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강찬혁은 전투연구부장의 그 죽일듯한 표정을 기억했다. 전투연구부, 실전전투부 등에 대련제 예행연습을 위한 인력공출 공문이 발송되었고, 한참 전투연구에 열심이던 전투연구부장은 강찬혁처럼 자신의 성장루트를 똑바로 따라오지 못하는 떨거지를 그냥 뱉어내듯 이곳으로 던졌지. 강찬혁은 죽일 듯 싸우는 놈들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강찬혁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이거 곤란하네, 누구 하나는 잡아야 하는데. 다들 서로 어색한 와중에도 용기를 내어서 대련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레벨이 10? 딱 맞네. 나와. 빨리 싸우자.'
'아무나 나와. 그냥 난 맞고 끝나는 척 할거야.'
강찬혁도 언제고 여기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서, 근육질의 한 남자 뒤로 가서 어깨를 툭툭 치고 말했다.
강찬혁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비어있는 대련장을 가리켰다.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과 미처 닦이지 못하고 검게 물들어 배인 싸움의 흔적들이 이 위에 설 사람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강찬혁은 그 경고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저 사람은 레벨 5, 나는 레벨 7. 교사급도 아니고 그냥 선도부급에서 봐도 우스운 수준이다. 적당히 싸우다가 적당히 지건 이기건 하면 된다.
"안 한다면 안 하는 것일 뿐이죠." 달라질 건 없어요. 라고 생각하는 다림은 여러가지 표정 중 부드러운 것만 골라서 얼굴에 끼워넣으려 시도했다. 잘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글쎄요.. 어떤 것에서일까요?" 저 자신도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는 모르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얇은 선을 언제든 끊어버릴 준비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라는 말을 지훈의 질문에 약간 새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하려 하고는. 살이 다 발라진 듯하자, 이젠 필요없겠지. 라고 생각하는 듯. 위생장갑을 벗고는, 다시 장갑을 끼려고 그 쪽으로 손을 가져가려 합니다.
"아구탕인 거겠죠.. 좀 끓어오르고 파가 흐물해지면 될 것 같네요." 라는 말을 하며 눈을 내려깔고는 턱을 살짝 괴었다가 자세를 살짝 바꿉니다. 보글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들릴 즈음까지.
상대방은 워리어, 너클을 쓰는군. 너클이라, 사람이 도구를 안 쓰고 맨몸을 쓰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강찬혁보다 빠른 속도에 당황했다. 상대방은 강찬혁이 미처 몽둥이를 제대로 잡을 시간도 주지 않고 앞으로 바로 뛰어왔다.(강찬혁 속도 B 김철우 속도 A)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다.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수를 예측하고 막는 수밖에. 훨씬 더 빨라서 아예 예측할 시간도 없는 것보다야 나았다.
퍽!
야구 방망이의 양 끝을 잡고 밀어서 상대방의 공격을 밀쳐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몸을 슬쩍 돌려, 강찬혁이 자신을 밀치면서 생긴 반동을 이용해 빙글 돌았다. 그리고 한바퀴를 돈 상대는 바로 강찬혁의 머리 옆쪽에 망치처럼 발을 휘둘러 머리를 까버렸다. 골통이 흔들리는 느낌, 강찬혁은 비틀거리다가 자세를 고쳐잡고,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다시 거리를 좁혀온다. 그래, 그렇다 이거지. 속도가 빠르다는 건 좋은 거다. 특히 가디언처럼, 스탯 한 계단 차이가 알파벳이 바뀌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차이를 만드는 경우는 더더욱. B-A의 차이였기에 망정이지, B-S였다면 강찬혁은 일방적으로 맞는 꼴을 당했을 터다. 속도가 S라면 맞으며 버텨야겠지만 A였기에 그 정도는 아니라서, 구석으로 들어가서 눈 앞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을 연출하려 했지만,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큭!"
강찬혁은 상대방이 자신의 멱살을 잡자, 그 사람의 팔을 똑같이 잡았다. 그래, 날 들고 메다꽂으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강찬혁은 머리를 뒤로 젖혀서, 자신에게 내지르는 상대를 보고 일순 당황했다.
퍽!
하지만 상대방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강찬혁은 몸 튼튼한 거 하나로 먹고 사는 놈이었다는 것이고, 상대방보다는 어쨌든 튼튼하다는 거였다.
"그렇죠?" 거짓을 말한다 해도 정말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시선이 미묘한 것을 보고는 고개를 살짝 앞으로 숙입니다. 눈을 피한 것일까. 그러다가 표정을 처음 본다는 말에는 그래요? 라고 반문하듯 답하다가 처음 보는 표정이라니. 짖궂게 굴어서 당황시키고 싶어지는 기분이네요? 라는 말은 짖궂음 한가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쓰는 동안은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라는 말을 하지만, 진담보다는 농담에 가까운 것일까요? 영성 S지만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것일까요. 무엇인지는 답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듯 그려낸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파랑 마늘이 우러나는 게 이르냐 늦냐의 차이겠죠?" 뚜껑을 덮고 좀 기다리면 생각보다 빨리 될지도? 다 된다면 떠주려 할지도.
강찬혁은 양 팔을 X자로 교차해 상대방이 따발총처럼 쏟아붓는 주먹을 막아냈다. 속도가 빠른 대신 주먹 자체는, 냉정히 평가해보니 약했다. 하지만 그 약한 주먹이 초당 수십대의 속도로 쇄도하자 강찬혁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가면 상대방 주먹 뼈가 금이 가던지, 강찬혁 팔뼈가 부러지던지 둘 중 하나다. 강찬혁은 상대방의 동태를 살폈다. 가만 보니, 주먹이 이상한데로 꽂히거나, 빗맞아서 아프지도 않게 애매하게 때리는 등 문제가 많았다. 강찬혁은 이상해서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박치기의 충격이 컸는지 눈에 초점이 풀렸다. 아무래도 주도권을 넘기지 않으려고 일단 주먹을 쏟아붓는 느낌, 강찬혁은 지금이 기회라 생각했다. 상대방이 아직 눈 앞에서 판단을 못 할때. 이때 한방을 먹여야 한다. 상대방의 뼈를 취할 수 있다면, 살 쯤이야 얼마고 내줄 수 있다. 강찬혁은 일부러 가드를 내리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야악!"
야구방망이를 양손으로 소총처럼 잡고, 마치 개머리판으로 후려치듯 야구방망이의 자루를 위로 휘둘러서 상대방에게 어퍼컷을 날린다.
반은 진담이고 반은 농담이었다. 거짓말 카운트는 현재 2.25회. 애매한 숫자다. 네 마음대로, 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말 안하고 이미 준비하고 있던 일이지만 마주치고 나서는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덤덤해 보이는 얼굴을 나이젤이 얕은 미소로 마주했다. (지훈이의 놀람을 알아채기엔 짬이 부족하다!)
"그런 의미랍니다."
더 이상 '레드 코스트'가 아닌 장식품으로 쓰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딱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인형은 잘 어울리게 장식해두지 않으면 낡고 더러운 느낌을 줄 것 같다. 코디네이트가 필요해-라는 걸까.
"장식해둔다면 예쁜 게 좋지 않나요. 이것저것 만드는 건 저도 좋아하고요."
한숨이 과소비 탓인지는 생각하지 못하고(아무튼 자기 기준으론 아슬아슬하게 과소비가 아니다) '수고스러운 일'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던 나이젤은 대충 '저도 재밌으니까 괜찮아요'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짓궂게 굴어서 당황시키고 싶다는 말에 미약하지만 입을 내밀며 작게 투덜거리려고 했을까. 그렇게 미리 말해줬어도, 짓궂게 군다면 또 당황했겠지만. 그리고 놀린다고 해도 쉽게 토라지진 않는 성격이었지만 저런 말을 내뱉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이미 토라져있던 걸지도 모른다.
" 그런가. 그렇다면 그런 장갑을, 지금 벗은 이유는? "
"설마 아구수육을 먹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라며 반쯤 농담식으로 덧붙였다. 다림이 농담했으니, 이쪽에서도 받아친 것이었을까. 쉽게 답을 내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나름의 투덜거림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아, 고마워. "
자신에게 아구찜을 떠주면 뭔가 동생이 된 기분이네... 라고 생각하며 조금 생소한 듯 다림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입 떠먹고선 맛있다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지.
"흐응..." 이미 조금 토라진 것 같은 듯함을 알아차린 것인지 농담이에요. 짖궂은 것도 적당히 해야죠. 라고 한 발짝 물러서려 합니다. 조금은 토라진 것을 달래주지는 않네요. 그렇지만 그걸 달래주는 법을 잘 몰라서일까..?
"아구수육을 먹으려 뺀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라는 말을 하며 답을 내어줄 듯 말듯 하네요. 차라리 거짓말로라도 시원하게 내뱉는다면 좋을 것 같다는 다림주의 속은 으아아악거리는 거지만요. 거짓말로 말해볼까요? 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방글방글 웃는 표정이란. 그걸 말한다면 어떤 거짓말로 놀릴까. 라고 막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뭘요." 가볍게 대꾸하며 자신의 그릇에도 퍼담고는 한 숟가락 떠먹습니다. 확실히 맛집일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해치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