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매섭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섞여 간간이 천둥 소리도 들린다. 어제부터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거칠어진 파도로 짐작했지만-사실 라디오나 아침의 TV 뉴스에서 지겹게 듣기도 했지만-아무래도 오늘은 하루종일 태풍이 몰려올 예정인 것 같다. 뭐라고 했더라. 크기도 크고 세기도 센데 속도가 느려서 지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던가. 덧문을 닫자 빗소리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까진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나가면 머리가 엉망이 되니까 귀엽지 않은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매년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되나~ 그치만 만약이라는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약간의 귀찮음을 섞어 투덜거리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조금 더 정리를 하고 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비옷을 걸치고 우산까지 챙겨들어,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관을 연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가 우습다는 듯 세찬 빗줄기와 바람이… …매년 보는 거지만 이 수평으로 내리는 비(?)는 볼때마다 놀랍다니까. 뭐, 그래서 비옷을 입은 거지만. 우산은 펴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그저 부러지기만 할 것 같아 그냥 접은 채로 터벅터벅 대피소를 향해 걸었다. 조금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 곳이다. 바닷물이 넘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한 장소. 대피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비교적 태평한 얼굴, 아니면 지루하다는 얼굴을 한 사람들은 현지인이다. 매년 겪는 일이라 아마 태풍이 지나간 후의 뒷정리가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불안한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거나 밖을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여행객일 확률이 높지. 이것도 늘 보던 풍경이다. 나기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익숙해진 쪽이니까! 여유롭게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만들어 앉아서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들었다.
“음~ 트럼프가 있으니까 신경쇠약*이라도 할까.”
매년 하는 거지만 솔직히 대피소에서만 하고 평소에는 잘 안하니까, 실력은 언제나 제자리다. 기록 갱신을 목표로!하기에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저 심심풀이니까~ 일단 카드를 늘어놓고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다가… 어라, 아는 얼굴이 있다. 슬쩍 손을 흔들면서 아는 체를 해본다.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고 유키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다음주 쯤이면 집에 가야할테니 슬슬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건만 날씨는 그 뜻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생각보다 빗줄기도 거세고 천둥벼락에 바람도 몰아치고 있어 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자신이 살던 치바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바람이었다. 더 무서운건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는 아 또 왔네 정도의 표정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떨결에 대피소로 향하자 유키는 더욱 당황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모두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이 정도 태풍은 여기선 아무 것도 아닌건가 싶어 자신이 잘못된 것인지 유키는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흔들면서 침을 삼켰다. 오기 전에 온천을 보니 물이 범람한 것을 넘어서서 아주 난리가 났던데 정말로 괜찮은건지. 지금 이 사람들을 찍어서 SNS에 올릴까 했지만 뭔가 그 그림이 이상할 것 같아 유키는 애써 그 충동을 자제했다.
"아. 미쿠모 양."
그러는 도중 갑자기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키는 고개를 돌려 나기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납득을 하며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나 태연해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유키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비가 엄청 오는 정도가 아니라 왕창 아니야? 지금 이 태풍 괜찮은 거 맞아? 나중에 다 끝나고 나가면 막 집이 무너지고 물바다가 되어있고 그런 거 아니야?! 왜 다들 이렇게 태평할 수 있는거야?!"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당황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유키 혼자 뿐이었다. 적어도 그가 사는 치바에선 이 정도의 비바람을 보는 일은 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감한 웃음소리와 함께 호들갑이 섞인 말이 주르르륵~ 아~ 알죠~ 알아요~ 운 나쁘게 태풍이 올라오는 날과 겹쳐서 여행을 온 손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니까~ 걱정이 섞인 랩(?)을 하듯 말하는 아사기리 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도 지금 나기의 표정은 태평하게 웃고 있지만. 일단 아사기리 씨를 향해 진정하라며 손짓했다. 워워. 진정하라구요.
“아하하☆ 그건 그렇네요~ 바람도 많이 불어서 완전 옆으로, 수평으로 비가 내리니까요☆ 우산도 그냥 날아갈 정도고. 음, 그래도 의외로 집은 튼튼하고 물바다가 된다고 해도 발목 잠기는 정도가 최대일걸요? 그나마도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차는 경우는 드물고. 그리고 다들 태평한 이유는 매년 있는 연례행사 같은 느낌이니까요?”
실은 대피소에 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가라고 해서 온거라구요☆ 태평한 소리를 하나 더 얹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늘어놨던 카드를 치우고 나기의 맞은 편을 톡톡 두드리며 아사기리 씨에게 권했다. 두 명이라면 신경쇠약이 아니라 도둑잡기도 할 수 있겠어!
“아, 마침 잘 됐네요 아사기리 씨! 저 심심해서 트럼프 카드로 놀려던 참인데, 같이 하실래요?”
그렇게 권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창문으로 번쩍하는 빛이 비치고 곧바로 큰… 아니, 상당히 큰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야, 이거 바로 근처, 아니 아니, 바로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큰 소리인데. 배꼽 달아나겠는걸? 귀가 조금 먹먹해질 정도였어…! 그나저나 외지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카드놀이를 권하는데에 최악의 타이밍일 것 같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여행객들은 다들 자기들끼리 소근소근하며 불안한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으니까. 반대로 나기를 비롯한 현지인들은 ‘에 또야?’같은 얼굴이고. …다들 태평하네~
“…으, 귀 먹먹해라☆ 아무튼 뭐, 너무 걱정말자구요. 이번 태풍은 속도가 좀 느리다고는 했지만, 어차피 지나갈 테니까☆ 지나간 다음의 뒷정리는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만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싶어 유키는 더욱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사는 치바라면 그 정도만 해도 바로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기에 유키의 혼란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이 바닷가에선 이게 일상인건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너무 태평한 것인지 유키로서는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피소에 올 필요도 없다는 그 말에 유키는 더더욱 혼란을 느끼면서 순간 현기증을 느꼈는지 몸이 비틀했다.
"대, 대단하구나. 바닷가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도시라면 이 정도만 해도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태풍 경보를 보낼 거야. 아무튼 트럼프?"
생각도 못한 제안에 유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천둥소리가 들리자 유키는 두 귀를 꽉 막고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바라봤지만, 대체로 태평한 표정이었기에 유키는 애써 태평한척 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무, 무서워서 그러는건 아니야! 그냥 혼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하는 거야! 알지?!"
괜히 그렇게 부정을 해보이나 과연 상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아무튼 유키는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치우는 게 고생이니 가급적 물이 차지 않았으면 하지만☆ 아무튼 이 정도 비와 태풍은 매년 찾아오는 거니까,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피소로 오는 동안 몸이 젖는 게 싫어서 집에 있고 싶을 정도인데. 어쩐지 아사기리 씨의 몸이 비틀거린 것 같다. 앗, 혹시 대피소까지 길이 너무 멀어서 몸이 너무 젖었나?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여름 감기 의외로 독하고 말이지. 추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비바람이 부는데다 대피소 안은 상대적으로 서늘하기도 하고. 가져온 가방을 뒤적여 담요 하나를 꺼냈다.
“아, 추우세요? 이거 쓰실래요? 뒤집어 쓰고 있으면 심리적 안정에도 좋을 거예요, 아마☆”
천둥소리에 귀를 막고 얼얼한 표정을 지은 것도 나기는 다 봤다구요! 하지만 아사기리 씨를 위해 이 말은 아껴두는 걸로 하자. 아무튼 순순히-아무래도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준 아사기리 씨를 향해 다 안다는 뜻을 품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요, 트럼프! 엥, 아사기리 씨 신경쇠약 모르세요? 같은 짝 찾는거요. 둘이서 하면 누가 더 많이 찾나로 겨루지만 혼자서 하면 얼마나 빠르게 찾는지 기록을 갱신한다는 느낌으로 하는 거라구요. 하지만 둘이니까 다른 걸 해도 좋겠네요. 도둑잡기도 괜찮고, 포커는 어려워서 잘 모르지만…”
아사기리 씨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덧붙이고 손에 쥔 카드들을 다시 섞었다. 차르륵하는 소리가 제법 좋단 말이지, 이거.
천둥소리에 놀랐다는 것을 애써 감추려는 듯이 유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담요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진 않았는지 눈길을 담요 쪽으로 살며시 돌렸다. 덮으면 조금은 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결국 일단 몸만 덮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춥진 않았으나, 그래도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심리적 안정에는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고 있긴 한데 혼자서 하는 사람은 잘 못 봤거든. 보통은 내기를 하고 둘이서 하잖아?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혼자서 해 본 적은 없어. 조금 신기하네."
확실히 그런 거라면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고 스스로 납득하며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어차피 여기에 있어야 할 시간은 많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도둑잡기가 조금 더 끌렸는지 그는 도둑잡기를 제안했다.
"좋아. 그렇다면 소원권을 걸고 도둑잡기야.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거야!"
물론 그녀와의 내기는 2전 2패였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라도 따내면 소원권 하나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보여도 나, 포커페이스는 은근히 자신 있어서 어지간하면 도둑잡기는 안 지거든. 너는 어때? 미쿠모 양?"
“대피소에 안 오고 집에 있는 사람들도 꽤 많거든요. 제 친구들도 대체로 그렇고. 그래서 대피소에서 혼자 시간 보내려면 이런 카드게임 정도는 해야겠더라구요. 그치만 확실히 혼자서 하면 중간에 질려서 많이 안 하게 되긴 하지만… 아무튼 올해는 두 명이서 하는 게임이니 작년보다는 낫겠네요!”
아, 담요는 결국 가져가는 거군요! 담요를 건네주고 도둑잡기를 하자는 말에 카드를 파파팍 섞었다. 그나저나 또 소원권? 아사기리 씨, 소원권 두 개로는 부족했던건가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카드를 나눠 아사기리 씨 앞에, 그리고 나기 앞에 놓았다. 포커페이스에 자신있다고 주장하는 아사기리 씨, 하지만 나기도 만만치 않거든요?
“후훗☆ 나기는 포커페이스를 넘어서 나기페이스라구요! 아사기리 씨, 이번에도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라구요? 이번에도 진다면 나기의 소원, 세 개나 들어줘야 할 걸요? 램프의 요정 급이라구요?”
덧붙여서 아직도 소원은 뭘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 아니지, 아예 세 개를 채워놓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기가 몇 초간, 나기는 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시작할까요! 각오하세요, 아사기리 씨!”
나기 몫의 카드를 들어 짝이 맞는 것을 빠르게 버려갔다. 두 장, 네 장… 점점 버려지던 카드가 멈췄다. 손에는 5장의 카드가 남아 있다. 이제… 심리전 시작인가! 하지만 나기는 자신있으니까! 선심쓰듯이 카드를 든 손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먼저 뽑아도 괜찮아요, 아사기리 씨. 자, 뽑으시죠!”
/도둑잡기니까... 카드 5장에 조커가 1장! .dice 1 5. 돌려서 1이 나오면 조커인걸로 하자! 조커가 아닌 걸 뽑으면 카드를 버리니까 주사위 눈이 점점 줄어가는거지... ...이렇게 하면 될라나?
물론 하나를 없앤다고 해도 소원권은 또 하나가 남아있지만 두 개를 들어주는 것보다 하나를 들어주는 것이 그나마 나을테고 잘하면 오히려 모두 없앨 수도 있을 거라고 유키는 계산을 끝냈다. 물론 그것이 성립할지는 지금까지 모든 내기에서 전패한 유키로서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 정도는 없애기로 생각하며 유키는 게임을 제대로 신청했다.
두 사람이 하기에 카드는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고 남아있는 것은 총 다섯 장의 카드. 여기서부터는 말 그대로 심리전과 운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크게 망설이면 될 것도 안되는만큼 유키는 일단 자신만만하게 한 장을 뽑아냈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으로 하겠어!"
물론 그게 조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건 여기서는 조커를 뽑지 않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 것이었고, 빠져나갈 가능성이 큰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 나 말이야. 다음주에는 다시 돌아가야 해. 치바로."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유키는 카드를 확인했다. 과연 이 카드는 무엇일지 그는 절로 침을 삼켰다.
/그렇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그럼 카드 드로우! .dice 1 5. = 1 여기서 1이 걸려버리면 유키의 운은..(눈물)
당당하게 아사기리 씨가 뽑아간 카드는… 바로 조커였다! 마치 이름을 적으면 죽는 노트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씨익 웃었지만… 곧 들린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에, 벌써?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아니, 그렇게 됐구나. 하긴, 벌써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여름이 끝나간다는 신호나 다름이 없는 거지.
“하하-! 감사합니다 아사기리 씨☆ 바로 조커를 가져가시다니, 정말로 램프의 요정이 되고 싶으신건가요☆ …흐음, 뭐어, 그렇네요. 태풍도 올라왔고, 조금 있으면 여름도 끝날테니까…”
하지만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었다. 뭔가… 이번 여름방학은, 이번 여름은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래서 즐거워서, 어쩐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태풍이 오고, 여름이 끝나가고… 아사기리 씨도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으으, 나기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아아~ 다음주면 아사기리 씨랑도 이별이네요. 아쉬워라. 그러면 이번 태풍이 정말 무사히 지나가길 빌어야겠네요. 그렇게 흔하진 않은데, 몇 번인가 있긴 했거든요. 태풍 때문에 선로가 망가져서 복구하는데 몇 주 걸린다던가.”
괜히 그리 말하면서 카드를 집으려고 하는 손이 잠시 방황했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은 건지, 치바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렇게 동요할 일이었나. 남의 일처럼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드를 집어 확인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변명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나마 항변했다.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조커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눈동자가 크게 뒤흔들렸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나 이미 얼굴에서는 표가 다 났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나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뭐? 선로가 망가지기라도 해? 그건 곤란한데. 다다음주에는 개학을 하니까 적어도 다음주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부모님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해야하나."
물론 고모네에게 차를 얻어타서 돌아갈 수도 있었기에 사실상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었다. 다만 역시 선로가 끊어지거나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유키는 나기가 뽑는 카드를 바라봤다. 조커를 피해가고 페어를 만들어서 없애버리는 것에 괜히 아쉬움을 느끼면서 유키는 괜히 카드를 손으로 꽈악 잡았다.
"나도 아쉬워. 여기에서의 생활, 꽤 재밌었는데. 기회가 되면 또 올게. 그게 언제가 될진 지금으로서는 장담이 힘들지만 말이야. 돌아가면 입시 때문에 공부를 해야할테니까."
고3 생활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유키는 우선 카드를 뽑았다. 당연히 조커는 자신에게 있었으니 또 한 장을 없앨 뿐이었다. 이제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는 총 3장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유키가 무난하게 한장을 뽑아가서 또 줄어들었을테니 유키는 3장, 나기는 2장이 아닐까? 조커를 빼서 카드 수는 짝수여야 하니까! 아무튼 조커는 유키에게 있으니 다이스를 돌리지 않겠어!
“네에☆ 일단은 그런 걸로 해둘게요. 음, 아주 드물게 있으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거고… 아, 그치만 이번 태풍, 강한데 속도는 느리다고 했으니까… 또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가지 않을까? 최근에는 매년 그랬으니 말이야. 태평한 현지인 마인드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사기리 씨의 손에 들린 3장의 카드에 집중했다. 자아, 어느 쪽이 조커일까… 어느 걸 뽑아야 할까. 왼쪽? 오른쪽? 아니, 가운데? 슬쩍 아사기리 씨의 안색을 살피지만 음, 잘 모르겠어! 그리고 입시 이야기 때문에 잠시 정신에 타격이 들어왔다. 으으,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라니!
“아아, 입시… 으윽, 나기도 이제 머지 않았네요. 아사기리 씨의 입시가 끝나고 나면 나기 차례인가아… 뭐, 기회가 된다면 또 와주세요. 다음에 올 때도 온천 쪽에서 지내실 건가요? 저희 집 숙소,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음에 오면 한 번 이용해주세요☆ 아사기리 씨는 특별 할인 해드릴테니까… 에잇!”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잽싸게 카드 한 장을 뽑았다. 잡담하는 척하면서 뽑기! 그야말로 허를 찔러서 포커페이스를 소용없게 만드는… …아니, 생각해보니까 딱히 메리트가 없는 전법인가? 아무렴 어때. 카드만 잘 뽑으면 됐지! 그리고 그렇게 확인한 카드는…
“나, 나기가 저주하는게 아니라! 라디오랑 TV 뉴스에서 그랬다구요!! 아무튼… 이걸로 게임 끝! 나기의 승리네요!!”
잽싸게 낚아챈 카드는 조커가 아니라… 나기가 든 카드랑 페어인 카드였다! 시원하게 남아있던 카드를 홀랑 모두 버리고 두 손을 펼쳐서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걸로 나기의 승리! 아사기리 씨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었다! 기뻐하는 건 기뻐하는 거고, 정리는 정리지. 주섬주섬 다시 카드를 긁어모으고, 아사기리 씨가 내민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래서 소감은 어떠신가요, 램프의 요정 지니 씨? 아하하하☆ 아니 그치만 설마 또 나기가 이겨버릴 줄은~ 소원 생각하는 것도 일이네요 일~”
엄청나게 얄밉게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아무 말이나 하고 싶다! 어차피 아사기리 씨도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돈은 받는구나?라는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런거죠. 자영업의 세계는 냉혹하다구요. 물론 농담이에요! 친구니까요! 하루 정도라면 돈은 안 받을게요. 그나저나 정말이네요. 3전 3승. 나기, 의외로 승부에 재능이 있을지도…!”
/어째선지 진짜 나기랑 유키가 내기를 하면 모두 나기가 이기고 있어... 어떻게 된거지...?ㅋㅋㅋㅋㅋㅋ
"그러게. 정말로 램프의 요정이 되어버렸네. 소원을 세 개나 들어줘야 한다니. 지니의 기분은 이제 알 것 같아."
괜히 알라딘 영화에 나은 지니 모션을 취하면서 유키는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물론 소원을 세 개나 들어줘야 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물론 너무 곤란한 것을 말하면 그건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기가 그런 것을 바라진 않을 것 같다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믿음이 배신당할지, 아니면 보답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하루만 있다가 가야겠는걸? 고모네도 고모네지만,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줄 순 없으니까. 하지만, 하루만 그렇게 하는 거 멋대로 정해도 되는거야? 부모님에게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영업을 하는 것은 나기의 부모님일테니 나기가 멋대로 햇다가 나중에 한 소리 듣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유키는 괜히 궁금증을 가지며 이야기를 했고 유키는 조금 더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녀와 이야기하고 게임을 한 덕일까. 조금 전보다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유키는 괜히 다리에 덮어놓은 담요를 더욱 꽉 눌러 자신의 다리를 가리면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소원은 뭘로 할 거야? 이제 진짜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니까 빨리 안 쓰면 날아갈지도 몰라."
괜히 쭉 아껴뒀다가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쓴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일까. 그런 추측을 하기도 하면서 유키는 고개를 돌려 나기를 다시 바라봤다.
“괜찮아요~ 친구라고 말해두면 만사 오케이! 그리고 온천집네 친척이라고 하면 엄마아빠도 알 걸요?”
하루 묵는 걸로 피해까지야. 아무튼 문제없음! 아마! 아사기리 씨를 안심시키며 트럼프를 정리해서 넣었다. 아, 재미있게 놀았다. 노느라 빗소리도 잠시 듣지 못할 정도였어. 아사기리 씨도 아까 호들갑 떨던 때보다는 좀 안정된 것 같고. 역시 담요의 힘은 위대하다니까. 묵직하게 무게감이 있는 쪽이 좀 더 안정된다고 하지만 담요가 그렇게 무거우면 휴대하고 다니긴 어렵겠지… 잠시 다른 곳으로 새던 생각을 소원 쪽으로 되돌렸다. 맞다. 다음주에 돌아간다고 했지? 그럼 그 전까지 소원을 말해야 하는데! 으으!
“으앗!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으으~ 소원, 소원이라고 해도오… 으음…”
소원권을 얻은 건 좋은데 정작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하지만 기한은 점점 다가오고 있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으음, 음… 당장 떠오르는 거라고는…
“그럼 일단 첫 번째 소원! 나중에 다시 오면 그땐 하루 저희 집에서 묵는 거! 소원으로 확실히 해둘게요! 그리고 두 번째는… 태풍 지나가고 뒷정리 끝나고 나면 같이 카페에 가죠! 한숨 돌리자구요. 세 번째는… 아껴둘게요☆”
잠시 고민하다가 역시 킵해두기로 했다. 언젠가 아사기리 씨가 다시 올 때가 되면, 그때는 소원으로 뭘 할지 생각해두겠지? 미래의 나기,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어릴 때는 약속을 하면 꼭 하던 동작이지만 요즘은 잘 안하게 된 동작이다. 어기면 바늘 천 개 삼키기였던가, 지금 생각하면 무시무시하네! 3번째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껴두겠다고 했는데, 아사기리 씨의 말을 들으니 아차 싶었다.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영원한 이별의 플래그는 더욱 아니었지만!!
“영원한 이별 플래그라니! 적어도 재회의 플래그로 해달라구요! 그래요!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아사기리 씨가 이쪽에 오지 않아도, 어느 날 나기가 갑자기 전화해서 ‘나기 지금 치바역이에요. 하루 재워주세요. 소원권 지금 쓸거에요.’ 라고 할지도 모른다구요?”
물론 농담이고 장난이지만. 나기에겐 그런 용기는 없다구요 아마~ 하지만 사람 앞 일은 모른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뭐 아무튼, 영원한 이별보다는 재회의 플래그로서 이 소원권 하나를 남겨두는 걸로 하자. 애초에 영원한 이별 운운하기에는 아사기리 씨도 이쪽에 친척이 있고, 서로 사는 곳도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진 건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며칠을 날아야 하는 정도도 아니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사기리 씨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매년 이 정도는 오니까요, 아마 내일 오전까지는 내릴 것 같네요. 후후후… 나기는 핸드폰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게 트럼프라던가 챙겨왔지만요! 그치만 혼자서 하면 분명 지루했을 테니까, 아사기리 씨가 와줘서 다행이네요☆”
자랑스럽게 트럼프 카드를 들어올렸다가 다시 가방에 정리해서 넣었다. 그러다가 어쩐지 진지하게 들리는 말에 작게 웃었다. 아니이. 나중에 오면 꼭 들러달라고 말한 건 나기 쪽이긴 하지만.
“아하하☆ 엄청 진지한 느낌! 뭐어… 언제든 아사기리 씨가 편할 때 오면 된다구요. 언제든 말이예요. 자아, 그럼 재회의 약속도 했겠다. 이제 뭐 할까요? 마침 비도 오고 천둥도 치니까 무서운 이야기라도 할까요?”
/점심시간을 틈타... 답레를 놓고 갑니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갱신도 못했어.. ;ㅁ;
어쩌면 그녀라면 정말로 그렇게 치바로 찾아오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유키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집에서 재워주기는 조금 힘들테니, 근처의 싼 숙박시설을 미리 알아두는 것은 정말로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핸드폰을 손으로 만졌다.
"매년 이 정도로 온단 말이야? 대단해. 내가 살던 곳에서 이 정도로 오면 난리가 날거야. 물론 내가 오버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내가 살던 곳에선 이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일은 잘 없단 말이야."
바닷가 근처와 아닌 곳의 차이가 있는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유키는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우르르쾅쾅! 정말로 강한 천둥소리에 몸을 움찔하나 그렇다고 고개를 팍 숙이지는 않았다. 역시 이런 소리에는 약한지 그는 고개를 괜히 저으면서 애써 창문에서 시선을 확 돌렸다.
"뭔가 분위기상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재회의 플러그 찍었으니까 이런 말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 하지만 나 입시해야하니까 좀 많이 이후에 다시 올 것 같은데. 아무리 빨라도 입시가 끝난 이후의 겨울일까. 그럼 겨울바다를 볼 수 있겠네. 어떤 느낌일지 되게 궁금한걸. 여기는 눈 많이 와?"
하얀색 눈을 떠올리며 그는 하얀 해변가를 떠올렸다. 물론 자신의 상상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상상은 자유였기에 그렇게 마음껏 상상을 하다 유키는 빤히 무서운 이야기를 거론하는 나기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괜찮겠어? 미쿠모 양. 무서운 것에 약하잖아. 전에 귀신의 집도 그렇고.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난 지금 답레를 올리겠어! 피곤할땐 하루 푹 쉬는 것도 좋은거야! 화요일이 끝났으니 또 주말이 금방 올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난다. 누가 들으면 도시를 시샘해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줄 알겠네. 이런 시끄럽고 눅눅하고 난리통인 이벤트가 별로 없다니 도시는 평화로워서 좋겠다. 이런 점에서도 도시를 동경하게 되다니, 이건 나기도 예상 못했다구!
“입시가 끝난 후의 겨울이라, 그 때면 나기가 입시 스타트인게 아닌지☆ 농담이예요! 입시 스타트라고 해도 겨울에는 여유 있을 시기니까☆ 아, 눈이요? 제법 오는 편이에요. 홋카이도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런 북쪽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지만 도시보다는 많이 오는 편이 아닐까? 그보다 유키… 유키 씨가 유키(눈)을 찾고 있어. …잠깐 그런 말장난을 떠올렸지만 이건 입 밖으로 내지 않는걸로 하자. 응.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다가 어쩐지 이쪽을 빤히 보는 시선 감지! 아사기리 씨… 왜 나기를 그렇게 빤히 보는… 설마 속마음을 읽힌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행이야.
“에이, 그때는 시각적으로 무리였잖아요? 그 녀석들, 무진장 생생하게 꾸며놓고…! 아, 아무튼 지금은 익숙한 공간(?)이고, 시각적으로도 무서운 것도 없고 괜찮다구요! 무리하는 거 아니라구요☆ 앗, 그렇지. 과자 먹으면서 할까요? 나기, 이것저것 챙겨왔다구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에서 자잘한 과자들을 꺼냈다. 혹시라도 싸우지 않게 버섯이랑 죽순도 하나씩, 와사비맛 과자, 사탕… 누가 보면 놀러 왔나 싶을 것 같은데 정답이다 연금술사! 연례행사에 간식 챙겨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지?
“자! 이렇게 해놓고 하면 무서운 분위기도 한층 덜하겠죠!”
팔을 펼쳐서 과자를 내보이며 뿌듯하게 말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창문이 번쩍하더니 콰쾅!!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이거 과자 소개가 아니라 무슨 매드사이언티스트가 실험체를 소개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네. 나기도 이건 예상 못했어…
물론 직접 훗카이도에 간 것은 아니었으나 그곳과 비교해서 눈이 많이 오는 곳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유키는 추측했다. 아무튼 확실한건 눈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였기에 혹시나 겨울에 또 오게 되면 그땐 다른 느낌을 받기 좋겠다고 생각하며 유키는 절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모습도 일기장에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 유키의 얼굴에 밝은 표정이 떠올랐다.
과자가 깔려지고 이런저런 분위기를 만드는 나기의 모습에 유키는 맞다는 의미를 담아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럴 때는 뭐라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일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쳐도 먹을 것이 많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으나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선 익숙한 연례행사인 것으로 납득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창문이 번쩍하면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리자 유키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지, 지금도 분위기 엄청 살지 않아? 오히려 그때보다 더 분위기가 리얼리티즘인데?! 아무튼 내가 먼저 시작할게. 이런 건 먼저 하는게 좋으니까."
헛기침 소리를 내며 감정을 가라앉히면서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던 유키는 곧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사실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어디인진 모르겠지만 정말로 사이가 좋은 자매가 있었대.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지 음식을 먹을 때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고 선물을 받아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눠가지기로 아주 우애가 좋은 자매였대. 자매끼리는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모범적인 사례로도 소개가 되었는데 문제는 이 자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일어났어. 글쎄. 이 자매가 똑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벌어졌거든."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키는 일부러 과자를 반으로 똑똑 잘라나갔다. 마치 정말로 자매가 과자를 반으로 똑똑 잘라서 나눠가지는 것처럼.
"자매는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 좋아하는 남자를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듯이 행동하고 살벌해졌어. 하지만 그러다가 결국 자매는 생각하게 되었어. 자신들이 이렇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래. 싸우지 않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간단하고 또 간~~~단한 방법이었지."
이어 유키는 잔뜩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전기톱이 위이이이잉! 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면서 기습적으로 놀래키는 것을 시도했다.
"그렇게 자매는 만족스러워하면서 결국 깨질뻔한 사이를 되찾았다는 그런 이야기? 하하하."
무서운 이야기를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유키는 말을 마치면서 난처한 웃음소리를 강하게 내뱉으면서 괜히 과자를 머금었다. 이어 유키는 나기의 반응을 살폈다.
/갱신할게!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니 답레가 있어서 나도 올리겠어! 나기주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내리는구나. 여긴 비는 내리지 않지만 날씨가 흐릿하고 약간의 습기가 느껴져. 아마 내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려는 징조인걸까.
천둥번개는 좀 치지만 그 정도로 호러 분위기라고 하기엔 뭔가 애매하지~? 아무튼 첫 시작은 아사기리 씨가 끊었다. 사이가 좋아서 뭐든지 반으로 나눠야 하는 자매의 이야기. 똑, 똑, 뚜둑. 과자가 반으로 나눠지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려 나기도 모르는 새에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앗, 과자가 맛있어 보여서는 아니다! 결코!
한참을 집중하다보니 이야기는 어느 새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다. 자매가 택한 간단한 방법은 그야말로 간단했던 것이다. 사이좋게 절반으로 나눠가지기. 기습적으로 들려온 위이이잉!하고 마치 전기톱을 흉내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구나. 사람을 반으로 쪼개서 가지다니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낼 수 없는 결론! 그렇기에 괴담!
“간단하다면 간단한 방법이긴 하지만, 반토막이 난 시체를 가져봤자… 뒷맛이 찜찜한게 꽤 괜찮은 괴담이네요. 좋아! 그럼 이번엔 나기 차례네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슬쩍 자세를 바꿔 정좌를 하고, 슬며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의 적막함을 방해하듯 빗소리가 거세게 울린다. 이걸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혔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시작할까. 천천히, 나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의 밝은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게 낮은 톤으로.
“아사기리 씨도 아시다시피, 아와나미는 바닷가에 접한 마을이죠. 바다가 있으면 바다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으레 사고도 있기 마련이고요. 네, 아와나미에서도 생각보다 사고가 자주 일어났었대요. 요즘은 대부분 관광지에서 장사하느라 사고가 줄었지만, 과거엔 배를 타고 나갔기에 사고가 많았다고 해요. 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바다에게 사로잡혔다고 해서, 오봉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 전승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바다에게 잡힌 사람이 딱 하루,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있대요. 그게 언제인가 하면…”
번쩍하는 빛이 가시고 몇 초 후에 울리는 굉음.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소리. 그것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잠시 말을 멈추고 아사기리 씨를 빤히 바라본다. 이쯤 되었겠지 싶었을 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풍이 오면 파도가 엄청 거칠어지고, 때로는 넘쳐서 해안가를 넘어 밀려올 때도 있어요. 바닷속에 있었던 쓰레기나 해초, 때로는 물고기도 파도를 타고 땅으로 밀려 올라오기도 하고요. 그리고… 바다에게 잡혔던 그들도, 올라오는 거예요. 아사기리 씨, 나기도 그렇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 어째서 대피소까지 오는 지 아세요? 물이 넘치면 위험하니까, 바람이 불면 위험하니까. 그런 이유라고 둘러대지만, 사실 아와나미에 지어진 집들은 대체로 바람이나 물에 대한 대책이 다 되어있다구요. 그런데도 집에 있지 않고 대피소까지 오는 이유는… 그들이 집에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넘실대는 물결을 따라 뭍에 올라오는 날, 그리운 집을 찾아 돌아오는 날… 이런 태풍이 부는 날에는 확실하게 들리거든요. 거센 빗소리에 섞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리고 바닥을 쿵쿵쿵! 세 번 두드리고서 아사기리 씨의 반응을 살폈다. 후후-! 나기의 괴담, 어땠을라나! 살짝 저리기 시작한 다리에 정좌를 풀고 편하게 앉아서 과자를 하나 집어들었다. 나기가 했지만 멋진 괴담이야. 특히 장소와 시기를 맞출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기도 나기에게 점수 80점은 주고 싶을 정도!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에 유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 웃음소리를 냈다. 자신이 잘 표현하지 못한 것 뿐일테고 이런 이야기로 비명을 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괴담이라는 것 자체가 직접 눈으로 보여야 무서운 거지, 듣기만 하면 그런가 싶은 것이 많은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그는 애써 생각했다.
아무튼 이번에는 나기의 차례. 아와나미의 전승 같은 것일까 생각을 하며 그는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아와나미는 바닷가니까 물 일을 하는 이가 많을테고 그러면 사고를 당한 이도 많을 거라는 것에는 유키도 공감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바다에게 사로잡혀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돌아올수 있는 날이라는 말에 유키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그 타이밍에 굉음이 쾅쾅 울려서 유키의 몸이 순간 움찔했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이 가는지 유키의 두 눈은 나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태풍이 오는 날.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이었다. 바다에 사로잡힌 이들이 빠져나올수 있는 날이라는 말에 괜히 긴장감 어린 표정을 짓다가 대피소까지 이야기가 나오자 그 리얼리티함이 괜히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유키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라는 말과 동시에 쿵쿵쿵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무섭다기보다는 괜히 놀랐다는 것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유키는 괜히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분위기 제법 잘 사는데? 훨씬 리얼리티한 이야기야. 마지막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정말로 그런 전승이나 전설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아무튼 바다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수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라도 태풍 치는 날에 빠져나올 수 있다면 빠져나왔을거야. 물론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겠지만."
이미 바다에 사로잡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의 미련을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은 후에 나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와나미는 정말 사람들이 끈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사람이 적은 것도 그렇지만, 이런 시기에 이렇게 한 곳에 모여있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좋건 싫건 친분이 쌓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괜히 부러워지는걸. 치바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야."
/답레와 함께 갱신이야! 오늘도 비라니! 새벽에는 천둥벼락이 엄청 치던데 결국 낮에 또 비가 오네. 주말에는 나가서 놀고 싶단 말이에요!! 물론 수요일에는 날씨가 맑다고는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너무 현실같으면 너무 무섭잖아요? 특히 오늘 같은 날은 정말로 밖에서 듣고 있다가 자기 이야기인줄 알지도 모르니까, 끝은 엉성하게 맺는 편이 좋다구요☆”
농담을 섞어서 엉성한 마지막에 대한 변명을 한다. 아니 뭐, 그치만 괴담의 마무리라는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고 말이야. 아무튼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과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죽순 과자, 맛있어! 버섯도 좋지만 나기는 역시 죽순이 좀 더 좋다고~
“그치만 이런 날, 사납게 요동치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뭔가가 올라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면 안 되지만요!”
그리고 수영을 아무리 좋아해도 바다에서 못 나오게 되어버리면 그건 좀 많이 곤란한 일이 아닌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과자를 우물거리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대신 태풍이 올라온 바다를 봤던 일을 떠올리면 얘기하다가, 이쪽을 보는 아사기리 씨와 눈이 마주쳤다.
“에에… 좋건 싫건 친분이 쌓이는 거라던가, 끈끈한 거… 의외로 귀찮기도 하다구요? 건너 건너 다 아는 사이니까 비밀 같은 것도 별로 없고, 그래서 뭔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나기는 적당히 거리 두고 사는 도시가 부러운데~”
/수요일은 평일이잖아! 주말에 맑은 날씨 줘어어... 유키주가 있는 곳도 비가 오는구나. 새벽에 천둥번개까지 치다니...
"파도 엄청 높지 않아? 이런 날씨엔 말이야. TV로만 봤지만 완전 크던데. 쓰나미 정도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한번은 직접 보고 싶지만 지금 나가면 난리가 나겠지?"
호기심이 살며시 떠오르지만 아마 그랬다간 고모와 고모부에게 등짝 스매싱을 신나게 맞을 거라고 생각하며 유키는 괜히 키득키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보고 싶고 일기장에 쓰고 싶고 SNS에 올리고 싶어도 등짝 스매싱을 맞으면서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그 와중에 거리감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 확실히 자신은 도시 사람이고 그녀는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며 유키는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어투로 그 말에 대답했다.
"그래도 난 가끔 그런 것이 좋더라. 내가 사는 치바에선 오버하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때가 많아. 솔직히 나도 내가 사는 빌라에 누가 사는지 다 아는 것이 아닌걸. 하물며 내가 사는 층에 있는 사람들 중 나와 그렇게 친한 사람도 없어서 정말 타인 그 자체야. 물론 여기에서 살다보면 나도 너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과자를 하나 더 먹으면서 유키는 고개를 돌려 대피소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 아무리 봐도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신선한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그 상태에서 유키는 입을 열었다.
"이래서 도시 사람은 시골을 동경하고, 시골 사람들은 도시를 동경하나봐. 물론 아와나미가 시골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곳보다 작은 규모긴 하니까. 그래도 난 이런 분위기가 좋더라. 여러 사람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그런 분위기. 그러니까 미쿠모 양과도 친해지고 그런 거 아니겠어?"
/아니야! 수요일은 휴일이란 말이야! (눈물) 또 지금은 살짝 그치긴 했는데 아마 또 비가 오지 않을까 싶긴 해. 오늘은 계속 비가 온다고 들었거든.
“엄청 높죠. 해변가로 내려가면 위험하니까 좀 높은 지대에서 조금 떨어져서 봐야할 정도? 지금 나가면… …뭐 괜찮지 않을까요? 나기, 우비도 챙겨왔어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아직 부모님도, 아사기리 씨의 친척분들도 오지 않은 걸 확인했다. 음, 나가려면 못 나가는 것도 아니긴 한데… 하지만 주변에 있는 현지인들이 나중에 슬쩍 말을 전해서 어떻게든 알려지긴 할 테니, 결국 혼나는 걸 아예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걸 각오하고 있다면, 나기가 우비 정도는 지원해줄게요! 뭐, 고개를 저으며 웃는 걸 보니 아사기리 씨도 진짜로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나기도 장난스레 말한 거지만.
“으음, 그치만 나기는 그런 게 편해 보이는 걸요. 앗, 그치만 도움이 필요할 땐 조금 곤란하려나… 으으… 서로 동경한다니. 도시에는 뭐든 있으니까, 나기는 도시가 더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러네요… …그렇네요. 그런 분위기라서 아사기리 씨랑 친해질 수 있었던 걸지도.”
생각해보니 완전 시골 사람처럼 굴었었어! 나기! 도시에서 왔다고 두근두근하면서 찾아갔었지! 완전 시골 사람이잖아! …어쩔 수 없지. 시골 사람인 건 맞으니까. 뒤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에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가 슬금슬금 다른 과자로 손을 뻗었다. 부끄러울 땐… 과자를 먹자…
“…앗, 그럼 치바에서는 대피소 안 쓰나요? 태풍… 이렇게 오는 일은 드물다고 했으니 태풍이 올 땐 안 쓰겠지만, 뭐… 지진이라던가? 그럴 때는 쓰지 않아요?”
"아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양할게. 나중에 어떻게든 전해질 것 같고 그러면 다시는 여기 못 올 것 같거든. 아니. 그건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미쿠모 양도 혼날 수도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혼나는 상황까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유키는 두 손을 휘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명백한 거절 의사를 보이면서 유키는 그저 창밖의 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천둥벼락이 치는 상황 속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한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방금 말한대로 막상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요청하기 힘들어. 물론 아는 사람이면 상관없는데 모르는 사람이면 딴데 가서 알아보라고 문전박대를 하는 일도 흔하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여기는 정말 대단했지. 온천에서 일하는데 굳이 구경오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아주 살짝 나기를 겨냥하듯이 이야기를 하면서 유키는 보란듯이 키득거렸다. 물론 이후에야 내는 불평이 아니라 그저 장난스러운 어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지진은... 대피소로 갈 정도로 크게 온 것은 그다지 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대피소로 간다고 해도 딱히 말은 하지 않고 핸드폰만 바라보다가 끝나면 바로 돌아가니까. 주변에 말을 걸고 그런 이는 본 적이 없었어. 물론 친구들끼리 만나면 말을 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어색함만 가득하거든."
이전에 대피소로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말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했던 침묵의 공간을 체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유키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며 고개를 크게 저었다.
"미쿠모 양이라도 그런 분위기는 굉장히 싫을걸?"
/나기주 수요일에 일하는거야? (눈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거야?! 공휴일인데! 공휴일인데! 할 수 없이 내가 나기주 몫만큼 놀고 쉬어야겠어. (도주)
“으윽… 아, 알고 있어요. 나기도 알고 있다구요. 완전 촌스러운 짓이었다는거! 그치만 궁금했는걸!”
과장을 섞어서 허둥지둥대며 둘러대지만, 과장을 섞은 만큼 장난이기에 나기는 지금 웃고 있다. 그래, 웃고 있는 것이다! 절대 부끄러워서가 아니야! 장난이니까 웃는 거야! 아, 아무튼. 일부러 그렇게 말하다니 아사기리 씨도 정말…!
“흐음, 상상해보니까 정말… 음, 조용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 쓸쓸하기도 하네요. 싫다기보다는 뭔가 외로울지도…”
너무 거리가 가까운 것도 귀찮지만 너무 먼 것도 외로워서 좀 그럴지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나기는 도시를 동경하는 것보다는 그냥 지금 상태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걸 동경했을지도 모르겠어…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도시에 귀여운 게 더 많은 건 사실이니까 도시를 동경하는게 맞는 것 같다. 어째 얼렁뚱땅 결론을 내려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번쯤은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네요☆ 귀여운 것도 많을 거고, 아와나미에선 이웃 사이가 가까웠으니까 한 번은 좀 이웃 간의 교류가 적은 것도 체험해보고 싶다구요☆”
네가 추구하는 귀여움. 그렇게 말을 덧붙이면서 유키는 더욱 보란듯이 키득거렸다. 장난끼가 제대로 발동했는지 그 웃음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허나 어떻게든 겨우겨우 멈추게 하면서 유키는 과자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은 후에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 은근히 대피했다가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니까. 물론 나에게 있어선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크게 뭐라고 느끼진 않았지만 여기서의 모습을 보면 그건 또 아닐지도 모르겠어. 미쿠모 양이 없다고 해도 아마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을 것 같거든."
그냥 자신의 생각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유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기에게 한 가지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입시를 성공해서 도시 대학으로 진학해보는 건 어때? 그러면 적어도 몇 년은 도시에서 살 수 있잖아. 대학이 그렇다고 하는데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을 거 아니야. 그러다가 나중에 정말로 미쿠모 양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해야할 거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유키는 잊지 않았다. 아무래도 도시에 상대적으로 수준이 높은 대학이 많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