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리는 것이 더 좋다는 말에 전혀 유감스럽지 않은 표정으로 저도 마찬가지라며 슬쩍 웃었다. 뒤에 놀리는 것을 맞받아치는 것도 좋아한다는 말은 일부러 생략했으니 만만찮게 좋은 성격은 아니였다. 따라오는 시선에 이번에는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보는듯 마는듯 간간히 눈을 마주하면서도 시선을 흘리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미소를 유지했다.
"뭐가 상관없다는 건데? 만약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오히려 불편해."
'처음부터 말했듯이 마음 가는 대로 대해.' 다가오는 지훈에게 저도 한발짝 더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무대는 언제나 하나였고 부조리한 연극같은 생에서 다른 사람의 의도까지 알아맞히는 것, 특히나 선의에 관련하여 반응하는 건 그에 어울려 줄 만큼의 가식이 필요해 피곤했다. 그러므로 연기하는 쪽은 자신이어야했다.
"계속하는구나. 그럴 것 같긴 했지만 정말 악취미라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을거라 믿을게. 그래도 어차피 말릴 생각은 없었고 보는 나도 나름 재밌을 것 같거든."
"살다보면 저절로 알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있고, 그 중에 정말로 불가피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야. 여기 가디언이 되러 온 아이들 중 그렇지 않은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하다 못해 살인경험이 전무한 쪽도 얼마 없을거라 생각하는데 이에 비하면 그 정도는 양반이지."
농담에 숨겨진 걱정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미사는 조소를 지으며 작게 키득거렸다. 말이 좋아 군인이고 가디언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소년병을 끌어 전쟁에 동원시킨 것과 다른게 무엇인지. 단 하나 과거와 차이점이 있다면 목숨값이 후하다는 것 정도라 여겼다. 물론 이런 곳에 자원해서 온 그녀도 그리 멀쩡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머, 지켜보겠다고. 무섭기도해라."
대충 성의없이 답하며 쥔 손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문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중학생 그리고 그 직전에 그와 비슷한 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아니 흐릿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이미지 관리 이상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그녀에게 기시감을 줄 정도라면 그 전의 사람일리가 있을까. 그 이전은 전부 잊으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가능성에 답했다.
"가브리엘라. 한국 이름이 따로 있지만 이쪽이 본명에 가까워."
어릴 때, 처음 밟는 어머니의 나라가 익숙하지 않아 한국어 보다 영어를 사용하던 때가 있었고 대부분의 소개를 미국식으로 하고 다녔었다. 이름에 큰 확신이 오지 않았지만 더 이전에 알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힌트라도 얻을 수 있겠지.
난 B군의 죽음에 쏟았던 모든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이제 와서... 이제 와서... 살았다고 해봤자... 죽일 거야! 내가 죽일 거야!!!!! 패죽일 거거든!!!!!! 채찍에 망념 가득 담아서 후려치고 목에 감고 조르고 하든 안 죽었으면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야 로스트 안했어??? 응 그럼 해 마주치기만 해봐라 넌 죽음이다 딱대 딱 와바 베온 드란시 친구군 친구놈 비눗방울맨 B군 와라 와라 함 와라 ㅋㅋ 죽인다 죽여버릴거임 ㅎㅎㅎㅎㅎㅎ
네잘못이야.... 네잘못이야... 이렇게 내가 보지도 못하고 손대지도 못하는 영역에서 다치고 사라져버리는 네가 나빠... 다른 사람한테 죽기 전에 나한테 죽으면안 될까??? 그럼 확실히 죽은거잖아... 그것도 내가 아는 곳에서 내 손에 죽은거잖아... 그게 낫지 않을가????????
주변을 둘러보고 음식을 남길 시 벌칙금!이라든가 하는 문구는 없는 것을 보고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다가...다림의 입에서 아는 이름이 나오자 눈을 크게 뜨고 반색합니다.
"어, 에릭 씨면 그 에릭 하르트만 씨? 청월 2학년에 총 들고 다니는 그 사람? 나한테 나 사칭하는 인간 있다고 알려준 분이 그 분인데!"
나머지는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카사와도 구면이지만 얼굴(과 대략적인 신속 능력치)만 알고 이름을 모르고 있었지요. 그러고보니 에릭 씨한테도 맛있는 거 같이 먹으러 가 보자고 해 볼까!하고, 청천은 떡볶이를 마저 우물거리며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먹었다고 생각했지만...다림이 어떻게든 먹었다!라고 말할 때쯤에도 아직 내용물이 조금 남아 있었더랬죠.
"응, 역시 볶음밥까지는 무리네..."
하지만 조금 더 무리하면...? 청천은 잠깐 고민하는 듯 하다니, 비장하게 국자를 냄비에 넣어 남은 건더기들을 건져서 앞접시에 담습니다. 그리고는...먹습니다! 냠냠. 상황이 상황이라 약간 장난스럽게도 보입니다.
"후...어떻게든 먹었다아...."
조금 힘겹지만 어떻게든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청천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엄지를 들어보입니다.
"결국 과식해버렸다...돌아갈 땐 천천히 걷든지 아니면 택시라도 타야 하려나...그래도 잘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