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렸다. 두 세계가 이어졌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두 세계의 사람들은 손을 뻗었다. 작은 문을 두고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졌다. 문 밖에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색의 눈, 그와 비슷한 머리카락. 그러나 동양인의 외형을 하고 있는 사람.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한 사람.
잠시간 에미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하리가 그대로 굳었다. 분명 소리는 그대로 귓가에 똑똑히 틀어박혔으나,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몇 초뒤, 에미리의 말을 곱씹어보고 그제야 무슨 이야기였는지 이해한 하리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오늘 아침 나오기 전에 애써 꾹꾹 눌러 가라앉혀둔 잔머리 한 가닥도 디용 하고 비져나오고 말았다.
"...팔...다리를 잃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인력으로 어찌 붙이겠소?"
태연히 잔을 채우는 에미리를 그저 멍청히 보고만 있던 하리가 꿍얼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다 도로 불쑥 고개를 들어 에미리를 보는 얼굴이, 설마, 아니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라고 외치는 듯 간절해 보였다.
"아아, 그랬구려. 내 소저께서 마도일본 출신이라시기에, 혹시나 하였소. 이것의 이름이 막가롱이라 하였소? 맛은 봐야 알겠지만, 빛깔은 참 곱소이다. 이것도 그 영길리-번역기가 이상한 곳에서 일했다-라 하는 곳의 다과요?"
난백을 사용해 만드는 것이라면, 난황은 그대로 내버리는 것인가? 저런 규수들이 즐기는 다과답게 과연 사치스럽구나! 생각하며, 멋대로 해석해낸 하리는 에미리의 권유에 따라 마카롱을 집어들었다. 어떤 맛이 나도 놀라지 않으리라. 그리 굳게 다짐하며 한입 베어무니, 그 특유의 단맛과 필링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굳은 다짐이 무색히도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맛이 괜, 괜찮군..."
먹어본 단 것이래봐야 꿀이나 물엿, 정제되지 않아 영 맹맹한 사탕수수 즙 정도가 전부인 중세인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감미! 이리 달고 귀한 음식이라면 그 값 또한 비쌀텐테! 이거 이러다 내가 갚아야 할 몫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리는 저도 몰래 목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저 쪽에서는 싸우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붙이지 못하는 걸까요? 하지만 저도 그렇고 웬만한 치료능력자들은 의념을 이용해서 다 팔다리를 붙일 수 있을 텐데요! 설마 강호에는 팔다리를 붙이거나 원래 상태로 되돌려주는 무공같은게 없는 것일까요? 굉장히 당황하신 얼굴로 소저께서 저를 보고 계시기에, 순간 이게...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었나? 싶었습니다만 일단은 최대한 이해 되시기 쉽게 설명을 해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어라🎵 하리 소저, 팔다리 정도야 당연히 붙일 수 있는 것 아닌지요! 이 세계에서는 사람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팔다리를 붙일 수 있사옵니다. 이 소녀도 그 되돌릴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이고요...🎵 "
저쪽 세계 기준이라면 절대로 믿기지 않는 개념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지극히 일상이니까요. 부정해서 될 사실은 아닙니다.
"소저, 마카롱은 프랑스라고 하는 나라에서 시작된 다과이옵니다. 영국의 다과는 그게 아니라... 이 스콘이라는 다과이지요. "
3단 접시의 제일 아랫쪽에 자리잡은 잘 구워진 스콘을 가리켜보이며 저는 꽤 흥미로운 얼굴로 소저께서 마카롱을 드시는 걸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중원의 다과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다과이니 분명 놀라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소저께서 예상대로의 반응을 보여주시고 계셔서, 저는 조용히 눈꼬릴 휘며 차를 한모금 머금은 뒤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계산은 전부 이 소녀가 해드릴 것이니, 소저께서는 염려 마시고 부디 편히 다과를 즐겨주시지요....🎵 "
정말로, 뭐가 걱정이실 진 모르겠지만 가격에 대해선 염려 마셔도 괜찮습니다. 저 바깥에서 오신 분께 돌려받을 수 없는 값을 요구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으니까요! 제가 대접하는 자리이니 제가 내야 하는게 타당하지 않겠는지요?
하고 나이젤은 한입 물은 자기 찰떡아이스(절망편)를 가리켰다. 이 세계의 원주민도 피해갈 순 없었다...!
"근데 공자... 라니, 특이한 호칭이네요."
Q.나이젤은 무림인이 뭔지 모르나요? A.알긴 압니다.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뭐... 학원섬에 이상한 옷 입고 이상한 말투 쓰는 사람 있을 수도 있지... 다짜고짜 다른 세계 사람으로 오해하면... (다른 세계 사람 맞음) 아무튼 번역기가 있어서 공자가 대충 도련님 비슷한 존칭이란 걸 안 나이젤은 정정하려 했다. 그런 건 아니니까요.
에미리의 이야기를 들은 하리가 눈이 튀어나올 듯 깜짝 놀랐다. 어찌 사람의 눈이 저만큼 크게 떠질 수 있는가 싶도록 휘둥그레 커지고, 머리카락 또한 이제는 무슨 직선으로 쭈뼛 서는 것이었다.
"사... 사술... 아, 아니! 그, 그게 어찌 가능하단 말이오? 내공을 일으켜 기운을 돌리면 무병장수하고 회복도 빨라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마는... 참말로 사람의 힘으로 잘린 팔다리를 붙일 수 있단 말이오??!!!"
경악한 하리가 새삼스런 눈길로 에미리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 그럼 소저께서는 화타 같은 명의셨구려. 그저 어디 명가의 자손이시겠거니, 하였거늘, 이럴 수가..."
저리 간단히 말하지만 이곳에서도 팔다리를 붙이는 일은 큰일일 것이며, 저 소저께서는 아무래도 그 큰 일을 할 수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모양이니 그래서 뭇 인들이 그리 머리를 조아렸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그럼 사양 않고..."
화타 같은 명의라면야 분명 황금쯤이야 갈퀴로 긁어모으리라! 하리는 신난 표정으로 영국에서 만들었다는 스콘이라는 것을 주워들었다. 이것은 또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뜨거운 탓에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그 향만은 그윽하니 아름다웠던 얼그레이를 떠올리며 스콘을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음, 음......."
베어문 자국이 그대로 남은 스콘을 슬그머니 내려놓은 하리는 한참을 우물거리다 찻물을 삼켜, 겨우 입안 가득한 밀가루뭉치를 내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