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혹시 다른 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속표지까지 찾아봤건만... 나이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다. 오로지 모든 정보가 '이것이 신 한국의 문학이다!'(절망편)이라는 결론을 가리키고 있을 뿐. 아까전의 따뜻한 미소에 비교할 만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는 화현에게 나이젤이 할 수 있는 건 굳은 미소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빌려주세요."
[붉은 마왕들]. 표지에 마주보고 있는 홍왕과 마왕. 그... 어떤 내용물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책을 보고서 나이젤이 힘겹게 한 마디를 던졌다. 더 이상 호기심만으론 넘어설 수 없는 합리적인 추론과 불안감을 넘어서, 화현이 생각한 '입덕'과 같은지 알 수 없는 혼란한 감정 속에서, 불타는 소돔에서 도망치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되었던 성서의 이야기처럼, 그저... 그렇게...
강찬혁 의념기술 생각중... 불굴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개인적으로 불굴 의념을 어떻게 응용해서 스킬을 만들 수 있을지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중입니다...
불굴, 꺾이지 않는 그 정신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도 죽어나가지 않고 다치지 않는 평화로운 목장에서 절대 굴하지 말아야 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인류 역사에서, 그리고 게이트 저 너머에서 나름대로 그려갔을 그들의 역사 속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기거나, 위기가 닥치고 재해의 참화가 닥치면, 불굴의 정신은 그제서야 빛을 발했을 것입니다. 쿠데타로 권좌를 차지한 새 군주를 모시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공신으로 사느니, 권력을 잃고 몰락한 군주를 위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비천한 먼지 한 톨로 죽기를 택한 수많은 충신들. 불의한 사회에 굴복하고 불합리한 체제를 합리적이라 세뇌하며 자신의 작은 몫을 찾는 대신에, 불의에 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혁명의 불길에 자신의 몸을 장작으로 바치고 재가 되어 스러져간 수많은 혁명가들. 전선 뒤의 수많은 누군가들이 살아갈 내일을 위해, 자신의 오늘을 바쳐 죽을 때까지 싸운 역사 속 수백 수천만의 군인들. 빚을 진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총까지 맞아가면서 끝까지 달동네를 지킨 강찬혁처럼. 불굴의 정신은, 수많은 소시민들을 영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물론 불굴의 정신이 전쟁에서만 발휘된 것은 아닙니다. 길이 없어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산을 깎고 바위를 쌓아 길을 만든 노인에게도, 굶어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종자를 지킨 농학자들에게도, 수많은 포기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끝내 완성하는 장인들에게도, 불굴의 정신은 깃들어 있었습니다. 불굴은 인간의 정신이요 총체입니다.
강철의 심장 : 전투당 망념 50 축적을 대가로 정신 관련 불이익 판정을 1회 무시할 수 있음. 저 산의 바위처럼: 다음 4턴간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대신 방어력이 극단적으로 상승하며, 신체 S급이 아닌 이상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짐. Ils ne passeront pas!: 적 1체를 지정하여, 그 적이 팀원을 공격할 경우 그 공격을 모두 강찬혁에게 돌림.
그냥 찬혁이 깡이 넘치는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저렇게 묘사해보면 불굴이라는 속성 정말 멋있네. 불합리가 있기에 굴하지 않는 마음이 있고, 세상이 불합리하기에 불굴은 가치가 된다. 불굴은 선택받은 존재에게만 주어진 축복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주어질 선물이다. ...라는 느낌!
꼬마전구는 커녕 침침하게나마 주변을 밝힐 촛불 하나 없는 토굴 속은, 참으로 어두웠다. 강찬혁은 쥐며느리처럼 온몸을 둥글게 말아야 겨우 쉴 공간이 생기는 어두운 토굴 속에 몸을 말고 눈을 감고 있다가, 토굴 바깥 작은 구멍을 통해 보이는 밝은 햇빛에 잠이 깼다. 좀 더 잘까 했지만, 새 소리와 물 소리, 그리고 찌릉거리며 우는 벌레 소리가 만드는 숲의 교향곡이 잠을 방해했고, 결정적으로 허리랑 어깨가 너무 뻐근했다. 강찬혁은 결국 뻐근함에 못 이겨, 좁디좁은 토굴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제기랄..."
여기에서 이 짓을 진짜로 하게 됐을 줄이야. 누가 파둔 토굴인지는 몰랐다. 어쩌면 앨리스를 초대하려고 열심히 굴을 파고 있다가 여기가 아닌갑다 하며 버려두고 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평행우주의 북한 정찰총국이 파놓은 땅굴일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몇십년 전 이곳이 개발되기 전에 이곳에서 홀로 살다가 삶을 마친 고독한 로빈슨 크루소의 마지막 유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찬혁에게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고, 어쨌든 토굴이 있기에 여기에 숨었다. 토굴에 숨은 이유가 무언고 하니... 현수막을 찢은 게 하필 문제가 커져서 선도부가 수색하기 시작했고, 강찬혁은 낌새가 보이자마자 아예 토굴로 숨어버린 지 이틀째였다.
"으으..."
강찬혁은 눈 앞에 피어있던 빨간 버섯을 뜯었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광경이리라.
이미 만들어 둔 굴을 다른 동물들이 찜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원래 자기나 다른 늑대들도 딴 동물들이 파둔 굴을 강탈하기도 한다. 카사는 원래 기숙사가 있긴 해도 불안해, 미리 미리 자기 몸통에 딱! 맞는 사이즈로 파둔지 오래이다. 선도부 녀석들이 여기저기 다녀 어지러운 판에 자기 흔적이나 굳히러 왔는데...
어느 XX야!
애초에 여타 동물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도 자기 흔적도 무시하고 그냥 들어오다니! 대체 무슨 XX야! 물론 소동물이면 그날 점심식사로 해두면 끝이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저기 안에 들어간 동물은 카사보다 컷다! 불안감에 머리를 탈탈 턴다. 덩치도 큰 주제에 왜 조그만한 굴을 쓰는 지 대체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서면 용맹한 카사가 아니다!
「이 구역 최고 포식자는 나야!」
이미 의념기를 써둔 상태! 카사는 거대한 짐승의 모습으로 굴 입구 바로 위에 누워 기다리고 있던 카사. 거기서 굴에서 어그적 어그적 기어나오는 존재. 이때다! 슥, 뒤로 부터 그 놈의 등뒤로 다가가, 거대한 머리통을 그녀석 목위치에 둔다. 푸흐... 거대한 짐숭의 숨이 내쉬어지고, 두 눈이 서프르게 빛난다. 자기 굴에 무단침입이 간 커다란 놈에게 크으게 혼쭐을 내야겠다!
강찬혁은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콧김에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게 뭐지? 뭐하는 거지? 강찬혁은 독버섯을 씹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강찬혁의 표정이 끔찍하게 일그러진 현상은, 독버섯을 잘못 먹어서 안면근육이 굳어버렸다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었으리라. 거대한 늑대가, 그것도 거대하다 못해 무슨 빨간망토 동화에 나오는 빨간 망토 뒤집어쓰고 있다가 배에 짱돌을 잔뜩 넣은 상태로 우물에 빠져서 죽게 된 늑대인간마냥, 두 발로 서 있었다. 제보당의 괴수일까? 아니면 파리를 공격했다던 늑대의 후손일까? 아니, 가능한 시나리오는 역시... 게이트 너머의 늑대인간이 헌터와 가디언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쳤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서 눈에 띄지 않고 자신의 세력권을 형성했으며, 그리고 강찬혁은 그런 줄도 모르고 이 늑대인간의 활동영역을 침범했다, 는 것이 되겠지.
전투연구부장의 큰 뜻이 생각난다! 팔과 눈이 박살난 오크가 숨어들어간 곳으로 강찬혁을 보냈었지. 만약 전투연구부장이 이걸 알았다면 뜯어말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너무 가까워서 도망도 못 칠 테니, 강찬혁이 할 수 있는 건 싸움 밖에는 없다. 운 좋게 그때처럼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래야지. 강찬혁은 눈 앞의 늑대인간을 양 팔로 밀쳤다. 물론 강찬혁보다 훨씬 덩치가 큰 늑대인간을 밀쳐서 뭘 해보려는 거 따위는 아니었고, 그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반작용에 몸을 맡겨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어? 어어? 우와! 강찬혁 맞잖아! 우와, 표정 이상해! 스윽, 내려다보니 강찬혁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았고,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확인한 카사는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물론, 큰 덩치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가 않고, 강찬혁의 시야에는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한 마리의 짐승이 있을 뿐일테다. 인사를 하려 고개를 가깝게 숙이려 하지만...
"크왕!"
갑자기 몸에 느껴지는 충격에 깜작 놀라 뒤로 엉거추줌 물러난다. 푸르르, 고개를 떨고 혼란감으로 찬혁을 바라본다. 깜작 놀라 꼬리는 이미 동작을 멈춘 상태이다.
뭐야, 왜 때려!
"컹! 크르르르..."
인간의 언어도 잊은 채, 대충하지 말라는 소리를 내뱉는다. 겉으로는 사납게 짖고 이를 드러내어 으르렁거리는, 보통 늑대보다도 두배정도 더 큰 짐승의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카사다.
대체 왜 그러나, 하고 찬혁의 모습을 살펴보니... 허걱! 지금 들고 있는 것은 끔직한 고통과 마비증상을 주는 독버섯이 아닌가! 털이 부풀아 오르고 위협의 신호로 목덜미의 털이 부풀어 오른다. 저거 내려놔! 아니, 내려 놓게 해야지! 크왕! 거다란 소리와 함께 찬혁에게 뛰어드는 카사! 쩍, 벌린 입의 최종 목표는 찬혁의 손안에 든 버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