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화도 유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카사를 내려다본다. 싸늘한 두 눈동자에 떠오르는 감정은 비정. 동정심도 측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 카사 떨어지자, 그 역시 균형을 못잡고 비틀거리다 상체를 늘어트리며 숨을 고를 뿐 이었다. 손에서는 피가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덜렁 거리는 느낌의 어깨에서도 고통이 계속..계속 느껴져왔다. 호흡을 고를수록 폐에 차오르는 습기와 입안에 느껴지는 씁쓸한 피 맛이 불쾌하게 그지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그냥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하나미치야에게, 만석이에게, 부장님에게, 하루에게, 가람에게.. 그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 더는 신경쓰지 말라하고, 멀어지면 그만이다.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지례짐작하고 혼자 도망치는 것 만큼 편하고 쉬운 것도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카사는 아브엘라와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밥을 어떻게 먹는지 배웠고, 존댓말은 어떻게 쓰는지 배웠다. 아브엘라와 얼굴을 맞대며 배운 그것들은 카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에릭 하르트만은 아브엘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영웅의 행적을 동경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느꼈다. 하지만 배움을 청할 기회가 산산조각이 나버렸기에....
자신이 얻지 못한 기회를 얻은 카사에게 질투하는 것 이다. 카사가 이대로 단념해버리면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이다. 카사가..... 아브엘라에게 배운 인간성을 부정하고 고립되어가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쏴아아 ㅡ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이렇게 비가 쏟아져도, 팔이 엉망이 되고, 얼굴도 피와 땀으로 엉망이 되어도 청월의 교복만큼은 빗방울에 젖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 네가 발버둥쳐도... 아프란시아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은 없어 카사. "
이젠 힘도 다 빠졌는지, 에릭은 차분한 목소리로 카사를 설득했다. 청월의 교복을 입은 카사를 떠올려봤다. 분명 잘 어울릴 것 이다. 하나미치야는 카사와 잘 놀아줄 것 이다. 기회가 되면 내 지인들을 소개해주자. 모두가 그녀를 좋아해줄 것 이다. 청월의 훌륭한 교사들은 그녀를 인도해주는 등불이 되어줄 것 이다. 영성이 낮다고 책을 못 읽어 아쉬워 하는 몰골은 두번다시 볼 수 없을 것 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카사의 인간관계인가?
" ...... 아 "
생각하는 사이 카사의 주먹이 에릭의 눈 앞에 다가왔다. 막으면 된다. 명확하게 카사는 지쳤고, 그는 아직 싸울 여력이 된다. 막으면 된다...막으면...
퍼억 소리와 함께 뺨에 느껴지는 화끈한 격통과 함께, 에릭의 몸이 가볍게 떠오른다.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 처럼,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왜 막지 않았을까. 막을 필요가 없었던걸까.
카사가 인간으로서 의념을 담아 내지른 주먹은 확실하게 에릭의 뺨에 적중하고... 쿵 하고 에릭이 나가떨어지자 찰팍 거리는 소리가 한순간 울려퍼짐과 동시에 카사의 앞에 에릭이 쓰러졌다.
어깨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듯 너덜거리고, 손은 날카로운 이빨로 상처 투성이에 생각없이 망념을 쓴 댓가로 가디언 칩이 삐 울리며 경고음을 내뱉고 있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주륵 하고 흘러내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다.
" .... 아프란시아에 남아있으면, 이번에 겪은 일 보다 더 많은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사람이란 짐승은 잔인해서 바보인 널 속여먹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에게 보인 거짓웃음은 당연하고, 훨씬 더 잔혹하게 널 이용해 먹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넌 아프란시아에 남고 싶은거야........? "
>>38 " 겁먹지 마! 지금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내면 내일은 더 행복한 날이 올테니까 말야!! "
>>39 " 이거 봐라. 하나랑 우리 사이에서 낳은 딸이야. 귀엽지? 난 우리 애가 이렇게 쪼그마한 핏덩이일지 몰랐단 말이지. " " 이 아이만 보면 그 생각이 들어. 그 날 쓰러지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진 않았나 하고 말야. " " 난 네 미래야. 의심하지 말고 일어나 에릭 하르트만. "
그대로 주먹을 내뻗은 채, 다시 원 상태로 돌려놓을 힘도 없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카사. 땀과 눈물, 빗물과 핏물, 모든 것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지저분 한 몰골로 서있을 뿐이다. 시야의 반이 붉고, 가슴팍은 통증을 호소한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면, 쓰러져버린 에릭 하르트만의 몸이 보인다. 이미 흠뻑 젖어버린 옷은 웅덩이에 빠져도 별 차이가 없다.
카사는 생각했다. 그래도 서있는 건 나야. 삐죽, 그다지 순수해 보이지는 미소를 짓고선.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꼴사납게 무릎부터 땅으로 쓰러진다.
옆으로 엎어져 누워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뱉는 카사. 코가 깨질 뻔한 걸 억지로 몸을 비틀어서 피했는 데...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갈비뼈가 무언가를 찌르고 있다. 그 고통에 잠시 말이 없어져, 그저 에릭의 말을 듣기 만 할수 밖에 없다.
빗소리가 거세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 옆으로 늬여 반만 보이는 에릭 하르트만. 그리고 카사는 겨우 겨우 본인의 말을 내뱉는다.
"그런거...허억.... 각오하지 않았으면... 헉.... 애초에 안왔어."
눈가를 간지럽히는 것은 눈물인가, 빗물인가.
"내가.. 뭘 배울지... 내가 뭘 하고... 어디에 갈지... 그것은. 내가, 내가 정해."
기껏 잡은 거친 손이 아니다. 기껏 풀어진 재갈이, 쇠사슬이, 철장이 아니다. 카사 앞에는 길이 하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갈때부터.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게 아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난. 많이 아플꺼야. 어디인지는.. 상관없어. 내가. 세상에. 나오기로 결정한 이상... 아니, 언어를, 그러니까. 배운 이상... 청월이든, 아프란시아든, 어디든 나는 아플꺼야. 결함은 애초에 내게 있으니까...."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며 다시 숨을 고른다. 폐는 괜찮은 거 같다. 슬며시 눈을 뜬다.
"그래도... 다시 일어설꺼야... 몇번이든... 계속, 계속."
에릭 하르트만. 그의 이름을 부른다. 가만히 젖은 땅에 누워 비를 맞고 있는 그 둘은 워낙 우스운 꼴 일테다.
고데기란 건 결국 고르는 사람 취향이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판고데기는 제 스타일이 아닌지라, 고르시는 대로 적당히 어떤 물건인지 살피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 제품이라면 적당해서 쓰기 편하지요. 적당하다고 해야할까요, 가격이 너무 싸서 저는 별로이긴 하지만 사람마다 지갑 사정이 다르니 어쩔 수가 없겠지요? 열조절에 조금 많이 신경써야 하는 제품이긴 한데 그건 다림양께서 어떻게 잘 신경을 써주시리라 생각했답니다. 이쯤에서 저도 하나쯤 골라둬야겠다 싶어 자그마한 판고데기 상자를 들었습니다. 조금 많이 앙증맞아보이는 체리색 판고데기였지요. 한 손바닥을 겨우 넘는 길이였을까요?지나치게 장난감같은 물건은 솔직히 별로이지만... 앞머리를 피는 정도의 용도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랍니다.
“후후🎵 원래는 화장품만 보려고 했는데 말이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사와요? “
정말로, 그냥 소개만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제가 제품을 사게 될 줄이야! 평범하게 로드샵 제품을 테스트하는 느낌으로 쓰게 될 것 같긴한데 이렇게 정말 사게 될 줄은 몰랐답니다. 비치된 장바구니에 제품을 집어넣어 들고는 종종걸음으로 다림양께 돌아와 조심스레 여쭈려 하였습니다.
“저어🎵 다림양, 잠시 계산대에 다녀와도 괜찮으련지요~? 아무래도 저,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게 된 거 같아서🎵 “
만약에 다림양께서 괜찮다고 하셨다면 저는 정말 빠른 속도로 호다닥 계산대로 가 이것저것 계산하고 돌아왔겠지요? 고데기만 담겨왔을 봉투에는 뭔가 초콜릿 같은 것들이 여러개 들어서 돌아왔을테고요. 아마 계산대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눈에 띄는 대로 또 집어왔을 가능성이 크답니다. 에미리는 이런 달콤한 다과를 그냥 보고 갈 위인은 아닌지라 바로 집어들었을 테지요. 이런 로드샵 같은 데서나 종종 볼수있는 해외 초콜릿을요. 아아, 초콜릿을 제가 두고갈 리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