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라고 하셨죠? 생각해보세요. 눈 앞에서 적이 랜서랑 서포터를 씹어먹으려고 달려들고 있는데 워리어가 그거 하나 못 막고 넘어져서 접근을 허용했다면? 힘싸움에서 밀려서 넘어졌다면? 차라리 돌하르방 열쇠고리는 단돈 500원이면 되니까 싸기라도 하지, 그런 워리어는 나중에 의뢰 수고비도 1/3 만큼씩 받아갈거 아니에요. 얼마나 짜증나요."
강찬혁은 그렇게 말한다. 사실 이건 다른 직업군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워리어가 전방에서 틀어막고 적이 뒤로 못 가도록 차단하는 일, 그러니까 탱킹을 못 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중후한 표정으로 장중을 압도하는 모아이 석상보다도 쓸모없는 워리어고(차라리 그건 잘만 배치하면 뚫기라도 힘들다), 랜서도 워리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도 적을 못 쓰러뜨리면 그 사람은 랜서가 아니라 끊어진 랜선보다도 쓸모가 없고, 서포터도 서포트를 제대로 못하면... 말을 말자.
"한번 해 보세요. 음..."
강찬혁은 잠깐 기다려보았다. 오, 왠지 몸이 좋아진 느낌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와, 서포터 능력 확실하시네요. 뭔가 고통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병원까지 제발로 걸어갈 수 있겠는데요?"
"비유를 들어주시니 이해하기 편하네요. 그... 중상자 씨." 여러가지 상황에서 워리어나 랜서가 잘 하지 못한다면 그것 참... 뒷사람은 뭔가 메 모 씨가 POTG인가 뭔간가를 먹은 걸 상상했다! 통성명이 없었으니까 중상자 씨라고 부르다니. 묘하네.
"수고비를 받아가는 것..." 의뢰를 다녀본 적 없지만 와닿는 설명이었다. 화살을 톡 건드립니다. 하는 생각을 알았다면 워리어가 워리어를 못하면 월월 짖는 거고. 랜서가 랜서 일을 못하면 랜서가 신다! 고 서포터가 서포트를 못하면 스팟만도 못한 게 되겠다면서 맞장구를 쳐줬겠지. 근데 사실 따지고보면 다림 네가 저 스팟만도 못한 게 되지 않을까? 일단 버프가 먹혀들어간 걸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버프일 뿐이니까요. 대신 풀리면 피로감이나 아픈 거나 그런 거 한번에 닥칠지도 몰라요?" 겁주듯 말하는 게 진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냥 바로 싹 사라지게 하는 거라면 좋겠지만 그걸 바란다고 해도 그대로 될지는 모르잖아? 사근사근함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따라가겠다는.. 오지랖이라고 불릴 만한 일을 자처하나?
강찬혁은 모르는 사람들이나 자신을 얕잡아보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사용했던 지칭어들을 떠올려보았다. 거지, 깡패, 양아치, 조폭, 미친놈, 또라이, 싸이코, 문신충(놀랍게도 강찬혁은 어떤 문신도 하지 않았다), 폭력전과 47범(실제로 강찬혁이 체포되었다면 50범 정도는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강찬혁은 체포된 적이 없다), 멍청이, 뇌근육, 얍삽이, 인성질맛집, 테러리스트, 싸가지, 강도범, 빚쟁이, 사채꾼, 그 외 기타등등. 그 중에서 "중상자"라는 아주 점잖은 지칭어가 추가되니 강찬혁은 기쁠 따름이었다. 그래도, 중상자보다는 사람을 더 낫게 부르는 법이 있으니, 이름이었다. 강찬혁은 가디언 칩이 담긴 팔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다면 통성명을 하자는, 그 나름의 의사 표시였다.
"네, 워리어 겸 무직 백수 겸 중상자 겸 아프란시아 성학교 학습부진아 겸 전투연구부 마루타 강찬혁입니다."
그리고 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껄껄 웃었다. 강찬혁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차피 병원까지만 가면 의사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중상자가 예의바른 지칭이라니." 몰랐네요. 라며 생글생글 미소짓습니다. 그러고보면 자신을 지칭하는 것 중 가장 나쁜 건 뭐였더라.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서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역시 두려움을 사는 것이 그랬을까? 생각을 안하는 게 가장 나아. 찬혁이 말하는 말이 통성명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끝에 이름이 나올 무렵이었다.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대단하네요." 찬혁 씨. 라고 말한 뒤 저는... 제노시아 학교의 기다림이라고 해요. 다림이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모호한 표정으로 통성명을 하지만 악수하기엔 중상자라서 멈칫하네요. 괜찮다면 가디언 칩이 들어있는 팔을 내밀어 악수를 했겠지.
"그래도 의사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요...?" 의사 말 무시까고 130세까지 산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하지만 여기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저 걸어가면서 알아서 해줄 거라는 말을 듣곤 의사선생님께서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려다가 참으실지도 모르죠. 랍니다.
강찬혁은 가디언 칩이 붙은 팔을 기다림과 맞댔고, 그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기다림이라, 강찬혁은 그 이름을 보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기다림, 기다림, 기 다림, 음. 그렇단 말이지. 강찬혁은 이 사람의 실제 성격과는 별개로 부모님이 왜 이런 이름을 지어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영웅처럼 살라고 임영웅 같은 이름을 붙이거나 주님의 은혜 아래 살라고 주은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지금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부모님은 이 기다림이라는 사람이 기다림의 미덕을 아는 신중한 인물상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신중함과 기다림, 인내심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게 없어서 강찬혁의 인생이 진흙탕을 구른 것이니.
"좋은 이름이군요. 뜻이 느껴져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 걸어갔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편했다. 석고깁스만 아니었다면 아예 깁스를 풀어버리고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람, 어디서 뭐하는 누구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대단한데. 그렇게 생각했다. 강찬혁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서 이야기한다.
"인생을 막 살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닌가?" 잘 모르겠다는 척 부드럽게 미소지었던가.
팩트를 말하자면 다림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다리 밑에서 유일하게 물에 안 적셔지고 건져왔다고 다리라고 지으려다가 다리는 좀 그렇다는 태클에 대충 림을 붙였고. 성도 전화번호부를 펼쳐서 김으로 하려다가 고건 넘 흔하다안카나. 로 기가 되어버린 거라. 찬혁이 생각하는 부모님이 뜻을 담은 훈훈함은 기대할 수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걸 다림이 알아차릴 수도 없는 일이지.
"으음..." 좋은 이름이라는 말에 그런가요? 라는 짤막하고 사근사근한 말만을 하며 가치중립적으로 생각하려 한 다림은 편하다는 찬혁의 말을 듣고는
"게이트를 닫거나, 여러가지 일에 대비해서 배울 게 아직도 많지만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라고 답하면서 천천히 보폭을 맞춰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