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어라.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 단어인지 아직 여기 대부분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위협과, 희생을 감수하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것을 할 수 없어 쓰러진 채, 눈을 감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오늘이 축제 마지막 날이었던가? 내가 그린 그림을... 장터에 올리고 싶지만, 사전 신청이니 뭐니 이래저래 귀찮은 절차 때문에 올리지 못했다. 찬후도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 많은 곳에 같이 가줄리가 없고.. 한숨 쉬며 마지막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장터로 왔다. 제노시아의 미술부에 가입하지 않고도, 미술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여러 그림이 전시된 전시장 같은 곳도 있었고... 거기서 몇가지 흥미로운 그림을 보다보니 나도 저런 거 그려보고 싶다~ 하는 욕망도 생겼다. 하지만, 안 할 거야!!! 아무튼,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 가지 그림을 몇 분도 안 되어 떠나기 마련인데.. 이 한 사람은 계속 같은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흠... 미술에 조예가 있나? 궁금증이 생겨서 몰래 그의 뒤에 서서...
와.. 반응봐.. 만화에서나 볼 듯한 반응. 그게 놀라워서 방금 전 상황을 다시 떠올릴 정도로 재밌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지만, 우리들은 그림만큼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금방 꺼졌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는 소리에 나도 그 그림을 빤히 바라본다. 흠흠... 찬후의 그림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나름 잘 그렸다. 대충... 나랑 비슷하거나 좀 더 높은 실력? 후훗.. 이러면서 자기 자랑. 하지만, 그림에 담긴 감정이나 표현하고자 한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빠져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이 매니악하시네요. 고전 명작이나 인기가요 같은 것보단 무명 가수의 첫 자작 앨범 같은 걸 좋아하는 타입이죠?"
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자연스럽게 "저는 이화현이라고 합니다." 하고 대답한다.
"음... 그림(포괄적인)을 좋아하죠. 가장 좋아하는 건 따로 있지만... 사실, 그리는 쪽에 가까워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취향이고 아니고의 영역이 아니다. 마치... 자연재해가 싫다고 자연재해를 안 오게 할 순 없는.. 그런 것이다. 계속 한 장소에 있으면 좀 그렇기에 그림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는 적당한 위치로 몸을 옮겼다.
"저요? 저는... 코믹스풍의 그림체로 다양한 스토리를 풀거나, 특정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거나 혹은 상상화 같은 걸 그려요. 다양한 기법으로 시도해서 여러가지를 도전하고 있어요."
대충 요약하면 만화 그리는데 만화 말고도 다른 그림도 그린다는 뜻. 에릭의 영성이 B였다면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A이기에 저 말에 숨겨진 뜻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버스킹 했었다는 말에 가디언넷에 올라온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아는 척 하면 안되겠지..
윽... 젠장.. 눈치챘잖아... 크흠.. 크흠..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필사적으로 얼굴을 바꿔 그와 대화한다.
"잘 아시네요. 역시~ 예술계는 통하는 게 있다니까요? 퓨어퓨어보이스~ 좋은 작품이죠. 특히 그 노래가 매화마다 새로워서 듣는 맛이 있어요. 그런데 제 타입은 아니라서 몇 화 보다가 말았어요. 어때요, 재미있나요?"
몇 화(54화) 보다 말았다고 거짓말 했다.... 아니, 틑린 말도 아니잖아? 단지 완결이 54화니까 그걸 몇 화 라고 줄인 것 뿐이지... 땀이 슬금슬금 피부 위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크리티컬 히트였어... 하지만, 애써 지적하지 말자.. 지적하지 말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와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ㅇ, 와! 드럼! 드럼 같은 건 박자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고 들었는데 대단하시네요. 저는 음악은 영 꽝인데..."
하하 하하 하며 웃다가 그의 자폭 발언에 한숨을 팍 내쉰다. 그러고는 그를 안쓰럽게 보며... "그러길래 왜 그런 걸 해가지고..." 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침묵만이 감돈다. 전시장에선 다른 관람객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관람해주세요. 라는 안내를 우리 두 사람은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 메...이저... 하다고...? 이 사람... 잘 모르는 모양이군... 메이저라는 것은 작품 이름을 말했을 때 떳떳할 수 있어야..... 메이저다... 그리고 파랑색? 파랑색보단 노랑이 진리다. 노랑이 진리!
"메이저 하지 않아요... 나 그거 본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럼 메이저지만, 그게 아니면 마이너예요... 그리고 노랑이 진리입니다."
노랑캐는 먼치킨 속성이 있지만, 중반부에 등장하여 주인공과 라이벌 사이에 우정을 도모하는 역할을 주로 맡아서 좋지.. 그때부터 주인공이 좀 묻히기 시작하고 후반가서는 전투력 측정기가 되어버리지만... 아무튼, 이상한게 아니다. 라는 그의 말엔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맞아요... 이상한 건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상한거지.. 아, 저희 좀 조용한 곳으로 갈까요?"
어느새 주변에 사람이 조금 몰려 있어서 이대로 가다간 내가 제노시아의 매니아다!! 하고 당당하게 광고할 것 같아서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