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강찬혁의 얼굴에 계속해서 주먹이 꽂혔다.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동시에 돌아 통각신경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얼얼하기만 했다. 계속 맞는다. 계속 두들겨맞는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명치에도 주먹이 꽂히고, 얼굴에도 주먹이 꽂히고, 양 뺨에 주먹이 들어갈 때마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정확히 코를 가격한 공격에 피가 흘러나온다. 강찬혁은 그 와중에, 저 사람에게 체력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보았다. 막는 걸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빠른 공격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ㅡ 빠른 체력 소모. 어쩌면 간단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강찬혁은 다시 팔을 교차하고, 어떻게든 상대방의 공격이 치명적인 부분에 꽂히는 것을 막으면서 상대방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최후의 1초까지!>
강찬혁의 의념기가 발동했다. 느낄 수 있었다. 데미지가 들어오고는 있었지만, 아까 전의 매서운 불주먹에 비하면 마치 수수깡으로 비비는 수준으로 견디기 편했다. 이 정도라면, 의념기가 끝났을 때쯤, 상대방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방전되었으리라.
분명히 속도는 내가 더 우위고 힘은 서로가 비슷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더 많은 공격을 쏟아붓고 있는 데도 녀석은 말도 안되는 체력으로 버티고 있다. 과장 보태서 녀석의 손에 야구 방망이가 아니라 방패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선생님 말이 맞았어. 난 너무나 약해...
"빌어먹을!"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 이젠 상대는 전혀 타격을 입는 것같지도 않다.. 아니, 그냥 맞아주고 있는 느낌이야.
"..."
계속해서 쉴새 없이 몰아붙힌다. 녀석이 마왕 서유하나 홍왕 유찬성이 아닌 이상 티끌만큼이라도 고통을 느끼고 체력이 소모되고 있을꺼야. 조금만 쉬어도 바로 반격이 들어온다. 쉬지마...계속 주먹을 날리는 거야...거리를 벌어서도 주먹의 힘을 빼서도 안 돼. 최선을 다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만 생각해.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농담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 사이 희미한 진실들이 콕콕 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려운 말이라면 못 알아듣는다는 말에 저도 어려운 말은 잘 못 알아듣지만요.. 세상엔 천외천이 너무 많다니까요.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배부르고 나른한 표정을 짓습니다. 허리띠 풀렀어야 했나. 라고 생각하지만 별 문제는 없겠지.
"그럼 나가도록 하죠~" 발랄한 말투로 말하는 얼굴은 방금 전까지 배불렀다는 나른한 표정은 씻은 듯 사라져있었을 겁니다.
"오늘 조금 즐거웠어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만이겠지만요? 라고 말하며 헤어질 시간이라고 말을 이어갑니다. 하늘하늘거리는 듯 작별인사를 고하고 멀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인상만큼 차가워 보이진 않으니까, 정말 정색한 표정을 보게 된다면 자신이 그만큼 잘못을 저지른 거겠지.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다행이라는 말엔 "심하게 꼬여있던 건 아니지만요."라 대답을 하면서도 고맙다는 듯 웃었다.
"선물인가요, 누가 탐내서 빼앗아서 부숴버린다면 싫겠네요."
선물해야 한다면 다른 인형을 만들어서 그 안에 숨기는 방식 같은 걸 하지 않을까. 예쁜 외견은 쓸모없어지긴 하겠지만. 아니면 그렇게 특출난 능력의 코스트가 아니니 '이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의 자식의 손에 들어가면 오히려 안전할지도? 그런 사람한테 나이젤이 인형을 선물할 수 있느냐 하면 아니지만... 어느새 잔소리의 위기를 넘긴 걸 모르는 채로 나이젤은 옷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뜻을 생각하면 웨딩드레스 같은 것도 좋을지도. 하지만 그런 느낌을 구현할 천이 없네요? 어쩔 수 없지, 한 번 더 다녀오는 수밖에. ...그냥 자신에게 과소비를 납득하게 하기 위한 합당한 명분이 필요할 뿐이었던 건?
"으음..."
웃기도 하네요. 하긴, 사람이 언제나 무표정으로 살진 않을 테니까. 즐거운 일이 있으면 웃을 수도 있고. ...즐거웠을까요?
마지막 한방, 의념기의 힘이 꺼지고 나서 맞은 마지막 한 방이 더럽게 아팠다. 강찬혁은 비틀거리다가, 야구방망이를 지팡이 삼아서 겨우 균형을 잡았다. 상대방은 그 마지막 한방으로 쓰러졌고, 강찬혁은 타격이 크긴 했지만 아직도 서 있었다. 강찬혁은 숨을 몰아쉬면서 상대방을 보다가, 야구방망이를 끌어서, 상대방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아주 가볍게 세번 툭툭 쳤다. 그리고 나서 옆에 주저앉았다.
카사의 두 눈위에 새하얀 손수건이 얹어 진다. 자애로운(?) 선배의 얼굴과 흰 손수건이 얼굴에 뉘여진 소녀. 마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같은 성스러움이였으며, 영안실의 시체 만큼 고요함이다. 어느 쪽에 가기도 전에 치과 체험에다가 영안실 체험도 덤이라니, 오늘 카사는 매우 복을 받았다.
그 손수건 조차 두 눈두덩이, 그리고 코 부분이 촉촉하게 젖어들어가며 성스러움을 와장창 깨트렸다.
"스, 스, 스스로...요?"
흐어엉 사신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존댓말을 하는 카사, 울망울망한 눈으로 사신(?)을 바라보... 고 있을테다. 아마. 손수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삶을 향하는 해답을 찾으라는 사신이라니!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래, 원래 해답은 자기자신에 있었던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은 제 3자인 사신이 아닌 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래... 난.... 난 살고 싶어...!"
그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 삭막한 골목길에서 소년 만화다운 열정이 뿜어나온다. 덤으로 카사의 얼굴도 환하게 빛나는 듯 하다. 그 누구도 처음보는 정도의, 불타오르는 생명을 향한 갈망을 온전히 담긴 표정. 뛰어난 장인이 보았다면 필시 명작 위한 영감을 받을, 삶의 본질을 향한 뚜렷한 창문!
물론 이 모두 손수건 아래라 소용 없었다. 카사는 지 혼자서 빛나고 지 혼자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 모든 감동을 담아 힘차게 대답한다.
유감스러운 상태가 되어가는 손수건.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튼 나이젤은 손수건 밑에서 화사하게 빛나는 카사의 깨달음과 삶에 대한 열망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흥분하면 출혈이 세질 것 같은데 이럴거면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다니는 게 나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손수건 위로 무심코 손가락 세 개를 펼치고 있던 나이젤은 다섯이라는 대답에 스턴에 걸렸다.
"응?"
뭐... 뭐가 보이는 거지? 아니, 공포는 이르다. 젖은 손수건에 햇빛이 비쳐서 손가락의 실루엣이... 세 개일 텐데? 아무리 실루엣이어도 없던 손가락이 생기진 않을 텐데? 이 사람 역시 위험한 상태인 거 아닌가요? 로딩이 끝나고 나이젤은 카사의 손을 흔들었다.
"...자, 갑시다." "빨리 안 가면 죽을 수도 있어요?"
이 말은 살고 싶다고 강렬하게 주장하는 카사를 자극해 일으켜세운 다음 부축하든 알아서 걷게 하든 사람 있는 곳에 가서 도움을 받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주어가 없어서 저승길 같이 가자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 오해가 있다면 저승가기 vs 죽기라는 지옥의 이지선다로 들릴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