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입모양과 다르게 번역되어 들리는 걸로 보아 아마 스페인어로 말씀하시는 걸까요? 스패니쉬는 제 전공이 아닌데요...... 문득 중등부때 프랑스어가 아니라 스페인어 과목을 신청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사하지도 못하는 언어를 훌륭히 빠른 속도로 번역해주다니 역시 가디언칩은 최고의 통역수단입니다. 글자를 못 읽는 것만 빼고 말이지요! 아무튼간에 저는 이 이름모를 배고파하는 아가씨께 소시지를 건네드렸고, 조용히 음미하시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음~ 아가씨께서 뭐라 말씀하시는지는 잘 모르지만,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은 거 같사와요🎵"
다른 분께서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즐겁습니다. 하지만 아가씨, 포크와 나이프를 쓰셔야지요,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인걸요....? 아니, 애초에 여기 그런 게 없으니 별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살짝 턱을 괴고 아가씨에게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참, 신기하게 드시는 아가씨에요...
아주 오래전 누군가 영웅이 되고 싶다고 말한 나에게 말했다. '네가 그걸 바라고 노력한다면, 응당 너는 그렇게 될 것 이라고' 으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전부 어린아이의 꿈을 짖밟고 싶지 않은 어른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스카우터의 앞에서 열심히 검성님 처럼 되고 싶다고 떠벌거리던 그 아이를 생각해면 나도 모르게 자다가도 이불을 뻥뻥 걷어찬다. 검성님 처럼 되고 싶다는 그 소년을 보며 스카우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꼴깝 떨고 있네? 으음...그 정도면 양호하지.
검성과 같은 꿈을 품은 소년은 검에 재능이 없어서 검을 때려치고, 힐건을 들었다. 워리어 보다는 서포터가 더 적상에 맞을 것 이다! 라는 냉철한 자아성찰로 비롯한 결과였다. ..사실 '너는 검에 재능이 없어. 때려쳐' 라는 소릴 들은게 더 크게 와닿았지만.....
아무튼 소년은 현실을 자각할 수 밖에 없었고, 지독하게 한심한 자신을 탓 할 시간도 없이 현실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지금은...
" ....우와 " " ...하. " "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vs 뻘에서 조개 찾기. "
연푸른색을 지닌 서코트를 입은 세명의 학생이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절망한다. 아...내 신발..새로 산건데, 벌써부터 뻘에 푹푹 박혀 다리가 빠지는게 느껴진다. 내가 쾡한 눈을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자, 여우귀에 꼬리를 지닌 소녀 하마니치야 역시 꼬리와 귀가 축 내려가며 머나먼 지평선 까지 이어진 갯벌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멘탈에 큰 충격이 온 듯 하다.
잠깐 발을 먹어가는 듯이 쭈욱...내려가던 만석이는 몇번 다리를 움직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날개만 있었어도... " " 날개? 만서그 그건 무슨 개그야? "
그리하여, 우리의 뻘에서 조개 찾기는 시작되었다. 조개가 어디있는지, 얼마나 깊게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리가 푹푹 빠지면 서로 당겨서 빼주기를 반복... 몇시간이나 더듬거리거나 갯벌에 검을 푹푹 박으며 조개를 찾기도 잠시.
" .... 에리익, 만서그 나 또 빠졌어 " " .... " " .... "
양손을 내미는 하나미치야를 향해 우린 다시 철퍽 거리며 걸어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힘껏 당겼다. 그러나 힘이 너무 과했던 걸까. 하나미치야가 흐엑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허무하게 울리는 철퍽소리와 하나미치야의 고통과 비통과 분노가 서린 영문모를 울음소리가 뒤섞이는 것도 잠시. 진흙이 묻은 서코트를 꼭 잡으며 부들거리던 하나미치야가 벌떡 일어났다.
하나미치야는 푸하 하고 금방 일어나더니 이 갯벌 어딘가에 있을 조개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좀 이상해 보였지만 그래도 금색에 윤기가 흐르던 하나미치야의 꼬리가 한순간에 진흙 범벅이 되어버렸다.
" 더는 못해...더는 못해애....!!! " " 그럼 어쩌게..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 " 그런..그건 시간이 너무 아까운데 "
그런 우리의 푸념에 하나미치야는 결국 다 포기한 듯 갯벌에 주저 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녀는 작게 '레벨이 오르면 숨어있는 보스를 찾는 스킬부터 배울 것 이다' 라고 중얼거렸다. 만석이도 그렇고 하나미치야도 그렇고, 정말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나미치야의 한숨을 정확하게 15번째로 듣던중. 조개를 찾아 수색하던 나와 만석이 슬쩍 고갤 돌리자. 하나미치야가 우릴 내려다 보고 있었다.
" 나 참, 일찍 돌아가고 싶으면 조개 좀 찾아 하나미치야양...." " ....에릭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 " " 난 여기 앉아서 잘 찾아볼테니까 걱정마 에릭. " " 아니 잠시만 둘 다. 정말로 진지하니까 소리내지마 "
아? ..그제서야 다시 하나미치야를 바라보았다. 하나미치야가 진흙이 질척거리게 묻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내려다보고 있다. ????? 영성 A가 빠르게 반응하지 않고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금방 눈치채고 검을 뽑는다. 세상에.. 저러니까 찾기 힘들지.
" 하나미치야...얌전히 있어. " " 그래, 얌전히.." " 응? 둘 다 왜 그래? 아..알았어 조개 찾아볼테니까 그러지마. "
나와 만석이가 하나미치야를 진정시키면서 손을 들어올린 순간, 하나미치야가 알았다는 듯 일어나버렸다. 그러자 곧 갯벌 전체가 진동할만큼 거대한 울림이 쿵..하고 울려퍼지더니, 갯벌의 추적거리는 뻘이 뚝뚝 흘러내리며. 그 거대한 모습을 보였다. 조개... 그렇게 작은 건 아니었구나.
세 사람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온다. 깨끗한 연푸른색 코트만이 유일하게 그 청결함을 자랑하지만, 그들의 머리카락에도 신발에도 얼굴에도 진흙이 가득하다. 특히 여우의 귀와 꼬리를 지닌 소녀는 진흙이 덕지덕지 붙은채 작은 손을 꼭 쥐면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놀란 두더지 마냥 점점 봉투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머리. 카사는 현재 맛 깔나는 육즙과 고기의 향연으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난, 나는 이것을 위해 산을 내려온게 아닐까?! 생고기보다 이런 존맛탱 소시지를 위해 내려온게 아닐까?!
기억이 아예 수정되가고 있던 참, 꿀꺽, 하고 나머지를 삼킨 카사, 드디어 봉지 속에서 머리를 빼낸다. 상쾌한 표정과 다르게 기름 묻어 끈적한 머리. 그 모든 것도 전혀 개이치 않는 표정이, 방금 좀비 마냥 흐느적거리던 소녀와는 아예 다른 인물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에미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울 만큼 번쩍! 빛난다.
"!!!!! 고마워!!!!!!!!"
배를 끝까지 채우지는 못해도, 급한 불은 끈 카사! 이제야 드디어 인간의 언어를 되찾아 에미리를 똑바로 보는 것에 성공한다! 꼬리가 있다면 왕왕 흔드는 것이 훤히 보일 지경이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영웅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며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등을 밀어 가혹한 세계로 보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영웅이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자 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생각을 그에게 말해주진 않는다.
"물론이죠. 다음에 의뢰 가면 적당한 타이밍에 해드릴게요~ 물론! 제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다보니까 에릭 선배에 대해 알면 알 수록 제가 더 잘 상상할 수 있으니 그 전까지 많은 걸 알려주세요. 하다못해 의념이라도!!"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철과 피. 매체에서의 뜻을 보면.. 냉혹한 통치 막 그런 거던데...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철과 피. 피..? ... 천생연분 아닐까.. 사실 메리 씨와는... 안 좋은 행동이지만, 다리를 꼬고는 허벅지에 스케치북을 얹는다. 그리고 철혈 이라는 단어를 쓰고선 곰곰히 생각한다. 철과 피는 다르다. 각자 양 손에 하나식 들 수 있는 것. 철은 검이며, 피는? 피는 생물이나 마법적인 의미가 강하지... 생물로 가볼까...
한 손에는 무력을, 다른 손에는 생물의 몸에 흐르는 피. 다른 의미로는 생물 그 자체를 다루는 자. 이런 자는 주로 군주상에 가깝지..
스케치북에 어느 한 인물을 그린다. 단순한 형태만 잡아 표현하고서, 오른손에는 검을, 왼 손에는 피가 든 와인잔을 그린다. 복장은 군주의 갑옷. 화려한 치장보다는 철로 만든 갑옷을... 허나, 병사와 구분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표현된 각인을 집어 넣는다. 자신도 모르게 의념을 담아 그릴 뻔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평범하게 그림을 그려 완성된 모습은
은은한 적색빛을 띄는 갑옷을 입은 왕이 와인잔과 철검을 든 모습이다. 머리에 쓴 왕관은 그가 군주라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의 머리엔 언제나 피가 마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붉은 색으로 칠했다.
오랫동안 드신 끝에 드디어 아가씨께서 머릿속 줄을 잡으셨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마지막 남은 소시지까지 다 드신 모양입니다, 여기저기 기름을 묻힐 정도로 소시지를 맛있게 드신 것 같습니다. 복숭아향 바디워시를 아낌없이 이 아가씨께 쓰시도록 하고 싶을만큼 많이 묻으셨긴 했는데, 뭐어 괜찮으시겠지요...? 전혀 괜찮아보이시는 표정이신걸요.
"살려드린 것 까지야🎵 저는 그저 배고프신 분께 소시지를 건네드린 것 뿐이와요~? "
그런 생각을 하며 고맙다고 하시는 아가씨의 말에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없이 손을 내젓고는, 이름을 묻는 아가씨의 물음에 대답해드렸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사오토메 에미리랍니다. 감히 아가씨의 이름을 물어보아도 괜찮으련지요? "
가만히 보아하니 이 아가씨, 제법 귀엽습니다. 머리에 늑대귀가 달려 있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은 아닐겁니다. 행동이며 무엇 하나 비슷하지 않은 부분이 없단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건 조금 실례일 터이니 마음 속에만 담아두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