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분법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손이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이 소년의 발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나는, 영웅이라는 꿈을 꾸었을 뿐이다. 분명 그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을 받는 그런 영웅이 말이다. 소년은 키득거리며 날 바라봤다. 마치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저런 눈이라도 괜찮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뻗었다. 좋아. 내 소원을 이루어다오.
장례 전 시체화장을 연상했지만. 그걸 말로 내뱉지는 않는 정도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메이크업.
"저도 제가 낯설 만큼이네요." 꽃 향기 속에 살짝 섞인 달콤한 망고향이나. 쌍꺼풀이 살짝 둥글어진 것이나.. 머리카락을 살짝 라인에 걸치게 만드는 것이라던가.. 감탄을 하면서 거울을 살짝 톡 건드려보려 합니다.
"그러게요. 있는 듯 없는 듯 한 게 사람의 지각 끝자락을 자극하는 거라고 하던 것 같아요." 메이크업의 효과. 대단하다! 이 얼굴에는 뭘 입어도 어울릴 것 같은데. 다크 아카데미아 풍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청순의 대명사 흰 원피스도 좋을 것 같고. 시스루 블라우스에 스키니진이라던가.. 블랙한 것도 좋고.. 품이 낙낙하고 길어서 두꺼운 허리벨트로 원피스처럼 보이는 옷도.. 인형놀이 참 좋죠
"이런 모습 같이 남길래요?" 사진이라던가. 찍어두는 거죠. 라는 말을 합니다. 칩에 사진기도 가능한가.
거대한 콜로세움, 게이트 내부의 풍경을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수많은 이종족들이 환성을 내지르고, 광기에 휩쓸린 채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싸우고, 피를 흘리며, 마침내 한 쪽이 쓰러지자 관객의 한 켠에서 큰 환호소리가 울려옵니다.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은 마침내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훈의 오니잔슈가 키잉- 하고 짧은 울음소리를 내고...
쿵!
하늘에서 한 개의 인영이 떨어집니다. 전신에는 검은 갑주를 입고, 두 손에는 가시 달린 사슬을 붙잡고 있는 남성. 남성의 주위에는 다섯 개의 사슬이 둥둥 떠 있습니다.
-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관중들은 커다란 함성으로 대답합니다.
- 이번 도전자들의 정체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강자임은 틀림 없을 것입니다!
지훈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웅웅, 하고 울기 시작하는 오니잔슈가 그 불안감을 더더욱 증폭시킵니다.
- 그리고 그에 맞서느으으은!! 파베안 콜로세움의 챔피언!
쿵, 사슬들이 땅을 한 번 내려칩니다. 땅은 마치 연약한 살가죽을 채찍으로 내려친 것 처럼, 사정 없이 갈라집니다.
- 고드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대결형 게이트가 지훈의 오니잔슈와 반응합니다! 지훈의 파티는 일정 조건을 무시하고, 바로 콜로세움의 히든 보스, 챔피언 고드와 만납니다!
그렇구나, 대부분은 겪는 문제구나, 의념을 각성하고, 가디언 아카데미에 들어오고서야,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비로소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었구나.
은후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배에게 그걸 어떻게 극복했나요?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같은 가디언이라고 해도, 스테이더스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 미세한 차이에 따라 극복하는 방법도 다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가디언이 된 이후로 달라진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태창에서 유난히 높았던것은 신속. 다른 사람보다 민첩하고, 신체가 유연해지고,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동작을 취할때는 유연함을 활용해서, 남들보다 빠른 스피드는,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흘러나오는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서 움직여야 하는 춤에는 맞지 않을때가 많다. 때로는 속도를 줄여서, 박자가 비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턴과 같이 현란한 움직임이 필요할때는, 스피드를 활용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속을 유념하면서 춤을 춰본다...!
>>237 지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본가에 있는 방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호텔방입니다!
>>238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유난히 날씨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갓 말린 깨끗한 파란색을 하고 있고 바람을 타고 젖은 나무 냄새가 풍기는 날. 기분은 유난히 들뜨고, 무엇을 보더라도 사랑스러운 날이요. 두 사람은 그런 날 처음 만났습니다. 아직 풋풋한 티를 내고 있는, 모든 게 낮설기만 한 하나미치야와, 아직 꿈을 가득 머금고 영웅을 꿈꾸던 에릭.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삐그덕거리곤 했습니다. 랜스인 하나미치야와, 워리어인 에릭. 그런 둘 사이에서 맞지도 않는 서포터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만석. 세 사람은 뻘밭에서 구르고, 고생한 끝에 게이트를 닫고 게이트 밖에 나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꼴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 날에도 날씨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늘에는 유난히 맑은 푸른 색 속에 뿌연 하얀색 물감을 뿌려 구름을 만들었고, 햇볕은 부드러웠으며 세 사람은 웃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게 아득할 만큼, 그렇지만 그리울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에 졸고 있던 에릭에게 자신의 담요를 덮어주고 귀를 파닥거리며 공부를 하던 하나미치야. 두 사람을 위해 커피를 사준 만석. 그리고 깨어나 머쓱한 표정으로 공부를 이어가던 에릭 다리를 다친 하나미치야를 찾아가 왜 칠칠맡게 다쳤냐며 사온 과일을 들고 피식 웃는 에릭. 왜 치료를 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하나미치야. 두 사람은 그렇게 병실 한 켠에 마주앉아 게임을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이 되어 헤어졌습니다. 권역 쟁탈전에 당당하게 뛰어갔다가 한참을 맞고 나서 보건실에 요양된 에릭에게 이번에는 빼꼼 문을 열고 하나미치야가 찾아옵니다. 그게 뭐냐고 한참이나 웃던 하나미치야는 사과를 깎아줍니다. 서툰 손길에, 제대로 남는 것도 없었던 사과였지만 작은 조각 하나를 먹으며 에릭은 피식 웃습니다. 어때? 하고 물어보는 하나미치야에게 에릭은 말해줍니다.
" 맛있네. 사과가 참 달아. "
아마, 그때부터였을까요? 에릭이 하나미치야에 대한 호감을 가진 것은 말이죠. 그 뒤로도 둘은 많은 일을 겪어왔습니다. 기말고사를 겪고, 2학년이 되고, 자신의 실력에 회의감을 느낀 에릭이 포지션을 변경하고.. 적응을 위해 뒤져지고, 한참 앞서가기 시작한 하나미치야와 만석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는 여기니까. 앞서가는 친구들을 질투한 것도 이때부터였을겁니다.
에릭은 그때부터 천천히 꼬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석이 조심스럽게 하나미치야에 대해 물었을 때, 에릭은 말했습니다. 좋은 아이라고요. 하지만, 그 뒤에 호감은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만석은 좋은 친구였으니까요. 말했다면 아마 만석은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노력했을테니까요. 그런 친구의 호감을 묻어두고 에릭은 다시금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하나미치야에게 다가가고, 붉은 피의 여왕을 만나며, 검성에게 재능을 인정받고, 유찬영을 만나고, 게이트를 다녀오며 에릭은 변했습니다.
하나미치야는 에릭을 바라봅니다. 붉게 물든 꼬마 여우는 천천히 소년을 바라봅니다. 천천히, 여우의 고개가 내려가는 동안 에릭은 하나미치야에게 다가갑니다.
뚝, 뚝, 눈물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미치야도 에릭을 싫어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편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공간에 에릭을 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미치야는 그렇기에 서운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새부턴가 자신을 질투하기 시작한 에릭이, 자신을 살짝 무시하기 시작했던 에릭을. 어쩌면, 하나미치야는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서운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시금 질문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며, 쉽게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응당 시련이 따라야만 할 것이며, 사랑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에릭 하르트만. 당신은 사랑을 위해 무엇이라도 감수할 수 있습니까? 호감도 락이 발동됩니다. 이 이하로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한 이 이상 증가하지 않습니다.
인연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 증명 - 에릭 하르트만 ◀ [ 이제 사랑을 속삭이기까지 단 한 걸음이 남았습니다. 외로웠던 여우에게 사랑을 속삭일 기회는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에릭 하르트만.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서, 기꺼이 위협을 감수할 수 있습니까? ] ▶ NPC 강 만석과의 대결에서 '완전 승리' 0/1 ▶ 보상 : NPC '하나미치야 이카나'와의 호감도 락 해제.
생각해보면 많은 사건이 지나쳐 흘러갔다. 1학년들이던 우리는 언제나 함께 했고, 즐거움일도 슬픈일도 전부 함께 했다. 중간고사 기간에 같이 공부했던 것, 다치면 병문안을 갔던 일도, 게이트의 뻘밭에서 고생했던 것, 영웅절 동안 셋이서 함께 돌아다녔던 것 전부.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한계를 느낀 나는 포지션을 바꿨고, 두 사람보다 뒤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질투가 났다, 나보다 앞에 있는 친구들을 향한 무의미한 질투심이 나를 휘감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세 사람은 흩어졌고.
만석이는 학생회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을 통제하기 위해. 우리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하나미치야 뿐이었다.
하나미치야는 변하지 않았다. 변하고 밀어내고 주저한 것은 온전히 나의 잘 못 이었다.
" ..... "
에릭은 눈 앞의 여우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지금 증명하지 않으면 우리의 길은 더 멀어질 것 이다.
눈을 감았다. 같이 웃고, 같이 지내던 세 사람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시절로는 더이상 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끝매듭 만은 직접 해야했다.
소년은 소녀의 연분홍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고갤 끄덕였다.
" ...알겠어, 이카나. "
이전과 다른, 확신과 의지를 품고 에릭은 증명하겠다 맹세했다. 설령 상대가 자신의 친구라 하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