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강찬혁은 늑대가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대량 학살극이 펼쳐지겠구만, 아니면 그곳에 설치된 수십기의 자동포탑과 경비중인 가디언들에게 강찬혁까지 덤으로 얹어서 완벽하게 썰려나가거나. 둘 다, 강찬혁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언젠가 죽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죽을 줄이야.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 그리고... 응? 왜 자동포탑이 작동하지 않지? 가디언들도 그냥 놀란 눈치지?
강찬혁은 어느새 응급실 병상 위에 누웠다. 서포터들이 달려와서 상처부위를 지혈하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리고 일련의 외과적 조치 끝에...
박수와 함께 만세를 해야될꺼 같은 느낌이지만, 의념기랑 몸이랑 빡세게 써서 잠시 보호자용 대기실에 뻗어버린다. 피곤해! 강찬혁은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입안의 몸이 축 늘어질 때 카사의 심장은 툭,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서, 들어오자 마자 강찬혁을 반납하고, 의념기를 풀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일면식 있는 병원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입원 절차를 밟고...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 조금, 아주 조금 밖에 안 울었다! 카사는 그런 자신이 대견해, 자기자신의 머리를 쓰윽, 쓰윽 쓰다듬었다. 한 번 밖에 만나보지 못 했지만, 아카데미에 오고 서 첫 친구나 다름없지 않는가! 강찬혁이 죽었다면 아주, 아주 아주 슬펐을 것이다. 아니라 다행이었다!
드디어 찬혁을 다시 만날수 있게 된 후, 침대 옆에 울상을 짓는 카사. 붕대가 이리더리 묶여 하얗게 된 찬혁은 워낙 우스운 꼴이라 생각했지만, 들려오는 말에 버럭 화를 낸다.
"왜 여기있냐니, 무슨 소리야?!"
쭉 있었구만! 늑대모습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못해, 인간모습으로 울다가 빨개진 눈가를 벅벅 닦는다. 강찬혁은 혼나야 된다! 혼낼께 너무 많았다! 생각하다 손을 들어, 팍, 찬혁의 주둥이 부분(?)을 한 대 친다. 늑대 어른이 늑대 새끼를 혼낼 때 때리는 곳이다.
"왜 그랬어!"
왜 내 굴 훔치고, 왜 독버섯 먹고, 왜 때리고! 왜 뭉둥이를 먹이고, 꼬챙이가 되고, 꼬챙이를 빼고!!!!!
강찬혁은 이제보니 붉어진 카사의 눈시울과 부어버린 눈두덩을 보고 어리둥절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강찬혁의 표정에는, 수십만개의 미아핑과 물음표가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표정이 들린다, 물음표가 들린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리라. 강찬혁은 알 수가 없었다. 아까 전에는 무슨 미친 초거대 늑대랑 싸우다가 물려서 이리저리 쳐박히다가 꼬챙이에 꿰이더니, 그 다음으로는 그 꼬챙이를 뺄 때쯤 응급실에 던져지고 어떻게든 수술을 받았고 눈 떠보니 이곳이었다,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그게 눈 앞에 앉아있는 카사랑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강찬혁은 코와 입, 시쳇말로 "주둥이"를 계속 맞으면서 무슨 일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라는 말에 옛날에 처음 봤을 때 자신의 의념기를 자랑하던 그 말을 기억해내고는 잠깐 추론했다. 그리고...
턱, 카사의 손목을 잡고, 강찬혁은 자신이 추론한 내용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대충 내가 숲에서 혼자 주워먹고 있는데 너가 그 의념기인지 뭔지를 써서 늑대로 변했고, 늑대로 변한 다음에 나한테 달려들었고,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꼬챙이에 찔렸고, 그래서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고, 뭐 그렇다는 얘기야?"
강찬혁은 자기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솔직히 강찬혁 쪽에서도 할 말은 많았다. 아니, 솔직히 눈 앞에 그렇게 커다란 늑대가 있으면 누가 평정심을 유지한단 말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큰 늑대였으면 게이트 너머의 존재 아니냐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강찬혁이 "몬스터-야생동물 구분법" 에 관련해 배울 때, 신뢰 가능한 기록을 검토할 때의 늑대의 최대 크기는 절대 그것이 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뭐였겠는가,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워야지. 아니, 그럼 저기서 안 싸우면 그게 부처지 가디언이냐. 강찬혁은 할 말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여기서 뭐라고 했다가는 오히려 강찬혁이 나쁜 놈 될 기세다. 그래서 강찬혁은, 적당히 미안하다고 말하고 넘기려 했는데...
"그, 내가 미안하니까 그만..."
커헉! 쿠억! 물소리 섞인 비명과 함께 타격부위를 맞으면서, 간신히 진정된 상처부위가 다시 스며드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뭐라 막을 새도 없이, 피가 분수처럼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강찬혁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베개에 뉘이고 눈을 감았다.
이런 멍청한 방법으로 뒤지는구나.
그런데 그 때, 강찬혁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심박측정용 밴드가 뜯어지면서, 삐ㅡ 하는 소리와 함께 심박계가 일자선을 그린다. //막레 부탁드려요...
나름 힘 조절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인지, 막타에 힘이 실수로 너무 들어가 버렸다.
"아."
막타가 진짜로 막타(KILL)가 되어버렸다.
벙, 자신의 주먹과 피가 터져나오는 배를 쳐다보고 있으니, 찬혁의 몸이 쓰러진 듯하다.
삐이— 울리는 심박계.
어? 어어? 힐끗, 얼굴을 본다. 감겨있는 눈. 카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동시에 의료원들이 들이닥친다.
주, 주, 죽었 —
"내, 내가 아냐! 내가 안 죽였어!!!"
아무래도 수상한 말을 처절하게 외치는 카사. 의료원들이 아랑곳 않고 각자 팔 한짝을 담당, 카사를 질질 병실에서 끌고 나간다. 발버둥을 쳐도 그들도 가디언, 카사 정도는 손쉽게 제압한다. 찬혁을 둘러싸는 의료원들에 가려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될 즈음, 마지막으로 외치는 발악.
"끄아앗! 두고보자 강찬혁!!!!"
...그리고 쿵, 닫히는 병실문. 사방은 고요해진다. 다음에 서로를 보는 것은 법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