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어디까지나 철혈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만 보고 그린 거예요. 제가 김치와 돼지고기를 준다고 한들, 그걸로 김치볶음을 만들거나 김치찌개를 끓이거나 하는 건, 선배의 몫. 아시겠죠?"
감탄사를 듣는 게 익숙치 않아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다시 미소를 짓는다. 음식에 비유를 하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이제.. 밥 먹으러 가야겠어..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어느새 배가 살살 아려왔다. 배고프다.. ...배가 고파지니까 이런 것으로도 그릴 수 있겠네. 강철같은 의지를 지닌, 피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자. 조금, 작은 크기에 방금 그린 그림에 비하면 조잡하고 엉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그림. 철로 만들어진 병기를 손에 쥔 청년. 그의 가슴팍에는 따뜻한 온기를 발산하는 붉은 피의 보석이 박혀있는 모습이다.
"철이라고 검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필기구가 될 수도, 요리기구가 될 수 있겠죠. 흘린 피가 꼭 타인의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보장도 없죠. 우리 몸에는 피가 흐르고, 그 피가 저희들의 체온이 되니까요."
그림의 페이지를 뜯어서 그에게 건네준다. 아, 가방에 종이커버가 있었던가... 뒤적뒤적.. 찾았다! 특별히 플라스틱으로 된 종이 커버를 꺼내서 거기에 끼워서 준다. "여기!" 그리고 화현은 몰랐다.. 멋있는 그림 뒤에는 근육비둘기와 독수리가 헬스하는 만화가 그려져 있 었다는 것을...
후아... 오늘 수업도 힘들었다... 요 며칠간 무리를 한 것도 아닌데 온 몸이 뻐근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원인을 모르겠단 말이지.. 운동부족은 아니고.. 비타민도 먹고 있고... 흠... 곰곰히 생각해봐도 원인을 모르겠다. 평소보다 3시간 더 늦게 자서 오전 4시에 잔 것 밖에 없는데 말이지. 아무튼, 미술부로 가야지~ 가야지~ 하고 교실에서 나오니, 제노시아답지 않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넘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모여있는 사람들 쪽으로 향하니, 사람들 교실의 창을 통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뒤통수와 그림자를 피해 도달한 시선 끝에는 엄청난... 미소년! 세상에세상에세상에... 각이.. 나온다!!! 체격도 좋고.. 잘생겼고.. 세상에.. 그런데 1학년으로는 안 보이는데... 그전에 잠깐.. 어디서 본 인물 같은데.. 그... 그.. 무용계인물 아니었던가? 포즈 참고한다고 무용수들 자주 봤었는데.. 그 이미지가 비슷해!
"실례할게요. 지나갑니다. 비켜갈게요. 헉, 저기에 희귀 소재가!"
우다다다 달려가는 사람들. 아무튼, 내 교실이 아니라 들어가긴 좀 그렇지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교실 문을 열고.. 스케치북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줍게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신은후가 제노시아 전문 특성인 양성화 고교에 와서 가장 먼저 겪은 고난은 무엇인가. 가족들과 떨어져서 사는 생활? 아니다. 가디언 아카데미의 수업? 이것도 아니다.
"캬, 이 몸의 인기란... 어딜 가서든 빛나는 외모에 사람들이 쉴 틈을 안 주네."
바로 입학 이후부터, 소문을 듣고 자신을 구경하기 위해서 오는 동급생과, 선배들인 것이다. 무용수 신 은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상, 연예인이 팬 보고 손 흔드는 것 마냥 능청스럽게 넘어가는것은 너무나 이상하고. 그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골칫덩이. 소문이 가라앉기 전까지 끝없이 겪을 고난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말인뎁쇼. 오늘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담.'
그런 은후의 입장에서, 의외로 자신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까지 돌린 화연은 구원 투수일지도 모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창문 너머 학생들을 신경쓰지 않는 듯 굴던 은후는 어째서인지 사람들이 어디론가 달려가자 책상 위의 책을 휙,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문을 향해 돌진에 가까운 스피드로 뛰어갔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누가 거기로 자길 보러 들어 올 줄 몰랐죠.
"거기! 브레이크! 브레이크! 아니스톱스톱스톱!"
문까진 다섯 발자국 앞! 스케치북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교실로 들어오는 화현을 보며 은후는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목소리로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