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은 당연하겠지만 카사의 몸에 비해 한없이 가벼웠다. 분명 품에 안기게 된 것도, 그 후에 카사의 몸에 휩쓸려 자신이 바닥에 꼼짝도 못 하게 고정되어버린 것도, 카사의 자비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뭐 어찌 되었든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몸을 부딪친 것이다. 카사라는 거대한 늑대를 앞에 두고도 몸을 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 위태로워 보여서 저는 도저히 혼자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마주했을 때도 그렇고, 카사와 시간을 보낼 때도, 같이 파자마 파티를 할 때도.. 그리고 무서운 무협세계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요. "
하루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정말로, 확실하게 어떤 단어로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하루는 자신의 머리를 몇번이고 되짚어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카사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서툰 이 아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이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 ...사실, 지난번 싸움에서 파티를 위해서라면 저는 카사를 내버려두고 피하는 것이 맞았겠죠. 카사의 말처럼 '평소의 이하루'였다면 다수를 위해서 카사를 눕혀둔 체로 몸을 던져 피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카사가 뒤에 누워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몸이 멈췄어요.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면 안된다고 누군가가 외치는 것만 같았어요. "
차가운 바닥에 등을 맞댄 체로 카사의 날카로운 이가 드러난 것을 바라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다. 평상시의, 평소의 그녀였다면 다수를 생각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카사의 존재로 그녀의 행동은 멈출 수 밖에 없었고, 그녀를 위해서 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 제 옆에 카사가 있다면 전... 아마도 다른 이들보다도 카사를 위해 움직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카사가 뒤에 누워있는 그 상황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쭉 말이에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어설프게 메스를 잡고 달려들었던거에요. 카사가 아니었으면 위험했을텐데도. "
하루는 간신히 손을 움직여 커다란 카사의 발을 매만져주며 속삭이듯 말하곤 눌린 몸이 아픈 듯 윽하는 소리를 흘렸다.
" 카사도 움직였잖아요. 자기가 검에 찔려가면서까지. 그거랑 같은거에요. 카사가 지키고 싶었던 것처럼, 저도 지키고 싶었어요. 약한 저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카사는 듣는다. 말재주는 썩 없는 카사지만, 듣는 것 만은 잘 한다. 그래서 카사는 듣는다. 깊이 깊이 듣는다.
...
".......하...."
짐승의 길다랗게 찢어진 입이, 더욱 더 길게 늘여졌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소녀를 짓밟아 갑자기 소리내어 웃는 어두운 색의 짐승은 소름이 돋는 모양이라, 마치 동화속 나오는 크고 나쁜 늑대와 같았다. 참으로 이상했다. 내 기분은 하나도 좋지 않는 데, 어째서 나는 웃고 있을까?
아, 그래. 이 상황이 워낙 웃겨서 그런 것이지. 재치있는 농담처럼. 웃음을 멈추었다. 시선은 웃던 그대로 하늘에 고정해 있었다. 해가 기울어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어,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이다.
"하루, 내가 전에 얘기했던... 할멈, 기억나? 아브엘라야, 그 할멈의 이름."
그냥.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어.
카사는 무게를 앞으로 실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하루의 새하얀 피부가 긁혔을지도 모른다. 카사는 고개를 숙인다. 카사의 뜨거운 온기가 가까워졌다.
"하루, 잘 들어."
뜨거운 숨.
"난 불행하지 않아. 불쌍하지 않고, 위태롭지도 않아."
뜨거운 피가 쿵쾅, 쿵쾅, 요동치는 심장을 따라 흘른다. 열기가 온 몸에 퍼지고, 머리에 자리를 잡는다. 뜨겁고 차갑고 가슴이 뒤틀리는 이 감정의 이름은 무엇일까. 내게 알려줘.
새하얀 이가 모습을 찬란하게 뽑낸다. 나야, 내가 주인의 목숨을 살렸어, 라고 자랑하듯이. 새빨간 잇몸은 거기에 묻힌 수많은 양의 핏물을 연상시킨다. 목울대가 울린다. 위협과 불쾌함의 감정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 밀착하는 하루는, 그 진동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카사는 허탈했다. 하루는, 아마 가벼운 마음으로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담은 것이 아닐테다. 하루에게는 무거웠겠지. 가벼운 것은...
하루 그 자체였다.
윽, 하고 하루의 신음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카사. 순간적으로 딱딱히 굳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자신의 발을 만지는 하루를 지켜볼수 밖에 없다. 자신을 바라보는 하루를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카사는 발을 뗏다. 아니, 몸 전체를 떼어버린다. 아마 하루는 무게가 갑자기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감각에 기침을 할수도 있겠다. 튀어나가듯 뒤로 멀찍이 떨어져버린 카사, 한 동안 말없이 하루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내뱉지 않는 카사는, 의념기를 쓴 사람보다는, 정말로 야생에서의 짐승에 가까웠다.
"..........나는. 네 연민을 위해 살아온게 아니야. 그리고 너는."
너는. 너야 말로. 가디언이 될 것이라면.
"...그 하잖은 연민에 흔들려 움직이면 안돼."
그것은 경고였다. 하루를 지긋이 바라보다 느리게 뒤걸음 치는 거대한 짐승. 누가 보면 그 짐승이, 작은 소녀를 두려워한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한 동안은, 내 눈앞에서 나타나지 않는 게 좋을꺼야, 하루."
짐승은 뒤로 돌았다. 그리고 저 멀리, 기숙사에서 서서히, 유유하다고 느낄 발걸음으로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