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어디 봐서 복슬복슬하고 먹음직스러운 그 새하얀 생물인가! 이 에릭 하르트만은 자신처럼 모든 이가 초식동물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토끼주제에 참 건방지다.
...그런 생각에 뒷말은 아예 씹은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안 되잖아? 으아아아아ㅏㅏㅏ
도리도리도리도리도리! 휘몰아치듯 강렬히 거부감을 표현한다! 내가 돌았나! 그런 미친 생명체인지도 모르는 것을 따라가게!
"동생이라매! 넌 날 속였어!!"
필살적으로 절규하는 카사. 자신이 맡은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아는 동물은 아니었다! 아니, 인간도 아니었다! 가장 설명에 가까운 것은 '인간을 흉내내는 무언가'. 감이 좋은 카사가 아니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거기에 부족에 그 냄새에 관한 모든 것이 자신에게, 자신의 의념에게 경고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 동생이라니!! 멀쩡해 보이는 인간이랑 그런게 가족일리가 없다는, 늑대에 길러진 주제에 편견으로 가득찬 카사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설상가상에 이 나쁜 에릭 하르트만은 자신을 금방 놓아주지 않을꺼 같았다! 싫을 때 무슨 말을 해야하는 지 황급히 떠올리려 한다. 그래! 생각났다!
" ! 그걸 어떻게..가 아니라. 카사 양..속이려는게 아니였어요!? 우선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
감각이 좋아서 눈치챈걸까? 눈치챘다면 어떻게 설명해야지.. 카사뿐만 아니라 들켰다는 생각에 나까지 혼란스러워진다.
아니 설명한다고 해도 믿을까? '저 소녀 메리 하르트만은 저의 동생인척 하는 무언가 입니다. 진명은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이구요. 수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며, 초대형 게이트의 보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을 죽이거나 먹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 내가 만약 그 말을 듣는다면 무슨 개소리를 하냐면서 화를 낼 것 이다.
" 자 카사 양.. 우선 진정하... "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우렁차게도 울려퍼진 말에 내 눈에서 하이라이트가 꺼지는 기분이다. ...단념해버릴까?
" 카사 양 그러면 제가 마치 안좋은 일을 하는 사람 같잖아요!? 아! 아니에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
그 냄새만 생각해도 몸이 떨려오고, 공포에 질리니까 눈물이 저절로 난다. 말버릇대로 풀네임을 말해 확인사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바람피운 연인을 추궁하는 양 에릭을 잡고 꺼이꺼이 운다. 거기에 다시 양이라 불렀다! 아니라고 정정했는데나 또 양이아 불렀다! 그말은 혹시, 나 같은 것은 그 미지의 생명체를 위한 '희생양'일뿐... 이라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게 아닌가?! 새로운 가설에 눈물이 핑 돈다.
"날 제발 놔줘!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그 마법의 주문을 소리치자 약속한대로 에릭 하르트만이 주춤한다. 좋았어! 삶의 희망이 보인 카사는 더욱 더 처절하게 주문을 외치게 된다. 도라 디 엑X프로러의 스와이퍼를 좆아내는 주문처럼..
카사는 주변의 수군거림 따위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자신은 미지의 생명체에게 재물로 바쳐지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였다! 거기에 발칙한 닝겐은 자신이 선량한 소녀를 재물로 바치는 사람이 아니라고 거짓말하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은 지극히 이른 시간부터이고, 하루의 끝은 지극히 늦은 시간입니다. 나의 하루는 해가 뜨기도 전인 꼭두새벽에 시작합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머리를 말고… 도와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머리는 저 혼자 손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엔 이 과정은 너무나 세밀해야 해요. 눈썹을 손보고 선크림을 바르고… 틴트를 하고 나면 어느새 해가 뜨려고 하는 때가 됩니다. 그때쯤에 세라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히 아침을 먹으러 갑니다. 부모님은 바쁘시기 때문에 이 시간대엔 거의 뵐 수가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오라버니들과 아침인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적당히 토스트를 먹고 나면 학교 가는 자동차를 타러 갑니다. 운전기사님은 거의 매번 같은 코스를 밟아주십니다. 보통은 기사님과 저 외에 다른 사람은 타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종 지각하신 오라버니들께서 타시는 일도 있습니다.
[ International School of the White Stone ]
여기가 제 학교랍니다. 초등부부터 지금까지 쭉 다녀왔어요. 간판이 참 예쁘지 않나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대학까지 다녔을거에요! 비슷한 옷차림의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하나 둘 교문을 넘어 들어갑니다. 모두 붉은 깃 세라복에 갈색 로퍼를 신고 있습니다. 이제 저도 그 행렬에 껴야 할 때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Aujourd'hui, je voudrais vous apprendre la grammaire française ... “
아침 수업 시간은 조금은 지루한 시간입니다. 중등부를 이제 3년을 다니고 있지만 이 시간은 견디기 힘듭니다. 그도 그럴게 첫 시간부터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언어로 수업을 받고 있자니 정말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다른 학우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역사 시간이 더 낫지 않냐는 말도 있는데 역사 시간에도 거의 남인 언어로 수업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경우엔 남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언어이니까요. 이시간엔 거의 필기를 합니다. 필기를 하고 하고 또 합니다… 작문을 할 때엔 작문을 하고, 어쩌다 말해야 할 땐 직접 발음합니다. 선생님께선 우리들의 발음과 문법을 수시로 체크하고 교정해 주십니다. 너무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 되려 물어보는 저희가 죄송해집니다. 졸음을 참으며 펜을 들었습니다. 각성자들은 손목에 번역이 되는 칩을 이식한다지만 각성하지 못한 우리들은 칩이 없기 때문에 언어를 배웁니다. 이제 저는 열여섯이 되었습니다. 이제 각성하기엔 굉장히 늦은 나이이지요. 요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나이입니다. 이제는 싫다고 해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수업 시간은 역사입니다. 마도일본의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배웁니다. 게이트가 열리고부터의 역사는 굉장히 길고 장황하나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기에 많은 걸 배우진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혼란스런 시기를 겪었던 건 잘 알지요. 우리는 한번 바다에 가라앉고 떠오른 땅에 앉아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이 땅이 떠오르기 전에는 다른 지역에 몸을 맡기셨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여타 대륙 중에서도 특히나 혼란스런 시기를 보냈습니다. 전부 계속 유럽에 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이야기입니다. 조용히 소리를 죽이고 수업에 집중합니다…
“사오토메? “ “네. “ “183페이지 세 번째 단락 읽어보세요. “
아무래도…경청만 하고 있진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교과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강산이 바뀌어 ‘현대’의 총리직은 과거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은 이제 총리가 아니라 마왕입니다. 한 때의 체제가 지금은 시험 범위로 교과서에 나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현대는 이제 게이트 이후입니다. 그리고 나는 게이트 전의 사회에 대해 지금 읽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수고했어요, 사오토메. 자리에 앉아도 좋습니다. “
제 몫을 끝냈기에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앉기 무섭게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우리들의 사회는 단일 인종이 대부분이었고 극소수의 외인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죠. 게이트가 열렸고 이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혼란기가 끝나고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라앉은 땅이 언제 또 가라앉을지 불안해 했지요…. “
나는 조용히 선생님의 말씀을 필기하고,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
필기하고,
“또 분포도 바뀌었습니다. “
또 필기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차별이 없는 시대에 살아야 합니다. 화합과 융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때라 봐야 할 것입니다. “
펜을 내려놓고 다시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조금 숨을 고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섞일 수 있나요? 이름도 성도 다 바뀐 지금은 섞일 수 있을까요? 저 위의 가디언들의 이름도 국적도 천차만별인 시대이니 섞일 수 있겠지요. 당연히 섞일 수 있을 텐데…. 가족들도 학우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묘하게 위화감이 드는 걸 막을 순 없었습니다. 어쩌면 내 스스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보통은 느낄 필요가 없는, 한걸음 물러나 있어야 할 거같은 그 느낌. 체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미리는 외인外人이니까요. 잡념은 버리고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요사이 저는 정체성에 대해 조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나이이니 늦었다면 늦은 나이이지요. 빠른 편이 오히려 안 이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이름에 익숙해질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저는 어머니에게 불리는 이름이 더 친숙합니다. 아마 저 혼자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세상에 이런 사례가 저 혼자만 있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지요, 수없이….
회가 정말 마음에 드시는 듯한 바다양의 저 표정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보아하니 다시마연어회는 리뷰대로 정말 맛이 괜찮은 듯 싶고… 연어회가 저정도이니 그럼 다른 메뉴들도 나쁘지 않겠지. 이제 제 앞에 놓인 이 메뉴를 먹어볼 차례다. 젓가락으로 조용히 회 한점 밥 한 숟갈 뜨려던 찰나, 바다양께서 연어회 한 점을 이쪽으로 권해오셨다.
“어머🎵 바다양, 에미리가 한 입 해도 괜찮은 건가요~? “
드시시느라 바쁠텐데 되려 이쪽으로 권해주시기까지! 마음은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바다양의 소중한 연어 한 점을 뺏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권유를 무조건 거절하는건 조금 민폐이지 않을까…
“좋아요, 바다양께서 괜찮으시다면 잠시 한 입 맛보겠사와요~ 기대되네요, 어떤 맛일지…🎵 “
한결 들떠있단 듯이 턱을 괴고 권해오시는 걸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담아 천천히 음미하려 하였다. 정말….바다양의 말씀이 맞는 거 같다. 이게 바다의 맛인가요…? 느껴지는 건 천상의 맛인 걸요? 담는 순간부터 탄성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아아, 어찌 연어가 이리도 부드러운지…! 눈을 질끈 감고 우물거리다 삼키며 소릴 살짝 높였다. 이건...이건....!
" 너에게 꿈을 선물하고 싶었어. " " 세상을 속여야만 해서라도 너 하나를 구한다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 " 제 제자들의 피와, 그들이 흘린 눈물 하나까지. 모두 그대에게 돌려드리지요. 부디 쓰러지지 말아주십시오. 나이가 나이인지라 힘조절이 잘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 " 꼭 이해하려 하진 않아도 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역할은 내가 할게. 대신 너는 이런 날 이해해줘. " "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아픈건 없어요. 힘든 것도요. 대신 내일부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만 있을거에요. " " 가라. 그리고 행복해라. " " 이빨. 너에게 준다. 나. 너에게 내 등을 준다. 너. 나에게 시간을 준다. 그러니 함께. " " 말만 해. 말만 하라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목욕을 하고 싶다면 이 세계라도 뒤집어보지. 대신 내 곁에서 죽지만 않으면 돼. " " 사람의 살과 온기가 이만큼 따스한진 몰랐어. " " 너가 내 세계에 들어왔는데 나는 네 세계에 흘러들었어. " " 수백의 미래와 수천가지 길을 보았는데도 전 아직도 당신의 그 말이 가장 두렵고, 아프며, 사랑스럽답니다. " " 저를 당신만의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 " 앙칼진 고양이 처럼 내 손을 물었군. 그래도 사랑스럽지만 말야. "
하루는 자신의 설명에 눈을 깜빡이다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카사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 미소는 의미를 이해했다고 보아도 되는 것이겠지. 하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짓고 있을 때, 카사는 다시 고개를 내려 새가 모이를 쪼아 먹듯이 손등을 입술로 여러번 건드렸고, 귀엽게도 몇번이고 건강하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루는 눈이 조금 커져선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푸훗 하는 웃음소리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 후후..후후후후.. 카사 덕분에 얼마든지 건강할 것 같아요. "
정말 기분이 좋다는 듯 웃어보이던 하루는 잠시 카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대감 가득한 눈을 한 체, 어딘가 의기양양해진 그 모습은 한없이 들뜬 아이같아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잠시 카사를 바라보던 하루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점점 숙여져가는 고개는 카사의 얼굴과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카사의 이마에, 하루의 입술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떨어진다.
" 카사가 좋아할 일만 가득 생겨나길. 카사가 다치지 않고 언제나 행복하길. "
하루는 가볍게 기도를 올리듯 읊조리며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몇번이고 자신의 손등에 건강하라는 기도를 새겨넣어준 카사에게 답례를 하는 것처럼.
" 그리고, 혹시 위험해지더라도 카사가 도와줄거잖아요? "
저도 그렇겠지만,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다행이라는 카사에게 산뜻한 눈웃음을 지어보인다. 분명 서로에게는 서로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하루에게는 있었다. 물론 카사가 위험에 처한다면 얼마든지 몸을 내던져서라도 도울 생각도 있는 하루였지만.
" 카사는 좋은 아이니까, 저보다도 더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거든요. 물론, 카사가 그럴 것 같지 않다면 좀 기쁘긴 하지만요."
하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카사를 보며 그건 그것대로 좋다는 듯, 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대답을 돌려준다.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다면 굳이 억지로 상상하려고 할 필요 없다는 듯 부드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하루였다.
" 와아..! "
카사가 언제 집어왔는지 꽃잎을 자신 앞에 뿌리는 것을 보며, 놀란 듯, 그러면서도 즐거운 듯 감탄사를 내뱉던 하루는 이내 자신의 품안에 달려드는 카사를 끌어안고선 휘청거린다. 넘어질 뻔 했다는 것을 아는건지 하루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품 안의 카사를 내려다 보았다.
" 지금 놀고 싶어서 카사를 불렀는걸요? "
하루는 당연히 놀거라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품 안에 카사를 안은 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돌다가 자연스럽게 뒤에 펼쳐진 풀밭에 자연스럽게 뒤로 엎어진 하루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가있는 상태가 되었을 카사에게 맑은 웃음소리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