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근처에 자리한 숙박업소들은 지금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여름, 방학, 바다라는 삼박자에 맞춰 피서객이 몰려왔고, 작년처럼 올해도 많은 손님들이 찾고 머물고 있으니까. 물론 그건 나기네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손님을 받고 안내하고 손님이 나간 방의 정리를 하고… 바쁜 부모님을 돕느라 나기도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바탕 손님이 나가고 오고를 반복하다 일단 오늘의 체크인은 모두 끝났다. 바쁜 것이 잠시 끝난 지금, 나기는 한숨 돌리기 위해 집을 나와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바쁘게 일한 다음에는… 잠시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오는 법이다.
“…응? 앗! 아사기리 씨?”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을 쐬며 해변가를 걷다가, 시끌벅적하게 바다에서 노는 피서객을 찬찬히 보며 시선을 돌리던 그 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라? 온천 쪽에서 일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도 일단은 관광객으로 온 사람이었다. 맞아, 그랬지. 그럼 바닷가를 보러 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혼자 그리 생각을 끝내고 천천히 다가가며 상대를 부른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얼굴- 아사기리 유키를 향해서.
“아핫☆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아사기리 씨! 수영이라도 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태닝?”
분명히 소년은 이곳에 일을 도와주러 내려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황금기인 방학을 온천 일로만 보내기엔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는지 이전부터 오늘은 꼭 바다에서 놀고 싶다고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에게 요청하여 하루 쉬는 날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로 가야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을 하며 소년은 돗자리에 파라솔까지 구한 후에 해변가에 자리를 잡았다.
"좋아! 오늘은 마음껏 놀아볼까!"
비록 혼자뿐이라고는 하나, 분위기를 제대로 차리기 위해 소년이 가지고 온 짐은 꽤 여러가지 있었다.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불판에 버너, 그리고 고기 어느 정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수박 도시락까지. 원래는 수박을 한 통 가져오려고 했지만 꽤 무게가 무거울 것 같아 결국 잘라서 도시락처럼 만들어서 가져왔다는 사실은 외면하며 소년은 따뜻한 모래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태닝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바다까지 왔으니 여름 햇살을 조금 즐기고 싶은 마음에 소년은 싱글벙글 웃으며 따스함을 즐겼다.
그러는 와중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고 곧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웃으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미쿠모 양! 정말로 우연인걸? 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바닷가에서 놀까 해서 왔어. 그래도 아와나미까지 왔는데 바다에 안 오면 좀 그렇잖아? 사실 어릴 적부터 여기에 오면 항상 바닷가는 꼭 들렸거든. 올해도 마찬가지고."
문뜩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소년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지인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근처에 있던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은 남아있었기에 괜히 그때를 떠올리다 소년은 가만히 자신의 옷을 털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짐이 이것저것 한가득 있는 걸 보니 정말 제대로 벼르고 온 건가 싶었다. 파라솔에 돗자리까지 있는 시점에서 이미 확정이지. 응. 고개를 끄덕이던 나기가 어릴 적부터라는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지만- 금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하긴, 온천 일을 돕는 것도 친척집 일을 돕는 거였으니, 아와나미에 친척이 산다면 어릴 때부터 놀러 왔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가만히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어릴 적 추억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네 맞아요☆ 좀 전까지 엄청 바빴거든요~ 그래서 한 숨 돌릴 겸 나왔어요! 아사기리 씨도 아시죠? 손님이 엄청 왔다가 간 다음에는 뭔가… 도망쳐 나오고 싶잖아요…?”
밝게 말하다가 점점 죽은 눈이 되고 힘이 없어지는 것 같다면… 착각이 아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손님이 몰아치는 날이었고, 부모님을 돕는 건지 중노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지경까지 갔다가 간신히 돌아온 것이다. 미적대다간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 같아 재빨리 나왔는데,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아, 아무튼! 바닷가에서 노는 거면… 수영인가요? 수영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네요~”
말 그대로, 지금 바다에는 사람이 그득했다. 피서객들이 신이 나서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 여기서도 잘 보일 정도로. 물 반, 사람 반인 상황에서도 즐겁게 물에 들어갈 수 있다면 딱히 상관은 없지만… 제대로 수영을 하고 싶다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사기리 씨가 꼭 수영을 하러 왔다는 보장은 아직 없지? 파라솔과 돗자리를 보면 그냥 쉬러 온 것 같기도 하고… 도시락도 저렇게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확정이 아니니 일단 떠보는 말을 던지며 바다 쪽을 바라봤다. 응, 역시 사람이 많다.
"그치? 우리 온천도 뭔가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꽤 바쁠때가 있거든. 슬슬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기야? 여기? 하기사 지금은 여름방학 시즌이니까! 그런데 미쿠모 양. 괜찮아?"
죽은 눈이 되어가고 힘이 없어지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크게 당황하며 살며시 그녀의 눈 바로 앞에 손을 삭삭 흔들었다. 물론 그녀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거나, 혹은 의식을 잃는다거나 하는 상황은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소년은 그녀가 꽤 일에 시달리다가 여기로 나왔다는 것을 인지하며 살며시 돗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영도 하고, 수박도 먹고, 가볍게 고기도 구워먹을까 해. 모래찜질을 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어때? 미쿠모 양도 쉬는 중이라면 여기서 쉬다가 갈래? 물론 일이 너무 바빠서 가야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일단 혼자서 노는 것보다는 같이 노는 것이 좀 더 즐겁다고 생각하기에 소년은 그녀에게 같이 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누가 보면 여름에 현지인을 헌팅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상관없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런 것을 두려워해서 여기서 누군가와 같이 놀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저버린다면 분명히 후회할테니까. 거절당한다면 어쩔 수 없는거고,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같이 놀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은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아. 지금 같이 논다면 수박을 잘라서 가지고 온 수박 도시락도 있어. 이렇게 먹으면 되게 맛있거든."
“예… 네… 괜찮아요… 지금은 쉬는 중이니까 괜찮아요… 내일도 일하겠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
중얼중얼, 죽은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듯 대답하던 나기는 눈 바로 앞에서 흔들리는 손에 정신을 차렸다. 으윽, 아무리 일이 버겁다고는 해도 관광객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불찰이다. 조심해야지! 살짝 손을 들어서 볼을 가볍게 두드린다. 정신차리자.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 감사히! 아, 모래찜질 할 거면 제가 묻어드릴까요? 저 그거 잘해요☆”
자랑스럽게 말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실제로 잘 하는 걸. 어릴 때부터 많이 해봤으니 말이야. 그리고 수박 도시락까지 나왔으니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건 아닌가! 수박은 맛있으니까! 언제 죽은 눈을 했었냐는듯 밝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앗, 역시 아사기리 씨 수영하려는 거네. 잠시 사람이 많은 바다를 보면서 물어보듯 말했다.
소년은 아직 죽은 눈을 뜬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남 이야기를 할 처지는 아니었다. 자신만 해도 요즘 들어 온천 청소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온천을 깨끗하게 이용하면 참 좋을텐데 어지럽히고, 혹은 일부러 물건을 파손시키거나 갖고 나가는 이들도 허다했다. 물론 소년의 고모와 고모부는 그냥 웃어넘기는 것 같았지만, 소년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아무튼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에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적이며 괜찮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물론 그래도 되지! 내가 먼저 권했는데. 혼자 노는 것보다는 다른 이와 같이 노는게 더 좋거든. 아. 그래? 그럼 조금 있다가 모래찜질 부탁해도 될까?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하고 싶거든. 그보다...."
이어 소년은 수박 도시락을 꺼낸 후에 그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조각조각, 사각형 모양으로 자른 수박이 가득했다. 소형이라고는 하나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있던 것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시원한 냉기가 벌써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우선 수박부터 먹지 않을래? 아. 그리고 수영이야 어떻게든 공간에 들어가면 할 수 있을테니까.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적은 편이잖아? 대부분 아무래도 입구 부분에서 노니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소년은 포크 하나를 그녀에게 살며시 내밀었다.
시원한 수박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수박이다. 그것도 시원한 수박. 상온에 방치해 미적지근해진 수박과는 차원이 다른 수박이다! 그것도 이 바닷가에서! 아이스박스에서 막 꺼낸!! 이건 맛있을게 틀림없어!! 최고로 귀여워!!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수박을 응시했다.
“우와아… 수박… 고마워요 아사기리 씨! 잘 먹겠습니다!!”
포크를 조심스레 받아들고 감사인사를 한 후,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는다. 입술에 가까이 가져가기만 해도 냉기가 느껴진다. 입에 넣자 그야말로 시원한 감촉이 가득 퍼지고, 그에 질세라 단맛도 따라온다. 이건… 극락이다…!
“너흐 마히써….”
입을 손으로 감싸고, 한 손에는 포크를 든 채로… 그야말로 하얗게 불타버린 것처럼 되어 중얼거렸다. 너무 맛있어… 반칙이야. 이 맛있음은… 이 시원함은 반칙이라고… 여름의 햇살을 쬐고, 업무에 쫓겨 지쳐있던 몸에 스며드는 치유감… 최고입니다…
“아, 아무튼… 으음, 그건 그렇지만… 그래요. 일단 수박도 먹고 모래찜질도 한 다음에 수영 얘기를 하도록 하죠! 근데 이 수박 진짜 맛있네요! 시원하고! 맛있어!”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누군가와 나눠먹는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많이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시 맛있는 것은 누군가와 나눠먹어야 제 맛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소년의 입가에선 미소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따.
"그렇지? 이거 완전 맛 좋다니까. 어디 그러면 나도 하나."
그녀가 하나 먹고 나서야 소년은 포크를 챙기고 수박을 하나 입에 넣었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함은 카페에서 파는 수박 주스의 달콤함과 전혀 뒤지지 않았다. 미지근하게 다 식어서 맛이 없는 수박이 아니라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과즙이 가득한 수박. 그리고 더운 날씨. 모든 것이 딱 좋은 최고의 환경이었다.
"이거 진짜 맛있네! 카페에서 파는 거 못지 않은걸? 어젯밤부터 미리 준비해서 만들길 잘했어! 아무튼 온천에 작은 아이스박스가 있었거든. 시원함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어서 빌려달라고 해서 받은거야. 그 대신에 온천에 돌아가면 이거 정리를 내가 다 해야하지만 그런 것이 두려워서야 어디 놀 수 있겠어?"
하나 더 냉큼 포크로 집어서 먹은 다음 소년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이어 오른손을 뒤로 해서 자신의 몸을 받친 후에 소년은 그녀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내가 이렇게 아와나미에 찾아와서 재밌게 노는 것처럼, 미쿠모 양은 도시에 오면 혹시 찾아가서 놀고 싶은 곳 있어? 있다면 어디야?"
“어제부터 준비한 건가요? 엄청 나네요, 아사기리 씨☆ 아아, 뒷정리… 좀 귀찮긴 하겠네요. 그래도 대단하네요.”
엄청 기대했던걸까, 어제부터 준비라니. 게다가 정리를 감수하고 아이스박스까지 챙겨서… 행복하게 웃는 유키를 보며 나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사자가 좋다는데 뭐. 그리고 덕분에 자신도 이렇게 수박을 얻어먹게 되지 않았는가. 나중에 집에서 뭐라도 가지고 와야겠다. 얻어먹기만 하는 건 역시 미안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들린 질문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도시로 가면 찾아가서 놀고 싶은 곳…?
“그야 많죠! 유명한 곳들은 꼭 가보고 싶다구요☆ 꿈의 나라 랜드라던가, 유니버셜이라던가! 그리고 스카이 트리! 그리고 하루카스! 그리고 그리고 동물원도, 아, 아쿠아리움도 꼭! 바닷가에 살긴 하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다구요!”
지금까지 사진이나 TV에서만 봤던 곳들을 하나하나 말해본다. 도시로 나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 이런 시골에는 없는 곳이 입에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이건 도저히 하루만에 가는 건 무리고, 몇 박 며칠을 묵어야 갈 수 있겠지만. 게다가 지방도 제각각이라 분명 한 번에 다 이루기는 무리겠지. 그래도 말해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정말 가고 싶은 곳이 많구나. 사실 나도 마찬가지야. 도시에서 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곳을 다 가본 것은 아니니까. 훗카이도의 눈축제라던가 그런 곳도 가보고 싶은데 아직 가본 적이 없거든."
TV나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기에 소년은 정말로 가보고 싶다는 듯이 괜히 아쉬움을 목소리에 담았다. 한편 그녀가 말하는 곳 중 자신이 갔던 곳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자신이 간 곳이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간 곳이 있을 때마다 절로 미소를 내비쳤다.
"꿈의 나라 랜드라면 내가 데려갈 수도 있긴 한데. 정말로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말이야. 어른이 되면 한번 놀러와. 근처까지 오면 마중 나가줄테니까."
수박을 한 조각 더 먹으면서 소년은 그녀가 갈 수 있다면이라고 말을 하는 것에 살며시 의문을 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집에서 도시에 찾아가는 것을 아예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괜히 그런 생각을 하지만 더 묻진 않으면서 소년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방학도 슬슬 끝나가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조금 아쉬운걸.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아와나미에 올 수 있으려나. 최소 2년일까. 왜 나는 내년에 고3인거지?"
괜히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년은 작게 혀를 찼다. 그만큼 아쉬운 모양이었다. 허나 곧 미소를 내비치면서 다시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