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유. 지훈은 무엇을 위해 검을 들었을까요. 아직도 지훈은 자신이 왜 검을 잡았는지에 대한 이유만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검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가디언이 되었기에 검을 잡았습니다. 가디언이 되고 싶었기에 검을 뽑았습니다. 그 길을 보았기에 그 문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 방법을 찾았기에 검사가 되었습니다.
지훈의 손 위에서, 오니쟌수의 붉은 빛이 천천히 지훈에게 다가갑니다. 그 흐릿한 빛들은 모여들어 두 개의 팔을 만들어, 지훈의 목덜미를 쥐여 잡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검의 귀신들은 지훈의 아픈 곳들을 찌르려 합니다. 그러니까. 그만. 죽어줘. 그리고, 당신이 부디 죽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 존재라.
검귀는 웃습니다. 검귀는 자신의 팔에 붙은 나이젤의 채찍을 가볍게 풀어냅니다. 나이젤은 그 반동에 살짝 자세가 흐트러지지만, 그렇다고 검귀는 나이젤에게 달라들지 않습니다.
- 나는 복수를 위해 검을 들었다오.
검귀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농가의 흔한 경비병이었던 이야기. 사랑을 약속했던 연인과의 이야기. 사랑을 약속했던 연인이 기사들의 손에 치욕을 입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청년은 귀신이 되었습니다. 기사란 평범한 농민병 일천을 능히 상대할 수 있었고, 청년은 겨우 무기 다루는 법을 알았던 존재였으니 말이죠. 그렇게 수없는 시간동안 검을 수련하고, 싸우고, 죽이며 마침내 검귀가 탄생하였습니다. 검귀는 그때의 복수를 하고, 자신의 연인의 무덤 앞에서 심장을 꿰뚫고 자살하기까지. 단지 한 사람의 치열했던 이야기.
그리고, 단지 한 사람의 검에 대한 이야기.
- 검사여. 이유를 잊지 마시오.
검귀는 검귀가 아니라, 한 명의 검사로서 또다른 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에게 충고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지훈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 사람은 누가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서로 거리를 둔 채로 자세를 잡습니다. 검귀의 검은 지극히 앞으로 향해 무엇이라도 찌를 것처럼 나아서고 있었고, 지훈의 검은 검끝을 세워 막아내기 쉬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캉!
검과 검이 서로 맞붙고
카가강!
검과 검이 서로 빗나가고 나면
까강!
검은 한 순간 튕겨나고
캉! 캉! 캉!
몇 번의 검격을 나눕니다.
베이고, 스쳐나고, 다치고, 때론 목이 노려지기도 하며, 기술도, 강함도 검귀가 우선이지만. 지훈은 검을 놓지 않고 끝가지 검을 휘두릅니다. 지훈은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검이란 무엇인지. 검에 무엇을 담는지.
지금까지 걸었던 길이 너무나도 평온했기에. 그렇기에 검의 무게도, 가치도 몰랐던 지훈이었기에. 검귀는 적이자, 같은 검사였고, 또한 잠시의 스승이 되어준 것입니다.
자. 지훈.
이제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이라도 벨 자신이 있습니까?
" 당연히. "
베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베겠다. 멈추지 않고, 막는 것을 베어내겠다. 내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이 지훈의 길입니다.
의념기.
지훈의 검은 지훈의 의지를 확인합니다. 목을 조르던 귀신의 목소리도, 흘린 피와 땀으로 혼란스러운 몸도 그 모든 것도 잊은 채. 단지 베겠다는 생각 하나만을 담아.
전력. 그리고, 전심으로.
일섬 一閃
검이 빛을 발합니다. 당겨졌던 지훈의 검이 한순간 허공을 베어내고
챠라라라라라라라라락
베어진 검은 공간의 일부마저 뛰어넘어, 원래라면 닿지 않았을 곳에.
카가가가가가가가각!!!!!
지훈의 검격을 전해갑니다.
검귀의 목 위로 옅은 혈선이 그어집니다.
- 훌륭한.
붉은 선은 마침내 커다란 선을 그어, 거대한 홍수를 이어냅니다. 죽었으나, 게이트의 농간으로 다시 살아났던 검귀의 최후는. 귀신이었으나, 귀신이 아니게 끝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