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리려니 상당히 힘드오. 그 당시의 모든 사건들은 혼란스럽고 불분명하오. 기묘한 여러 감각들이 일시에 나를 사로잡았소. 그런 까닭에 나는 동시에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맡았소. 사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양한 감각 작용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소. 조금씩 더 강렬해지는 빛이 신경을 압박해서 눈을 감아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오. 그렇게 눈을 감자 어둠이 몰려왔고,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소.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눈을 떴고, 그때 내게 빛이 쏟아졌던 거였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中
벨리타가 한 걸음 안쪽으로 들어서며 등 뒤로 문이 닫힌다. 이제 들어오는 빛이라곤 작게 난 창에서 흘러들어오는 것뿐이다. 길이 나듯 뻗은 빛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가 보였다. 왠지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소독약 냄새와 함께.
“아니면 여기 이상한 것들이 있다고 떠들어대고 싶거나.”
벨리타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시선은 은색으로 반짝이는 것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한나를 향했다.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두려워서 눈을 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걸, 한나는 태어나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입에 올려야 할지도 모를 이야기였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제야 한나는 제가 조금 떨고 있다는 걸 느낀다. 빛이 잘 들지 않아도 추운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네 자유를 내가 어떻게 막겠어.”
벨리타가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벨리타는 조금 웃는다. 지금 막 손을 놓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선. 한나는 아니라는 말 대신 고개를 젓는다. 말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제 자유가 귀속되었다는 뜻인지 의미가 모호해진다. 벨리타는 개의치 않고 계속 떠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누가 믿을까. …너도 몰랐잖아. 상상조차 못한 일이잖아.”
벨리타 자신도 믿지 못 하는 얼굴이다. 미미한 웃음이 입가에 걸려있다. 얼핏 자조적인 기색이 스친다. 한나는 저를 빤히 바라보는 푸른 눈이 이상하게 빛이 난다 생각했다. 이전에 이런 눈을 본 적이 있다. 벨리타는 다소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뻣뻣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연다.
“정리하고 나와요, 한나.”
말투만큼은 아주 다정했다. 다시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한나가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아주 오래 울진 않았을 거예요 정신차리고 나가야 하니까...! 한나 그래도 강하니까요...! 근데 왠지 클리프를 제대로 못 보고 벨리타는 당분간 조금 피할 것 같네요 🤔 벨리타는 무뚝뚝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클리프는 정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한나 생존력 강하니까요! 어디서든 잘 살아남을 사람... 무서워서 좀 울었고 여전히 무섭지만 곧 어디에 붙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나랑 클리프 조합 재밌겠어요! 둘이 대화하는 게 직접적으로 나온 건 한나가 맨 처음 왔을 때라... 다 알고나서 마주치는 건 어떨지 🤔
눈이 일찍 떠진 클리프는 저택 안을 배회했다. 오전 5시는 되었을까? 깊은 잠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에게는 익숙한 시간대다. 사실 클리프는 깊은 잠을 맛보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죽은 뒤에야 깊은 잠을 경험할 수 있다면? 비록 죽음을 시작으로 삼아 눈을 뜬 클리프지만 그것은 괴물에게도 미지의 것이니, 깊은 잠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미뤄두기로 한다. 클리프가 계속해서 걸었다. “거베라. 모스플록스.” 언젠가 그녀에게 들었던 꽃 이름을 외우며. 그리고 인기척에 뒤를 돌아본다.
깊게 잠드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침대에 걸터앉은 한나가 생각했다. 자다 깬 얼굴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꿈에서는 책이 쏟아졌다가,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손이 목을 졸랐다가, 가족들이 주저앉아 울었다가…… 무슨 꿈을 꾼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막연히 두려웠다. 벨리타와는 다시 평소의 거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따금 그녀가 한나를 훑듯 쳐다보는 일만 빼면. 기이한 평화였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지독한 불안이거나. 소매로 땀을 훔쳐낸 한나가 일어났다. 침대 프레임에서 낡은 나무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라도 쐴 작정이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한나는 이곳에서 살아야 했다. 어디서든 살아남으려면 이곳을 견뎌내야 했다. 옷을 갈아입은 뒤, 문을 열고 주방으로 향하던 한나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존재가, 우두커니. 벨리타는 그를 괴물이라고 했다. 손님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클리프라고 했다. 숨죽이고 있던 한나는 그와 눈이 마주친 뒤에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평범한 대답이다. 돌아오는 질문까지도 이상한 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똑같이 숨을 쉬고 있는데. 제 심장이 뛰듯—비록 한나의 심장은 불안으로 뛰고 있지만— 클리프의 심장도 뛰고 있을 텐데. 그러나 한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기원을 쫓아가면 사람이 나올 테지만, 그의 기원은 아마도 땅속일 테다.
“저도요. 일어난 김에 일을 일찍 시작할까 싶어서.”
“오늘 할 일이 많거든요.”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며, 한나가 쾌활한 척 웃었다. 원인 모를 두려움으로 굳은 얼굴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나의 웃음에 서린 뻣뻣함이 전면에 드러난 건, 클리프로부터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한나는 클리프가 무언가 알고 있는 건 아닌가, 문득 생각했다. 벨리타는 전부 알았고 모두 말할 수 있었다.
“요즘은 일찍 일어나게 되네요.”
그러나 한나는 적당한 얼버무림으로 상황을 무마하는 쪽을 택했다. 더 파헤치고 궁금해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보았어도 못 본 것처럼, 들었어도 못 들은 것처럼.
“해가 길어져 그런가 봐요.”
“…계절이 바뀌고 있잖아요.” 한나가 중얼거렸다. 한나는 계절의 변화를 기민하게 느꼈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계절을 지나, 줄기와 이파리가 점점 단단해지는 계절이 오고 있었다. 줄어든 밤만큼 낮이 길어지는.
작지 않은 규모의 저택에 고용인 둘이면 바쁜 건 사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 둘이서 숨죽여 살고 있었으니 산더미처럼 밀린 일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 “그래도 처음에 왔을 때보다는 괜찮아져서 다행이에요.” 클리프는 눈썹을 기울여서 안타까운 표정을 보였다. 적당한 거리감과 어울리는 예의에 성공한 것 같았다.
클리프가 끄덕이며 한나의 얘기를 경청했다! 원래 제 기분 상태에 따라 못 들은 내용과 들은 내용의 비율이 날마다 바뀌고는 했는데, 오늘의 상태는 좋기라도 한 건지 한나의 목소리를 빠짐없이 담았다.
“곧 놀러가기 좋은 날씨가 되겠죠.”
계절이 바뀌고 있다. 한나의 중얼거림마저도 클리프는 귀신처럼 잡아냈다.
“아, 이거 얘기해야지.”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리고 클리프가 웃는다. 어쩌면 아마 한나가 예전에 보았을 웃음.
클리프가 턱을 짚었다. 생각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척. 겉으로 꾸며내는 거짓 태도. 거짓이라기엔 허점 하나 없어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클리프 본인만이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있겠다. ···모든 것이 장난이고 거짓이며 어딘가에 흐를지도 모르는 낭설··· 사람과 괴물 그 사이, 하필 애매한 중간. 중간인 놈의 머리는 깨끗한 것을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다.
한나만 아는 사실이라며 클리프가 신나게 얘기한다. 공기도 잠잠한 이른 아침에, 사람과의 대화로 저리 해맑게 웃을 수 있는 클리프는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게 맞다. 빗나가고 어그러진 그런 존재. 과연 누구 작품일까!
한나는 클리프를 보며 고민한다. 벨리타에게 이 사실을 말할 것인가, 함구할 것인가. 그 방에서 노트를 보고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고 이들 사이에 간섭할 권리가 주어지는가? 그러나 모른 척하는 건 배신 같았다. 그렇다고 말하자기엔 역시 주제 넘은 짓 같고.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나의 얼굴은 모르는 사이 창백해져 갔다. 즐거운 듯이 말하는 클리프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릭먼 씨가 서운하실 수도 있고, 놀라실 수도 있고……. ” 뒤늦게 자질구레한 이유들을 덧붙여 가며 제 허술한 말에 살을 붙이던 한나는 일순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오로지 움직이는 건 ‘그것’의 입술 하나.
“왜 저한테 그런 농담을 하시구…….”
한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등줄기를 따라 낯선 감각이 올라왔다.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도, 공포.
웃으라고 한 농담이라며 클리프가 한나의 어깨를 두들겼다. 농담은 서로가 웃어야 좋은 농담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만약 알고도 그런 거라면 성깔 고약한 놈이 확실하다.
“이제 가서 볼일 보세요.”
세상만사 미련이 없다기보다는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간 듯한 말투였다. 한나를 보며 웃기만 하던 눈도 이제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희극적인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대화를 가장 즐기던 사람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단락. 여기서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 진짜 나두 정말정말 고맙워 벨리타주 😚 음음 뭔가 나도 엔딩은 편지 내용에 든 거랑 관련있게~ 연결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긴 했어! 요걸 여행 쪽으로 생각해보면 클리프가 진짜 다시 나가려나 싶었는데 ㅋㅋㅋ 역시 앞일은 모른다고.. 역극 돌리면서 (벨리타를) 안 떠나는 쪽으로 못이 거의 박혀서... 벨리타가 따라와주려나🥲 <-요랬는데 벨리타주 말 보니까 놀랍다!.! 👏👏 마음이 동한 계기가 있게 될까? 아님 걍 느낌? 🤔
벨리타의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한나가 알게 된 거겠죠...? 둘만 살던 곳에 사람이 비집고 들어온 이상 언제까지고 혼자 감추고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차라리 사람 사이에 섞이는 걸 택하는 쪽으로! 소소한 계기로는 인간적인 면과 비인간적인 면의 차이가 뭔가... 클리프를 만들고 비난하고 가둬두려 애쓰는 자기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하는 고민도 있었을 것 같고요. 클리프가 벨리타를 안 떠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계기도 궁금해지네요 🤔...!!
그렇구나! 📝 이제 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클맆은 진짜 겉보기에는 무채색이구 잔잔하지만 속에는 막 펑펑 튀고 복잡하고 어떻게될지모르고 그랬거든..? 그래서 아마 내가 이것저것 다 써먹었을 거야 ㅋㅋ.. 호기심 충동 순수 악 숭배 정신이상 장난 거짓 허무 등드등등등등,,,, 암튼 뭐가 있고 얼마나 많든 결국 얘는 괴물이냐 아니냐! 인간이냐 뭐냐! 이거니까 클리프도 요런 고민을 하다가... 초반에는 인간이 되고 싶어했고, 중반에는 다 포기한 것 같고, 최근에는 '중간'이라고 했지!! 이제 벨리타 곁에 있어야겠다~ 한 거는 솔직히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진짜로 이름이 클맆에겐 엄청났을 수도 있고.. 무튼 떠나지 말아야겠다 하는 건 초중반부터 확실해졌을 거야. (+저 이상했나요?나 곧 떠날 거예요 같은 한나한테 하는 말들은 다 순도 100% 그짓부렁..) 클리프는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 중간에 말을 해야..... 편하네... 🥲
맞아요, 클리프 되게 종잡을 수가 없더라구요...! 다음 행동이 예측이 안 되니까 일상 굴리면서도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됐어요 ㅋㅋㅋㅋㅋ 이름이 진짜 족쇄가 됐던 걸 수도 있겠네요 🤔... 어쩌면 처음 눈 떴을 때 본 게 벨리타니까 집 같은 존재로 인식됐을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약간... 다 무너져가는 집이긴 한데...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한나한테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니...! 한나 난이도 최상의 직장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떻게 너무 안쓰러운데 웃기고 ㅋㅋㅋㅋㅋ 저도 벨리타를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는걸요! 일상 굴리다보면 캐릭터들이 잘 움직여두겠죠 😎...!!!
그래그래👍👍 엔딩이 빨라지든 느려지든, 어떻게 굴렸든, 우리 재밌자고 하는 거니까 참치 역사에 오래 남을 일대일로!!! ㅋㅋㅋㅋㅋㅋ 만들어보자구🐟🎣 다 끝나도 가끔씩 썰 풀고 얘기하고 놀면 재밌을 것 같아!!(>>470)일대일에서 잘 맞는 사람 찾기 어려운데 벨리타주를 만났으니 난 너무 행복한 사람.. ⭐️ 전에 얘기했던 일상 주제 목록이.. ①과거 2개 정도가 남은 것 같구, ②저택 근처에서 시신 나오는 거랑, ③호란이 빼고(ㅠ) 셋이서 묘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대화? (이건 ②랑 합쳐도 되겠당) ④평화au 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고 귀여울 것 같아.!!
맞아요! 재밌자구 하는 거니까! 엔딩까지 잘 낸 일대일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 좋아요! 엔딩 후의 소소한 설정풀이, 썰풀이 재밌죠! (>>470 놓친 거 찝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리프주도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저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흑흑... 와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 앗앗 남은 일상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3은 2랑 가는 게 확실히 좋을 것 같네요! 평화는 결국 au가 되어버렸고 ㅋㅋㅋㅋㅋㅋㅋ 잠깐 과거 풀고 다시 현재로 오는 게 좋을까요? 만약에 시신이 클리프와 벨리타하구 관련있다면, 과거에서 그 얘기 다뤄봐도 좋겠어요!