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사직서를 낸 강찬혁에게, 사장은 그렇게 되물었다. 사실 강찬혁의 입장에서는 전혀 뜬금없지 않았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차라리 애먼 사람을 두들겨패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호구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 괴물로 살겠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었고, 손을 대면 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수금업에 더 이상 손을 댈 생각은 없었으니까. 물론 그런 심경의 변화를 사장은 알 리가 없었으니. 화났냐, 갑자기 왜 이러냐, 그런 말로 강찬혁을 설득하려 했다.
"임마. 너 그 나이에 이렇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어딨다고 그래. 그래. 알았어. 월급 300 더 얹어주고, 유급휴가도 내줄 테니까..."
"마음만 받겠습니다."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야, 너 어디가는 거야! 야!!!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강찬혁은 듣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됐다. 이번 달 월급은 들어오건 말건 상관없다. 차라리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사람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용해 돈놀이를 하고, 그 돈놀이의 끝을 몽둥이로 수습하는 더러운 일로 번 더러운 돈. 그런 돈은 이제 안 받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졌다. 마음 속의 족쇄가 사라지자, 짓누르던 자리도 자리라고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이제 뭐하고 사냐..."
강찬혁은 집에 돌아가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연락처로 수많은 문자와 전화들이 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강찬혁의 대답은 '깔끔한 무시'였다. 이제 뭘 하고 살지? 진지한 고민이 들었다. 대학생도 취업 못하는 시대에 어디서 중졸을 받아줄 것이고, 이제 와서 검정고시를 쳐서 고졸로 학벌을 올린다 쳐도 무슨 일을 할면서 살까? 막막했다. 막막하면 막막할수록, 그를 비난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이불에 갇혀갔다.
며칠만에 바깥으로 나온 강찬혁은 바깥을 바라보았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맨날 노는 걸로만 보였던 아저씨도 개 한마리를 끌고 조깅을 했고, 신문을 사서 돌아오는 정도의 일상은 가지고 있었다. 그걸 보니, 강찬혁도 당장 끝내야 할 일은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공과금, 월세, 그 외 기타등등... 며칠간 배를 굶었으니 맛난 것도 먹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 애들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던가. 며칠 뒤면 다시 빚독촉을 하러 올 텐데.
"...아, 진짜."
강찬혁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치킨 한마리를 샀다. 호구처럼 살기는 싫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강찬혁은 치킨과 돈봉투를 들고 달동네로 걸어들어갔다. 이 돈으로 맛난 거나 사먹으라고 쥐여줄 생각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고등학교에서 학교 공부를 할 동안 그는 뒷세계의 역학관계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를 했고... 그 결과로 할머니가 애들을 데리고 당장 몇년 간은 빚독촉 걱정 없이 살만한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강찬혁은 할머니의 집 앞에 몰려든 패거리들을 보고 일이 제대로 꼬였음을 직감했다. 강찬혁은 뒤늦게 시계의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만약 그가 퇴사하지 않았다면,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최종 경고를 하러 갔을 날이었다. 말이 좋아 최종 경고지, 말로 사람의 정신을 말려서 돈을 뱉어내게 만드는 강찬혁마저도 사정없이 주먹과 야구방망이를 쓰는 날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들이 할머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드는 것인지는 뻔했다.
"도, 도와줘요!"
"도와주긴 지랄. 할망구. 여기 누구 올거 같아?"
"야 새끼들아! 신고해봐, 그럼 너네도 엮이는 거다!"
강찬혁은 치킨을 헌옷함 위에 올려놓고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옛날에 강찬혁에게 팀장 자리를 빼앗겼던 놈이, 또다시 팀장을 맡아서, 대표 자격으로 할머니를 협박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돈이 없다고 하자 할머니의 목걸이를 뺏으려 들었고, 저항하자 멱살을 잡았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우는 소리도 들렸다. 강찬혁은 옆에서 낄낄대면서 구경하던 옛 동료들을 밀치고 들어가서, 팀장을 툭툭 쳤다.
"야, 너 뭐냐?"
강찬혁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타나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처음에는 다시 일하러 왔냐고 물어보려던 팀장도, 강찬혁의 표정을 보고는 뭐 때문에 왔는지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분명, 여기에 정의의 용사 놀이나 하러 왔으렷다. 팀장은 강찬혁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다가, 아예 미간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쿡쿡 밀면서 말했다.
"뭐하려는 거야? 뭐, 또 뜨자고? 여기서?"
"여기서 다 나가."
나가, 그 말에 팀장이 크게 웃고, 옆에서 옛 팀장과 현 팀장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이들도 현 팀장의 눈치를 보기로 결정하고 따라 웃었다. 하지만 강찬혁은 웃지 않았다. 강찬혁은 할머니에게 손짓으로 들어가라 했다. 팀장은 웃음을 뚝 멈추고, 강찬혁에게 눈을 부라렸다. 팀장은 옆에 모인 동료들을 가리키면서 협박했지만, 강찬혁도 지지 않았다.
"너가 지금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1:1로 순서대로 덤비면 살려는 줄게."
"1:1? 하 참, 이 새끼 어이가 없어서..."
야!
밟아! 팀장이 명령하자, 옛날의 동료들이 강찬혁에게 달려들었다. 주먹부터, 날붙이, 그리고 몽둥이, 전기충격기까지. 아주 다양하고 살벌한 '연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강찬혁은 알고 있었다... 저들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으니까. 숫자야 1:17이지만, 뒤에 벽을 두고 싸우는 이상, 그리고 여기가 좁은 골목길인 이상 한번에 덤빌 수 있는 놈들은 1:2 내지는 1:3이었고, 그 정도 숫자는 간단했다.
"이 새끼 뭐야?"
"차, 찬혁아! 미안..."
"으악! 살려줘! 무릎이 말을 안 들어! 으아악!"
머리 깨지는 소리와, 무릎이 박살나는 소리, 상남자를 자처하던 깡패들조차 울면서 죽어가는 소리, 강찬혁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싸움의 함성은 잦아들고 끔찍한 신음소리만 늘었다. 이때만큼 누군가에게 잔혹하게 폭력을 휘둘러본 때가 있을까? 이렇게 선혈이 낭자하던 때가 있었을까? 팀장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큰일 났다고 소리만 치고 있었다. 불행히도, 더 이상 그를 위해 고기방패가 되어줄 이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고작 10분만에 정리된 상황을 보면서, 강찬혁은 왜 사장이 자기를 보내지 않으려고 별별 조건을 다 걸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다들 센 척만 잘하지, 찐따가 화나서 물건 집어던져도 이것보단 잘 싸우겠다."
"너... 이... 새끼가...!"
팀장은 질린 얼굴로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길쭉한 총검을 꺼내들고, 칼날로 강찬혁을 겨눴다. 그리고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한번 이긴 상대를 두번 이기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었다.
깡!
"흐아아악!"
나이프가 강찬혁의 팔을 쳐보기도 전에, 방망이가 팀장의 무릎을 강하게 내리치고, 팀장은 격통 속에 균형을 잃으며 쓰러졌다. 팔을 끌어 어떻게든 총검을 잡으려던 팔을 밟고, 총검을 들었다. 강찬혁이 자기 목숨을 끝장내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팀장이 별별 공수표를 다 들이댔지만 강찬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찬혁아! 살려줘! 형님으로 모... 끄아아악! 아아아가악!"
"미안한데 난 너 같은 아우님은 필요 없어."
길쭉한 총검이 팀장의 어깨를 뚫고 들어가 바닥에 박혀, 그를 땅에 고정한 못 같은 형세가 되었다. 강찬혁이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1:1 순서대로 덤비면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강찬혁이 제시한 최소한의 페어플레이 정신도 위반했으니, 강찬혁이라고 봐줄 이유는 없었다. 동료들이 위협용으로 가지고 온 슬레지해머를 들고 와서, 팀장의 머리에 대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조준했다.
"으악! 제발! 살려줘!"
"그냥 얌전히 있어 임마. 한번에 터지면 고통도 없잖아."
그리고 강찬혁이 슬레지해머를 들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찬혁! 거기까지 해라!"
"...사장놈."
강찬혁은 슬레지해머를 내려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삼봉캐피탈 사장, 검은 양복 입은 떡대들. 평범한 사람은 보자마자 쫄아서 사릴 테지만, 강찬혁은 저 정도로 쫄기에는 선을 너무 크게 넘어버렸다. 삼봉캐피탈 사장은 당장에라도 강찬혁을 두들겨패려는 떡대들을 손을 들어 막고, 최대한 신사적으로 협상을 하려고 했다. 어차피 복마전으로 돈 버는 놈이 신사적인 척을 하는 게 강찬혁 입장에서는 웃긴 노릇이었지만, 여튼 그랬다.
"지금 여기서 그만하고 나가면, 없던 일로 할 테니까, 거기까지 해라. 응?"
제 딴에는 어른의 관대함이었겠다만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해줄 이유도 없었다. 강찬혁은 방망이를 고쳐잡고, 짧은 말로 거절을 대신하며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응 니애미."
또 30분이 지났다. 강찬혁은 자기가 대체 어떻게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따라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뭔가 몸이 날쌨다. 분명 저 주먹을 처맞았으면 바로 나가떨어져야 했을 텐데? 저 칼을 피할 수 있었을 리가 없을 텐데? 이정도 주먹질로 사람이 기절한다고? 칼을 뺏어서 팔을 베자 동맥의 선혈이 나오며 떡대들이 패닉에 빠졌다. 물론 강찬혁도 찔리고, 맞고, 골통이 빠개졌다. 하지만...
"저... 저... 새끼...!"
강찬혁은 다시 일어나서, 그에게 달려드는 떡대들을 전부 다 때려눕혔다. 보다 못한 사장이 옆에 있던 떡대를 시켜 검은 가방을 꺼냈다. 다가오는 강찬혁을 보자, 검은 가방을 여는 사장의 손이 점점 급해졌다. 이번에는 뭐가 있다고? 한번 해 보던지.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던 강찬혁은, 그 검은 가방에서 보인 은빛 총구를 보고 얼어붙었다.
총에 맞기 전 마지막 한 마디.
"아오."
탕! 탕!
가슴이 뜨겁게 느껴진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왜인지 모르게 점점 잠이 쏟아지고, 눈 앞이 어두워졌다. 강찬혁은 뜨거운 가슴에 손을 대보았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도, 붉은 피가 보였다. 안 돼. 일어나야 해. 강찬혁이 어떻게든 자세를 고쳐잡고 사장에게 다가가자, 사장은 질린 얼굴로 그의 미간에 총구를 올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빛이, 강찬혁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본 마지막 시각 정보였다.
옛날에 동식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마. 센척 그만해. 너 그런 놈 아니잖아."
"그런 놈 아니었는데, 이젠 됐어."
"무슨 개소리야. 너 깡패잖아 깡패. 너 같은 애들은 말이야, 위선도 위악도 떨 필요 없어. 나야 손님들 때문에 별별 개소리 하지만, 넌 그럴 필요 없잖아. 누가 살라는 대로 살지 말고. 너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네 길 아닌 거 알잖아."
이 새끼, 참 도움 되는 친구일세.
"...어어, 저, 저, 저 새끼 뭐야?"
"끄으으윽..."
머리가 무겁다. 엄청 무겁다. 하지만 살아는 있다. 강찬혁은 일어나서, 사장에게 다가간다. 사장은 공황에 빠져서 총을 쏘지만, 이상하게도 강찬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탕!
아, 눈에 뭐 들어갔네.
눈에 총알이 들어갔는데도, 마치 티끌 긁어내듯 대충 비벼서 쓱쓱 꺼내는 모습을 보고, 사장과 어깨들은 겁에 질려서 도망갔다. 그렇게, 강찬혁은 이겼다. 뭘 해야 하더라? 뭐였지...? 그래. 치킨. 돈봉투. 강찬혁은 헌옷함에 올려뒀던 치킨을 들고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치킨을 내려놓고, 돈봉투를 던졌다. 강찬혁은 감상적인 말을 좋아하지 않았고, 좋아했더라도 글이랑은 담 쌓고 살아서 말할 자신 없었기에 짧게 할 말만 했다.
"그러게 저런 미친놈들한테 돈을 왜 빌려서 지랄이야... 됐고, 할망구. 돈봉투에 야반도주 전문업체 번호 적어놨으니까, 그 번호로 연락해서 동해로 애들 데리고 도망쳐... 거기는 러시아 마피아들이 꽉 잡고 있어서 쟤네들 발도 못 들이니까..."
강찬혁은 할 말만 하고, 그러게 왜 돈을 빌려가지고, 라 툴툴대면서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한계였다. 강찬혁은 대문 문턱에 걸려서 그대로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