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글쎄요.." 금방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게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라고 솔직히 답합니다. 태양왕 게이트가 끝나고 구르긴 굴렀으므로 오래도록 있을 수 있다는 미약한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 무릎에 고개를 올려놓고 올려다보는 지훈에게 보인 다림은 조금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것도 같았고, 미묘하게.. 기울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도 모릅니다. 약간 뭔가를 눌러담은 듯한 목소리로 놓아주세요. 안 그러면 걷어찰 거라는 경고를 하긴 합니다. 다행이네요. 걷어차서 떼어내려 하기 전에 경고를 해주다니. 그걸 무시하고 계속 붙잡았다면 다림은 진짜 걷어차듯이 떼어내려 한 다음 조금 몸서리쳤을 겁니다.. 마치 뭔가 닿아선 안 될 게 닿은 것 마냥..? 그런 다음엔 미안해요. 같은 말을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로(기어들어갈 것이다) 할지도?
"...햄버거는 뭐든 괜찮아요." 원하신다면.. 이라고 말하면서 밖으로 나가죠.라고 말하려 합니다. 늑대를 씻기던 때랑은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씻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지도.
>>864 기숙사로 돌아온 지훈은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기댑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많은 이들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리고, 무력감에 지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훈도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선생님에게 오니잔슈를 빼앗긴 채 지훈은 2주의 시간동안 수많은 게이트를 돌파했을 뿐입니다.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습니다.
초췌하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지만, 상처에 딱지가 앉은 듯 계속해서 신경쓰이고 욱씬거리고 가렵다.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심정이지만, 세상은 움직인다. 그러니까... 오늘도 내 일을 해야지... 찬후 선배랑 손유 선배는 괜찮을까... 어기적어기적... 미술부로... 가자...
딱히 기쁜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걸어가는 건 지루한 일이기에 오래된 노래를 가볍게 흥얼거렸다. 학원섬에 남아있는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 없을 만한 그런 노래를, 기억나지 않는 양 가사를 뭉개가며 느릿하게 흥얼거렸다. 벽에 부딪쳐 다시 돌아오는 노랫소리, 벽에 가져가 그으며 움직이는 손끝에 전해지는 진동, 몸이 움직이며 흐르는 약한 공기의 흐름, 그런 색색의 감각들을 받아들이며, 복도를 내딛어 움직인다.
지훈은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조금 뒤척였다. 잠이 오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조금의 공허감, 그리고 조금 많은 무력감 탓이었다. 그는 게이트를 돌파하며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오니잔슈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그 괴이한 검에 얼마나 기대고 있었는지. 나 자신의 힘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 ...강해져야 해. '
그는 눈을 감으며 억지로나마 잠을 자려고 한다. 어제의 피로를 씻기 위해. 내일 몸을 움직이기 위해.
새로운 달이 되었고 새로운 날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해가 떴고 저는 지쳐 엎어지고 싶었습니다. 지난 2주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일류무사를 쓰러트리는 것까지가 우리들의 일이 아니었답니다. 우리들은 무사를 쓰러트린 뒤에도 수많은 게이트들을 닫고 닫고 또 닫았습니다. 그저 눈앞에 쏟아진 것들을 막고 막고 또 막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었습니다. 다만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어서, 정말이지 지쳐 쓰러지고 싶을 정도였단 게 문제였지만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슬슬 나가봐야 겠지요? 오늘은 오늘의 할일이 있으니까요. 보건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옷장을 열었습니다. 지난 2주 사이 새로이 옷장을 갈아엎어 옷장에는 이젠 몇 벌을 제외하고 온통 하얗거나 밝은 톤의 옷 뿐이었답니다. 더는 옷장에서 어둡거나 검은 톤의 옷은 찾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검은 나비는 정말이지 싫으니까요! 적당히 하얀 톤의 정장으로 갈아입고 난 뒤 초커를 새로 차며 저는 가디언칩을 키려 하였답니다. 그러고보니 야마모토 씨, 제 문자 기억하고 계시시려나요...? 무사히 끝난다면 보러 와도 좋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상황이 안정되는데 무려 2주나 지났으니 설마 기억하시고 계실...리가 없으시겠죠! 아무튼간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입니다. 모든 상황이 진정되었으니, 이제 에미리는 원래 받았던 의뢰를 수행하러 가야한답니다.
"흐음....🎵 "
역시 유우토 오라버니에게 연락을 해보아야겠죠? 하지만 그전에, 들어온 것부터 확인을 하고 말이지요.
상처 입고 떠나가는 선배를, 하루는 씁쓸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가 자신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것인지 궁금했지만, 좀처럼 그의 손을 잡아 멈춰세울 수 없는 그녀였기에,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조용히 노크를 하며 보건실 안으로 들어서서 이나선생님에게 향합니다.
" ... 안녕하세요, 선생님. "
가볍게 인사를 해보이는 하루는 잠시 고요한 보건부실을 둘러보다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 혹시 업무라던가 도와드릴 일이 없을까요? 손이 비는 만큼, 간단한 일이라도 도와드릴까 해서요. "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하구요, 하루는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물끄러미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