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상냥한 미소에 지훈은 그와 거리를 다시 벌리며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싶기도 했고, 애당초 가까이서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살짝 물러서 그의 전체적인 표정을 보기로 한 것이다. 뭐, 그래봤자 상냥한 미소 외에는 더 보이는 건 없었지만.
" 그건 확실히 큰일이네... "
지훈은 나이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설 안쪽으로 그에 의해 이끌려 들어갔을까.
" ...엄청나게 으스스한 분위기일지도. "
생각보다 더 퀄리티가 높았기에, 지훈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무서운 것에 약하지는 않지만 이정도까지 퀄리티가 높으면 괜시리 긴장하는 것이 당연했을까.
[ 잘 지내 ] [ 긴 했죠 ] [ 조금 많은 일이 있긴 했는데... ] [ 어찌됐건 좋은 방향으로 끝났어요! ]
보인다. 문자 너머의 감정이. 분명 이거 대판 싸웠다. 안계셔서에서 뜸들이는 것 하며, 망설이는 문자간의 전송간격이 말해준다. 이럴땐 내가 가서 직접 이야기 하는 편이 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비대면과 대면의 차이라는건 생각보다 그 간극이 큰 편이니까. 나는 겉옷으로 가벼운 아이보리색 후드집업에 반바지 티셔츠만 챙겨입고, 우선 기숙사방 밖으로 나왔다.
[ 그 혹시 ] [ 실례가 안된다면 ] [ 어떤 분이랑 싸우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자판기에 들러 음료를 뽑는다. 내가 마실 아메리카노 페트 한 병과, 무난한 오렌지주스 한병. 이정도면 최대한 괜찮은 픽인 것 같다.
하루는 복잡하긴 했지만 잘 해결되었다는 지아의 메세지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 축하해야할 일이니까. 하루는 솔직하게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낸다. 자신은 어떻지. 카사는 그 이후로 정말 돌아오지 않았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 ... 지아양은 혹시 절 보고 계신 건 아닌가요? ] [조금 놀랐어요. ] [ 지아양이 아는 사람일지는 모르겠지만, 카사라는 아이랑 좀 다툼이 있었어요. ] [ 말해봐야 제 잘못이 크지만요. ]
하루는 한숨을 내쉰다. 이래저래 복잡한 일이었다. 애초에 지아가 카사를 알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줄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지아가 콕 찝은 것이 하루에게는 조금 놀라움으로 다가왔기에, 고개를 두리번거려 방을 살핀 것은 그녀의 심정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진지하게 답변하던 나는, 카사라는 이야기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 카사가 싸웠다고? 어쩌다가? 무수히 많은 의문과 의문과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나는 어쩌다가 그 둘이 싸우게 되었는지 정말 도무지 감이 안 잡혀서, 우선 만나서 듣기로 하고 가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합의를 봤다.
[ 카사...어... ] [ 일단 아는사람이네요. ] [ 만나서 이야기해요, 어느 기숙사 몇호이신가요? ]
갸웃. 하고 다시 고개를 흔든다. 볼을 잡힌다는 착각 후, 잠시 두 눈을 마주봤을 뿐인 일. 무언가를 알아내기엔 너무 짧고 얕은 일이 아니었을까. 거리를 벌리면서 미소를 만드려는 손가락이 떨어진 걸로 나이젤은 더 신경쓰지 않았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로밖엔 안 보였으니. 이후로는 시설 안쪽의 이야기.
"그러게요. 이러다가 액자에서 뭔가 튀어나"
왔 다 아 아 ! ! 강렬한 빡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내려온 액자를 나이젤이 후려팼다. 평범한 귀신의 집처럼 분장한 사람이 아닌 만들어진 뭔가가 튀어나왔던가? 그래도 놀란 즉시 때려서 오히려 놀란 충격은 적었다.
"이거 튼튼하네요."
미소 깨진 나이젤이 천장 타일 틈으로 다시 접혀 들어가는 액자를 보면서 작게 말했다. 안 놀랐냐고요? 속으로 놀랐습니다. 액자야 미안해...
다음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1 아직 한 발 남았다. 천장 액자 리필! 2 실내인데 왠 바람 한 줄기가 오싹하게...? 3 갑자기 와장창 소리와 함께 깨지는 창문 4 바닥에 있던 카펫이 갑자기 발목을 휘감는다 5 벽에 걸린 액자에서 웃음소리가...? 6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복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0 복도의 촛불이 꺼지며 한 줄기 연기만 남긴다 .dice 0 6. = 5
일단 취향을 몰라서 제일 무난한 오렌지주스를 챙겨가긴 했지만, 커피도 용량이 큰걸로 사가는중이어서 아마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성학교...어, 바로 두층 위잖아?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조금 빠르게 몸을 움직여 두 층을 잽싸게 올라간다. 일단...대체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빨리 알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기숙사 방을 찾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앙계단을 기준으로 모서리를 꺾어들어가면 바로 그 방이니까. 하루양의 기숙사 앞에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해 본다.
노크를 한 지아의 앞에 있던 문이 열린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잠옷으로 입는 듯한 새하얀 원피스를 걸친 하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체, 지아를 맞이했다. 손님을 오랫동안 문 앞에 서있게 할 수 없었으니 가볍게 한손을 뻗어 방 안을 가리킨다.
" 자, 들어오세요. 별건 없지만... 제 방에 오신 걸 환영할게요. "
조곤조곤한 말투와, 부드러운 미소. 지난번 임무에 들어가기 전에, 상냥하게 말을 걸었던 모습 그대로 지아의 앞에 서있었을 것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새하얗고 가느다란, 보호를 해줘야 할 것 같은 팔과 다리가 가려지지 않은 원피스 차림이라는 것만이 다를 것이다. 하루의 방은 딱히 가구가 많지 않아, 수수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 의자에 앉아계시면 금방 쿠키라도 꺼내올게요. "
지아가 방에 들어왔다면, 하루는 문을 닫고 서둘러 쿠키상자가 있는 서랍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