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혁은 박살난 몽둥이를 보여주었다. 그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몽둥이였다. 시비를 걸던 취객을 쫓아내려고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문자 그대로였다. 적대 조직을 깨뜨리는 사업장에서도 이 몽둥이와 함께했고, 머리에 총을 맞아 다 죽어가던 상황에서도 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가디언으로서 첫 의뢰를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이 몽둥이였다. 어차피 중국의 어느 싸구려 공장에서 적당히 찍어낸 물건이었으니까 빈말로라도 품질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강찬혁은 작은 미소를 짓는 사람에게 방망이를 내보이며 물었다.
"이런 거 수리 잘하는 집 아세요? 새로 사는 데 말고, 수리할 수 있느 곳으로..."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해서 써야지. 그게 강찬혁의 신조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물자사랑은 곧 나라사랑이요, 절약하지 않음은 곧 매국 아니던가.
고쳐 쓰고 싶다면 따라오라는 말에, 언급한 상자를 들었다. 그와 나이차이가 심하게 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제노시아 전문 특성화 고교 사람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청월고교 사람이면 혹시라도 학생기록부나 친구 목록에 자기 같은 불량한 놈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거나, 아예 성학교에 또 또라이가 왔네, 그런 이야기나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것 같았다. 혹시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설마하니 내 몽둥이에 촉수가 돋아난다던지 그런 일은 없겠지?
강찬혁은 상대가 시킨 대로 상자를 들고 고분고분히 따라가기로 했다. 놀이터 바깥으로 나가 걷던 중에, 강찬혁은 상자 안의 내용물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물었다.
윌리웜 A 체펠리는 유서깊은 이탈리아 가문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특히나 그의 모국의 오랜 전통인 「고기 뷔폐」는 그의 크나 큰 자랑거리였고, 몇 백년간 내려온 가업에 온 힘과 열정을 붓는 사나이였다. 기나 긴 수련 끝에 「고기 뷔폐」를 완벽히 했으나, 가업에 대한 방향성에 관하여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동양까지 내려온 패기좋은 사나이. 그것이 윌리웜이었다.
허나 그런 그에게도 적수는 있었으니.
"파웃..."
나타날때마다 고기를 아주 깨끗히 해지우는 그 소녀! 그 원망스런 소녀! 생각할때마다 이가 갈린다. 해맑은 표정으로 아주 가게 냉동실을 비우는 소녀! 허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저 소녀가 혼자만 기웃거리는 것을 보아 특별히 1인용 세트 가격을 높였다는, 비장의 수를 오늘 개시했으니!
딸랑, 거리는 소리에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 윌리엄 A 체펠리. 그의 표정으로 바로 절망으로 굳어졌다. 이럴수가. 그 소녀는 아군을 모집한 것이었다!
"파웃, 파웃!"
허나 여기서 쓰러지면 자랑스런 체펠리 가문의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콧수염(이 또한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수염이였다.)을 다듬었다. 이번에야말로 저 소녀와 저 수수께끼의 사내를 쓰러트릴 때였다. 「체펠리가」의 전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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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른 전개! 이 속시원한 진행! 카사는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팔을 붙잡으니 패대기는 커녕 은쾌히 수락하고 가게 문을 직접 연 자가 아닌가! 카사는 진심으로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이름을 중요시한 적 없던 카사에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수년간 알고 지낸 친구인 마냥 당당히 순무의 옆에 꼬옥 붙을 뿐. 이내 직원의 허락으로 들어가자 마자 순무에게 씨익, 마주 웃어준다. 그 둘은 진심으로 큰 일을 해낸 것이었으므로!
자리에 앉자마자 탁, 소년의 손에서 받아낸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지금 껏 밖에서 흘린 침... 아니, 수분을 충당하려는 것일까.
"순무? 맛없는 이름이네! 난 카사! 나도 이번에 성학교에 입학했어!"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입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제 입에 필터 없음을 보인다. 고기를 먹기도 전에 싸가지 밥말아 먹었다는 카사는 깨끗히 비운 컵을 다시 채운다. 나름대로 소년에게 보답하려는 지, 순무의 컵이 아주 조금 비어있어도 콸콸콸, 물을 부우려 한다.
// 이, 일단 쓰긴 했는 데. 으아ㅏ 미안! 내가 좀 성급했어! Orz 일단 다음에 돌리면 그때 이어도 좋으니까!
찬혁이 상자를 들었기에 수락이라 여기고 앞서 걷던 나이젤이 갑자기 그런 말을 던졌다. 신체 S인 나이젤이 평범하게 드는 물건이었으니 똑같은 S인 찬혁이 들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냥 무심코 '제가 이걸 들어서 쓸 손이 없으니 저분이 들어주면 좋겠네요'하고 생각하며 부탁했다가 문득 생각난 거였다. 다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물건은 아니란 게. 들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요...
"네. 제노시아, 4학년. 나이젤 그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콕 집어서 물어본다는 건 상자의 내용물을 봤다는 걸까요? 들어간 재료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실제로 여러 가지 부품이 들어가 있는 걸 만들어보려다가 생긴 실패작뿐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품질이 나쁜 건 아니지만, 들쭉날쭉해서 판매품은 아니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나이젤이 보기엔 형편없는 수준의 물건. 그래서 상대가 들고 도망칠 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끔 확인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이젤의 발걸음은 거주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요. 어서오세요, 손님."
나이젤의 발이 멈춘 건 크다고는 못할, 작은 건물 하나였다. 그럼에도 문 앞에는 <Atelier Fragarach>라고 음각된 아래에 <공방 프라가라흐>라고 작게 둥근 글씨로 적힌 문패가 걸려 있어,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있을 만한 곳. 들어가면 여기저기 독특한 장식품이 하나씩 얹혀져 있는, 응접실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뭔가 그냥 도착지까지 묘사해버렸긴 한데 가는길에 더 대화하거나 다른 사건이 벌어지거나 해도 무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