? 그런 자세를 시도한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