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가고, 붉은 노을이 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놀이터. 그곳에서 강찬혁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망이를 아래로 휘두르면서 생기는 관성과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실어 위로 휘둘러도 보고, 아래로 내리쳐도 보고, 옆으로 휘둘러도 봤다. 옛날부터 방망이는 그의 친구와도 같았다. 사람의 골통을 깰 때도, 뼈를 부술 때도, 기물을 파손할 때도. 사람을 잡는 데는 이것보다 칼이 더 훌륭할 수도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짧았고, 타격력이나 기물파손은 망치가 나았지만 휘두르는 속도는 방망이를 이길 수 없었다. 즉 그에게 있어 이 방망이는 만능이었다.
"후우..."
이 방망이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 방망이에 뭔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힘이 잘못 실리면서 강찬혁의 방망이가 옆에 있던 철봉 지지대를 강타했다.
깡!
"헉."
다행히도 철봉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강찬혁의 야구방망이가 철봉과 닿은 지점을 기준으로 반쪽으로 완벽하게 접혀버렸다. 강찬혁은 불구가 되어버린 야구방망이를 보며 주저앉았다.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개가 사람을 뒤쫓아서 흔적없이 먹어버렸다던가 하는, 근거 없는 낭설이 나뒹구는 길거리를 지나며 나이젤이 중얼거렸다. 없는 일이 떠돌진 않을 테고 뭔가 와전된 거겠죠? 뭐, 실제로 있는 개라면... 육포라도 가지고 다니는 게 좋으려나요? 최근 상점가에서 9개입 육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나 뭐라나... 하는 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후드를 눌러쓰고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생활 속 소음들에 귀를 기울이던 나이젤은 문득 큰 소리를 들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같은?
"무슨 일인가요?"
소음의 근원지로 달려온 나이젤은 여전히 입가에 띈 작은 미소를 흐리지 않으며 소음의 원인을 물었다. 말하지 않아도 기능을 상실한 야구방망이 앞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있어서 알 수 있었지만. 나이젤은 대충 가까운 곳에 상자를 내려놓고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적당히 몸을 숙여 시선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철봉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으셨나요? 하지만, 이 철봉 보이는 것보단 단단한 재질인걸요..."
라고 엉뚱하게 속을 긁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착실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정말 완벽하게 접힌 야구방망이를 보고 감탄할 뻔했다. 일부로 이렇게 만들기도 힘든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강찬혁은 박살난 몽둥이를 보여주었다. 그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몽둥이였다. 시비를 걸던 취객을 쫓아내려고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문자 그대로였다. 적대 조직을 깨뜨리는 사업장에서도 이 몽둥이와 함께했고, 머리에 총을 맞아 다 죽어가던 상황에서도 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가디언으로서 첫 의뢰를 시작할 때도 끝낼 때도 이 몽둥이였다. 어차피 중국의 어느 싸구려 공장에서 적당히 찍어낸 물건이었으니까 빈말로라도 품질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강찬혁은 작은 미소를 짓는 사람에게 방망이를 내보이며 물었다.
"이런 거 수리 잘하는 집 아세요? 새로 사는 데 말고, 수리할 수 있느 곳으로..."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해서 써야지. 그게 강찬혁의 신조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물자사랑은 곧 나라사랑이요, 절약하지 않음은 곧 매국 아니던가.
고쳐 쓰고 싶다면 따라오라는 말에, 언급한 상자를 들었다. 그와 나이차이가 심하게 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제노시아 전문 특성화 고교 사람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청월고교 사람이면 혹시라도 학생기록부나 친구 목록에 자기 같은 불량한 놈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거나, 아예 성학교에 또 또라이가 왔네, 그런 이야기나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것 같았다. 혹시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설마하니 내 몽둥이에 촉수가 돋아난다던지 그런 일은 없겠지?
강찬혁은 상대가 시킨 대로 상자를 들고 고분고분히 따라가기로 했다. 놀이터 바깥으로 나가 걷던 중에, 강찬혁은 상자 안의 내용물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물었다.
윌리웜 A 체펠리는 유서깊은 이탈리아 가문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특히나 그의 모국의 오랜 전통인 「고기 뷔폐」는 그의 크나 큰 자랑거리였고, 몇 백년간 내려온 가업에 온 힘과 열정을 붓는 사나이였다. 기나 긴 수련 끝에 「고기 뷔폐」를 완벽히 했으나, 가업에 대한 방향성에 관하여 아버지와 크게 다투고 동양까지 내려온 패기좋은 사나이. 그것이 윌리웜이었다.
허나 그런 그에게도 적수는 있었으니.
"파웃..."
나타날때마다 고기를 아주 깨끗히 해지우는 그 소녀! 그 원망스런 소녀! 생각할때마다 이가 갈린다. 해맑은 표정으로 아주 가게 냉동실을 비우는 소녀! 허나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저 소녀가 혼자만 기웃거리는 것을 보아 특별히 1인용 세트 가격을 높였다는, 비장의 수를 오늘 개시했으니!
딸랑, 거리는 소리에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 윌리엄 A 체펠리. 그의 표정으로 바로 절망으로 굳어졌다. 이럴수가. 그 소녀는 아군을 모집한 것이었다!
"파웃, 파웃!"
허나 여기서 쓰러지면 자랑스런 체펠리 가문의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콧수염(이 또한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수염이였다.)을 다듬었다. 이번에야말로 저 소녀와 저 수수께끼의 사내를 쓰러트릴 때였다. 「체펠리가」의 전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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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빠른 전개! 이 속시원한 진행! 카사는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팔을 붙잡으니 패대기는 커녕 은쾌히 수락하고 가게 문을 직접 연 자가 아닌가! 카사는 진심으로 이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이름을 중요시한 적 없던 카사에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수년간 알고 지낸 친구인 마냥 당당히 순무의 옆에 꼬옥 붙을 뿐. 이내 직원의 허락으로 들어가자 마자 순무에게 씨익, 마주 웃어준다. 그 둘은 진심으로 큰 일을 해낸 것이었으므로!
자리에 앉자마자 탁, 소년의 손에서 받아낸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지금 껏 밖에서 흘린 침... 아니, 수분을 충당하려는 것일까.
"순무? 맛없는 이름이네! 난 카사! 나도 이번에 성학교에 입학했어!"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입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제 입에 필터 없음을 보인다. 고기를 먹기도 전에 싸가지 밥말아 먹었다는 카사는 깨끗히 비운 컵을 다시 채운다. 나름대로 소년에게 보답하려는 지, 순무의 컵이 아주 조금 비어있어도 콸콸콸, 물을 부우려 한다.
// 이, 일단 쓰긴 했는 데. 으아ㅏ 미안! 내가 좀 성급했어! Orz 일단 다음에 돌리면 그때 이어도 좋으니까!
찬혁이 상자를 들었기에 수락이라 여기고 앞서 걷던 나이젤이 갑자기 그런 말을 던졌다. 신체 S인 나이젤이 평범하게 드는 물건이었으니 똑같은 S인 찬혁이 들 수 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냥 무심코 '제가 이걸 들어서 쓸 손이 없으니 저분이 들어주면 좋겠네요'하고 생각하며 부탁했다가 문득 생각난 거였다. 다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물건은 아니란 게. 들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요...
"네. 제노시아, 4학년. 나이젤 그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콕 집어서 물어본다는 건 상자의 내용물을 봤다는 걸까요? 들어간 재료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실제로 여러 가지 부품이 들어가 있는 걸 만들어보려다가 생긴 실패작뿐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품질이 나쁜 건 아니지만, 들쭉날쭉해서 판매품은 아니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나이젤이 보기엔 형편없는 수준의 물건. 그래서 상대가 들고 도망칠 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끔 확인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이젤의 발걸음은 거주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요. 어서오세요, 손님."
나이젤의 발이 멈춘 건 크다고는 못할, 작은 건물 하나였다. 그럼에도 문 앞에는 <Atelier Fragarach>라고 음각된 아래에 <공방 프라가라흐>라고 작게 둥근 글씨로 적힌 문패가 걸려 있어,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있을 만한 곳. 들어가면 여기저기 독특한 장식품이 하나씩 얹혀져 있는, 응접실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뭔가 그냥 도착지까지 묘사해버렸긴 한데 가는길에 더 대화하거나 다른 사건이 벌어지거나 해도 무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