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에 대해 말씀하신 거에 대해 대답하려는 찰나, 화살에 손이, 손이, 새빨갛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이 다시금 붉어지려고 합니다. 그것만은, 그것만은 안되는데 말이어요. 에미리의 동료분들이 다치시는 걸 눈앞에서 지켜만 볼수는 없답니다. 응급처치든 뭐든간에 어떻게든 해내야만 합니다. 질끈 눈을 감고 의념을 끌어올리려 하며 손을 뻗었습니다. 지금은 저 손을 되돌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영웅이란 무엇일까요. 아니면 적어도, 영웅이란 이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화현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영웅이란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영웅의 순간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영웅은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반짝이는 빛은 영웅에게 사람들을 끌어모으게 합니다. 그러나 많은 영웅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빛에 가려져, 그들만의 영광스런 길은 그들이 보지 못한 어둠을 가리고 있으니까요.
화현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게이트가 열린 직후의 풍경. 막아내기 위해 노력한 가디언들의 고생이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그렇지만 화현은 다른 풍경에 눈을 돌립니다. 무너져버린 건물들, 위치를 잃어버린 철골들의 모습. 한때 거대한 숲이었던 공원의 모습, 사람들이 걷고 웃으며 때론 울며 다니던. 이젠 망가진 길의 모습. 영웅이 활약하기 위해선 사건이 있어야만 하고, 사건은 필연적으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맙니다. 그렇기에 화현은 스캐치북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그들이 함께 걸어가던 공원. 그들이 함께 추억하던 집. 그들의 기억이 담긴 도로. 그들이 돌아갈 수 있었던 길.
수많은 '그 사람들'의 추억을 위해서.
화현의 손에 꽂힌 화살이 이유 모를 힘에 의해 천천히 빠져나옵니다. 청망은 자신의 화살이 빠지는 모습을 보며 놀란 눈을 짓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화살이 노리고 날아오지만, 화현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카사는 급히 움직여 날아오는 화살을 정통으로 막아냅니다. 화살이 카사의 복부를 관통하고, 치솟은 망념에 의해 천천히 변신이 풀려갑니다. 카사는 후들거리는 몸으로 화살을 버티며 화현을 바라봅니다. 화현은, 그 얼굴에 미소를 짓습니다.
의념기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 화현아.
스승이었으며, 선배였고, 친구였던 이의 죽음을 밟고.
- 야. 울지 마라. 그 자식은 네 우는 모습을 보고싶진 않을 거 아냐.
또 다른 스승이자, 선배였고, 친구였던 이와 추억을 공유하며 눈물을 삼키고.
' 영웅이 되고 싶진 않았어. '
그렇게 감정의 동요를 참고 말하던 당신.
' 그저 000으로 이루어진 숫자가 되고싶진 않았으니까. 사실 가디언이 되면, 나도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
당신은 이야기합니다.
' 어때요? '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돌려주고,
" 고맙습니다. "
수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다시금 돌리고자 했고,
" 읏차. 어디.. 이번에는 무엇을 만들어볼까. "
의념이란 이름 위에, 추억이라는 흔적을 씌워 만드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억의 재현자
창조자. 이화현입니다.
화현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손은 유독 빠르게 움직입니다. 에미리는 화현의 손을 치료하려 하지만, 치료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강맹한 의념의 힘은 이미 화현의 손을 매꾸어 완전히 치료하였으니까요. 선을 그리고, 선과 선을 잇고, 명암을 덧씌우고, 색을 불어넣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즐거워서. 너무나도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보시란 말입니다! 당신의 재능은 이리도 반짝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수많은 위험을 해쳐나가. 결국 이겨내고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당신의 미래를, 누구보다 밝게 빛날 당신의 순간을!
세상은 결국 백색의 종이 한 장일 뿐입니다. 단지 누군가가 수많은 그림을 동시에 그리며 그 그림을 움직이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종이 한 장이 바뀐다 하더라도 겨우 찰나일 뿐이니. 문제 없지 않겠습니까? 화현은 미소와 함께 세상에 선언합니다.
내가 그려낸 것은, 세상의 단편이라고요! 그림을 완성해낸 화현은 그것을 찢어 세상에 불어넣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한 그림은 마침내 세상에 녹아듭니다. 녹아들기 시작한 그림은 청망의 몸을 비틀고, 움직이며, 마침내 바꿔냅니다!
이번 턴에 청망의 방어력이 0으로 판정됩니다!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기술을 봉인합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보며 지아는 손을 뻗습니다. 익숙한 돌개바람이 불어 지아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지아는 눈을 감고, 천천히 꿈을 그려냅니다. 그 곳에는 한 여성이 서있습니다. 키는 170을 넘는 듯 하고, 유려한 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아는 보자마자 그 정체를 추측해냅니다. 미래의 자신은 지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안녕. "
웃음을 지으며 밝게 인사하는 나에게, 나는 미소를 지으며 회답합니다.
" 안녕. "
나는 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걷습니다. 바람은 하나가 되어 일어나고, 너와 나의 길은 하나가 됩니다.
" 영웅이 된 나는 어때? " " 하루하루 바빠. 다들 많이 바쁘지만 특히 더 바쁜 것 같다니까. " " 힘들진 않아? " " 힘들진 않은 것 같아. " " 왜? "
그때 나는 나에게 웃으며 말합니다.
" 그야. " " 꿈을 이루었으니까? "
고갤 끄덕입니다.
" 윤지아. "
나는 말합니다.
" 나에게 바람을 빌려줘. "
답합니다.
" 어떤 바람을? "
답합니다.
" 친구들을 구할 힘을. "
그 말에 나는 웃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밀어버렸습니다. 떨어지기 시작하는 몸. 나는 그 바람 속에 몸을 맡깁니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천천히 손을 뻗습니다.
의념기
기류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짧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비바람이 모두의 얼굴에 내려칩니다. 하지만 오직 지아는 조용합니다. 이 바람의 주인은 지아이기 때문입니다.
칼리카로스의 바람.
거세게, 그리고 또한 조용하게. 바람은 마구잡이로 불어오고, 뭉치고, 집어당기고, 찢어갑니다. 청망의 갑옷이 마구잡이로 흩어지고, 청망의 투구가 벗겨지고, 청망의 얼굴에 바람에 의한 상처들이 늘어납니다. 가르고, 찢고, 파헤치고, 뭉개고, 늘이고, 그렇게. 거친 상처들을 파해치는 폭풍이 몰려옵니다. 마구잡이로 찢어버리고 있습니다. 부수고 있습니다.
...
그 거친 바람이 끝난 뒤. 청망의 모습은 넝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흐르고 있는 피와 살. 조금만 기다리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도 그는 다시금 힘을 끌어내어 자신의 갑옷과 활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