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좋은거잖아! 푹 쉬는것이 얼마나 좋은건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라고 하지? 나기는 뭘 하면서 보낼지가 궁금해졌어! 유키 같은 경우엔 아마 자신의 사촌동생들에게 붙들려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싶어. 영화관에 가서 어린이 만화도 보다가 놀이터도 데려가주고 그러다가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그런 느낌으로!
창문을 매섭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섞여 간간이 천둥 소리도 들린다. 어제부터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거칠어진 파도로 짐작했지만-사실 라디오나 아침의 TV 뉴스에서 지겹게 듣기도 했지만-아무래도 오늘은 하루종일 태풍이 몰려올 예정인 것 같다. 뭐라고 했더라. 크기도 크고 세기도 센데 속도가 느려서 지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던가. 덧문을 닫자 빗소리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까진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나가면 머리가 엉망이 되니까 귀엽지 않은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매년 아무 일도 없으니까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되나~ 그치만 만약이라는게 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약간의 귀찮음을 섞어 투덜거리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조금 더 정리를 하고 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비옷을 걸치고 우산까지 챙겨들어,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현관을 연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가 우습다는 듯 세찬 빗줄기와 바람이… …매년 보는 거지만 이 수평으로 내리는 비(?)는 볼때마다 놀랍다니까. 뭐, 그래서 비옷을 입은 거지만. 우산은 펴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그저 부러지기만 할 것 같아 그냥 접은 채로 터벅터벅 대피소를 향해 걸었다. 조금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 곳이다. 바닷물이 넘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한 장소. 대피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비교적 태평한 얼굴, 아니면 지루하다는 얼굴을 한 사람들은 현지인이다. 매년 겪는 일이라 아마 태풍이 지나간 후의 뒷정리가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불안한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거나 밖을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여행객일 확률이 높지. 이것도 늘 보던 풍경이다. 나기는 어느 쪽인가 하면 익숙해진 쪽이니까! 여유롭게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만들어 앉아서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들었다.
“음~ 트럼프가 있으니까 신경쇠약*이라도 할까.”
매년 하는 거지만 솔직히 대피소에서만 하고 평소에는 잘 안하니까, 실력은 언제나 제자리다. 기록 갱신을 목표로!하기에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저 심심풀이니까~ 일단 카드를 늘어놓고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다가… 어라, 아는 얼굴이 있다. 슬쩍 손을 흔들면서 아는 체를 해본다.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고 유키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다음주 쯤이면 집에 가야할테니 슬슬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건만 날씨는 그 뜻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생각보다 빗줄기도 거세고 천둥벼락에 바람도 몰아치고 있어 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자신이 살던 치바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바람이었다. 더 무서운건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는 아 또 왔네 정도의 표정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떨결에 대피소로 향하자 유키는 더욱 당황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모두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이 정도 태풍은 여기선 아무 것도 아닌건가 싶어 자신이 잘못된 것인지 유키는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흔들면서 침을 삼켰다. 오기 전에 온천을 보니 물이 범람한 것을 넘어서서 아주 난리가 났던데 정말로 괜찮은건지. 지금 이 사람들을 찍어서 SNS에 올릴까 했지만 뭔가 그 그림이 이상할 것 같아 유키는 애써 그 충동을 자제했다.
"아. 미쿠모 양."
그러는 도중 갑자기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키는 고개를 돌려 나기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납득을 하며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나 태연해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유키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비가 엄청 오는 정도가 아니라 왕창 아니야? 지금 이 태풍 괜찮은 거 맞아? 나중에 다 끝나고 나가면 막 집이 무너지고 물바다가 되어있고 그런 거 아니야?! 왜 다들 이렇게 태평할 수 있는거야?!"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당황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유키 혼자 뿐이었다. 적어도 그가 사는 치바에선 이 정도의 비바람을 보는 일은 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감한 웃음소리와 함께 호들갑이 섞인 말이 주르르륵~ 아~ 알죠~ 알아요~ 운 나쁘게 태풍이 올라오는 날과 겹쳐서 여행을 온 손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니까~ 걱정이 섞인 랩(?)을 하듯 말하는 아사기리 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래도 지금 나기의 표정은 태평하게 웃고 있지만. 일단 아사기리 씨를 향해 진정하라며 손짓했다. 워워. 진정하라구요.
“아하하☆ 그건 그렇네요~ 바람도 많이 불어서 완전 옆으로, 수평으로 비가 내리니까요☆ 우산도 그냥 날아갈 정도고. 음, 그래도 의외로 집은 튼튼하고 물바다가 된다고 해도 발목 잠기는 정도가 최대일걸요? 그나마도 집 안까지 물이 들어차는 경우는 드물고. 그리고 다들 태평한 이유는 매년 있는 연례행사 같은 느낌이니까요?”
실은 대피소에 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가라고 해서 온거라구요☆ 태평한 소리를 하나 더 얹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늘어놨던 카드를 치우고 나기의 맞은 편을 톡톡 두드리며 아사기리 씨에게 권했다. 두 명이라면 신경쇠약이 아니라 도둑잡기도 할 수 있겠어!
“아, 마침 잘 됐네요 아사기리 씨! 저 심심해서 트럼프 카드로 놀려던 참인데, 같이 하실래요?”
그렇게 권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창문으로 번쩍하는 빛이 비치고 곧바로 큰… 아니, 상당히 큰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야, 이거 바로 근처, 아니 아니, 바로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큰 소리인데. 배꼽 달아나겠는걸? 귀가 조금 먹먹해질 정도였어…! 그나저나 외지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카드놀이를 권하는데에 최악의 타이밍일 것 같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여행객들은 다들 자기들끼리 소근소근하며 불안한듯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으니까. 반대로 나기를 비롯한 현지인들은 ‘에 또야?’같은 얼굴이고. …다들 태평하네~
“…으, 귀 먹먹해라☆ 아무튼 뭐, 너무 걱정말자구요. 이번 태풍은 속도가 좀 느리다고는 했지만, 어차피 지나갈 테니까☆ 지나간 다음의 뒷정리는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만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싶어 유키는 더욱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사는 치바라면 그 정도만 해도 바로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기에 유키의 혼란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이 바닷가에선 이게 일상인건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너무 태평한 것인지 유키로서는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피소에 올 필요도 없다는 그 말에 유키는 더더욱 혼란을 느끼면서 순간 현기증을 느꼈는지 몸이 비틀했다.
"대, 대단하구나. 바닷가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도시라면 이 정도만 해도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태풍 경보를 보낼 거야. 아무튼 트럼프?"
생각도 못한 제안에 유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천둥소리가 들리자 유키는 두 귀를 꽉 막고 얼얼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바라봤지만, 대체로 태평한 표정이었기에 유키는 애써 태평한척 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무, 무서워서 그러는건 아니야! 그냥 혼자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하는 거야! 알지?!"
괜히 그렇게 부정을 해보이나 과연 상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아무튼 유키는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치우는 게 고생이니 가급적 물이 차지 않았으면 하지만☆ 아무튼 이 정도 비와 태풍은 매년 찾아오는 거니까,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피소로 오는 동안 몸이 젖는 게 싫어서 집에 있고 싶을 정도인데. 어쩐지 아사기리 씨의 몸이 비틀거린 것 같다. 앗, 혹시 대피소까지 길이 너무 멀어서 몸이 너무 젖었나?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여름 감기 의외로 독하고 말이지. 추워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비바람이 부는데다 대피소 안은 상대적으로 서늘하기도 하고. 가져온 가방을 뒤적여 담요 하나를 꺼냈다.
“아, 추우세요? 이거 쓰실래요? 뒤집어 쓰고 있으면 심리적 안정에도 좋을 거예요, 아마☆”
천둥소리에 귀를 막고 얼얼한 표정을 지은 것도 나기는 다 봤다구요! 하지만 아사기리 씨를 위해 이 말은 아껴두는 걸로 하자. 아무튼 순순히-아무래도 무서워서 그러는 것 같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준 아사기리 씨를 향해 다 안다는 뜻을 품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요, 트럼프! 엥, 아사기리 씨 신경쇠약 모르세요? 같은 짝 찾는거요. 둘이서 하면 누가 더 많이 찾나로 겨루지만 혼자서 하면 얼마나 빠르게 찾는지 기록을 갱신한다는 느낌으로 하는 거라구요. 하지만 둘이니까 다른 걸 해도 좋겠네요. 도둑잡기도 괜찮고, 포커는 어려워서 잘 모르지만…”
아사기리 씨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덧붙이고 손에 쥔 카드들을 다시 섞었다. 차르륵하는 소리가 제법 좋단 말이지, 이거.
천둥소리에 놀랐다는 것을 애써 감추려는 듯이 유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담요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진 않았는지 눈길을 담요 쪽으로 살며시 돌렸다. 덮으면 조금은 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결국 일단 몸만 덮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춥진 않았으나, 그래도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심리적 안정에는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알고 있긴 한데 혼자서 하는 사람은 잘 못 봤거든. 보통은 내기를 하고 둘이서 하잖아?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혼자서 해 본 적은 없어. 조금 신기하네."
확실히 그런 거라면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고 스스로 납득하며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어차피 여기에 있어야 할 시간은 많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도둑잡기가 조금 더 끌렸는지 그는 도둑잡기를 제안했다.
"좋아. 그렇다면 소원권을 걸고 도둑잡기야.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거야!"
물론 그녀와의 내기는 2전 2패였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라도 따내면 소원권 하나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보여도 나, 포커페이스는 은근히 자신 있어서 어지간하면 도둑잡기는 안 지거든. 너는 어때? 미쿠모 양?"
“대피소에 안 오고 집에 있는 사람들도 꽤 많거든요. 제 친구들도 대체로 그렇고. 그래서 대피소에서 혼자 시간 보내려면 이런 카드게임 정도는 해야겠더라구요. 그치만 확실히 혼자서 하면 중간에 질려서 많이 안 하게 되긴 하지만… 아무튼 올해는 두 명이서 하는 게임이니 작년보다는 낫겠네요!”
아, 담요는 결국 가져가는 거군요! 담요를 건네주고 도둑잡기를 하자는 말에 카드를 파파팍 섞었다. 그나저나 또 소원권? 아사기리 씨, 소원권 두 개로는 부족했던건가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카드를 나눠 아사기리 씨 앞에, 그리고 나기 앞에 놓았다. 포커페이스에 자신있다고 주장하는 아사기리 씨, 하지만 나기도 만만치 않거든요?
“후훗☆ 나기는 포커페이스를 넘어서 나기페이스라구요! 아사기리 씨, 이번에도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라구요? 이번에도 진다면 나기의 소원, 세 개나 들어줘야 할 걸요? 램프의 요정 급이라구요?”
덧붙여서 아직도 소원은 뭘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 아니지, 아예 세 개를 채워놓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기가 몇 초간, 나기는 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시작할까요! 각오하세요, 아사기리 씨!”
나기 몫의 카드를 들어 짝이 맞는 것을 빠르게 버려갔다. 두 장, 네 장… 점점 버려지던 카드가 멈췄다. 손에는 5장의 카드가 남아 있다. 이제… 심리전 시작인가! 하지만 나기는 자신있으니까! 선심쓰듯이 카드를 든 손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먼저 뽑아도 괜찮아요, 아사기리 씨. 자, 뽑으시죠!”
/도둑잡기니까... 카드 5장에 조커가 1장! .dice 1 5. 돌려서 1이 나오면 조커인걸로 하자! 조커가 아닌 걸 뽑으면 카드를 버리니까 주사위 눈이 점점 줄어가는거지... ...이렇게 하면 될라나?
물론 하나를 없앤다고 해도 소원권은 또 하나가 남아있지만 두 개를 들어주는 것보다 하나를 들어주는 것이 그나마 나을테고 잘하면 오히려 모두 없앨 수도 있을 거라고 유키는 계산을 끝냈다. 물론 그것이 성립할지는 지금까지 모든 내기에서 전패한 유키로서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하나 정도는 없애기로 생각하며 유키는 게임을 제대로 신청했다.
두 사람이 하기에 카드는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고 남아있는 것은 총 다섯 장의 카드. 여기서부터는 말 그대로 심리전과 운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크게 망설이면 될 것도 안되는만큼 유키는 일단 자신만만하게 한 장을 뽑아냈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으로 하겠어!"
물론 그게 조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건 여기서는 조커를 뽑지 않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 것이었고, 빠져나갈 가능성이 큰 법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쿠모 양. 나 말이야. 다음주에는 다시 돌아가야 해. 치바로."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유키는 카드를 확인했다. 과연 이 카드는 무엇일지 그는 절로 침을 삼켰다.
/그렇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그럼 카드 드로우! .dice 1 5. = 1 여기서 1이 걸려버리면 유키의 운은..(눈물)
당당하게 아사기리 씨가 뽑아간 카드는… 바로 조커였다! 마치 이름을 적으면 죽는 노트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씨익 웃었지만… 곧 들린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에, 벌써?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아니, 그렇게 됐구나. 하긴, 벌써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여름이 끝나간다는 신호나 다름이 없는 거지.
“하하-! 감사합니다 아사기리 씨☆ 바로 조커를 가져가시다니, 정말로 램프의 요정이 되고 싶으신건가요☆ …흐음, 뭐어, 그렇네요. 태풍도 올라왔고, 조금 있으면 여름도 끝날테니까…”
하지만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었다. 뭔가… 이번 여름방학은, 이번 여름은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래서 즐거워서, 어쩐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태풍이 오고, 여름이 끝나가고… 아사기리 씨도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으으, 나기는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아아~ 다음주면 아사기리 씨랑도 이별이네요. 아쉬워라. 그러면 이번 태풍이 정말 무사히 지나가길 빌어야겠네요. 그렇게 흔하진 않은데, 몇 번인가 있긴 했거든요. 태풍 때문에 선로가 망가져서 복구하는데 몇 주 걸린다던가.”
괜히 그리 말하면서 카드를 집으려고 하는 손이 잠시 방황했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은 건지, 치바로 돌아간다는 말이 그렇게 동요할 일이었나. 남의 일처럼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드를 집어 확인했다.
물론 말도 안되는 변명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나마 항변했다.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조커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눈동자가 크게 뒤흔들렸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나 이미 얼굴에서는 표가 다 났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나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뭐? 선로가 망가지기라도 해? 그건 곤란한데. 다다음주에는 개학을 하니까 적어도 다음주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부모님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해야하나."
물론 고모네에게 차를 얻어타서 돌아갈 수도 있었기에 사실상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었다. 다만 역시 선로가 끊어지거나 망가지는 것은 원치 않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유키는 나기가 뽑는 카드를 바라봤다. 조커를 피해가고 페어를 만들어서 없애버리는 것에 괜히 아쉬움을 느끼면서 유키는 괜히 카드를 손으로 꽈악 잡았다.
"나도 아쉬워. 여기에서의 생활, 꽤 재밌었는데. 기회가 되면 또 올게. 그게 언제가 될진 지금으로서는 장담이 힘들지만 말이야. 돌아가면 입시 때문에 공부를 해야할테니까."
고3 생활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유키는 우선 카드를 뽑았다. 당연히 조커는 자신에게 있었으니 또 한 장을 없앨 뿐이었다. 이제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는 총 3장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유키가 무난하게 한장을 뽑아가서 또 줄어들었을테니 유키는 3장, 나기는 2장이 아닐까? 조커를 빼서 카드 수는 짝수여야 하니까! 아무튼 조커는 유키에게 있으니 다이스를 돌리지 않겠어!
“네에☆ 일단은 그런 걸로 해둘게요. 음, 아주 드물게 있으니까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단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거고… 아, 그치만 이번 태풍, 강한데 속도는 느리다고 했으니까… 또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가지 않을까? 최근에는 매년 그랬으니 말이야. 태평한 현지인 마인드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사기리 씨의 손에 들린 3장의 카드에 집중했다. 자아, 어느 쪽이 조커일까… 어느 걸 뽑아야 할까. 왼쪽? 오른쪽? 아니, 가운데? 슬쩍 아사기리 씨의 안색을 살피지만 음, 잘 모르겠어! 그리고 입시 이야기 때문에 잠시 정신에 타격이 들어왔다. 으으,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라니!
“아아, 입시… 으윽, 나기도 이제 머지 않았네요. 아사기리 씨의 입시가 끝나고 나면 나기 차례인가아… 뭐, 기회가 된다면 또 와주세요. 다음에 올 때도 온천 쪽에서 지내실 건가요? 저희 집 숙소,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음에 오면 한 번 이용해주세요☆ 아사기리 씨는 특별 할인 해드릴테니까… 에잇!”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잽싸게 카드 한 장을 뽑았다. 잡담하는 척하면서 뽑기! 그야말로 허를 찔러서 포커페이스를 소용없게 만드는… …아니, 생각해보니까 딱히 메리트가 없는 전법인가? 아무렴 어때. 카드만 잘 뽑으면 됐지! 그리고 그렇게 확인한 카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