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수군... 뭔일이야...? 아니 그게... 수군수군... 2만gp나 있는데 지갑을 안 가져온 사람이 있대... 수군수군... 그게 말이 돼...? 수군수군... 하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지만 묘하게 들리는 것 같은 하늘공원, 나이젤이 옥상 플로어를 멍하니 떠돌고 있었다. 이렇게 멍하니 떠도는 이유는, 별 거 아니다. 쇼핑에 실패했다. 사람이 많은 건 뭐 그렇다치고. 물건은 많아도 살 것만 보면 되는데, 안 오던 델 와서 그런지 1층부터 10층까지 둘러봐도 도무지 살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물건 사러 와서 살 물건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여기 왜 온거지? 아니 애초에 왜 존재하는 거지? 인간은 모두 죽는데... 왜 살아있는 거지? 그러다 화현을 마주친 나이젤. 새하얗게 불타버린 화현을 보고, 아주 미묘한 "야 너두?"의 기색을 보이고 있다.
빠르게 문자에 답신을 하며 옷을 고른다. 검정 슬리브리스에 파스텔 옐로우 컬러의 오프숄더, 남색의 치마바지에 운동화. 편해서 자주 입는 조합을 들고 거울 앞에 대보니, 역시 이거였다.
[ 1시간 뒤에 ] [ 그 카페에서 만나요! ]
30분 정도 준비가 끝나고, 나는 미리 카페에 와서 에미리를 "몰래", "숨어서" 노릴 생각으로 저 구석, 화장실 쪽 자리에 살짝 숙인 채로 에미리의 도착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들어 에미리늄(?) 성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딸기 메뉴를 쓸어담으면서 에미리늄도 쓸어담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에미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쿠쿠루삥뽕뿡이 이젠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흐릿하게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는다. "네... 오랜만이네요." 한... 두달만인 것 같은 이 기분. 많이 피곤해 보인다는 그 소리에 "그래요?" 하지만 그쪽이 더... 피곤해 보이는데... 마치, 본인이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끌려와서 살 것도 없는데 하루종일 백화점 돌아다닌 사람처럼..
"에구... 이렇게 밝은 곳에서 이러고 있는 사람들은 저희 뿐일 거예요."
"애인 따라와서 하루종일 쇼핑하는 거 구경만 하는 상대편은 모두 4층이나 3층에 있거든요..."
고심끝에 고른 옷은 역시 검정 계통의 단정한 카라의 원피스였을까요? 조금 많이 단이 짧은데 원래 국제학교 다닐 때에도 학교 밖에선 이렇게 짧게 입었으니까요. 물론 집안 사람들 눈치 봐야 하는 데서야 무릎 밑으로 단정히 입었지만 이 학원도에서 그런 걸 신경쓸 제가 아닙니다! 화장도 적당히 장밋빛으로 했고, 이정도면 괜찮겠지요. 종종걸음으로 약속시간 10분 전에 카페에 도착해선 카페 문앞에서 지아양께 문자를 보냈답니다.
"사랑이 S인거죠... 사랑을 위해 자신의 절망마저도 희망으로 연기할 수 있는 법인거죠... 이해가 되진 않지만."
마치... 내가 오타쿠지만 일반인처럼 코스프레 하는 것과 비슷한 걸까? ... 난 절대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을래. 그리고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나이젤 씨는 음... 항상 무관심해 보인단 말이야. 둔감? 아니아니, 둔감이랑은 달라... 세상만사 아무 상관 없다... 같아 보이는 사람. 그래! 이거야!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를 제외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상관없어 하는 사람이라 각인되어 버렸는지 그의 행동에 딱히 의문이 들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그럴 것 같았어요. 음, 여긴 말 그대로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혹은 가지고 싶다고 희망하는 물건을 보러 오는 곳이니까요. 나이젤 씨는.. 그런 거 없잖아요? 적어도 여기에 있는 것들 중에선?"
비유하자면 별로 관심도 없는 품목의 TV광고를 보고 있으니 지루할 수 밖에 없지~
"뭐, 백화점이 그렇죠. 영화관이 있고, 식당이 있고, 옷가게나 기타 여러 매장이 있지만... 정작 전문으로 하는 곳보다 떨어지는 퀄리티. 대중성을 위한 곳이니까요."
"뭐 마시고 싶으시면 저기"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에 스낵 판매점이 있다. 츄러스가 무려 150GP! 생수 10GP! 커피 20GP! 버터구이오징어 200GP! 캐비어가 올라간 스테이크 1500GP!
그래도, 불편하다면 말하면 되는 게 아닐까. 불편을 호소한다고 해서 상대의 사랑이 식어버린다면 그런 건 사랑받는 게 아니었을 테다. 사랑이란 그런 거랬다. 아주 가끔은 쉽게 뚝 끊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얇아질 듯 하면서도 두꺼워지길 반복한단다. 아마 진짜 사랑이란 것? 진짜 가짜 따질 게 뭐 있겠냐만.
"...그랬죠. 특정한 뭔가를 사러 왔다기보단 그냥 있으니까 들어왔단 말이 더 어울릴지도요."
건물이 있으니까 들어오고, 아는 사람이 있으니깐 대화하고. 삶도 살아지니까 사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지 못하게 되면 죽으니까, 그건 평범한 인간의 특성이라고 봐도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네. 절대 다수의 평범한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가게가 돈을 써주는 사람에게 맞춰줘야지, 저처럼 돈 안 쓰는 사람한테 맞춰주면 곤란하니까... 의외로 제대로 되어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가게를 보고선.
"저것도 사는 사람이 있어서 있는 메뉴일까요...?"
왜 스낵 판매점에 캐비어가 올라간 스테이크가??
"자판기씨가 그리워지네요. 가끔 죽이려고 쫓아오긴 하지만 적어도 가격으로 죽이려 하진 않았는걸요."
[😄] [그럼 창가쪽에 적당히 자리잡을테니까요! ] [오시면 바로 연락 주시와요~? 😉 ] [주문도 미리 해놓겠사와요! 편히 오시면 된답니다! ]
아, 딸기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와서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네요! 그런 생각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카페에 들어가 제일 먼저 카운터로 가 주문을 했답니다. 딸기파르페에 딸기쇼트케이크, 딸기타르트에 딸기크로와상까지 딸기디저트란 디저트는 적당히 먹을만큼만 주문했지요! 물론 제 음료 역시 딸기라떼였답니다. 지아양의 음료인 트리플베리에이드를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주문을 하고 저는 밖이 잘 보이는 창가자리에 자리를 잡으려....하였는데....
"꺄아아아아??????????????"
이,이게 무슨 일인가요???? 갑작스레 뒤에서 안아오시는 이 분은 누구지요???? 누구긴 누구일리가요 지아양이셨습니다!!!! 이 목소리를 제가 잊을리가 없지 않나요!!!! 아니, 그보다, 곧 도착예정이라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벌써 도착하신 걸까요???? 어떻게 벌써 카페에 오신 건지요?????
"저, 저어, 지아양? 여기는 공공장소이와요? 그러니까, 저, 조금 많이 부끄럽사와요? "
들려...? 마법을 쓰다가 악마가 되어버린... 주인공...? 네가 알려준 사랑이란 개념을... 난 이제 제대로 써먹고 있어... 감정의 극한... 흑흑. 다시 재탕해야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나는 참 오타쿠구나. 하지만, 그렇게 몰입하지 않으면 조금...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걸 집어넣기엔 이런 게 짱이지. 왠지, 방금 등산가에게 물었다. 왜 산을 오릅니까? 그러자 대답하였다.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었어.
"결국 심심함을 참을 수 없었다는 소리네요. 아니면, 백화점의 마수에 걸려든걸지도 모르겠고요. 음, 백화점... 사실... 무언가 사기 위해 백화점에 오는 사람은 좀 적을 거예요. 그냥, 돌아다니거나 심심해서 백화점이 보이네? 여기서 시간 좀 떼워야지.. 하고 왔다가 이것저것 둘러보고 어? 이거 괜찮네~ 하고 사는 경우가 태반일거예요. 음! 제 친구의 경우(가상의 친구) 영화를 보기 위해 왔다가 상영시간까지 좀 많이 남아서 백화점 내부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전자기기나 취미용품 매장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몇년간 열심히 했지만 어느 순간 권태기가 와서 접었던 게임의 패키지를 보고 그 생각이 나서 다시 해볼까 하고 관련 용품을 몇 개 구매한 일이 있었는걸요."
말이 대박 길어졌는걸 요약하자면, "결국, 백화점은 덫이에요, 덫. 고객의 지갑을 갈취하기 위한 덫... 대기업들의 돈을 향한 열망을 무시하지 마세요." 난 대형마트 혹은 백화점 혐오자가 아니다!
"사... 먹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 것도 있다! 하는 거 아닐까요...? 츄러스 먹고 싶다... 가격으로 죽이는 판매점 VS 물리적으로 죽이는 자판기. 당신의 선택은?"
감정의 극한... 이란 건 그렇다 쳐도 가능케 할 수 있다면 불가능이 아니잖아. 하고 화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애니메이션인지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그만큼 중요한 감정이니깐 힘든 거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뜻이라면 끄덕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상의 친구란 건 모르지만)친구 씨의 경우는 영화를 기다린다는 것 때문에 딱히 관심이 없어도 남아있을 동기가 생기고, 그래서 그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지갑 사수에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몇 시까지 행사라던가, 인기있는 노래를 매장에 튼다던가 하는 식도 비슷한 걸지도?
"하지만 결국 사는 건 고객 자신인걸요. 파는 쪽에서 잘 팔리게 하려고 이것저것 하는 건, 강매한다던지 어두운 쪽에 손을 댄다던지 하는 게 아니라면 정상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기왕이면 물건의 품질이 엄청 좋아서 다른 수단 없이도 잘 팔리는 쪽이 이상적이지만, 그럴 수만은 없으니.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게... 미끼상품이란 걸까요? 하긴 저도 이런 곳에서 파는 수상한 캐비어 스테이크보단 평범한 스낵 중 제일 싼 츄러스에 눈길에 가긴 하네요."
미묘하게 질린 듯한 표정으로 스낵 판매점을 바라보던 나이젤은 고개를 약간 저었다. 눈길을 가게 한다는 게 꼭 사고 싶게 만든다는 건 아니니까.
"자판기씨요. 계속 함께하다 보면 죽이려 하는 것도 좀 익숙하게 느껴질 법도 하고, 살인자판기 제작자들도 요즘은 정통도면파가 너무 많아서 패턴에 창의력이 없거든요."
"그렇죠! 식충식물. 사람들의 사소한 욕망이라도 감지하면 끌어당겨 자신의 안으로.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심리를 주무르고 돈을 쓰게 만드는 곳... 말하자면 기업들의 심리학의 결정체! 그게 바로 이런 곳이에요."
어허~ 나이젤 씨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뭐, 강매 한다거나 협박한다거나 그런 것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무서운 법. 웃는 얼굴 뒷면에 온갖 더러운 상술이 다 섞여있고, '지금 사면 1+1 !!!!1' 같은 글귀 뒤에 'ㅋㅋ 하지만 네가 사려는 건 이벤트 제외임! ㅅㄱ' 같은 글씨가 작게 써져 있거나 하지. 합법의 영역에 들어서기 위해 어떤 더러운 짓도 한다. 그게 기업! 아, 나는 기업 혐오자가 아니다.
"미끼..상품... 같은 건 아니지만, 아마... 그럴 것 같기도 하네요. 아니면, 이거 한 번 먹어봐? 하는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한 번만 주문해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가격을 측정했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