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혁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보았다. 여기서 무엇이 만들어졌을까? 여기서 만든 갑옷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살렸을까? 여기서 만들어진 살인 무기들이 얼마나 많은 이계의 주민들을 그들이 믿는 저 세상으로 보냈을까? 살린 목숨으로 치장한다면 이곳은 금테를 두르고 린넨 재질의 휘장으로 장식한 명예의 전당일 것이요, 죽인 이들의 피로 칠한다면 이곳은 대학살의 장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뭐 오버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수리비는 괜찮다는 말에 강찬혁은 하하, 웃더니 말했다.
그런 건 외롭지 않나요. 아깝지 않나요.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혼들을 위해서라도 이 공방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금빛, 은빛, 붉은빛. 귀금속과 강철과 불. 제작자들이 긍지를 담아 물건을 만들면 꼭 혼이 깃들 것이다. 붉은빛, 은빛, 붉은빛. 피와 물건과 생명. 사용자들이 의지를 담아 물건을 사용하면 잠시나마 그 물건에 혼이 깃든다. 새것. 수리해야 하는 물건. 더 쓸 수 없는 물건. 생명이 태어나고 돌아오고 묻히는 무덤 같은 바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품은 바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요.
"그런 말 함부로 해도 되는 거에요? ...뭐, 같이 의뢰를 수행할 일이 없다면 의미 없는 말이겠지만요."
상대가 몇 학년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4학년이라고 밝혔으니까, 밖에 나가서 만날 일만 없으면 1년만 피해 다녀도 약속은 무산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라고 생각하며 나이젤은 찬혁의 진심어린 말을 가볍게 흘려들었다.
"연락처 드릴 테니까 불러는 주셔야 해요."
아무튼 나이젤은 가볍게 준비를 시작했다. 일할 때긴 하니까, 후드는 벗어서 벽걸이에 건다. 거창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니 작업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그냥 평소에 입는 교복 차림 그대로.
"...실망할지도 몰라요?"
그렇게 작업실로 내려간 나이젤은 정말로 별 일 하지 않았다. 한 일... ①손씻기(중요) ②오염되어 있는 한화 불빠따(였던것)를 정말 깨끗하게 계속 닦아내기 ③계속 닦아내기 ④정말 한 톨의... 이물질도 없을 만큼 닦아내기. 그 정도였다.
강찬혁은 자신의 연락처를 적은 명함을 남겼다. 강찬혁 (무직 백수) 라는 명함에 넣는 것치곤 참으로 천박하고 자학적이며 모욕적인 직함이 달려있었지만 어쨌든 연락처가 적힌 명함이었다. 같이 의뢰를 수행할 일이 없다라, 그에 강찬혁은 한가지를 더 약속하기로 했다. 약속의 내용이 무언고 하니... 바로 다음과 같았다.
"이번 달 내로 부르죠. 어떤 내용일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제가 물어온 의뢰가 그쪽 보기에는 자살행위라거나, 의뢰라기보다는 동네 한바퀴 마실에 가깝거나 그럴 수 있으니까 거부권은 있을 거고요. 그리고 저는 빈말 안 해요... 빈말 하고 넘기려다가... 손모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손가락 한둘 잃은 사람들을 꽤 봐서. 전 빈말은 절대 안 해요."
강찬혁은 옛날을 생각했다. 강찬혁의 팀은 불법 시비에 빠지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죄질을 낮추기 위해, 증명이 어려운 정신적 피해 쪽을 공략했다. 예를 들어 가는 곳마다 따라붙어서 "정당한 추심" 명목으로 계속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등. 하지만 다른 팀에서는... 돈을 못 갚는 이들에게는 한달의 '연체'를 허용하는 대가로 손가락을 가져가곤 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렸으니까. 그런 말을 마치고 나이젤의 작업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할 뻔한 강찬혁이 물었다.
나이젤은 자연스럽게 가디언 칩을 쓰려다가 받은 물질적(?)인 연락처를 받고 잠깐 멈췄지만, 그냥 그 번호를 입력해 저장했다. 호환만 되면 상관없겠죠. 역시 무직 백수...라고는 못 쓰겠으니, 메모에는 '학생'이라고 적었다.
"...생각보다 되게 비범한 분이셨나보네요?"
나이젤이 거짓말을 많이 보고 살긴 했어도, 그것 때문에 손 한두 짝이 날아다니는 세계에 속해 있진 않았었다. 조금 기묘한 기분이 되었을지도, 아니면 혹시 저 지금 두려운 걸까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확답을 주시다니 놀랐어요... 그만큼 당신에게 있어서 신용이라는 가치는 중요하단 거겠죠. 그걸 가볍게 치부한 점, 사과드립니다."
뭔가 저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는 거겠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거라면 구태여 알 필요 없겠지만요. 나이젤의 눈에 비친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꽤 좋은 손님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거짓말로 보이지도 않고. 내용은 위조해도 감정과 경험을 위조하긴 어려우니까.
"으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뭔가 섞이면 위험하니까. 그래서 정말 깨끗해질 때까지 닦았다. 이쯤이면 '실망스러운 수리방법'을 써도 될 것 같다. 나이젤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의념기 - 「소재변화」
물품의 소재를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바꾸는 '강화'. 필요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만큼 다른 부분은 약해질 수 있다. 철봉과 닿은 부분에 힘이 집중되며 접혀버린 불빠따(였던것)를 나이젤이 천천히 잡아펴고, 끊어진 부분은 문질러 잇는다. 머리를 뻐근하게 누르는 두통과 미열을 무시하며 다른 소재로 변화한 불빠따(였던것)를 새로 만들듯이 빚는다.
"볼트도 박고 싶다고 하셨죠. 혹시 가지고 있으신가요?"
없으면 저쪽, 파란 공구함에서 적당히 큰 사이즈로 가져와주세요- 라고 말하며 나이젤이 한쪽을 가리켰다. 아아, 피곤해졌네요. 이대로 잠들면 꿈 없이 잠들 수 있겠어요.
감수가 - 140Cm정도의 나무 형태의 몬스터 - 네임드는 잘 발견되지 않음. - 대부분의 몬스터가 낮은 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음. -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선공하지 않음. - 때때로 감수가가 원하는 물건을 제공하는 경우 자신의 치유력을 담은 가지를 제공하곤 함. - 보스의 경우 8미터 가량의 큰 나무의 형태를 지니며 인간으로 의태하는 능력이 있다고 함. - 최근 인간에 대한 경계가 급증하며 호의적인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격상됨
- 게이트 몬스터 기본 연구 안해찬
★ 아프란시아 성학교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서포터 계통의 학생들이 배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을거예요. 하지만 우린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서포터가 당신들을 책임질 수는 없고, 때때로 여러분은 다친 아군을 치료하기 위해서 창이나 칼이 아닌 도구를 들 필요도 있어야만 합니다.
생명의 도움(F)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아군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의념을 이용하여 상대와의 링크를 연결한 뒤,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하여 아군을 치료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의념과 생명력 두가지를 모두 소모하는 방법이라 비효율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때때로는 효율을 포기하더라도 아군을 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 아프란시아 성학교의 플레이어들은 생명의 도움(F)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 제노시아 전문고교 - 가디언은 민간인과는 전투력이나, 전력을 궤를 달리 한다. 가디언은 무력을 함부로 휘둘러선 안된다. - 헌터와 시비가 붙은 경우 UGN 또는 헌터 협회를 통해 사건의 중재를 요청한다. 가능한 한 의념 사용을 자제한다. - 게이트 내부에서는 가능한 한 리더로 지정된 이의 의견에 따르도록 한다. 이는 혹시모를 파티의 붕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 의념을 각성했다는 것은 신인류의 조건 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의념을 각성하지 못한 이들이 인간으로서 부족한 것도 아니다. - 우리는 인간이다. 그 점을 절대로 잊지 말자.
"비범하다기보다는 어두운 인생을 살았죠. 뭐, 다른 건 됐고 사채는 빌리지 마세요. 병 걸려서 죽어가도 그냥 죽는게 나을 겁니다. 진지하게요."
강찬혁은 나이젤이 일하는 과정을 보았다. 처음에 강박적으로 문때던 것도 이제보니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뭐 그럴 것이다. 저 사람은 나보다 이곳에서 훨씬 오래 대장장이 노릇을 했고, 시행착오도 훨씬 많이 겪어봤겠지. 강찬혁도 일을 처음 시작했을때 왜 하는지, 왜 안 하는지 싶던 것들이 다 나름의 이유고 있어서 하고 또는 안 하고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강찬혁은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오우."
의념기를 저런 데 쓸 수도 있구나. 강찬혁이 알고 있는 의념기는 어디까지나 사람을 더 빠르게 죽이는 데 쓰는 거였는데 이렇게 창의적으로 생산적으로 쓰는 모습을 보니 새로웠다. 그 와중 상대가 볼트를 꺼내오라고 하자 그 말대로 볼트를 꺼내왔다. 야구 방망이가 타점을 잡기는 매우 쉽지만 접촉면적이 넓어 둔기치곤 충격 전달이 힘든 문제가 있었는데, 이제 볼트를 박으면 그것도 옛말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