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힘이 있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것도 있었고, 힘에 취해 타락한 이들도 있었다. 우리들의 흔들리는 정의 속에서 우리들은 천천히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의념은 어째서 우리에게 내려온 것일까.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짓자 지훈은 잠시 멈칫거렸을까. 다림이 정말로 아쉬워하는 것인지, 자신을 놀리려고 그런 것인지 알기 어려웠으니. 잠시동안이지만 고민하더니 다림의 손을 살짝 만지작거리며 반응을 보려고 했을지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더니 한숨을 살짝 내쉬며 "설마 모르고 있었어?" 라고 조심히 물어봤겠지.
" ...-.... "
뭔가 말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할 수가 없었다. 그야 이렇게 가까운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림이 멈춘 시점에 지훈도 따라 멈췄지만, 그 거리는 이미 아슬아슬해서 숨결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입을 달싹거리면 닿아버릴지도 모를 그런 거리였다.
다림이 지훈을 빤히 바라보자 그 시선을 피한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지 꽤 시간이 흘렀을 즈음, 보다못한 알바생 한 명이 두 사람을 떼어내고는 남은 것은 포장해줄테니 나가달라고 공손히 축객령을 내렸을까?
" ....음, 어, 다음엔 어떻게, 아니 어디를 가야하나... "
방금 전 일의 부끄러움+당황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에 지훈은 혼자 말하면서도 조금 더듬거나 횡설수설해버렸다.
서운한 표정을 짓자 멈칫거리는 지훈을 보고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깁니다. 손을 살짝 만지작거리자. 눈을 깜박이고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섬세하게 잡아보려 시도합니다. 응.. 장갑을 끼고는 있지만 손깍지에 가까울 거에요(?) 그러다가도.
"요망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진심이신 줄은 몰랐어요." 자신이 요망한가? 라는 그런 종류를 객관적으로 본인이 가늠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게다가 다림은 매력에 대해서 애매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닿을 듯 말 듯 그 아슬아슬함.. 옅은 숨이 입술에 닿으면 아직은 닿지 않았지만 이미 닿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감정이 옅게 얼굴에 드리웠습니다.
"손.님. 제발. 포장해 드릴테니. 나가주시면. 안 될까요?" 정중한 축객령이긴 했지만 알바생의 얼굴 표정은 마치 '신성한 알바자리에서 뭣들 하는 짓이냐 그런 염장질같은 거는 성학교 기숙사나 제노시아 기숙사에서 좀 안 보이게 하란 말이다. 이 커퀴벌레같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있는 거 안 보여? 아앙? 요망한(?) 여자애도 그렇지만 너도 제대로 할거면 제대로 확 휘어잡으라고.'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빡돈 표정이었을 겁니다... 하긴. 커퀴벌레로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긴 합니다.
"...." 얼굴이 붉어지고..그걸 숨기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지훈이 하는 말을 드문드문 듣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죠..
"...어..어디로 가죠.." 다림도 겨우 말을 내뱉었습니다. 장소라면 공원 벤치같은 데도 있고, 아니면 외부음식이 허용되는 룸카페 같은 데도 있을 거고. 것도 아니면 다시 기숙사로 돌아간다거나..?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잡자 지훈은 조금 생경한 느낌인지 무표정하게 손깍지에 가까운 느낌을 바라보았을까? 그 상태에서 손을 조금 움직이더니, 완전히 손깍지를 끼려고 시도하고는 만약 성공했다면 희미하게 웃으머 "장갑낀 상태이긴 해도, 진짜 해버렸네." 라며 다림에게 보여주려는 듯 했을지도..
"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진심이었을 거야 그거..."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고 하니 조금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른 종류의 무서움이기는 하지만... 천연속성 팜파탈이 이래서 무서운건가 하는 뒷사람의 의견은 일단 넘어가고, 다림의 감정을 미약하게 느꼈는지 지훈 역시 그 감각에 그대로 굳어버렸겠지.
그러다가 알바생에게 쫓겨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뭔가 말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었지만 지훈은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확 휘어잡는다니, 그 상황에서 직접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 했지만... 그래서인지 커퀴라고 욕하는 시선에도 별말 하지 않았으려나?
" 룸카페라는 곳 가볼래? "
잠시 고민하던 지훈은 다림과 함께 말 없이 걷다가, 음식물 반입이 가능한 룸카페의 광고를 보고는 여기가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다른 곳은 대부분 외부 음식물 반입 금지였으니까. 물론 룸카페는 한번도 안 가본 곳이었지만 만화카페랑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다림에게 제안하며 다림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다가, 만약 수락했다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보려고 했겠지.
"..." "그렇네요. 해버리고 말았어요" 손깍지를 끼게 되면 낯선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그건 그래요. 낯설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 낯설다는 표정이지만 걷어차려던 그 때처럼 털어내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이라니.. 좀 조심해야 하려나요?" 그걸 들으면 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라곤 생각 안했는걸요. 그냥 농담인 줄 알았지.. 그러고는 쫓겨났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해요.. 그렇게 쫓겨나는 게 그나마 좋은 엔딩이었을 겁니다.
"룸카페... 나쁜 건 아니겠죠..?"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면 그것을 잠깐 보다가 고개를 들어 지훈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고는 룸카페로 들어가려 합니다. 룸카페라고 해도 그냥 카페 비슷한 거겠죠. (만석이거나 주말 시에) 시간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고 방에 들어가서 보드게임이나 넷xx스같은 걸 틀 수 있다는 점만 빼면? 다림이 뭘 상상하기는 했지만 그건 너무 불건전하므로 언급하지 않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