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웅이 되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박수와 환호 소리, 나에 대한 칭찬을 늘여놓는 매스컴, 모두가 영웅이라 추켜세우는 박수. 나를 사랑하는 사람까지. 분명 행복해야 마땅할 삶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영웅으로의 삶보다 과거의 그 삶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소시민다운 생각이었다. 소년은 나를 보며 말헀다. 이제 행복하지 않아? 모든 것을 다 가졌잖아. 나는 답했다. 모든 것을 가지긴 했지. 나 스스로를 빼고 말야. 소년은 그때서야 꺄르르 웃으며 날 바라봤다. 바-보. 그걸 이제 아셨어?
"저는 그런 몸놀림은 못할 것 같아서요." "음.. 성학교... 쪽이려나요." 잘하는 건 잘한다고 하는 게 맞으니까요. 라고 말하는 다림은 그거 하다가 떨어져본 적 있나요? 라는 물음 대신. 교복을 잘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성학교인가. 라고 추측을 해봅니다.
"경비로봇같은 게 있다고 주워들은 느낌이니까요..?" 아니면 스크린을 써서 침입과 탈주를 막는다거나요? 라는 말을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미어캣과 너구리. 너무 귀엽죠. 귀여운 걸 모를 정도로 삭막하게 산 건 아닙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은근히 그런 정도의 지식도 있고. 영성도 S고..
"그런 걸지도 몰라요." 운이 좋으신 모양인가봐요. 라고 말하는 다림은 평온하고도 여상스러웠지만. 다림이야말로 운 좋음으로는 꽤 잘나가지요?
콩. 이마가 부딪이자 반사적으로 눈을 꾸욱, 깜박인다. 왔습니다, 하는 결연한 표정으로 육포를 넙죽, 받아먹는 카사. 한입에 쑤셔넣느라 볼이 빵빵해진다. 우물우물, 열심히 씹어먹는라 실새없이 움직이는 그 볼. 양갈래가 되어버린 머리가 누울때 이상한 감각을 만들어내지만, 매우 착하고 매우 참을성있는 카사는 참을수 있었다. 이 온기를 위해서라면 뭐든 참을 수 있다.
그런 온기를 태어났을 때부터 찾게 되는 생명은 하루의 품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간다. 콩, 콩, 콩. 잠옷 너머의 심장소리를 기민한 청각이 잡아낸다. 같은 세상에서 같이 살아있다는 기분 좋은 기적의 증명.
"푸헷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코가 간지럽힌 카사! 기습공격 당했다! 답 대신에 그만 재채기를 해버린 카사. 하루의 원피스의 청결이 끝장 나지 않았기를 바란다. 킁, 하고 고개를 푸르르, 흔들게 된다.
"싫을리가 없잖아. 파자마 파티는 대성공이야."
끄덕, 끄덕! 당당하게 고개를 업 앤 다운! 혼자서 자는 건 너무 춥고 외로워, 라며 짧게 불평을 토로하며, 자기 딱 알맞게 몸을 웅크린다. 이미 기분좋은 온기에 눈이 점점 느리게 깜박여지는게 훤히 보인다.
하루는 끄덕끄덕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사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카사가 즐거워 한다, 카사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자신은 볼 수 있다. 그러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신께서는 분명 이런 작은 행복도 소중히 여기라 말하시겠지.
" 혼자서 자는건 춥고 외롭죠. 응, 카사의 말 이해할 수 있어요. "
몸을 웅크리는 카사를 다정하게 감싸안은 하루가 살며시 카사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으며 소곤소곤 말을 이어간다. 아무래도 방의 불을 꺼야할 것 같긴 했지만, 그것은 카사를 재우고 잠시 다녀오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토닥이던 하루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점점 눈이 느릿하게 깜빡여지는 카사에게 장난스런 속삭임을 남긴다.
" 그러면 아~까 말했던 사랑해요, 한마디면 매일 외롭지 않게 잘 수 있을텐데요, 카사. 후훗. "
하루는 그렇게 속삭이곤 짐짓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눈을 꼬옥 감은 체 자는 척을 한다. 카사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 다분한 모습이었다.
몸을 돌돌 말은 카사. 공벌레 뺨치게 몸을 둥글게 말아, 하루는 아마 조금 크고 따뜻한 공을 안고있는 기분일테다.
꾸벅꾸벅, 슬슬 졸고 있다가 하루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하루우..!!"
화악, '파바팍!!' 냥냥펀치(기술이 아니고 비유적으로! 기술하면 하루가 다친다!)를 날리듯 말듯 주먹으로 말은 손을 높이 높이 들어올리지만...!!
"에휴우우우......"
풍선 바람이 다 날아가듯, 길고 긴 한숨과 함께 손을 내려놓고 다시 철푸적, 엎어진다. 에휴, 에휴! 몇번이나 한숨 두숨 세숨을 쉬다가도, 슬슬 숨이 부족해 그만 둔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새근새근 자는(?) 모습인 하루를 빤히 바라본다. 감은 눈꺼풀 위에 내리앉은 새하얀 속눈썹이 아름답게 뻗어나간다. 비누향에 감싸져, 이렇게 바라보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가 절로 생각난다. 깊고 깊은 가시덤불속, 같이 누운 침대를 따뜻하게 데우는 공주님.
하루도 잘못 아는 것이 있구나! 왠지 모르게 드는 우월감에 입가가 씰룩인다.
"정말 그랬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중얼거리듯이 대답을 내뱉고 다시 몸을 동그랗게 말은 카사. 이번에는 팔 한짝을 쭈욱, 내밀어, 하루의 등을 감싸안는다. 떼잉, 이렇게 빨리 자버리면 위험해서 어째!! 자는 동안 내가 지켜봐줄테니까 괜찮지만!
......이라는 생각 무색하게, 눈을 한 번 깜박인 카사는 끊기듯이 의식을 잃었다. 코오오... 다시 카사가 그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