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했다. 원래 학창 시절에는 놀기도 하고 친구고 사귀고 마 그래야 하는기다. 안 그래도 진설 쌤이 연락 왔드라. 니가 동아리 추천해달라고 그래가 지가 야구부 추천해줏다 그라드라. ] [ 아. 니네 엄마 지금 바쁘다. 오세아니아에 무슨 의념 사용자? 똘기가 나왓다 케가 지금 바쁘니까 할 말 있음 나중에 해라. ]
>>950 방망이를 앞세워 달려가자 고블린은 아군 몇마리를 두고 저 안으로 도망갑니다!
>>953 " 원래 게임은 그런 거야. 쟤처럼 게임의 기록이 목적인 애가 있다면 나처럼 게임을 즐기려고 하는 게 목적인 애들도 있는 법이지. "
" 여기 있는 녀석들 중 네놈과 같은 생각을 안 가진 녀석은 없다. 그런 말을 할거면 생각만 말하지 말고, 그냥 레벨을 높이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 " 그래. 무릎을 꿇고 어쩌고 하느니 레벨을 올려라.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녀석이 노력을 입에 올리고, 그 무릎의 가치가 얼마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보고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
검에 남은 의지는 아직 지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거세게 울고 있습니다. 지훈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귀신들의 울림에 고통이 느껴집니다.
- 좋은 검을 다루시는구려.
검귀는 지훈의 검을 바라보고 작은 웃음을 짓습니다.
- 귀신을 베는 검은, 귀신을 알아보는 법이라. 공에게 필요한 것은 검이 만족할 만큼의 귀신의 피가 아닐까 싶구려.
웃음? 저 악귀와 같은 자가, 웃음을 짓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의념기 - 소재변화
의념의 힘이 증폭되고 나이젤의 의념이 파티원들에게 스며듭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아군의 건강이 +됩니다!
검귀는 한 달음 뛰어올라 찬찬히 검을 휘두릅니다.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지훈이 검을 들고 막아서려 하자, 그 빈틈을 노리고 검이 꺾여 지훈의 목을 노려옵니다. 겨우 검날을 쳐내긴 하지만, 그 속도도. 살기도 전과는 다릅니다. 방금의 전투가 이성 없는 검에 불과한다면 지금은 진정으로 느껴지는, 검술의 영역입니다.
>>107 " 원래 처음부터 배부르긴 힘든 법이지. 여기 애들 대부분 자기 실력을 키우려고 천천히 노력해서 올라온 애들이 대부분이거든. "
피가 묻은 가운을 벗으면서 수술을 도와주던 선배는 하루의 머릴 쓰다듬습니다.
" 그러니까 괜히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오히려 처음치곤 잘 했다는 게 맞겠지. "
미소를 지은 얼굴과 함께 하루의 머릴 쓰다듬는 손에서 백색의 빛이 새어나옵니다. 하루의 망념이 30 감소합니다!
" 정식으로 소개할게. 내 이름은 이기혁이라고 한다. 보건부의 부장을 맡고 있지. "
>>111 외웁니다!
망념을 쌓아서 의뢰를 수련하면 무언가 기술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3 청월고등학교 검도부의 분위기는, 말하자면 고요합니다.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진검들과 수련을 위한 허수아비들. 사용할 수 있도록 둔 호구들과 장비들은 모두가 최상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118 정말로 그냥 전진할까요?
>>119 [ ㅁㅊㅁㅊㅁㅊㅁㅊ 이번 대형 게이트 소식 들었냐. ] [ ㅇㅇ 봤음. 난이도 미쳤던데 ] [ 그니까 하필 기계제국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 ] [ 간 애들 살아있음? ] [ 기계제국 특성 알잖아. 단체로 죽어가긴 해도 살려는 주는 거. ] [ 오우 쉣ㅋㅋㅋㅋㅋㅋ ]
>>121 수락합니다.
>>122 엔마는 손가락을 들고 꾹 당겼다가 가볍게 튕깁니다. 그 풍압에 튕겨나 철우는 벽에 처박히고 맙니다.
뭔가... (1)나무에 채찍 묶은 다음 당겨서 인간대포처럼 날아가기 (2)채찍으로 나뭇가지 부러뜨려서 시야 방해하기 (3)칼에 채찍 감아서 휘두르지 못하게 방해하기 (4)반대편에 있는 나무에 묶어서 줄넘기처럼 진로방해 (5)그냥 채찍채로 던져버리기(?)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채찍이란 말을 너무 많이해서 채찍탈트 붕괴가 올 거 같아
시원한 공기, 푸른 하늘, 강찬혁은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몸에 아주 좋고 심혈관계에도 좋고 뇌기능 개선에 혈액순환에 정력에 신장에 위에 폐에 뼈에 하여간에 좋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다 좋고 혈중 LDL 콜레스테롤부터 ALT 수치까지 높으면 안 좋다는 수치는 전부 다 내려준다는 마법의 운동인 달리기를 마라톤 평원의 전령처럼 절박하게 하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을까? 강찬혁이 갑자기 아침부터 달리는 건실한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컹! 컹!"
PC방에서 밤을 새고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오다가 누워있던 맹견들의 꼬리를 한번에 세 개나 꽉 밟아버렸고, 화가 난 개들이 뒤에서 막 쫓아오느라 강찬혁은 전심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개면 제압해버리고 가겠는데, 허리까지 오는 크기의 개라서 강찬혁은 저 개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자신이 없었고, 민간 자산 파괴나 동물학대 등으로 엮이기 싫어서 그냥 도망치고 있었다.
강찬혁은 자기 옆에 달라붙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어깨를 으쓱이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모양이다. 궁금할 법도 하다. 아침부터 미친개 세마리가 사람 하나 죽도록 쫓는 광경을 본다면 강찬혁 자신도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저 사람이 자신을 도와줄 용의가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강찬혁은 옆에 달라붙은 상대에게 가디언이 맞냐고 말을 걸었다. 일반인보다 훨씬 강화된 강찬혁의 달리기 속도를 쉽게쉽게 따라잡는 것으로 보아 가디언임이 분명했지만, 일단 확인차 물어본 상황이었다.
"같이 뒤에 저 미친 개놈들 좀... 쿨럭! 잡는거 좀 도와줘요! 아오! 이러다 잡혀먹히겠네!"
그만 좀 와 새끼들아! 강찬혁은 뒤에서 달려오는 개들에게 욕지거리를 날렸고, 개들은 그에 화답해 더욱 속도를 늘렸다.
기계제국이면 느낌이 두둥 둥 두둥 하면서 T-800들 수천대가 나타나서 인간들을 몰살한 세상이나 극단적 기술가속주의자들이 사람들을 의사에 상관없이 기계화시키는 그런 곳 아닌가 싶네요 일단 살려는 준다는 거 보면 후자처럼 아예 그들과 같은 기계 꼴로 만들어서 살아도 산 게 아닌 것으로 만드는 거려나요
저 사람, 뭔지는 몰라도 진짜 도움 많이 되네. 나도 저런 사람 되어야겠다. 먼저 올라가 손을 뻗은 후안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강찬혁은 남은 힘을 짜내서 뛰어갔다. 이제 저 위로 올라가면 개들도 못 쫓아가겠지. 어디서 개들이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담벼락에 도전하려 들겠느냐?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뛰었다. 하지만 강찬혁이 착각한 것이 있었으니, 후안은 강찬혁과는 달리 신속이 S나 되어서 두 계단 높았고, 강찬혁은 후안과는 달리 신체가 S였다는 점이다.
후안이었다면 자신이 채 인식하기도 전에 가볍게 피했을 돌부리에 강찬혁은 그대로 걸렸고, 그 상태로 넘어져서 바닥에 처박혔다가 반동으로 튀어오르며... 신체등급 S가 빛났다. 강찬혁은 바로 후안이 올라가있던 담벼락 벽면에 보기 좋게 자신의 몸을 본딴 흔적을 남기며 뚫고 들어갔다. 담벼락이 꽤 높았던지라 개들은 컹컹 짖다가 돌아갔다.
"..."
하지만 강찬혁은 일어날 수 없었다. 죽은 것도 아니요, 경추 아래로 감각이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쪽팔림, 엄청난 쪽팔림이 그를 못 일어나게 꽉 붙잡고 있었다.
타다는 실전을 통해 배우기보단, 먼저 머리에 이론을 때려박아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였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녀의 경우엔 그러하였다. 학원도에 오기전에 미리 스스로 찾아본 가디언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학교내에만 있는 서적이 있을터이다. 목적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던 와중에, 마침 도서관을 나오는 학생이 있었다. 첫 인상은 타다와는 정반대로, 쾌활하고 활동적일 듯한 모습의 남학생이였다. 때문에 도서관과는 다소 어울리지않는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타다에게는 신경 쓰일 요소가 아니였기에 그대로 도서관으로 들어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탁, 강찬혁은 뒤에서 다가오는 후안의 손을 탁 잡았다. 살아있다. 살아있다고. 강찬혁은 스멀스멀 일어나서 몸에 묻은 먼지들을 털었다. 결국 이렇게 끝났지만 개는 쫓아냈으니 됐다. 강찬혁은 한숨을 쉬고 후안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자신만큼 과격하게 살지는 않았어도, 자기만큼 어두운 과거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인상이었다. 뭐 그건 나중에 따질 문제고, 강찬혁은 손을 내밀었다.
"도와준 건 고마워요. 뭐, 내가 밑에 똑바로 못 보다가 저... 꼴이 났지만. 강찬혁입니다."
그저 지나가려 했던 남학생이 자신을 부르자, 타다는 정신이 들듯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한다. 그 얼굴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입학식 날에, 그리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보았던 얼굴이였다. '김철우'라는 이름의 동기...일단은 공부하러 왔냐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어떤 이유로 그녀를 불렀든간에, 타다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읽을 생각이였다.
강찬혁은 잔상처가 많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몸에 난 상처들에 담긴 내력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고,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제대로 풀기만 한다면 아예 책 한권을 쓸 수 있겠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을 리가 없으니, 강찬혁은 간단하게 자신의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지표ㅡ "총"을 기준으로 설명하기로 했다. 미간 정중앙에 나 있는 희미한 둥근 흉터를 가리켰다.
"운이 좋았어요. 총 맞기 직전에 의념을 각성해서."
대신에, 발이 좀 굼뜨죠? 뭐, 평균은 되지만.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 정도로는 저 못 죽여요. 아예 건물이 내 쪽으로 무너지면 몰라. 걱정 마세요."
그제서야 후안은 찬혁의 몸에 난 상처가 지나간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흉터들이 이곳저곳 나있다.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냈던 흔적이다.
"... ...!" 후안에게는 그런 흉터가 많지 않기에 후안은 감탄스래 찬혁의 흉터들을 보았다.
총에 맞을 뻔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것도 머리에 총을 맞아본 사람은 정말 없을테니 후안은 참 진기한 사람을 만나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개한테 쫒기는 경험도 그리 흔치는 않을텐데 생각하다가 문득 왜 개 세마리 한테 쫒기고 있었나 후안은 궁금 해졌다.
건강을 유지하기위해선,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도 필요하지만, 또 하나는 하루 30분 이상 운동을 하는 것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타다는 지금 학원도의 도심구역을 가볍게 조깅을 하고 있다.] 어쩐지 지나가다가 세마리의 개들에게 쫒기는 듯한 사람을 본 것같기도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않았다.
유산소 운동은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숨이 찬다면 조금은 휴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 슬슬 지칠 것 같은 타다는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가져온 물통을 열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수분 공급도, 운동중에는 필수적이다. 탈수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낭패니까.
강찬혁은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사정은 길게 설명하려면 길게 설명할 수도 있었고, 짧게 설명하려면 정말로 짧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가령 길게 설명하려면...
오늘 학교에서 시험이 있었는데 쪽지시험을 치는데 이름을 "인생망친놈"으로 적고 "최초로 나타난 괴수는 어떻게 되었는지 서술하시오"라는 답에 "죽었다"라고 적는 등 차라리 백지로 내고 말지 싶은 짓을 해서 선생이 화가 끝까지 났다. 그래서 강찬혁에게만 이 쪽지시험의 오답노트를 한 문제당 10장씩 매우 자세하게 적으라는 과제를 내고 이 과제를 끝내기 전까지는 절대 집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찬혁은 하기 싫다며 뻗댔고, 결국 강찬혁의 나태함과 빨리 퇴근해서 집에서 놀고 싶은 공무원의 칼퇴본능이 선생으의 사명감을 합동 공격해 승리했다. 하지만 이미 밤 11시였고, 어차피 통금에 걸릴 것 같아 근처 PC방에 가서 밤새 게임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나오는데 졸려서 하품을 하면서 눈을 감고 나오는데 꼬리를 밟았고, 그것도 맹견 세 마리의 꼬리였어서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선생과 기싸움을 했다는 이야기 따위 상대는 궁금하지도 않을 테고 강찬혁 역시 궁금해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짧게 설명했다.
"통금 시간 넘었는데 찬바닥에서 잘 수는 없어서 그냥 PC방 들어가서 밤새 겜 했거든요. 그런데 나오다가 실수로 개 꼬리를 밟았어요. 네."
지난번 손가락 튕기기 한번에 나가 떨어진건 근육 부족의 탓도 있었다. 근육이 부족하다. 조금 더 강해져야한다. 철우는 언제나처럼 도심구역을 달린다. 팔 다리의 모래주머니와 함께 그리고 언제나처럼 죽을 것같았다. 숨이 당장이라도 넘어갈 듯 달리고 그 상태에서 조금 더 달려서야 그는 쓰러지듯 멈춰섰다. 그리고 우연히 그의 옆에 타다가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숨을 가다듬는 게 먼져였다.
수분을 보충하고 있자, 누군가가 옆에 앉는 것을 타다는 신경쓰지않을래야 신경쓰지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모습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이 코스에서 똑같이 운동을 하고 있었던 사람인가 보다. 같은 자리에서 쉬다니 우연인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던 타다였지만 옆 사람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서야 얼굴을 확인하고 그가 누군지 기억해낸다.
"...우연이네."
밖에서 동기생을 만나는 것은 처음인 일이기도 했다. 그것도 이런 우연의 일치로 말이다. 세간에선 이런걸 운명이라고 한다지...아니, 크게 대수롭지않다. 체격과 머리스타일을 보고 유추해본다면 그가 평소에도 운동을 하는 타입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조깅하기 좋은 장소를 찾았더니 똑같이 그도 우연히 좋은 조깅 장소를 찾았을 뿐이다 솔직한 성격의 타다는 생각했던 말을 그대로 입으로 내뱉는 경향이 있기때매, 나온 말이였다. 동기생을 만나 반가워서 말을 걸려고 했던건 아니였다. 정말, 혼잣말이였을 뿐.
강찬혁은 가라고 손짓했다. 완전 친한 사람도 아닌데 언제고 붙잡아놓을 수도 없지. 어쩌면 자신을 도와주는 것보다도 더 급한 일이 있는데 개가 쫓아온다는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와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이름이 후안이라고 했나? 나중에 사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도와줬으니 뭔가 보답은 해야겠지.
"나중에 보답할 일이 있으면 보답할게요. 약속하죠."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고, 그 자신도 가야 할 곳으로 갔다. 달콤한 수면이 기다리는, 기숙사 개인실로....
"뭐어,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해가 완전히 질때까지 헤매는 거 아닌가 걱정됐는걸요, 이정도야 감사드려도 무리가 없지요. "
감사드릴 건 꼭 표현을 해야 상대가 내가 고마워한다는 걸 아는 법이니 적게 표현하든 많이 표현하든 과함이 없다. 어찌됐든간에 오늘은 좋은 분을 만난 덕에 일이 좋게 풀렸다. 우선 이 곳의 길을 잃지 않게 되었고, 예상보다 빨리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드려야 하지 않을까. 공손히 연락처를 건네받곤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고 적당히 저장을 해두었다. 적지 않은 연락처창에 새로운 분이 추가된 걸 보니 즐거워진다. 아아, 그래요. 이 맛에 사교활동을 하는 거지요! 에미리는 오늘도 행복하답니다!
"후후, 감사드리와요~ 늦지 않게 꼭 연락드리도록 하겠사와요! 참, 까먹을 뻔 했네요. 제 연락처는 이거랍니다. "
제 연락처를 선배님께 건네고 나서 한결 뿌듯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이걸로 된 거겠지... 밖을 보니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된 듯 싶으니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야 겠다. 기숙사에 가서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아무튼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는 생각을 하며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드리고 물러섰다.
그간에 평안하셨나요? 에밀리에요. 지금 막 기숙사로 돌아와 이 메일을 쓰고 있답니다. 너무 바빠서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메일을 보내드리지 못한 점 정말로 죄송해요. 앞으로는 꼭 이 요일에 메일을 보내도록 할게요. 새학기는 정말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답니다! 큰 일은 없었지만 소소하고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우선 보건부에 입부하게 되었고, 첫 의뢰를 받아 게이트에 가보았고, 그리고 또... 글로는 다 겪은 일을 담을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운 점이 많네요. 이건 나중에 직접 만나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무튼 흥미로운 일이 많이 있었어요. 참, 재밌는 학우분들을 친구로 많이 사귀었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정말 세상에 이런 분들도 있구나 싶은 멋진 분들이에요. 미스 브로코나비츠께 안부 잘 전해드렸다고 아버지께 전해주세요. 아버지께서 잘 지내시는지 그분께서 많이 궁금해 하셨어요. 이곳에서 마시는 밀크티도 물론 맛있긴 하지만 가끔은 본가에서 마시던 밀크티의 맛이 그리워지네요, 어차피 방학에는 본가로 돌아갈테니 조금만 참도록 할게요. 좀 많이 참기 힘들긴 하지만 이정도는 괜찮아요! 다음번엔 좀 더 알찬 내용이 담긴 잘 정리된 메일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그때까지 부디 몸 건강히 평안하시기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ps, 오, 참. 이걸 쓰는 걸 까먹었네요. 혹시 오라버니들께서 제가 학교생활 잘 보내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에밀리는 정말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게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단다, ' 라고 말해주세요!
일본에 마탑이 생긴 것은 교토쪽 일부 뿐이야. 일부에 거대한 마탑 하나가 세워져 있고, 그 외에는 대부분 원래의 일본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일본에 가문이 있다. 라고 해도 별로 이상한 것은 아냐. 갑작스럽게 성장한 신흥 가문이나, 엄청 강한 가디언이 부모님이라거나 할 수 있지.
처음에는, 당신과 같은 버릇을 발견할 때마다 새삼스러워진다. 그러다가 옆에 꼭 붙어서 졸졸 따라다닌다. 마지막엔 스스로 목에 목줄을 차고 당신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당신을_사랑하는_방법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3613
처음에는, 당신과 대화를 나눌땐 목소리가 편하게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마지막엔 당신이 조용히 잠든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당신을_사랑하는_방법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3613
처음에는, 당신이 받는 대우가 조금 더 특별해진다. 그러다가 당신의 뒤에 설 때는 항상 서늘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한다. 마지막엔 입 속의 혀처럼 굴며 당신의 시야를 가린다. 추악한 자신을 몰랐으면 해서. #당신을_사랑하는_방법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3613
처음에는, 당신의 표정 변화에 은근히 신경쓴다. 그러다가 당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자신을 꾸민다. 마지막엔 자신을 걱정해주는 당신에게 작은 희열을 느낀다. #당신을_사랑하는_방법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3613
처음에는, 당신과 함께라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 그러다가 무방비한 당신을 볼 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마른 침을 삼킨다. 마지막엔 당신을 애타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써먹는다. #당신을_사랑하는_방법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3613
처음에는, 당신을 시선으로 쫒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다가 당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자신을 꾸민다. 마지막엔 목덜미를 살짝 깨무는게 일상이 될 만큼 당신을 스킨쉽에 길들인다. #당신을_사랑하는_방법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43613
세계관적으로는 망념을 지우기 위해서 약물을 이용하는 헌터들도 많은걸. 그나마 가디언쯤 되어야 망념저항치가 높아서 교류를 통해 타인의 의념과 접촉하는 식으로 망념을 잘 덜어내는 거지.. 그 중에도 너희들 망념 수치 내려가는건 거의 기적 수준이야. 전투중에 오른 망념이 있다고 해도 진행 쉬는동안 일상 통해서 망념을 낮추고 나면 다시 망념 없이 싸울 수 있는 애들이니까..
천재와 수재로 갈리면. 언제나 수재들을 말하곤 한다. 자신들은 결코 천재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는 비극적인.. 아니 그럼, 나 같은 범재는 뭐가 되나? 이런건 학교의 장인들이 물건을 만들어서 전시해두는 곳만 와도 알아차릴 수 있다. 재능의 차이란건 이렇게도 잔혹한거라고...
" 하아..슬프네 "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왔는데, 재능이라는 경계의 현실을 보는 느낌이라 뼈가 시리다.
" 나같은 초짜가 봐도 한눈에 잘 만들었다 여겨지는 ...저런 명품에나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
유명하고, 잘 만들면 모인다.. 아니 사실은 장인의 이름에 더 이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 이거 괜찮네. 고풍스러운 머스킷에 다가가 가만히 살펴보던 나는 문득 제작자의 이름에 시선이 이끌렸다.
다들 구경하는 건 좋지만 훼손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나이젤이 가볍게 중얼거리면서 전시장 사이를 지나다녔다. 나이젤의 취향으로는 사용한 물건을 보는 게 제일 좋았지만, 깨끗한 물건들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고 만들었을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는 물건은 대체로 좋은 것들이 많았지만, 어디에선 형편없는 물건을 시끄럽게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장에 돌이 굴러다니는 느낌이네요, 나이젤이 생각했다.
"어느새 한 바퀴 돌아버렸네."
그리고 그 말은, 처음 출발점으로 돌아왔다는 말이었다.
"...저기, 그거 보고 계신 건가요?"
나이젤이 고개를 들자, 한 사람이 보였다. 자신의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나이젤은 이유 모르게 덜컹대는 마음을 가볍게 억누르며 말을 걸었다. 얼굴이 가려지게 푹 눌러쓴 후드를 한층 더 누르면서.
나이젤은 말문을 잃고 멍하니 상대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들을 정도는... 아니, 순전히 기뻐하면 좋지만. 뭔가 뒤섞인 듯한 답답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감정 속에서, 최고란 말을 던지고 작별인사를 하는 상대에게 그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다음에 또 봐요."
그런 작별인사를 던지고,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 마침내 전시장에 사람이 한둘씩 빠지기 시작해 한산해졌을 때, 그때쯤이야 후회할 수밖에 없어졌다.
"역시, 줄 걸 그랬나."
그 사람에게 말고는 아무에게도 최고가 될 수 없는, 그 사람만이 가치를 찾아줄 수 있는 물건이었는데. 전시가 끝나고 먼저 물건들을 챙겨가는 급한 장인들 사이에 멍하니 서 있던 나이젤이 머스킷을 안았다.
하루는 방과후 기도를 마무리 하고 학교를 나섰다. 딱히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느긋하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느긋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앞으로 나아간다. 학교를 뒤로 하고 어느덧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하루는 푸르른 녹색빛이 가득한 공원에 도착한다.
" ... 날이 좋네 "
새하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중얼거린 하루는 마음에 드는지 입술을 가볍게 끌어올려 미소를 머금는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새하얀 머리와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지만, 혹시나 탈지도 모른다는 걱정조차 하지 않는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한적한 공원의 길을 나아가던 하루는 공원의 광장에 도착한다. 광장 한 가운데에 힘차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를 눈에 담고선 여느때와 다름없이 지나가려던 그때, 고개를 돌리던 하루는 굉장히 인상적인 뿔을 가진 키가 큰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된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망설임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하루는 상냥한 미소를 머금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해보였다. 이렇게 눈을 마주치는 것도 운명이라는 것처럼.
공원은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르고는 하는 장소, 인간관찰을 좋아하는 바다에게 더 없이 좋은 장소였다. 한낮의 햇빛은 뜨겁고, 바다는 햇빛을 받을만한 신체 부위가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는 컸기 때문에 시원한 장소를 찾게 되었다. 분수대의 근처. 그곳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고 눈 앞의 사람 처럼 독특한 사람을 볼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 ! "
자신이 보았던 순정만화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 주인공들은 정말 반짝반짝거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품게 되었다.
삑사리를 내면서도 자신의 가벼운 목례에 밝은 목소리로 화답하는 바다를 잠시 응시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시, 상냥한 눈웃음을 지어보인 하루는 걸어가던 방향을 틀어 바다에게로 다가간다. 자연스럽 자신과 마주보게 된다. 마주본 순간 하루는 분홍빛 입술을 열어보인다.
"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 같아요. "
학원섬을 넓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건낸 하루는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려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우아하게 고정시키곤 마주한 눈을 빛낸다. 당신이 궁금해요, 라고 말하는 듯 빛이 나는 하루의 금빛 눈동자는 하루의 이질적인 눈동자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 저는 성학교에 다니는 하루라고 해요. 이하루. 학교에서 뵌 적이 없는 것 같은 걸 보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중이신가요? "
키는 자신보다 컸지만 연령대는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상냥한 물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거리낌없이 자신의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것은 분명 혹시라도 눈 앞의 바다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경계심을 풀려는 노력일 것이다.
하루는 흥분한 듯 특별한 바다의 눈에 보이는 동공이 커진 것을 발견하곤 한손으로 입을 가린 체 후후 하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중얼거린다. 학교를 들으니 납득이 된다는 듯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입술을 살며시 열어 바다의 이름을 자그맣게 몇번인가 되뇌이던 하루는 천천히 입을 가리던 손을 내리곤 바다를 바라본다.
" 연바다라는 이름.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네요. 근데 어떻게 그런 이름을 생각하셨을까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다 양의 머리카락이 푸른 바다처럼 예쁘게 빛을 내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을거에요. "
하루는 자신은 바다와 이름이 확실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칭찬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하루는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숙소에 돌아가서 좋은 말을 해주지 못 한 것을 후회할 바에 망설일 것이 없도록 제대로 말해주는게 좋으니까.
" 기왕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괜찮다면 제가 잠시라도 말벗이 되어드려도 괜찮을까요, 하루양? "
홍조를 띈 바다가 들뜬 목소리로 칭찬을 해주는 것을 들은 하루는 다시 입가를 가린 체 웃음소리를 흘린다. 어찌보면 투박하고 단순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던 칭찬이었다. 그런 것은 일절 신경을 쓰지 않은 체 올곧은 바다의 마음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하루였다.
" 저는 바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좀 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 다른 학교에는 아는 분이 없었는데.. 바다양이 처음이거든요. "
고마워요, 하고 고개를 격렬히 끄덕이는 바다의 손을 새하얗고 가녀린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싸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말로 기쁘다는 듯, 새하얀 하루의 볼 위에도 옅은 분홍빛 홍조가 어느샌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 그러면 그늘로 갈까요? 바다 양의 예쁜 피부가 상하면 곤란하니까요. 새로 사귄 친구의 피부가 상하는 것을 보고 있는 건 마음도 아프구요. "
두 손으로 바다의 손을 감싼 체 살며시 고개를 올려 눈을 마주한 하루가 조곤조곤 말을 하곤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별 의미 없는 관계이지만, 오타쿠로서의 연바다는 작은 것을 과대해석하거나,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는 했다. 지금은 < 순정만화 주인공의 첫 다른 학교 지인 > 이라는 감투에 순수하게 감동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지어, 그 부드러운 손으로 바다의 손을 감싸주지 않았던가. 이미 상상 속에서는 연애상담도 해주는 만화 조연이 된 체였다.
" 좋아요! 참 하루양..? 은 나이랑 학년이 어떻게 되나요? 저는 16에 1학년이에요! "
손을 잡은 체 잔뜩 고양된 기분으로 자신의 정보를 흘리고, 또 상대의 정보를 듣기를 원하는 모습.
손을 맞잡은 바다의 몸이 부르르 떨려오는 것을 느낀 하루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디 좋지 않은 부분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고 얼굴을 살펴보지만 잔뜩 미소를 짓고 있는 바다의 표정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얼굴은 아닌 것처럼 보였기에 잠시 의아함을 품던 것을 날려버리곤 다시 미소를 지어보인다.
" 어라라, 바다양은 신입생이였던 모양이네요? "
키는 자신보다 큰 데 한살 어린 바다를 보며 조금은 놀랐다는 듯 바라보며 말한다. 역시 외모로는 나이를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을 되새긴 하루는 이내 놀란 기색을 지우곤 조금 더 힘을 주어 손을 잡아주며 말을 이어간다.
" 전 올해 17살이에요. 성학교 2학년생이구요. 바다양보다는 조금 일찍 학원섬에 왔을지도 모르겠네요. 학원섬은 어때요? 지낼만 한가요? "
고양되어있는 바다를 진정시키듯 바다의 두손을 감싸쥐던 손 중에 한손을 풀어 부드럽게 바다의 손등을 토닥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음을 건낸다. 어린 나이에 이곳까지 왔다면 혹시나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그런 부분을 신경써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들뜬 하루의 물음에 고민 한점 없이 선뜻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애초에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고아원에서도 한없이 듣던 호칭이었으니 어렵거나 꺼려지는 호칭도 아니었다. 오히려 귀에 익숙하다고 하면 익숙하겠지. 게다가 바다가 그렇게 부르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허락을 해주게 되는 것은 귀여워서 그런 것이겠지. 순한 대형견을 보는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 바다 양은 학원섬을 잘 즐기고 있는 모양이네요. 후후, 괜히 적응하는데 어려워 하는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필요도 없던 것 같네요. 다행이다. "
천천히 한손을 맞잡고 그늘에 놓여있는 벤치로 향하며 들뜬 바다와는 비교되는 차분한 목소라로 조곤조곤 말을 들려준다. 그렇게 걸어가면서도 바다의 손등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것은 그렇게 들떠있으면 금방 지치니까 조금만 차분해지는게 좋겠지, 하는 하루의 배려였다.
" 방금도 바다양 나름대로 학원섬을 즐기고 있던건가요? 아까 전에 광장에 혼자 있었던 것 같은데. "
바다를 이끌어 벤치에 같이 앉으려 한다. 물론 심적거리나 몸의 거리는 이미 한없이 가까워진 것처럼 붙어있는 것은 왠지 자연스러웠다.
어찌 이리 상냥하고 성스러운지! 바다는 그런 하루의 태도에 대단히 감동하였지만 한 편 뇌리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설마—, 저번에 보았던 그 철장 속의 소녀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이신 걸까? 그러면 내가 이렇게 가까워 져도 되는걸까? 현실과 픽션을 구분 못 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다.
" 으흠, 으헤헤, 감사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비각성자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뿔 보면 되게 무서워 하셨거든요. 경찰이랑 가디언도 되게 많이 봤고... "
그래도 크리스마스에는 순록 코스프레라며 빨간 머리띠를 두른 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루가 진정시키려는 시도를 지속해서 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그저 눈길이 맞잡은 손을 향해 내려갔을 뿐이지.
" 아, 아니에요. 저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 관찰 하는것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이런 곳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을 구경하거나 그래요, 그리고 그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직접 사람이랑 대화하는게 더 좋고... "
그리고 눈동자가 마주치면 헉 하고 숨을 멈추었다. 눈 앞의 숙녀분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있지 못 한 것이 틀림 없었다!
" 아아, 확실히 비각성자 분들은 몇몇 특별한 모습들을 좀처럼 잘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그래도 그분들은 겁을 먹어서 그렇지, 제대로 봤다면 바다양의 뿔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운 형태인지 알 수 있었을거에요. "
바다양의 뿔은 참 예쁘네요, 하고 속삭이듯 덧붙인 하루는 어린 동생을 타이르듯 손을 뻗어 뿔을 살며시 매만져주려 하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바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별종이 아니라 그저 그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아서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지 못 한 것 뿐이라는 듯 덤덤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였다.
" 후후, 오늘은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은데요? 이렇게 연이 없었던 청월고에, 이렇게 예쁜 뿔을 가진 착한 동생을 알게 되었다는 건 분명 신께서 제게 또 하나의 축복을 내려주신 것이 분명해요. "
하루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바다가 숨을 멈춘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며시 맞잡은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간다. 누군가와의 만남은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이 또한 신께서 자신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은혜라고 하루는 생각하는 듯 했다. ' 바다양은 조금 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해요.' 하고 속삭인 하루는 천천히 잡고 있던 바다의 손을 입가로 가져가려 한다.
" 주께선 당신께서 세상에 내리신 바다양을 언제나 지켜보고 사랑하고 계신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니까요. 더이상 남들이 뿔을 어떻게 바라보던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각성자가 보는 시선도, 비각성자가 보는 시선도 중요치 않답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린거니까요. "
'물론 제 눈에 바다양은 진작에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 하루는 바다의 손등에 기도문을 읊조리듯 말을 속삭이곤 가볍게 손등에 입술을 맞춰주려 하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눈을 마주하며 부드럽게 말을 덧붙인다.
1. 강찬혁은 미간 정중앙에 총알을 맞은 적이 있지만, 그 총알이 피부를 뚫고 두개골을 관통하기 직전 불굴의 의념을 각성하여 두개골에 정확히 다트처럼 꽂혔고, 강찬혁의 친구는 그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주었다. 2. 어딜 가나 항상 뒷구멍이나 담 등 도망칠 곳을 정상적인 경로(예를 들어 교문, 출입문) 이외 2개 정도씩은 꼭 모색한다. 3. 생긴 것이나 말투와는 다르게 전투에 있어서는 상당히 신중한 성격이다.
철우가 일어나며 제안을 하자, 타다는 일어나며 똑같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수분 보충도 마쳤고, 슬슬 다시 몸을 움직일 시간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가볼게."
그 말과 함께 철우를 뒤로하고 다시 운동을 재개하였다.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였겠지만 행동이나 타이밍은 마치 경주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무척이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였기에, 타다는 암묵적으로 대결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가 포기하지않고 움직이는 원동력에는 승부욕도 포함되어있었으니깐, 그런 의미에서 철우는...매우 좋은 경쟁 상대였다고 할 수 있겠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말이다.
"학생. 지금은 진짜로 돈이 없지만, 다음주 금요일이면 대금이 결제가 되니까, 다음주 금요일까지만..."
"아저씨, 내가 오늘 돈 달랬지 다음주 금요일에 돈 달랬어? 다음주 금요일이 상환기일이었으면 내가 다음주 금요일에 왔지 지금 와서 여기서 꼬장 부리겠냐고."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차를 내온 대리는 헛기침을 하며 외근을 핑계로 나갔고, 사장은 자기보다 살아온 나이도 몇십년이나 어린 새파란 강찬혁에게 연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다른 곳도 아니고 수상한 불법 캐피탈에 돈을 빌리는 인생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대한민국에서 연장자를 공경하는 문화는 사회혼란 속에서 점점 희석되었고, 그가 발을 들인 이 세계에서는 비웃을 때나 소환되는 우스꽝스러운 개념이었으니까.
"자아, 빌린 돈에 이자 붙여서 1억 주셔야지. 초등학생 수준의 수학도 못 하면서 사업은 왜 하셨어요?"
강찬혁의 동료들은 회사의 서랍을 마구 털었다. 물론 불법추심의 범위에 걸릴 수 있는 짓이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만큼 법의 철퇴가 가벼운 때도 없었으니까. 대한민국의 법은 강한 이들을 위해, 그리고 강한 이들이 잠깐 관심을 보인 이들을 위해 돌아갈 뿐 그들과 같은 벌레들의 사정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강찬혁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건들거리면서 협박을 계속했다.
"불법 추심? 신고해봐. 그럼 나는 불법추심 혐의로 깜빵에서 3년 썩는거고... 아, 아저씨는 게이트 피해서 배타고 온 난민들 불법 채용해서 개처럼 부려먹었지. 그 조그마한 공장에서 벌써 10명이나 죽었다며? 잘 됐네. 그럼 아저씨는 근로기준법이랑 노동착취 가중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UN 제2헌장에 ILO 협약 준수를 위한 특별법 등등 아주 별별 법으로 여태껏 벌어먹은 돈 전부 범죄수익 환수로 나라한테 토해내고, 못 낸 벌금은 아오지 탄광 끌려가서 탄 캐면서 갚다가 죽는 거야. 처신 잘해."
강찬혁은 자기가 알고 있는 법 이름들을 술술 나열하면서 사장을 협박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 동료가 메일함을 뒤지다 찾은 것을 인쇄해서 강찬혁에게 건넸다. 강찬혁은 그 메일을 술술 읽다가 껄껄 웃었다. 귀엽네, 시대가 언젠데 이런 방법을 쓰나. 이러니까 다음주 금요일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했군. 강찬혁은 인쇄된 종이를 사장 앞에 내던졌다. 사장의 얼굴이 그것을 보고 파랗게 변했다.
"이야, 우리한테 갚을 빚은 없으면서 밀항 브로커한테 쥐여줄 돈은 있다?"
결국 사장은 강압에 못 이겨 돈을 전부 다 뱉어냈다. 결혼 패물부터 보석, 금고에 있는 돈까지 싹싹 털었고, 그동안 지체된 것에 대한 배상으로 에어컨 따위까지 전부 뺏겼다. 실적이 아주 좋다. 군소 대부업체 치곤 상환율이나 성장률이나 최고였다. 이게 다 강찬혁 덕분이었다. 웃는 얼굴의 사무원이 돈을 쥐여서 보내면, 험악한 인상의 강찬혁이 몇달 뒤 그 사무원이 빌려준 돈을 도로 뜯어간다. 실패할 수가 없는 사업 모델이었다. 이번에도 성과급 받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더러우면 어떤가. 어차피 다 더러운 세상이다. 세상의 정치인들도 뇌물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나쁜 짓 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그들을 면전에서 무시하던가? 뒤에서 욕한다고? 욕하라고 해라. 뒤에서 욕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강한 자의 특권이니까.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예술학교로 진학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동식아. 내가 살게."
비싼 고깃집에 친구를 불렀다. 친구는 이런 곳에 있어도 되나, 자기 지갑까지 깨질까 걱정하며 연신 메뉴판의 가격대를 확인했다. 찬혁은 그 친구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학교의 먹물들 중에, 유일하게 친구로 삼을 만한 녀석이었다. 다른 이들이 강찬혁을 어떻게든 무시하지 못해 안달일 때, 그 하나만 강찬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두가 강찬혁을 손가락질할때 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고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찢어진 지금도, 가끔씩 불러서 이것저것 챙겨주려 했다.
숯불의 밟은 빛이 붉은 쇠고기를 덧씌워가고, 두 사람의 눈에는 붉은 불빛이 비추었다. 강찬혁이 지나온 길, 넘어버린 선들, 수많은 후회를 생각하며 감상에 잠기려 할 때, 친구가 물었다.
"너 요즘 떼인빚 대신 갚는 그런 거 한다면서?"
"그래."
"이거도 그거 하면서 번 돈이고?"
"잘 아네."
친구는 침묵했다. 그래, 좋은 길은 아니지. 강찬혁도 알고는 있다. 동식이는 고기를 씹다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둘 수는 없는거지?"
"왜 그만둬야 하지?"
찬혁이 반문하자, 친구는 우물대다가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그래, 이래야 내 친구지. 그가 내뱉는 말들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하는 척하며 조언으로 마음을 살살 긁는게 아니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이건 네 길이 아냐. 너 착한 놈이잖아. 이 길로 가면... 진짜 괴물이 되는 거라고."
"돈 벌어야지. 안 그래?"
"그래도 이 방법은..."
"고기 탄다. 빨리 먹어."
"..."
말을 끊었지만, 강찬혁도 그가 하는 이야기는 솔직히 마음에 걸렸다. 오늘에야 강찬혁만큼이나, 어쩌면 강찬혁보다도 더 쓰레기인 녀석이 걸렸지만, 항상 쓰레기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갈데 없는 난민들을 쥐어짜서 공장을 돌리는 저런 개새끼가 빌린 빚도 뱉어내야 할 빚이지만, 딸의 심장병 수술비를 대기 위해 아버지가 마구잡이로 빌린 빚도 뱉어내야 할 빚이었다. 그리고...
"고기 고마워. 나중에 보자."
"...그래."
친구와 헤어지고, 다음 수금을 하러 들어갔다. 할망구가 사는 달동네, 그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몽둥이로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바깥으로 나온 할머니는 강찬혁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자신은 채무자고, 강찬혁은 채권자 입장으로 왔으니 언제까지고 문을 걸어잠글 수도 없었다. 마지못해 문을 연 할머니는 약소하게나마 차를 대접했다.
"학생,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조금만..."
"할매요. 빌렸으면 갚는다. 아시잖아요."
"그게..."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강찬혁은 최대한 좋게 말했다. 불법추심을 신고할 수 없는 약점을 잡으려고 여러번 뒷조사를 했다. 명백한 범죄행위부터 불륜, 그리고 다른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빚까지. 하지만 약점과 동시에... 그들을 차마 몰아세울 수 없는 배경들까지 전부 드러났다. 괴물이 되겠노라 선언했지만, 이럴 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옛날이 생각났다. 집에 압류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압류당했을 때. 부모님이 어렵게 구해온 싸구려 장난감 하나조차 가질 권리를 빼앗긴 그 때.
"...어쨌든, 다음 주까지 돈 안 가져오면 그때는 나도 못 봐줘요. 갑니다."
강찬혁은 바깥으로 나왔다.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차라리 강도질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는게 낫겠다. 동식이의 말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치킨 먹고 싶어.'
'꼭 사줄테니까, 오늘은 할미가 차려주는 밥 먹자. 응?'
"...아, 시발."
강찬혁은 담벼락을 발로 걷어차고 달동네를 떠났다. 동식이 말이 맞다. 이건 내 길이 아니다. 남을 도우며 살라고? 개소리다. 하지만... 부모님의 말을 무시하자고, 괴물이 될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가고, 붉은 노을이 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놀이터. 그곳에서 강찬혁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망이를 아래로 휘두르면서 생기는 관성과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실어 위로 휘둘러도 보고, 아래로 내리쳐도 보고, 옆으로 휘둘러도 봤다. 옛날부터 방망이는 그의 친구와도 같았다. 사람의 골통을 깰 때도, 뼈를 부술 때도, 기물을 파손할 때도. 사람을 잡는 데는 이것보다 칼이 더 훌륭할 수도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짧았고, 타격력이나 기물파손은 망치가 나았지만 휘두르는 속도는 방망이를 이길 수 없었다. 즉 그에게 있어 이 방망이는 만능이었다.
"후우..."
이 방망이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 방망이에 뭔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힘이 잘못 실리면서 강찬혁의 방망이가 옆에 있던 철봉 지지대를 강타했다.
깡!
"헉."
다행히도 철봉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강찬혁의 야구방망이가 철봉과 닿은 지점을 기준으로 반쪽으로 완벽하게 접혀버렸다. 강찬혁은 불구가 되어버린 야구방망이를 보며 주저앉았다.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개가 사람을 뒤쫓아서 흔적없이 먹어버렸다던가 하는, 근거 없는 낭설이 나뒹구는 길거리를 지나며 나이젤이 중얼거렸다. 없는 일이 떠돌진 않을 테고 뭔가 와전된 거겠죠? 뭐, 실제로 있는 개라면... 육포라도 가지고 다니는 게 좋으려나요? 최근 상점가에서 9개입 육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나 뭐라나... 하는 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후드를 눌러쓰고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생활 속 소음들에 귀를 기울이던 나이젤은 문득 큰 소리를 들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같은?
"무슨 일인가요?"
소음의 근원지로 달려온 나이젤은 여전히 입가에 띈 작은 미소를 흐리지 않으며 소음의 원인을 물었다. 말하지 않아도 기능을 상실한 야구방망이 앞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있어서 알 수 있었지만. 나이젤은 대충 가까운 곳에 상자를 내려놓고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적당히 몸을 숙여 시선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철봉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으셨나요? 하지만, 이 철봉 보이는 것보단 단단한 재질인걸요..."
라고 엉뚱하게 속을 긁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착실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정말 완벽하게 접힌 야구방망이를 보고 감탄할 뻔했다. 일부로 이렇게 만들기도 힘든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강찬혁은 박살난 몽둥이를 보여주었다. 그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몽둥이였다. 시비를 걸던 취객을 쫓아내려고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문자 그대로였다. 적대 조직을 깨뜨리는 사업장에서도 이 몽둥이와 함께했고, 머리에 총을 맞아 다 죽어가던 상황에서도 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가디언으로서 첫 의뢰를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이 몽둥이였다. 어차피 중국의 어느 싸구려 공장에서 적당히 찍어낸 물건이었으니까 빈말로라도 품질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강찬혁은 작은 미소를 짓는 사람에게 방망이를 내보이며 물었다.
"이런 거 수리 잘하는 집 아세요? 새로 사는 데 말고, 수리할 수 있느 곳으로..."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해서 써야지. 그게 강찬혁의 신조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물자사랑은 곧 나라사랑이요, 절약하지 않음은 곧 매국 아니던가.
고쳐 쓰고 싶다면 따라오라는 말에, 언급한 상자를 들었다. 그와 나이차이가 심하게 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제노시아 전문 특성화 고교 사람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청월고교 사람이면 혹시라도 학생기록부나 친구 목록에 자기 같은 불량한 놈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거나, 아예 성학교에 또 또라이가 왔네, 그런 이야기나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것 같았다. 혹시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설마하니 내 몽둥이에 촉수가 돋아난다던지 그런 일은 없겠지?
강찬혁은 상대가 시킨 대로 상자를 들고 고분고분히 따라가기로 했다. 놀이터 바깥으로 나가 걷던 중에, 강찬혁은 상자 안의 내용물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물었다.
윌리웜 A 체펠리는 유서깊은 이탈리아 가문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특히나 그의 모국의 오랜 전통인 「고기 뷔폐」는 그의 크나 큰 자랑거리였고, 몇 백년간 내려온 가업에 온 힘과 열정을 붓는 사나이였다. 기나 긴 수련 끝에 「고기 뷔폐」를 완벽히 했으나, 가업에 대한 방향성에 관하여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동양까지 내려온 패기좋은 사나이. 그것이 윌리웜이었다.
허나 그런 그에게도 적수는 있었으니.
"파웃..."
나타날때마다 고기를 아주 깨끗히 해지우는 그 소녀! 그 원망스런 소녀! 생각할때마다 이가 갈린다. 해맑은 표정으로 아주 가게 냉동실을 비우는 소녀! 허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저 소녀가 혼자만 기웃거리는 것을 보아 특별히 1인용 세트 가격을 높였다는, 비장의 수를 오늘 개시했으니!
딸랑, 거리는 소리에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 윌리엄 A 체펠리. 그의 표정으로 바로 절망으로 굳어졌다. 이럴수가. 그 소녀는 아군을 모집한 것이었다!
"파웃, 파웃!"
허나 여기서 쓰러지면 자랑스런 체펠리 가문의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콧수염(이 또한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수염이였다.)을 다듬었다. 이번에야말로 저 소녀와 저 수수께끼의 사내를 쓰러트릴 때였다. 「체펠리가」의 전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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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른 전개! 이 속시원한 진행! 카사는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팔을 붙잡으니 패대기는 커녕 은쾌히 수락하고 가게 문을 직접 연 자가 아닌가! 카사는 진심으로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이름을 중요시한 적 없던 카사에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수년간 알고 지낸 친구인 마냥 당당히 순무의 옆에 꼬옥 붙을 뿐. 이내 직원의 허락으로 들어가자 마자 순무에게 씨익, 마주 웃어준다. 그 둘은 진심으로 큰 일을 해낸 것이었으므로!
자리에 앉자마자 탁, 소년의 손에서 받아낸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지금 껏 밖에서 흘린 침... 아니, 수분을 충당하려는 것일까.
"순무? 맛없는 이름이네! 난 카사! 나도 이번에 성학교에 입학했어!"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입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제 입에 필터 없음을 보인다. 고기를 먹기도 전에 싸가지 밥말아 먹었다는 카사는 깨끗히 비운 컵을 다시 채운다. 나름대로 소년에게 보답하려는 지, 순무의 컵이 아주 조금 비어있어도 콸콸콸, 물을 부우려 한다.
// 이, 일단 쓰긴 했는 데. 으아ㅏ 미안! 내가 좀 성급했어! Orz 일단 다음에 돌리면 그때 이어도 좋으니까!
찬혁이 상자를 들었기에 수락이라 여기고 앞서 걷던 나이젤이 갑자기 그런 말을 던졌다. 신체 S인 나이젤이 평범하게 드는 물건이었으니 똑같은 S인 찬혁이 들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냥 무심코 '제가 이걸 들어서 쓸 손이 없으니 저분이 들어주면 좋겠네요'하고 생각하며 부탁했다가 문득 생각난 거였다. 다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물건은 아니란 게. 들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요...
"네. 제노시아, 4학년. 나이젤 그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콕 집어서 물어본다는 건 상자의 내용물을 봤다는 걸까요? 들어간 재료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실제로 여러 가지 부품이 들어가 있는 걸 만들어보려다가 생긴 실패작뿐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품질이 나쁜 건 아니지만, 들쭉날쭉해서 판매품은 아니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나이젤이 보기엔 형편없는 수준의 물건. 그래서 상대가 들고 도망칠 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끔 확인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이젤의 발걸음은 거주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요. 어서오세요, 손님."
나이젤의 발이 멈춘 건 크다고는 못할, 작은 건물 하나였다. 그럼에도 문 앞에는 <Atelier Fragarach>라고 음각된 아래에 <공방 프라가라흐>라고 작게 둥근 글씨로 적힌 문패가 걸려 있어,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있을 만한 곳. 들어가면 여기저기 독특한 장식품이 하나씩 얹혀져 있는, 응접실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뭔가 그냥 도착지까지 묘사해버렸긴 한데 가는길에 더 대화하거나 다른 사건이 벌어지거나 해도 무방함...
강찬혁을 미친듯이 쫓던 개가 또 쫓아오니까 강찬혁이 박살난 몽둥이의 손잡이 끝부분으로 개들의 정수리를 통통 쳐서 기절시킨 일이나(물론 이것은 그렇게 안전한 방법이 아니고, 두개골에 비가역적인 손상 및 뇌손상을 유발할 수 있었으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옆머리에 흰 브릿지를 한 검은색의 초록눈 고양이가 금방이라도 뒤통수를 칠 눈빛으로 오기에 똑같이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사서 주는 척하다가 낼름 먹어버린 일 등, 사소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힘이 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람이 태어나서 잘난 거 하나는 있어야죠."
확실히, 강찬혁 같이 꽤 힘이 세니까 드는 거지 힘이 약했다면 이거 드느라고 개고생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제노시아 전문학교의 거주구역까지 들어갔고, 강찬혁은 자기가 여기 들어와도 되나 싶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따라가다가, 공방이 붙어있고 들어가니 응접실이 있는 모습을 보며 오... 하고 감탄했다.
"제노시아 학교는 다 이런 거 주나요? 아, 그리고 실례합니다."
그리고 상자를 어디다 둬야 하나 눈치를 보다가, 왜인지 모르게 작업하기 딱 좋아보이는 책상 아래에 놓아두고 접힌 야구 방망이를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실례지만 이거 수리비는 얼마 들까요? 그리고 하는 김에 볼트도 좀 몇개 박으려 하는데..."
나이젤은 묘하게 동물들한테 미움받는 듯한? 찬혁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던지고 버릇처럼 가볍게 양손을 맞잡았다. 잘난 거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그렇네요. 라고 덤덤한 대답을 돌려주고서.
"잘 모르겠는걸요. 전 물려받은 거라서."
나이젤의 얼굴 모를 선배들로부터 사용자가 바뀌어온 공방이었다. 청소를 하고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방을 응접실처럼 만들어놓은 건 나이젤이었지만. 원래 작업대였다가 새로 단장해서 테이블로 쓰던 것도 있었는데... 티났던가요? 공교롭게 그 위아래에 상자와 방망이(였던것)를 내려놓은 찬혁을 보며 나이젤이 살짝 웃었다.
"수리비는 괜찮아요. 상자를 옮겨주신 걸로 대신할 테니까. 볼트를 박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고... 응, 문제없겠네요."
당연히 응접실에서 작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이젤은 방망이(였던것)를 들고 작업실로 내려가려고 했다.
강찬혁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보았다. 여기서 무엇이 만들어졌을까? 여기서 만든 갑옷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살렸을까? 여기서 만들어진 살인 무기들이 얼마나 많은 이계의 주민들을 그들이 믿는 저 세상으로 보냈을까? 살린 목숨으로 치장한다면 이곳은 금테를 두르고 린넨 재질의 휘장으로 장식한 명예의 전당일 것이요, 죽인 이들의 피로 칠한다면 이곳은 대학살의 장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뭐 오버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수리비는 괜찮다는 말에 강찬혁은 하하, 웃더니 말했다.
그런 건 외롭지 않나요. 아깝지 않나요.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혼들을 위해서라도 이 공방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금빛, 은빛, 붉은빛. 귀금속과 강철과 불. 제작자들이 긍지를 담아 물건을 만들면 꼭 혼이 깃들 것이다. 붉은빛, 은빛, 붉은빛. 피와 물건과 생명. 사용자들이 의지를 담아 물건을 사용하면 잠시나마 그 물건에 혼이 깃든다. 새것. 수리해야 하는 물건. 더 쓸 수 없는 물건. 생명이 태어나고 돌아오고 묻히는 무덤 같은 바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품은 바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요.
"그런 말 함부로 해도 되는 거에요? ...뭐, 같이 의뢰를 수행할 일이 없다면 의미 없는 말이겠지만요."
상대가 몇 학년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4학년이라고 밝혔으니까, 밖에 나가서 만날 일만 없으면 1년만 피해 다녀도 약속은 무산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라고 생각하며 나이젤은 찬혁의 진심어린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다.
"연락처 드릴 테니까 불러는 주셔야 해요."
아무튼 나이젤은 가볍게 준비를 시작했다. 일할 때긴 하니까, 후드는 벗어서 벽걸이에 건다. 거창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니 작업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그냥 평소에 입는 교복 차림 그대로.
"...실망할지도 몰라요?"
그렇게 작업실로 내려간 나이젤은 정말로 별 일 하지 않았다. 한 일... ①손씻기(중요) ②오염되어 있는 한화 불빠따(였던것)를 정말 깨끗하게 계속 닦아내기 ③계속 닦아내기 ④정말 한 톨의... 이물질도 없을 만큼 닦아내기. 그 정도였다.
강찬혁은 자신의 연락처를 적은 명함을 남겼다. 강찬혁 (무직 백수) 라는 명함에 넣는 것치곤 참으로 천박하고 자학적이며 모욕적인 직함이 달려있었지만 어쨌든 연락처가 적힌 명함이었다. 같이 의뢰를 수행할 일이 없다라, 그에 강찬혁은 한가지를 더 약속하기로 했다. 약속의 내용이 무언고 하니... 바로 다음과 같았다.
"이번 달 내로 부르죠. 어떤 내용일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제가 물어온 의뢰가 그쪽 보기에는 자살행위라거나, 의뢰라기보다는 동네 한바퀴 마실에 가깝거나 그럴 수 있으니까 거부권은 있을 거고요. 그리고 저는 빈말 안 해요... 빈말 하고 넘기려다가... 손모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손가락 한둘 잃은 사람들을 꽤 봐서. 전 빈말은 절대 안 해요."
강찬혁은 옛날을 생각했다. 강찬혁의 팀은 불법 시비에 빠지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죄질을 낮추기 위해, 증명이 어려운 정신적 피해 쪽을 공략했다. 예를 들어 가는 곳마다 따라붙어서 "정당한 추심" 명목으로 계속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등. 하지만 다른 팀에서는... 돈을 못 갚는 이들에게는 한달의 '연체'를 허용하는 대가로 손가락을 가져가곤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렸으니까. 그런 말을 마치고 나이젤의 작업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할 뻔한 강찬혁이 물었다.
나이젤은 자연스럽게 가디언 칩을 쓰려다가 받은 물질적(?)인 연락처를 받고 잠깐 멈췄지만, 그냥 그 번호를 입력해 저장했다. 호환만 되면 상관없겠죠. 역시 무직 백수...라고는 못 쓰겠으니, 메모에는 '학생'이라고 적었다.
"...생각보다 되게 비범한 분이셨나보네요?"
나이젤이 거짓말을 많이 보고 살긴 했어도, 그것 때문에 손 한두 짝이 날아다니는 세계에 속해 있진 않았었다. 조금 기묘한 기분이 되었을지도, 아니면 혹시 저 지금 두려운 걸까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확답을 주시다니 놀랐어요... 그만큼 당신에게 있어서 신용이라는 가치는 중요하단 거겠죠. 그걸 가볍게 치부한 점, 사과드립니다."
뭔가 저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는 거겠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거라면 구태여 알 필요 없겠지만요. 나이젤의 눈에 비친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꽤 좋은 손님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거짓말로 보이지도 않고. 내용은 위조해도 감정과 경험을 위조하긴 어려우니까.
"으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뭔가 섞이면 위험하니까. 그래서 정말 깨끗해질 때까지 닦았다. 이쯤이면 '실망스러운 수리방법'을 써도 될 것 같다. 나이젤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의념기 - 「소재변화」
물품의 소재를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강화'. 필요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만큼 다른 부분은 약해질 수 있다. 철봉과 닿은 부분에 힘이 집중되며 접혀버린 불빠따(였던것)를 나이젤이 천천히 잡아펴고, 끊어진 부분은 문질러 잇는다. 머리를 뻐근하게 누르는 두통과 미열을 무시하며 다른 소재로 변화한 불빠따(였던것)를 새로 만들듯이 빚는다.
"볼트도 박고 싶다고 하셨죠. 혹시 가지고 있으신가요?"
없으면 저쪽, 파란 공구함에서 적당히 큰 사이즈로 가져와주세요- 라고 말하며 나이젤이 한쪽을 가리켰다. 아아, 피곤해졌네요. 이대로 잠들면 꿈 없이 잠들 수 있겠어요.
감수가 - 140Cm정도의 나무 형태의 몬스터 - 네임드는 잘 발견되지 않음. - 대부분의 몬스터가 낮은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음. -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선공하지 않음. - 때때로 감수가가 원하는 물건을 제공하는 경우 자신의 치유력을 담은 가지를 제공하곤 함. - 보스의 경우 8미터 가량의 큰 나무의 형태를 지니며 인간으로 의태하는 능력이 있다고 함. - 최근 인간에 대한 경계가 급증하며 호의적인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격상됨
- 게이트 몬스터 기본 연구 안해찬
★ 아프란시아 성학교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서포터 계통의 학생들이 배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을거예요. 하지만 우린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서포터가 당신들을 책임질 수는 없고, 때때로 여러분은 다친 아군을 치료하기 위해서 창이나 칼이 아닌 도구를 들 필요도 있어야만 합니다.
생명의 도움(F)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아군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의념을 이용하여 상대와의 링크를 연결한 뒤,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아군을 치료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의념과 생명력 두가지를 모두 소모하는 방법이라 비효율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때때로는 효율을 포기하더라도 아군을 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 아프란시아 성학교의 플레이어들은 생명의 도움(F)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제노시아 전문고교 - 가디언은 민간인과는 전투력이나, 전력을 궤를 달리 한다. 가디언은 무력을 함부로 휘둘러선 안된다. - 헌터와 시비가 붙은 경우 UGN 또는 헌터 협회를 통해 사건의 중재를 요청한다. 가능한 한 의념 사용을 자제한다. - 게이트 내부에서는 가능한 한 리더로 지정된 이의 의견에 따르도록 한다. 이는 혹시모를 파티의 붕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 의념을 각성했다는 것은 신인류의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의념을 각성하지 못한 이들이 인간으로서 부족한 것도 아니다. - 우리는 인간이다. 그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
"비범하다기보다는 어두운 인생을 살았죠. 뭐, 다른 건 됐고 사채는 빌리지 마세요. 병 걸려서 죽어가도 그냥 죽는게 나을 겁니다. 진지하게요."
강찬혁은 나이젤이 일하는 과정을 보았다. 처음에 강박적으로 문때던 것도 이제보니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뭐 그럴 것이다. 저 사람은 나보다 이곳에서 훨씬 오래 대장장이 노릇을 했고, 시행착오도 훨씬 많이 겪어봤겠지. 강찬혁도 일을 처음 시작했을때 왜 하는지, 왜 안 하는지 싶던 것들이 다 나름의 이유고 있어서 하고 또는 안 하고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강찬혁은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오우."
의념기를 저런 데 쓸 수도 있구나. 강찬혁이 알고 있는 의념기는 어디까지나 사람을 더 빠르게 죽이는 데 쓰는 거였는데 이렇게 창의적으로 생산적으로 쓰는 모습을 보니 새로웠다. 그 와중 상대가 볼트를 꺼내오라고 하자 그 말대로 볼트를 꺼내왔다. 야구 방망이가 타점을 잡기는 매우 쉽지만 접촉면적이 넓어 둔기치곤 충격 전달이 힘든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 볼트를 박으면 그것도 옛말이 되리라.
"태어나서 잘난 것 하나는 있으니, 그런 상황까진 가지 않을 거에요... 아마도.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니 확답은 못 드리겠지만요."
그러고보니 헌터나 가디언이 사채를 빌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헌터들이 돈을 받으러 올까요? 제대로 합법적인 계약서를 써두지 않으면 불법의 영역에 애매하게 걸친 약속은 힘에 흐지부지될지도.
"나이젤입니다. 이쯤이면 될까요?"
나이젤이 다소 건성으로 자기소개를 한 다음 위치를 잡으며 물었다. 확답을 들었다면, 볼트를 박는 작업까지 완료했을 것이다. 고객의 주문사항에 철저히 보답할 수 있게 여러 번 확인하면서. 의념기를 해제하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매끈하게 펴진 한화 불빠따와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박혀있는 볼트였을 것이다.
"아, 그리고 연락은 여기로. 의뢰 건 외에도 무기에 문제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연락해 주세요."
상대가 물리적(?) 연락처를 줬기에, 나이젤도 적당히 손에 들어갈 만큼 작은 종이에 이름과 번호를 적었다. 공방 문패에 쓰인 글씨와 같은 글씨체. 상대가 무직 백수......라고 적힌 명함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나이젤은 아직 명함이 없었다. 직업도 아닌데, 그냥 번호를 가르쳐 주면 되지, 하고 만들어두지 않았지만 이럴 때 내줄 몇 장 정돈 필요할지도.
생각해보면, 가디언에게 추심을 하러 간 적은 없다. 군소 업체치고 신원검사를 확실하게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아예 없는지 같은 건 나중이었고, 이 사람이 가디언인지, 헌터였는지를 먼저 찾아봤다. 가디언이면 돈이야 잘 벌지만, 동시에 그 돈을 빚 갚는데 쓸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강하니까. 법적으로 소송을 걸면 가능성이야 있었지만, 가디언이 무슨 연줄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덤볐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처음부터 대출을 거절하는 쪽으로 나갔다. 실수로 가디언에게 대출 승인을 찍어준 대출상담 팀장이 사장한테 무슨 생각이냐, 그 새끼가 돈 떼면 떼인 돈은 니가 다 갚으라며 싸대기를 치며 직설적으로 욕하던 광경을 봤던 적이 있다.
"뭐, 생각해보니 생각 있는 사채업자면 빌려주지를 않네요."
연락처를 받은 강찬혁은 나이젤이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저 소재 변화로 만들어진 방망이가 약간 강해진 기분인데, 저 의념기를 어떻게 쓸지 궁금해졌다. 저거로 무기를 강화하려나? 아니면 두개골을 일시적으로 티타늄 합금으로 변환시켜 방어력을 높일지도. 활용처는 쓰려고만 하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찬혁은 강화된 야구 방망이를 받고 나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사직서를 낸 강찬혁에게, 사장은 그렇게 되물었다. 사실 강찬혁의 입장에서는 전혀 뜬금없지 않았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차라리 애먼 사람을 두들겨패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호구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 괴물로 살겠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었고, 손을 대면 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수금업에 더 이상 손을 댈 생각은 없었으니까. 물론 그런 심경의 변화를 사장은 알 리가 없었으니. 화났냐, 갑자기 왜 이러냐, 그런 말로 강찬혁을 설득하려 했다.
"임마. 너 그 나이에 이렇게 돈 벌 수 있는 일이 어딨다고 그래. 그래. 알았어. 월급 300 더 얹어주고, 유급휴가도 내줄 테니까..."
"마음만 받겠습니다."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야, 너 어디가는 거야! 야!!!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강찬혁은 듣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됐다. 이번 달 월급은 들어오건 말건 상관없다. 차라리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사람의 절망적인 상황을 이용해 돈놀이를 하고, 그 돈놀이의 끝을 몽둥이로 수습하는 더러운 일로 번 더러운 돈. 그런 돈은 이제 안 받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졌다. 마음 속의 족쇄가 사라지자, 짓누르던 자리도 자리라고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이제 뭐하고 사냐..."
강찬혁은 집에 돌아가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연락처로 수많은 문자와 전화들이 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강찬혁의 대답은 '깔끔한 무시'였다. 이제 뭘 하고 살지? 진지한 고민이 들었다. 대학생도 취업 못하는 시대에 어디서 중졸을 받아줄 것이고, 이제 와서 검정고시를 쳐서 고졸로 학벌을 올린다 쳐도 무슨 일을 할면서 살까? 막막했다. 막막하면 막막할수록, 그를 비난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이불에 갇혀갔다.
며칠만에 바깥으로 나온 강찬혁은 바깥을 바라보았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맨날 노는 걸로만 보였던 아저씨도 개 한마리를 끌고 조깅을 했고, 신문을 사서 돌아오는 정도의 일상은 가지고 있었다. 그걸 보니, 강찬혁도 당장 끝내야 할 일은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공과금, 월세, 그 외 기타등등... 며칠간 배를 굶었으니 맛난 것도 먹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 애들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던가. 며칠 뒤면 다시 빚독촉을 하러 올 텐데.
"...아, 진짜."
강찬혁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고, 치킨 한마리를 샀다. 호구처럼 살기는 싫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강찬혁은 치킨과 돈봉투를 들고 달동네로 걸어들어갔다. 이 돈으로 맛난 거나 사먹으라고 쥐여줄 생각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고등학교에서 학교 공부를 할 동안 그는 뒷세계의 역학관계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를 했고... 그 결과로 할머니가 애들을 데리고 당장 몇년 간은 빚독촉 걱정 없이 살만한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강찬혁은 할머니의 집 앞에 몰려든 패거리들을 보고 일이 제대로 꼬였음을 직감했다. 강찬혁은 뒤늦게 시계의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만약 그가 퇴사하지 않았다면,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최종 경고를 하러 갔을 날이었다. 말이 좋아 최종 경고지, 말로 사람의 정신을 말려서 돈을 뱉어내게 만드는 강찬혁마저도 사정없이 주먹과 야구방망이를 쓰는 날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들이 할머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드는 것인지는 뻔했다.
"도, 도와줘요!"
"도와주긴 지랄. 할망구. 여기 누구 올거 같아?"
"야 새끼들아! 신고해봐, 그럼 너네도 엮이는 거다!"
강찬혁은 치킨을 헌옷함 위에 올려놓고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옛날에 강찬혁에게 팀장 자리를 빼앗겼던 놈이, 또다시 팀장을 맡아서, 대표 자격으로 할머니를 협박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돈이 없다고 하자 할머니의 목걸이를 뺏으려 들었고, 저항하자 멱살을 잡았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우는 소리도 들렸다. 강찬혁은 옆에서 낄낄대면서 구경하던 옛 동료들을 밀치고 들어가서, 팀장을 툭툭 쳤다.
"야, 너 뭐냐?"
강찬혁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타나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처음에는 다시 일하러 왔냐고 물어보려던 팀장도, 강찬혁의 표정을 보고는 뭐 때문에 왔는지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분명, 여기에 정의의 용사 놀이나 하러 왔으렷다. 팀장은 강찬혁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다가, 아예 미간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쿡쿡 밀면서 말했다.
"뭐하려는 거야? 뭐, 또 뜨자고? 여기서?"
"여기서 다 나가."
나가, 그 말에 팀장이 크게 웃고, 옆에서 옛 팀장과 현 팀장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이들도 현 팀장의 눈치를 보기로 결정하고 따라 웃었다. 하지만 강찬혁은 웃지 않았다. 강찬혁은 할머니에게 손짓으로 들어가라 했다. 팀장은 웃음을 뚝 멈추고, 강찬혁에게 눈을 부라렸다. 팀장은 옆에 모인 동료들을 가리키면서 협박했지만, 강찬혁도 지지 않았다.
"너가 지금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1:1로 순서대로 덤비면 살려는 줄게."
"1:1? 하 참, 이 새끼 어이가 없어서..."
야!
밟아! 팀장이 명령하자, 옛날의 동료들이 강찬혁에게 달려들었다. 주먹부터, 날붙이, 그리고 몽둥이, 전기충격기까지. 아주 다양하고 살벌한 '연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강찬혁은 알고 있었다... 저들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으니까. 숫자야 1:17이지만, 뒤에 벽을 두고 싸우는 이상, 그리고 여기가 좁은 골목길인 이상 한번에 덤빌 수 있는 놈들은 1:2 내지는 1:3이었고, 그 정도 숫자는 간단했다.
"이 새끼 뭐야?"
"차, 찬혁아! 미안..."
"으악! 살려줘! 무릎이 말을 안 들어! 으아악!"
머리 깨지는 소리와, 무릎이 박살나는 소리, 상남자를 자처하던 깡패들조차 울면서 죽어가는 소리, 강찬혁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싸움의 함성은 잦아들고 끔찍한 신음소리만 늘었다. 이때만큼 누군가에게 잔혹하게 폭력을 휘둘러본 때가 있을까? 이렇게 선혈이 낭자하던 때가 있었을까? 팀장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큰일 났다고 소리만 치고 있었다. 불행히도, 더 이상 그를 위해 고기방패가 되어줄 이들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고작 10분만에 정리된 상황을 보면서, 강찬혁은 왜 사장이 자기를 보내지 않으려고 별별 조건을 다 걸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다들 센 척만 잘하지, 찐따가 화나서 물건 집어던져도 이것보단 잘 싸우겠다."
"너... 이... 새끼가...!"
팀장은 질린 얼굴로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길쭉한 총검을 꺼내들고, 칼날로 강찬혁을 겨눴다. 그리고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한번 이긴 상대를 두번 이기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었다.
깡!
"흐아아악!"
나이프가 강찬혁의 팔을 쳐보기도 전에, 방망이가 팀장의 무릎을 강하게 내리치고, 팀장은 격통 속에 균형을 잃으며 쓰러졌다. 팔을 끌어 어떻게든 총검을 잡으려던 팔을 밟고, 총검을 들었다. 강찬혁이 자기 목숨을 끝장내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팀장이 별별 공수표를 다 들이댔지만 강찬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찬혁아! 살려줘! 형님으로 모... 끄아아악! 아아아가악!"
"미안한데 난 너 같은 아우님은 필요 없어."
길쭉한 총검이 팀장의 어깨를 뚫고 들어가 바닥에 박혀, 그를 땅에 고정한 못 같은 형세가 되었다. 강찬혁이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1:1 순서대로 덤비면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강찬혁이 제시한 최소한의 페어플레이 정신도 위반했으니, 강찬혁이라고 봐줄 이유는 없었다. 동료들이 위협용으로 가지고 온 슬레지해머를 들고 와서, 팀장의 머리에 대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조준했다.
"으악! 제발! 살려줘!"
"그냥 얌전히 있어 임마. 한번에 터지면 고통도 없잖아."
그리고 강찬혁이 슬레지해머를 들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찬혁! 거기까지 해라!"
"...사장놈."
강찬혁은 슬레지해머를 내려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삼봉캐피탈 사장, 검은 양복 입은 떡대들. 평범한 사람은 보자마자 쫄아서 사릴 테지만, 강찬혁은 저 정도로 쫄기에는 선을 너무 크게 넘어버렸다. 삼봉캐피탈 사장은 당장에라도 강찬혁을 두들겨패려는 떡대들을 손을 들어 막고, 최대한 신사적으로 협상을 하려고 했다. 어차피 복마전으로 돈 버는 놈이 신사적인 척을 하는 게 강찬혁 입장에서는 웃긴 노릇이었지만, 여튼 그랬다.
"지금 여기서 그만하고 나가면, 없던 일로 할 테니까, 거기까지 해라. 응?"
제 딴에는 어른의 관대함이었겠다만 강찬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해줄 이유도 없었다. 강찬혁은 방망이를 고쳐잡고, 짧은 말로 거절을 대신하며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응 니애미."
또 30분이 지났다. 강찬혁은 자기가 대체 어떻게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따라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뭔가 몸이 날쌨다. 분명 저 주먹을 처맞았으면 바로 나가떨어져야 했을 텐데? 저 칼을 피할 수 있었을 리가 없을 텐데? 이정도 주먹질로 사람이 기절한다고? 칼을 뺏어서 팔을 베자 동맥의 선혈이 나오며 떡대들이 패닉에 빠졌다. 물론 강찬혁도 찔리고, 맞고, 골통이 빠개졌다. 하지만...
"저... 저... 새끼...!"
강찬혁은 다시 일어나서, 그에게 달려드는 떡대들을 전부 다 때려눕혔다. 보다 못한 사장이 옆에 있던 떡대를 시켜 검은 가방을 꺼냈다. 다가오는 강찬혁을 보자, 검은 가방을 여는 사장의 손이 점점 급해졌다. 이번에는 뭐가 있다고? 한번 해 보던지.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던 강찬혁은, 그 검은 가방에서 보인 은빛 총구를 보고 얼어붙었다.
총에 맞기 전 마지막 한 마디.
"아오."
탕! 탕!
가슴이 뜨겁게 느껴진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왜인지 모르게 점점 잠이 쏟아지고, 눈 앞이 어두워졌다. 강찬혁은 뜨거운 가슴에 손을 대보았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도, 붉은 피가 보였다. 안 돼. 일어나야 해. 강찬혁이 어떻게든 자세를 고쳐잡고 사장에게 다가가자, 사장은 질린 얼굴로 그의 미간에 총구를 올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빛이, 강찬혁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본 마지막 시각 정보였다.
옛날에 동식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마. 센척 그만해. 너 그런 놈 아니잖아."
"그런 놈 아니었는데, 이젠 됐어."
"무슨 개소리야. 너 깡패잖아 깡패. 너 같은 애들은 말이야, 위선도 위악도 떨 필요 없어. 나야 손님들 때문에 별별 개소리 하지만, 넌 그럴 필요 없잖아. 누가 살라는 대로 살지 말고. 너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네 길 아닌 거 알잖아."
이 새끼, 참 도움 되는 친구일세.
"...어어, 저, 저, 저 새끼 뭐야?"
"끄으으윽..."
머리가 무겁다. 엄청 무겁다. 하지만 살아는 있다. 강찬혁은 일어나서, 사장에게 다가간다. 사장은 공황에 빠져서 총을 쏘지만, 이상하게도 강찬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탕!
아, 눈에 뭐 들어갔네.
눈에 총알이 들어갔는데도, 마치 티끌 긁어내듯 대충 비벼서 쓱쓱 꺼내는 모습을 보고, 사장과 어깨들은 겁에 질려서 도망갔다. 그렇게, 강찬혁은 이겼다. 뭘 해야 하더라? 뭐였지...? 그래. 치킨. 돈봉투. 강찬혁은 헌옷함에 올려뒀던 치킨을 들고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치킨을 내려놓고, 돈봉투를 던졌다. 강찬혁은 감상적인 말을 좋아하지 않았고, 좋아했더라도 글이랑은 담 쌓고 살아서 말할 자신 없었기에 짧게 할 말만 했다.
"그러게 저런 미친놈들한테 돈을 왜 빌려서 지랄이야... 됐고, 할망구. 돈봉투에 야반도주 전문업체 번호 적어놨으니까, 그 번호로 연락해서 동해로 애들 데리고 도망쳐... 거기는 러시아 마피아들이 꽉 잡고 있어서 쟤네들 발도 못 들이니까..."
강찬혁은 할 말만 하고, 그러게 왜 돈을 빌려가지고, 라 툴툴대면서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한계였다. 강찬혁은 대문 문턱에 걸려서 그대로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